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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단편

[미야카게] 순치의 단계(전체연령가)

전쟁의 시대에 가이드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센티넬은 강력한 초능력을 가진 대신 불안정한 정신-육체를 타고 났으며, 언제나 가이드가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였다. 손가락 하나로 수십 명을 죽일 수 있는 센티넬이라고 해도 정작 가이드가 없으면 그 역시 맥없이 죽어갔다. 그러니 쉽게 폭주하는 센티넬을 진정시키는 것도, 마지막에 쓸모없게 된 센티넬을 처리하는 것도 가이드의 몫이었다.


센티넬은 발에 차이는 돌멩이만큼이나 많으나 가이드의 수는 적었다. 그러므로 전면에 나서는 센티넬의 강함에는 의미가 없었다. 뒤에서 서포트를 하는 가이드가 강한 나라가 이 전쟁에서 이긴다는 사실은 어린아이라도 쉽게 예상할 것이다.


‘이나리자키’는 그런 강한 가이드가 있는 나라였다. 나라에는 많은 가이드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미야 아츠무는 몹시 특별한 가이드였다. 그는 강했고 자신이 강한 만큼 약한 것들을 경멸했다. 사실상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남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쓰레기 같은 센티넬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호출하는 것이었다.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표준어를 쓰고 있으나 남들과 다른 억양은 미야 아츠무가 이나리자키 안에서도 낯선 곳에서 왔다는 걸 알려주었다. 미야를 직접 ‘모시러’ 온 센티넬 센터의 직원은 무슨 말이냐는 듯 미야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미리 눌러둔 엘리베이터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최고의 가이드는 너도 나의 가치를 알고 있지 않느냐는 빙그레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시간이 아까운데.”

“미야씨. 부탁드립니다.”

“나는 분 단위로 시간을 써. 센터 49층이라고 했으니 올라가는데 2분, 가서 보완 시스템 해제를 기다리며 또 3분, 무슨 센티넬인지 모르겠지만 그 층에 있다는 건 실험체라는 뜻일 테니 또 허가를 기다리며 1분…….”



미야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았다. 직원은 열림 버튼을 누르고서 미야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고작 센티넬 실험체를 만나기 위해 내 6분을 써야한다?”

“불쾌해하시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센티넬……이 아닙니다.”



모두가 꺼리는 임무였던 건 이유가 있었다. 제비를 잘못 뽑은 바람에 미야 아츠무를 찾아 내려왔던 직원은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열림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는 손가락에도 땀이 고여 살짝 미끄러졌다. 미야는 벽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하지만, 워낙 기밀이라, 이건 직접 가서 보셔야…….”

“이것 봐.”



미야는 손목의 시계를 보여주었다.



“내가 물은 지 막 2분 30초가 지나는 중이네.”



‘미야 아츠무를 화나게 하지 마라.’ 그것이, 몸 값 비싼 가이드를 데려오라는 말보다 먼저 들은 첫 번째 명령이었다. 초조해진 직원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



-카라스노의 가이드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인 완료] 문 위에 초록색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안쪽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미야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하고서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에 서있던 몇몇 직원들이 미야를 보며 인사를 했다.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카라스노에도 ‘최고’의 가이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설명했다.



-그걸 지난주에 생포했습니다.

-생포?

-근접거리에서 가이딩을 하다가 센티넬 대신 잡힌 모양입니다.

-그건 좀 웃기네.

-그래서 센터로 보내졌는데…….



그때 미야 아츠무는 다시 한 번 시계를 보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이미 확실히 틀어져있었다. 실험체가 된 가이드의 이야기로 허비하기엔 아까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미야의 고개가 들렸다.



-센티넬로 전환이 완료됐다고 합니다. 완벽합니다.





“미야 아츠무님, 들어오셔도 됩니다.”



긴 복도의 끝에는 방이 있었다. 미야는 그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소독약 냄새가 났고, 눈이 닿는 곳마다 이름 모를 기계들이 번들번들 빛났다. 미야는 한 가운데에서 섰다. 여러 개의 문이 눈앞에서 닫혀있었다. 열리지 않은 길을 보면 짜증이 났다. 그는 짧게 물었다.



“어디로?”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남자가 미야를 안내했다. 미야는 조금 더 안쪽의 실험실로 가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사는 나이에 맞지 않게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대단……?”

“카게야마군은, 아,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이름.”

“…카게야마 토비오, 라.”



자신을 데려온 직원 앞에선 티를 내지 않았으나 미야 아츠무 역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까마귀들의 왕,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가이드. 한 번 들어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는 게 정답이었다. 카라스노 같은 작은 나라에서 조금 괜찮은 가이드가 나왔다고 해서 대단할 리 없었다. 당시에는 ‘천재’란 단어는 정말 아무에게나 붙네,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예?”

“이곳으로 데려왔으면 그 실험인데, 그, 뭐라고 하더라.”



말끔하게 잘 가꾼 외모를 가진 남자는 일순 무례한 정도로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 단어를 직접 말하는 일이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순치’?”



길들인다는 뜻의 프로젝트명은 가이드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센티넬에게 맞는 단어였다. 센티넬이란 가이드의 손길이 필요한 야생동물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가이드는 길들여 쓸 만하게 만든다. 가이드는 훈련사, 센티넬은 짐승. 그런 생각이 강하게 박혀있는 미야로서는 이나리자키의 프로젝트 ‘순치’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전쟁 중 생포된 가이드의 말로는 뻔했다. 타국의 센티넬이 잡혔을 경우 보통 인질과 교환을 하거나, 아니면 자국 센티넬들보다 위험한 지역에 배치시켜 인간 방패로 썼다. 하지만 가이드의 경우에는 달랐다. 언제나 부족하고 귀한 가이드들을 처음 잡았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잘 설득해보려고 했다.


‘우리 센티넬들을 봐준다면 중요한 자리를 주겠다, 가이드로서 섭섭지 않게 대접하겠다.’


그 말을 듣고 설득당하는 가이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맡은 센티넬들과의 자멸을 선택했다. 나라를 위해 중책을 맡고 봉사해온 가이드들의 충성심을 무시한 결과였다. 제법 잘 가이딩을 하나 싶어서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 기다렸다는 듯 센티넬을 자폭시키고 자신 또한 죽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아무리 센티넬이 많다고 해도 타국의 가이드를 전선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때문에 가이드를 잡았을 경우 다르게 쓸 방법을 찾아야했는데, 이나리자키의 경우엔 그것이 센티넬 전환 실험이었다.





박사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가장 강한 가이드는 가장 강한 센티넬이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센티넬과 가이드의 형질적 동일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한 명의 사람을 가이드로 만들고, 센티넬로 만드는 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가이드를 센티넬로, 센티넬을 가이드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젝트팀 ‘순치’ 는 센티넬과 가이드의 체질을 바꾸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실험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고 들었지만.”



미야가 말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문이 열렸다. 그는 그때 어떤 파동을 느꼈다. 잠시 움찔하자 박사가 놀라운 눈으로 미야를 쳐다보았다.



“느껴지십니까?”

“…….”

“가보시면 압니다.”



미야는 천천히 걸었다. 발목이 갑자기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거대한 힘이, 미야 아츠무, 감히 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하, 기가 막힌 웃음이 미야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보십시오.”



건물 최고층에 만들어둔 실험실은 옥상 아래의 넓은 층을 모두 단단한 유리벽으로 세워서 막아놓은 모양이었다. 실험체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도록 하얗게 칠을 한 유리의 방. 기분 나쁠 정도로 온도는 서늘했다. 미야는 박사가 권하는 대로 차가운 유리벽 안을 들여다보았다. 미야가 있는 곳에서 약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엔 고개를 숙인 소년이 있었다. 지나치게 먼 거리인 것에 잠시 의문을 가졌다가,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장에서부터 바닥에 고정된 쇠기둥에 묶인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렸다. 미야가 가만히 바라보자 박사가 말했다.



“카라스노의 가이드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리고 저희는 저 정도의 능력이 없다면 체질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거란 것도 알았습니다.”

“그 말은.”

“‘가장 강한 가이드는 가장 강한 센티넬이다’”

“…….”

“이 말이 맞았습니다. 가장 뛰어난 가이드만이, 센티넬로서의 전환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사실상 이 프로젝트는 동결이죠. 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벽 너머의 작품을 홀린 듯이 보았다. 카게야마는 가이드로서의 유전자가 흠 하나 없는 배열을 이루어 완벽했다. 그 순수한 몸에 몇 번이나 몸을 뒤집어버리는 약물을 주입하고 고문으로 망가트렸다. 가이드의 모든 걸 잊고 센티넬로서의 조직을 쌓아 올리게 했다. 조금씩 변해가는 세포는 고결한 것을 망친다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나, 센티넬로서의 완성을 확인하자 그는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카게야마를 사랑하게 되었다. 박사는 이미 카게야마에게 매혹당해 있었다.



“굉장해요.”

“…….”

“그 동안 이곳에서 많은 가이드를 봤습니다, 센티넬도. 하지만 ‘저런’ 건 처음 봤습니다.”

“…….”

“일주일 사이에 접근하는 열 두 명의 가이드를 다치게 했어요. 평범한 센티넬은 아예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죠. 격이 다릅니다.”



처음으로 완성된 ‘센티넬’에게 가이딩을 하기 위해 이나리자키의 가이드가 투입됐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가이드를 거부했다. 거부할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센티넬로서의 힘을 발휘해 가이드들을 공격했다. 미야는 박사의 말을 끊고 물었다.



“능력은?”

“능력 자체는 평범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물리적인 충격을 주죠.”

“……그렇게 뛰어난 가이드를 바꿔놓은 건데 아깝게.”

“하지만 미야 아츠무씨.”



박사는 황홀한 눈으로 유리벽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에게 무작위로 접근하는 열 명의, ‘가이딩’을 시도하는 가이드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습니다.”

“……뭐?”



센티넬은 가이드를 거역할 수 없다. 제아무리 강한 센티넬이라고 해도 언제나 가이드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가이드의 가이딩은 센티넬에게 마약과도 같은 것이고, 한 번 시작되면 결코 거부하지 못한다. 그것이 미야 아츠무의 상식이었다. 박사가 다시 말했다.



“치명적인 부상이요. 이 방으로 들어온 가이드 전부에게…….”

“…….”

“세 군데의 급소만을 동시에, 정확히 찔렀습니다.”

“…….”

“직경 십 미터의 거리에서.”



그것이 센티넬로 재탄생된 카게야마 토비오를 폐기하지 못하는 이유였고, 미야 아츠무라는 최고의 훈련사가 이 자리에 서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


“……이름이 뭐였지?”

“카게야마-”

“토비오군이었지.”



미야는 토비오군, 하고 이름을 불러보았다.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사내아이다운 이름이었다.



“……재밌네.”



그는 손목의 시계를 풀어 박사에게 맡겼다. 박사는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봐주시는 겁니까?"

“허접한 놈들에게 맡겨봤자 이야기만 길어지지.”

“그러면 방탄복을.”

“됐어.”



미야 아츠무는 유리벽 너머의 소년을 응시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묶여있던 건지 사슬에 묶인 손목이 새파랬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장 문을 열게 했다. 잠이 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을 번쩍 들었다. 안 그래도 치켜 올라간 눈매가 상대를 확인하려는 듯 가늘어졌다. 그리고 미야는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자신의 발목을 잡아채던 압도적인 힘. 저보다 작은 저 몸 안쪽에서 거대한 힘의 파도가 일어났다. 그리고 우습게도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안녕, 토비오군.”

“…….”

“대답이 없네. 시간 아까우니 바로 들어갈까.”



카게야마의 몸이 앞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공격 하려고 한다, 라고 느낌이 온 순간 미야의 입이 열렸다.



[자, 착하지?]



머리 위로 묶인 손을 꼼지락거리던 카게야마의 모든 행동이 멈췄다. 미야는 그가 숨쉬기조차 잊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이드에서 무리하게 센티넬로 전환된 소년이었다. 센티넬로서의 감각이 생소할 텐데도, 용케 가이딩도 받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싶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눈을 들어 미야를 쳐다보았다.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괜찮게 생긴 얼굴이네.]

“……!”

[기분은 어때. 내 생각엔.]



미야 아츠무는 카게야마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걸어갔다. 그가 가장 뛰어난 가이드라는 말을 듣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능력에 있었다. 접촉을 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센티넬을 안정시킬 있는 절대적인 가이드. 센티넬에게 신탁을 내리는 신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미야 아츠무는 천천히 또 하나의 신자를 만들 준비를 했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아주,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읏.”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

“……!”

[싫진 않은 거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센티넬에게 접근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질색을 할 일인데도 미야는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하려는 팽팽한 힘을 쳐내자 카게야마의 파란 눈이 더욱 커졌다. 어느새 바로 앞이었다. 귀를 막을 수 없는 센티넬은 심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숨 쉬어야지.]



카게야마의 동그란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그는 다정히 말했다.



[토비오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리자 눈앞의 센티넬은 또 움찔한다. 망가진 가이드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확실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대답해.]

“아니…….”



무심결에 가이드의 말을 따르고 입술을 깨문다. 미야는 그것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손아귀에서 무력하게 발버둥치는 약한 것이, 실제론 자신을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가장 강한 가이드는 가장 강한 센티넬이라는 말은 정말일까. 얼마나 뛰어난 가이드였기에 굶주린 상태에서도 저항을 하는지 그는 궁금했다. 아마, 다시는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라.”



미야는 조금 놀란 눈을 했다. 가까이에서 가이딩을 하는 중에도 미약한 발악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주인을 피해 방구석으로 숨어들어가는 어린 짐승 같았다. 겁을 먹은 센티넬의 앞에 미야는 몸을 숙였다. 제법 반항이 거칠었다.



[토비오군]

“…….”

[여기서 나갈까? 몸이 만신창이야.]

“…….”

[나가고 싶지 않아?]



답이 없는 짐승에게 먹이를 내밀며 그는 쓰다듬기를 반복했다. 간절한 주제에 손을 내밀면 카게야마는 앙큼하게도 고개를 돌렸다. 미야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상하게도 즐거운 기분이었다.



[가이딩 기분 좋지? 토비오군도 가이드였다고 하던데.]

“나는, 가이드……!”

[응, 이제 아니지만.]



아마 이런 꼴론 누구와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센티넬로 전환되어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센티넬로서 능력을 쓰면서도 추측만 하고 있었을 사실을 확인시켜주자, 카게야마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미야는 내밀었던 먹이를 주며 이번엔 약간 꾸짖기로 했다.



[센티넬이니까 더 이상 가이드로서는 못쓰게 됐거든]

“……!”

[카라스노는 좋은 가이드를 잃었네. 불쌍하게.]

“아니, 안…….”



아닌데, 아닌데……. 카게야마는 의미 없이 고개를 저었다. 박살난 몸을 어루만져주고, 막을 수 없는 목소리로 무너진 정신을 파고들었다.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센티넬도 잘 어울릴 거야.]



상냥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모든 센티넬들의 위안이 되는 바로 그 가이드의 것이었다.



[내가 잘 돌봐줄 테니까.]

“나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속 안에서 터질 것 같은 힘을 가진 센티넬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기둥에 고정되어있는 손가락들이 무언가를 잡고 싶어 하는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뇌에 전해져 혈관을 따라 전신으로 흘러들어가고, 막 변형된 세포 한 조각까지도 찾아내어 위로해주고 있는데도. 카게야마 토비오는 추운 듯 몸을 떨며 미야를 악착같이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가이드야.”

“…….”

“카라스노로, 돌아, 갈……!”



아!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카게야마의 눈이 뒤집혔다. 끝까지 말을 안 듣는 짐승의 목덜미를 잡아 강하게 복종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목이 잡힌 카게야마는 꺽꺽 거리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미야는 카게야마가 기절한 걸 보고 밖으로 손짓했다. 곧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대기조들이 뛰어 들어왔다.



“이거 풀어.”



미야가 사슬을 가리키며 말하자 사람들은 곤란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어차피 이대로는 못 쓰잖아? 제대로 센티넬을 만들어 올 테니까 풀어봐.”

“미야씨?”

“오늘 스케줄도 다 취소해 놓고.”



그 말 속에 숨은 뜻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결국 누군가 나서서 카게야마의 사슬을 풀었다. 멍이 난 손목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야는 손수 소년을 안아 들었다. 몇 살이나 될까. 일주일 간 물도 음식도 섭취하지 못한 몸은 보기보다 가벼웠다. 미야는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모르는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만지고만 있어도 몸 안에서 흐르는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이었으나 프로젝트 ‘순치’를 듣고, 미야는 만약 자신이 센티넬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센티넬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될 리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자신만큼 뛰어난 센티넬을 만난다면……. 그래서 그 존재를 내 손안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기쁠까.



“……재밌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존재가 품 안에 들어왔다. 미야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


보통의 가이드는 접촉을 통해 센티넬을 제어한다. 그러므로 접촉해야하는 부분이 많고, 시간이 오래 필요할수록 가이드의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었다. 보통은 손을 잡거나 어깨를 만져주는 스킨십에서 그쳤지만 능력이 떨어지는 가이드들은 센티넬과 관계를 가졌다. 그것이야 말로 직관적으로 가이딩을 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야 아츠무는 한 번도 센티넬과 관계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힘을 써야할 상대를 만나지도 못했고, 센티넬과 하는 게 불쾌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로 지금까지는 그랬다. 미야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카게야마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깨고 싶지 않은 건가.”



미야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아 푸르게 난 멍자국에 입을 맞췄다. 신선한 과일의 향기가 났다.



“깨우면 나를 싫어하려나.”

“으…….”

“아니지.”



입을 맞췄던 손목을, 언제 그랬냐는 듯 간단히 씹었다.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상처를 헤집자 깨지 못한 카게야마가 움찔거렸다. 아픈 걸 좋아하는 성격이야? 정말 귀엽네. 미야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탄을 하며 가볍게 숨을 쉬는 카게야마에게 속삭였다.



“센티넬이 가이드를 싫어할 리가 없어.”

“…아…….”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가이드는 센티넬을 결코 아프게 하지 않아. 이렇게 신체만 접촉해도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미친 듯이 도파민이 쏟아지거든. 소곤소곤 거리는 목소리도 가이드의 것이었다. 의식을 잃은 신체와 정신을 완전히 정복한 미야는 숫자를 셌다. 십, 구, 팔…….



“칠.”



경련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발가락.



“육.”



제어가 되지 않는 다리 근육들



“오.”



긴장했다가 느슨해지기를 반복하는 보기 좋은 아랫배.



“사.”



들썩이는 가슴.



“삼.”



숨을 크게 들이쉬기 위해 확장되는 목구멍, 그리고 벌어진 입.



“이.”







“일.”



초점을 잃은 파란 눈동자가 미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깨닫기 전에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머릿속이 핑핑 돌 것이다. 가이딩을 당한 몸은 곧바로 뇌에 명령을 내렸다. ‘가이드에게 따라야한다.’ 카게야마는 그 명령을 깨달았는지 퍼뜩 놀랐다가 황망히 미야를 바라보았다.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아, 아……. 깨기 전부터 시작된 눈물은 가득 차올랐다가 터져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왜 울까.”

“으, 아, 싫, 싫은,”

“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미야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다가 입술로 눈가를 훑었다. 카게야마가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따라갔다. 만족할 때까지 얼굴에 키스한 후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이제 뭘 할 것 같아?”

“……!”

[내가 해도 될까?]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가이딩을 당하면서도 가이드를 거부하다니 정말 보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센티넬이 가이드를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제아무리 강한 센티넬도 그만큼 강한 가이드 앞에선 속수무책. 곧 카게야마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만해달라는 애원이 가늘게 쏟아졌다. 미야는 품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신을 거부하는 존재가 문득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아직 키스만 했는데도.”

“아, 제발, 그만……!”



거부하기 때문에 더 즐거웠다. 미야는 카게야마의 부은 입술을 만져보며 말했다.



“정복당하는 기분, 좋지 않아?”

“읏……!”

“토비오군은 이제 센티넬이 됐으니까. 나랑.”



말하던 미야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웃었다. 끌어안긴 탓에 진동이 전해지자 카게야마가 부질없는 몸부림을 쳤다.



“내 이름을 안 말했네. 난 미야 아츠무야.”

“으윽, 읏, 흐……."

“미야씨라고 불러도 되고, 아츠무씨라고 불러도 되고.”



훌쩍훌쩍 어린애처럼 우는 센티넬의 고개를 들게 했다. 무리하게 고개를 꺾으면 눈물로 젖은 파란 눈동자가 서럽게 미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야는 그 눈을 보며 생긋 웃었다.



“가이드님이라고 불러도 돼. 어차피 토비오군 담당은 나밖에 할 수 없을 테니까.”

“윽…….”

“기쁘지?”

“…….”

[기쁘지 않아?]



그러나 기뻐서 죽어버릴 것 같다는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울던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답을 기다리던 미야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투정이 귀엽네.”

“놔주……아!”



이제 시작이었다. 미야는 지금 시간이 몇 시쯤일지를 생각했다. 모든 스케줄은 어그러졌고 아마 한 일주일 동안은 고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센티넬을 길들이는 일에는, 얼마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