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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단편

[오이카게] 오이카와의 잎새


병원의 병실에는 창문 가득 자목련이 피어 있었다. 양달이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빨리 폈다. 예쁘네. 짧게 감상을 내뱉은 이와이즈미는 가뿐히 음료수병의 뚜껑을 열었다. 창가 바로 옆, 햇빛이 쏟아지는 자리에 누워있던 오이카와는 소꿉친구가 내미는 음료수를 받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토비오쨩, 너무해!"


오이카와 토오루는 투덜거렸다. 이와이즈미가 벌써 다섯 번째로 듣는 말이었다. 4인용 병실이었으나 다른 환자들은 모두 퇴원했다. 오이카와 혼자서 쓰고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와이즈미가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자 오이카와는 음료수를 꼴깍꼴깍 마신 후 너무해! 또다시 외쳤다. 이와이즈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애인이 아프다면 당연히 와야 하는 거 아냐?"

"편도선 수술은 간단하잖아. 카게야마도 대학생인데 바쁘겠지."

"오이카와씨가 이렇게 아픈데..!"


오이카와는 우는 시늉을 했다. 환절기마다 편도선이 붓는 오이카와는 더 이상 고생하는 건 싫다며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애인인 카게야마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른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그는 메시지로 대신했다. 


「토비오쨩, 오이카와씨. 목이 너무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아요」 


그렇게 라인을 보내면 카게야마에게선 


「..? 어서 물을 드세요 오이카와씨」


라고 답이 왔다. 이쯤 되면 눈치 없는 것도 병이었다. 속상해진 오이카와는 수술 날짜를 받아놓은 당일 아침에야 카게야마에게 통보하듯 메시지를 보냈다. 작정하고서 보낸 메시지는, '그' 카게야마라도 알 수 있는 직관적인 문장이었다.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는 아파서 병원에 갑니다. 오늘이 수술 날이야...」


오이카와는 일부러 끝에 점 세 개를 찍어 아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오이카와씨가 입원할 병원은.. 」하고 정보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비오쨩은 오이카와씨의 걱정을 좀 해야 돼.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한 후 수술에 들어가기 전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자마자 문병 온 이와이즈미에게 핸드폰 확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연락은 없었다. 오이카와는 다 마신 음료수를 쓰레기통에 소리나게 던졌다. 


"어째서 연락이 없는 거야!"

"사정이 있겠지."

"오이카와씨보다 더 중요한 사정이라니, 그게 뭔데?"

"글쎄. 배구?"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보다 더 간절히 카게야마가 와주길 바라게 되었다. 이와이즈미의 인내심이 사라질 동안 오이카와는 침상에서 으아아 발버둥 쳤다. 그리고는 창밖의 목련을 보며 구슬픈 목소리로 입을 여는 것이다.


"이와쨩. 오이카와씨..이제 죽는 거겠지. 토비오쨩도 와주지 않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저 목련꽃이 다 떨어지면.."


오이카와의 말을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수북한 자색 목련꽃을 당장이라도 다 뜯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하품 때문에 나온) 눈물을 훔쳤다. 


"목련꽃이 다 지면, 오이카와씨도 꽃처럼 져버리는 거예요. 오이카와씨..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죽어ㅅ,"


그 순간 털썩, 하는 소리가 문가에서 들렸다. 운동 가방을 떨어트린 카게야마가 새하얗게 질린 채 오이카와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가방을 줍지도 못하고 천천히 오이카와에게 다가왔다. 더듬거리듯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오이카와씨...심각한 거였습니까?"


막 훈련을 끝내고 달려온 건지 카게야마에게선 젖은 물비누 냄새가 났다. 카게야마, 그게. 이와이즈미는 순진한 후배를 구할 지 아니면 귀찮은 친구를 두고 볼지를 고심했다. 오이카와가 열심히 이와이즈미에게 눈짓했다. 이와쨩! 제발! 제발! 이와이즈미는 결국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지막 잎새를 모르는 카게야마에게서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난 잠깐 밖에 다녀올게." 


미안하다. 카게야마. 나도 살아야지. 이와이즈미는 나가며 병실 문을 닫아주었다. 


*


"오이카와씨."


카게야마는 핏기가 없는 얼굴로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간호사들이 깨끗하게 닦아주었지만 수술 중 흐른 피는 오이카와의 환자복에 조금 묻어있었다. 카게야마가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오해를 빨리 풀어주고는 싶지만 이 상황을 조금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오이카와는 약한 목소리를 냈다.


"토비오쨩. 왜 연락 안 했어?"

"충천을 잊었습니다.. 방금 이와이즈미씨와 하신 말은."

"그랬구나. 오이카와씨 많이 쓸쓸했어요."


눈치도 없고, 애정표현도 없는 연하의 애인에게 쌓인 것은 많았다.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자꾸 찔러서라도 확인하고 싶어진다. 오늘의 오이카와씨는 조금 여고생 컨셉? 오이카와는 어떤 말부터 꺼내야할 지 몰라 혼란스러운 카게야마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옆에 주저앉듯 앉았다가 결국 다시 물었다.


"많이 위험하신 겁니까?"

"...의사는 오이카와씨에게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어."

"입원.."


카게야마는 탄식했다. 편도선 수술이라고 해도 2주 입원을 해야 하니 거짓말은 아니다. 오이카와는 딴청을 부렸다. 카게야마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무겁게 묻는다.


"그러면, 언제까지..?"

"한 2주?"

"...2주.. 밖엔 안 남은 건가요?"

"어..2주, 남았네."


카게야마의 머릿속에 2주 밖에 목숨이 남지 않은 시한부 오이카와의 모습이 그려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뻔히 알아차렸으나 오이카와는 굳이 수정해주지 않았다. 얌전히 무릎 위에 주먹을 쥔 카게야마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쉴 새 없이 깜박이는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어렵게 올려다보았다. 


"2주...너무 갑작스러워서, 사실은..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응. 오이카와씨도 정말 놀랐어."

"......괜찮으십니까?"

"으응.."

"오이카와씨가..오이카와..씨..저는..오이카와씨가..."


쥐어짜내는 목소리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거 좀 위험한데. 창백해진 얼굴로 눈에는 핏줄이 선 카게야마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있다. 파란 눈동자는 시간조차 멈춘 채 오이카와를 붙잡았다. 차라리 울었다면 거짓말이었습니다! 토비오쨩! 이라고 말해주려던 오이카와는 당황해서 괜히 두리번거렸다. 오이카와가 사실은, 이라고 운을 떼기 직전, 카게야마는 숨을 몇 번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씨. 오이카와 선배."

"ㅇ..응?"

"몸 움직이실 수 있습니까? 그러면 서브 가르쳐주세요."

"...네?"


장난이겠지. 이런 때에. 오이카와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동안 카게야마는 결연한 태도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역시 서브, 가르쳐주세요."

"잠깐만, 토비오쨩? 토비오쨩? 지금 오이카와씨가 죽는데 서브가 먼저야?"


2주 동안 오이카와씨의 옆에 딱 붙어서 병수발을 들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서브라니. 기가 막혀 되물어보면 카게야마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러니까 서브! 가르쳐주세요!"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오이카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물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카게야마의 얼굴은 대신 비를 맞고 있는 사람처럼,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카게야마는 흐느꼈다. 


"..토비오쨩.."

"계시지 않아도 제가 당신의 서브, 완벽하게 해낼 테니까 저한테.."

"....."

"저한테 남겨주세요."

"..저기,.."

"...그러면 오이카와 선배, 저와 함께 코트에서 뛰실 수 있어요." 


애정이라기보다는 집념에 가까운 감정, 하지만 충분히 기꺼웠다.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마 이것은 카게야마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일 것이다. 웃음 짓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며 카게야마는 의아해한다. 방금 전의 기세는 누그러진 카게야마는 언제나처럼, 오이카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팔을 좌우로 벌렸다.


"토비오쨩. 이리 와."

"예?"

"안아주고 싶으니 어서 이리 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은 곧 조심조심 다가와 오이카와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언제 제대로 말해줘야 하지, 까맣고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이카와는 눈을 돌렸다. 지나치게 무성히 핀 목련을 보니 오래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카게야마는 충격을 받았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토비오쨩이 제때 연락 안 한 탓이니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미안하다. 카게야마.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럼 아까..잎새?..그런 말은?"

"...카게야마 너도 책 좀 읽는 편이 좋겠다."


커플놀음 덕에 병원을 배회하고 돌아온 이와이즈미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퍽퍽 퍼먹던 오이카와는 씩 웃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아이스크림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설명에도 카게야마는 마지막 잎새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나뭇잎을 창문에 그려놓으면 사람은 죽지 않는 겁니까? 그 대답에 이와이즈미는 더 이상 이해시키길 포기했다. 오이카와는 생글생글거리며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토비오쨩은 오이카와씨가 그렇게 좋아? 울어버릴 정도로?"

"안 울었습니다!"

"마지막에 오이카와씨 품에 안겨서 울었잖아! 여기, 여기 오이카와씨 어깨에 묻은 건 뭔데?"


..그건 침입니다. 카게야마는 분한 얼굴로 외쳤다. 


"토비오쨩 또 고집부리네. 침 아니잖아."

"..자..잠깐 졸았습니다. 잘 때 침 흘리니까."

"토비오쨩 잠버릇은 오이카와씨가 더 잘 알거든?"

"이와이즈미씨 앞에서 무슨 말씀이세요!"


옥신각신 떠드는 친구와, 후배를 보고 있던 이와이즈미는 다시 일어섰다. 아무래도 다시 떠돌다가 와야할 것 같았다. 




오이카게 전력 60분 "눈물" 참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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