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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단편

[오이카게] Bitter Sweet

어린 제왕에게 여자가 생겼다. 벌써 여러 명이, 여자와 함께 다니는 카게야마를 보았다고 말했다. 소문이란 건 충격적일 수록 쉽게 퍼지기 마련이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키타가와들은 그 화제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역시 '의뢰'를 받기 위해 나왔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오이카와. 카게야마에게 여자가 생겼다는데.] 평소라면 그런 소문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메시지엔 왠지 모를 다급함마저 있었다. 조직에 처음 들어와 성년이 될 때까지 여자라곤 쳐다보지도 않던 카게야마였다.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면 걱정이 될 만도 했다. 오이카와는 메시지를 받고 입 끝만을 올려 웃었다. 이와쨩은 토비오쨩의 엄마에요? 답장을 하려던 손은 순간 멈칫했다. 그는 슬쩍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파라솔의 그림자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앉은 곳은 카페의 야외 테이블이었다. 금방 물을 뿌려 하얀 울타리 사이에서 핀 튤립이 반짝거렸다. 그다지 편하지는 않은 철제 테이블과 같은 재질의 의자. 주문한지 오래인 커피는 식어갔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앉아있는 카페를 지나가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토비오쨩, 하고 그를 불러보았다. 중얼거림 같은 목소리였다. 듣지 못한 카게야마 토비오는 지나가면서 옆의 여자에게 무어라고 말했다.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웃었다. 직접 들어보진 못했으나 아마도 까르르, 같은 상쾌한 소리일 것이다. 오이카와는 여자를 힐끔 보고는 다시 한 번 카게야마에게로 눈을 고정했다. 제법 근사하게 입은 카게야마는 부끄러운 얼굴로 오이카와가 있는 카페 옆을 가리켰다. 이 거리에는 예쁜 카페가 많았다. 

카게야마가 여자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 본 오이카와는, 다시 핸드폰의 자판을 눌렀다.


[늦었네! 이와쨩. 오이카와씨는 전부 다 알고 있어요]


*


암살이라고 하기엔 요즘 세상에 거창했다. 야쿠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적절히 줄을 타는 것뿐이라, 죄책감도 없었다. 키타가와라고 불리는 킬러 집단의 수장인 오이카와가 선택한 곳은 아오바죠사이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돈을 많이 줬다. 보스는 늙어서 힘이 없으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세력도 적었다. 그 나이든 보스의 손발이 되어 대신 일을 처리해주는 게 요즘 키타가와의 주된 임무였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진지한 얼굴로 맥주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황금빛 액체 속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왔다. 크림을 올려놓은 것 같은, 달콤한 색깔의 음료가 실은 쓴 맛이 난다는 걸 카게야마는 아직 몰랐다. 동갑인 쿠니미 아키라는 옆에서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성년식이 지나면 사람도 죽이게 될 텐데 술이 대수야?"

"...아직 안 지났어."

"내가 마실래."


누군가가 내민 맥주잔은 또다시 킨다이치 유타로의 손으로 들어갔다. 킨다이치가 마시려는 순간, 이와이즈미가 가볍게 잔을 빼앗았다. 벌컥벌컥 대신 비우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킨다이치는 동경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미니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이와이즈미씨. 카게야마, 술게임 하다가 걸린 거였어요. 대신 마시면 어떡해요."

"그럼 킨다이치는?"

"킨다이치야 원래 술을 좋아하니까."


카게야마는 자신을 앞에 두고 하는 대화에 작게 반응했다. 킨다이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 말에 킨다이치의 얼굴이 붉어졌다.


"쿠니미 말대로 술이 대수야? 조금만 있으면 난 성인이 된다고."


몰려있던 공간에 틈이 생겼다. 이와이즈미는 그 자리를 사양하지 않고 앉았다. 어린 얼굴들 셋이 가장 먼저 이와이즈미를 반기고 있었다. 그는 씩 웃고는 제 옆에 앉은 킨다이치의 어깨를 힘을 주어 두드렸다.


"너희 세 명 말이야. 기대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킨다이치. 엄청 시끄러워."


쿠니미가 킨다이치를 타박했으나 그 역시 수줍어하는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소란스러운 대화에 끼지 못한 채 빈 잔을 쳐다보았다. 흰 거품이 거미줄처럼 잔의 벽을 타고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술 게임이라니?"

"이와이즈미씨. 모르십니까? 이 녀석 여자 생겼잖아요."

"아. 그래. 나도 궁금했어."


누군가 저 멀리서 외쳤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다시 한 번 카게야마의 대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어느 집안 아가씨인데? 예쁘냐? 어디까지 갔어? 마지막 물음에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말 못합니다."

"치사해."


와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카게야마는 입을 다문 채 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흥이 깨지기 전 빠르게 주제가 옮겨간다. 달의 마지막 일요일마다 열리는 술판이었다. 막내들의 이야기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아까운 것이다. 술자리가 깊어질수록 시답잖은 음담패설이나, 옛날의 무용담으로 떠들썩했다. 과장된 부분이 있었지만 카게야마나 킨다이치, 쿠니미는 열심히 그것들을 새겨들었다. 고아로, 어린 나이에 키타가와로 흘러들어온 셋은 지금까지 누군가의 보조로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신분증도 나오지 않은 애한테 총을 맡길 수 없다는 오이카와의 지론 때문이었다. 미성년자에 단독 의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러고 보니, 이와이즈미는 떠들어대는 무리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성년의 날이 얼마 안 남았네."

"예."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 건 카게야마였다. 이와이즈미는 그 매끄러운 까만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도록 손가락을 넣어 쓰다듬어주었다. 


"오이카와가 적당한 일을 구해올 거다. 너희들이 같이 할 수 있을 거야."

"아오바죠사이의 일인가요?"


손가락들을 겹쳐 펼치던 쿠니미가 물었다. 나긋나긋한 물음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서려있었다. 킨다이치 또한 이와이즈미의 쪽으로 몸을 숙였다. 카게야마의 눈이 반짝였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보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이와이즈미는 이 꼬마들을 봐왔었다. 이제 곧 성인이 된다고 해도 그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그렇겠지. 생각보다 내분이 심해."


쿠니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이지만 피가 섞여있는데 말이죠."


아오바죠사이의 나이 든 보스가 지지하는 건 후처에게서 본 차남이었다. 망나니로 소문난 장남이 그것을 두고 볼 일은 없었다.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모두 끌고 나와 장남이 당위성을 주장했기에, 아오바죠사이는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킨다이치는 잔에 맥주를 따르다가 투덜거렸다.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누구보다 큰 편이었다.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곧 조용해졌다. 이와이즈미는 홀로 독한 술을 마신 후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갑자기 튀어나오지 마라. 오이카와."

"오이카와씨같은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해야 어울리는 법이지."

"웃기지도 않아."


이와이즈미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서, 오이카와는 앉아있던 카게야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킨다이치의 맥주잔을 쳐다보고 있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맞추고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토비오쨩."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오이카와씨."

"싫거든요."


오이카와는 손가락을 접어 카게야마의 뺨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잠깐 오이카와씨를 도와줄 수 있을까? 

"제가요?"

"조금 바빠서 말이야, 오이카와씨 총 좀 정리해줘."


다른 애들은 전부 다 술에 취해있네. 그 말에 킨다이치와 쿠니미가 움찔했다. 카게야마는 두말없이 일어섰다.


*


모임은 언제나 오이카와의 저택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모두가 이곳에서 지내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은 독립한 상태였으나, 먹이를 둥지로 물어오는 새처럼 꼬박꼬박 저택을 찾아왔다. 한 명씩 나간 저택엔 이제 카게야마들만이 남아 있었다. 복도를 걷던 카게야마는 옆에 선 오이카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오이카와도 옆으로 눈을 돌려준다. 방금과 같은 미소는 없었다. 그래도 카게야마는 안심했다. 웃지 않는 오이카와는 웃는 오이카와보다 파악하기 쉬웠다. 카게야마는 묵묵히 오이카와를 따라 걸었다. 오이카와의 방은 가장 안쪽이었다. 주인은 직접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카게야마는 빈 방에 대고 인사를 했다. 오이카와씨 여기 있잖아? 오이카와가 묻자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씨한테 인사한 거 아닙니다. 하고 대꾸했다. 


"한 마디도 지는 법이 없지. 자. 저리 가."


커다란 소파에는 오이카와가 '사용'하고 온 총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창문을 등진 채로 오이카와는 책상 앞에 앉았고 카게야마는 소파의 총을 집어 들었다. 화약 냄새가 났다. 아직 총탄이 들어 있었다. 우선 총탄부터 빼내며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씨."

"네, 오이카와씨 지금 일하고 있어요."

"성년식 때 저 총 쏘는 법 알려주세요."

"토비오쨩은 알려주지 않아도 빌어먹게 잘 다루잖아? 오이카와씨는 알려주고 싶지 않은걸."


킨다이치나 쿠니미는 직접 가르쳐줬으면서.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오이카와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할 정도로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이제 자신은 며칠만 지나면 어른이 되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정말로 의젓해졌다고 자찬했다. 


"..어라?"


평소라면 지지 않고서 오이카와씨! 알려주세요! 라고 조를 카게야마가 조용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얌전하네. 토비오쨩."

"어차피 알려주시지 않을 거잖아요."

"응."

"나중에 훔쳐볼 겁니다."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오이카와는 얼굴을 허물어트리며 웃었다. 카게야마는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곧 성인이니까요, 더 이상 오이카와씨에게 조르기만 할 순 없습니다."

"기특한 말을 하네."

"오이카와씨도 바쁘시고, 저도 이제 곧 여기를 나가야할 테고."


그 말엔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틱틱,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오이카와의 손목시계는 가끔 이상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고는 했다. 오이카와의 곁에서 모든 걸 배워왔던 카게야마에겐 익숙한 소리였다. 잠시 후 오이카와는 입을 열렸다.


"이상한 소문이 들리더라."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애인이 생겼다며."


카게야마는 닦던 총을 내려놓았다.


"오이카와씨도 그런 걸 궁금해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나야 늘 토비오쨩에 대해 궁금해 하지."

"우연히 만났습니다. 길을 물어보기에, 알려줬어요. 그 뒤로 또 비슷한 곳에서 만나서 그땐 고맙다고.."

"전형적이네."


정말로 전형적인 만남이었다. 오이카와는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좋은 여자같아?"

"좋은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요."

"글쎄. 오이카와씨도 잘 모르겠네."

"...."


조금, 카게야마는 덤덤하게 말했다.


"조금, 오이카와씨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여자의 어디가?"


오이카와의 말에는 낯선 구석이 있었으나 카게야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오이카와의 질문에 대답하기 바빴다.


"머리색이 닮았어요."

"음..."


오이카와는 눈을 깜박였다. 스치듯 지나간 여자의 머리카락 색은 밝은 갈색이었다는 것만 기억났다. 그 외의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은 그때 카게야마 토비오의 웃는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오이카와는 책상에서 일어섰다. 창문 밖으로 뜬 달을 오이카와가 전부 가려, 방은 조금 어두워졌다. 


"그러면 토비오쨩은."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맥주는 달콤할 것 같은 색깔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런 맛이 아니라고 들었다. 오이카와의 머리카락 또한 쿠니미가 좋아하는 카라멜같은 색이다. 실제로 입에 넣으면 결코 달지는 않을 것이다.


"토비오쨩은, 오이카와씨를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걸까?"


카게야마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응. 아무래도?"

"그러면 좋아하지 않겠습니다."

"...."


흰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뺨으로 다가왔다. 가끔 오이카와는 이렇게 카게야마는 만져주었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다정한, 몇 안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고분고분 오이카와 쪽으로 얼굴을 기댔다. 애정까지 바라기엔 오이카와에게 받은 것이 많았다. 부모 없이 떠도는 고아 셋을 오이카와는 거둬주었고, 공부를 하게 해주었으며(즐겁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조직으로 품었다. 동경과 사랑, 그 어딘가에서 계속 헤맸기에 카게야마에게 사춘기는 없었다. 사춘기란 첫 사랑을 느끼는 시기였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 대한 감정이 동경인지 사랑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으.."


카게야마는 신음했다.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입 안으로 들어와 혀 깊은 곳을 눌렀다. 화약 맛이 났다. 오이카와는 쾌나 단단한 감촉의 혀를 꾹꾹 눌렀다. 카게야마 토비오 같은, 고집스러운 혀였다.


"건방진 토비오쨩."


귀여운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구역질이 날 때까지 혀를 희롱한 후 손을 뗐다. 타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손수건으로 닦는 오이카와를, 카게야마는 풀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이카와가 속삭였다.


"5월 16일."


성년의 날, 짜증나게 귀여운 토비오쨩한테는 특별한 일을 줄 거야.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한 후 방을 나갔다. 카게야마는 열린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보았다. 아주 흐릿했다. 


*


쿠니미와 킨다이치는 이와이즈미를 따라갔다. 카게야마 혼자 떨어지는 게 내심 이상한 모양인지, 둘은 저택에 카게야마를 남겨놓고 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잘 다녀와. 카게야마는 손을 흔들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오이카와는 돌아오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번쩍 눈을 떴다. 바로 앞에 오이카와가 있었다. 밖은 비가 내리는 지 오이카와의 옷과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다.


"이거 참, 날을 잘못 골랐네."


봄 외투를 툭툭 털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서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물방울이 고였다가 떨어졌다.


"가자. 토비오쨩."


카게야마는 그 손을 쳐다보다가, 잡았다. 잠은 이미 전부 깬 뒤였다.


*


빗속을 뚫고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데려간 곳은 빈 건물이었다. 공사 중에 부도가 나 보기 흉하게 골조만 남은 채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철거하는 데 더욱 돈이 든다고 했다. 오이카와처럼 비를 흠뻑 맞은 카게야마는, 가방을 내려놓고 머리를 툭툭 털었다. 오이카와가 괜히 짜증을 냈다.


"토비오쨩 정말 싫다니까. 왜 비를 맞아도 머리가 멀쩡한 거야?"

"...오이카와씨 머리는 부풀었어요."

"조용히 해."


오이카와는 투정하며 라이플을 조립했다. 카게야마도 그것을 도왔다. 라이플이 겨냥하는 건 반대쪽 거리에 있는 작은 빌라였다. 오이카와는 초점을 맞춰본 후 카게야마에게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라이플을 잡기 전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오늘의 목표가 어떤 사람인지 카게야마는 듣지 못했다. 


"아오바죠사이 알지?"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말투에 카게야마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오이카와는 구불거리며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 문제의 장남이, 아버지가 우리를 고용했다는 걸 알아차렸어."

"큰일 아닌가요."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찾기도 힘들지. 그래서 찾고 찾다가 겨우 한 명의 꼬리를 잡았네요."


이야기를 들으며 카게야마는 안전장치를 풀었다. 오이카와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니까, 영 숙맥으로 보였나봐. 어리기도 했고, 다루기 쉽게 보였던 거겠지. 그래서 우선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했어."


장전한 라이플을 조준하고서 카게야마는 빌라를 노려보았다. 오이카와가 위치를 다시 잡아주었다. 연한 초록색 커튼으로 가려진 방에선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라이플을 잡은 손에 땀이 나 카게야마는 젖어버린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 오이카와는 손수건을 빌려주었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 토비오쨩. 우리한테 손은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던 어깨가 움찔, 오이카와의 손 안에서 떨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카게야마를 오이카와는 뒤에서 끌어안는 것처럼 받쳐 주었다. 카게야마의 몸은 모조리 오이카와의 품속에 있었다. 하아.. 귓가에 오이카와의 한숨이 들려왔다. 지나치게 가까웠다. 불편한 몸을 뒤척이며 카게야마가 떨어져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오이카와의 입술이 카게야마의 귓불을 물었다. 아! 오이카와에게 안긴 카게야마는 물고기처럼 펄떡였다. 차마 돌아보지 못한 카게야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이카와씨!"

"전형적인 접근이었어.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았을 거야. 그런데도 속아 넘어간 건."


카게야마의 귀에 손목시계가 초침 소리가 틱틱, 울렸다. 빗소리에도 지지 않을 정도의 소리였다. 적어도 감각이 예민해진 카게야마의 귀엔 오직 오이카와의 시계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시계를 확인했다. 곧 정각이었다. 성년의 날이 지나간다. 동시에 커튼이 걷혔다. 


"....!"


카게야마는 소리를 치지 못했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젖은 갈색머리카락을 말리며 여자는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가 얼마나 오는 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역시 오이카와씨가 좋았기 때문일까?"


오이카와는 중얼거렸다.


"누구를 쳐다봐야하는 지도 모르는 어린 남자애의 취향을, 우연히 맞추다니. 그거 하나는 칭찬할 만 해."

"....."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카게야마를 불렀다. 시계바늘이 틱틱, 틱틱. 카게야마의 동공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비를 맞아 한기가 돈 몸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그 몸을 오이카와는 끌어안아주었다. 위로 당겨진 입가는 웃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토비오쨩. 어른이 되어야지."

"오, 이카와, 씨."

"네. 오이카와씨. 여기 있답니다."


라이플을 잡은 손이 경련하는 것 같아 오이카와는 그 손을 잡아주었다. 초침이 움직인다. 틱틱, 틱틱.. 오이카와는 11시 59분을 지나가는 시계를 보고서 방아쇠를 잡은 카게야마의 손을 건드렸다. 


"여자들은 첫 경험을 할 때 피를 보거든. 토비오쨩은 모를 거야."


30, 31, 32.. 초침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카게야마의 호흡이 가빠졌다. 


"처음은 힘들지. 하지만 토비오쨩도 이젠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40부터 오이카와는 시계를 바라보며 숫자를 세었다. 40, 41, 42, 43.. 카게야마는 몸을 뒤로 빼는 여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손을 잡고 카게야마는 거리를 걸었다. 좋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오이카와의 대체였는지 지금의 카게야마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의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건 달콤한 웃음을 보여준 저 여자가 아니었다. 귀를 얼얼하도록 깨물어 쓴 맛이 나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그의 목소리가.


"토비오쨩은 피를 봐야 돼."


오이카와의 손이 카게야마의 귀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에 카게야마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준경 안으로 풀썩 쓰러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초록색 커튼이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다. 카게야마는 힉힉거리며 숨을 헐떡였다. 지지대에 올려둔 라이플이 아래로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딱 12시였다.  


"토비오쨩."


이름을 부르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다. 오이카와는 환하게 웃었다.


"어른이 된 걸 축하해."


그것은 달콤하고도 쓴 축하였다. 






오이카게 전력 60분 "성년의 날" 참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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