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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단편

[미야카게] 포식(전체연령가)

-섹피 AU

-약 쿠니카게 요소





카게야마 미츠코, 사촌누나가 도망을 갔다. 결혼식이 딱 일주일 남았을 때였다. 결혼이 싫다고 도망갈 만한 사람은 아니기에 좀 신기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나 가끔 봤던 누나는, 같은 카게야마인데도 나를 ‘카게야마군’이라고 불렀다. 남자와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다고 했다. ‘나는 누나 동생이잖아요.’ 라고 말하면 무언가를 참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수줍게 웃었다. 몇 년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공부는 재미없고, 미팅을 처음 해봤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나도 공부는 재미없다고 말했다. 미팅은 재밌었냐고 물어봤다. 누나는 ‘연락이 많이 와서 부담스러웠어.’ 라고 대답했다. 그런 누나가 애인과 도망을 갔다.


‘카게야마’ 는 토끼라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수가 적었다. 히소성? 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누나가 도망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 건 좋았다. 그러나 그 히소성 때문에 나에게로 차례가 돌아온 건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집안 어른들에게 말했다.


“저는 남자인데요.”

“괜찮아. 그쪽에서도 이해해주신다고 하더구나.”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어른들 또한 ‘잘됐지?’ 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저는 안 괜찮은데…?”

“청첩장은 다시 만들면 되고, 결혼 전에 신부가 바뀌는 일이야 있을 수 있지. 다들 이해해주실 거다.”

“저는 안 괜찮은데요?”

“백부님 말씀이 맞아요, 어차피 결혼이라는 게 집안과 집안의 일이니까요.”

“저는 안…?”

“여우들이 까다롭게 굴면 어쩌나 했지만 말이 통해서 다행이야.”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투덜거려봤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집안에서 정해준 상대와 결혼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반류*(원숭이가 아닌 파충류, 포유류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종족)는 원숭이보다 아이를 낳기 어렵다. 하지만 반류 중에서도 토끼인 ‘카게야마’는 아이를 쉽게 가질 수 있다. 그 점을 내세워 ‘카게야마’는 신부를 다른 반류에게 보내고 돈을 받았다고 했다. 보통은 여자가 신부로 갔다. 그러나 누나는 없으면 나라도 신부 자리를 채워야만 했다.


그래도, 결혼은 여자랑 할 줄 알았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

“예?”

“남자랑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어. 결혼은 여자랑 하고 싶었는데.”

“….”

“라는 얼굴인걸요.”


남자는 불쑥 다가와 내 뺨을 톡톡 건드렸다. 남자끼리의 결혼이라도 할 건 다 했다. 상대인 ‘미야’의 가풍에 따라 전통식으로 한 번 하고, 모인 손님들을 위해 서양식으로도 했다. 두 번의 결혼식에 지칠 틈도 없이 미야의 본가로 돌아왔을 때엔 새벽 한시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말했다.


“여자랑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그러면요?”

“그냥, 여자랑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게 보통이긴 하죠.”


기분이 상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힘들었죠.”


넥타이를 풀던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남자가 질문하면 고개만 끄덕이기 바빴다. 술술 말하는 남자에게 따라가지 못하는 건 좀 부끄러웠다. 남자는 빙그레 웃고는 와인장 쪽으로 걸어갔다. 낯선 소파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여우라고 들었는데 짐승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남자의 머리카락만이 여우처럼 노란 빛깔이었다.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부터 잘 손질해온 것 같은 머리모양. 그러고 보면 식 중 손을 잡았을 때 손등도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나는 괜히 내 손등을 만져봤다.


“한 잔 할래요?”


남자가 와인을 고르며 물었다. 망설이다가 ‘조금만’ 하고 대답했다. 등을 돌린 남자는 내 말을 듣고 웃었다.


“술 잘 못해요?”

“말 놓으셔도 돼요. 저보다 많으신데.”

“한 살인데요 뭘.”

“그래도….”


원하는 와인이 보이지 않는 건지, 안을 들여다보던 남자가 조용해졌다. 허리를 숙이자 와이셔츠가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남자의 등이 드러났다. 키만 나보다 조금 크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몸이 좋았다. 잠시 후 남자가 병 하나를 손에 들고 내 쪽을 보며 흔들었다.


“괜찮을까요?”

“네?”

“말 놓는 거요.”

“아, 네.”

“그럼 그럴게.”


한 손에는 와인, 한 손에는 잔 두 개를 요령 있게 들고 온 남자는 소파의 빈 곳에 털썩 앉았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였다. 남자가 내게 와인 잔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걸 받았다.


“토비오군도 편하게 말해.”


와인을 졸졸 따라주며 남자가 말했다. 가족 외의 사람에게 이름을 불리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남자는 신기하게도 내가 당황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이렇게 부르는 거 싫어? 하지만 같은 미야가 됐으니 이름으로 불러야해.”

“아, 네. 알아요.”

“토비오군?”

“네에….”


어물쩍하게 대답하자 남자는 또 한 번 웃었다. 참 잘 웃는 남자였다.


“그래서.”


와인 잔 너머로 남자가 나를 쳐다봤다.


“남편 이름 안 불러주고 언제까지 버틸 거야?”

“….”

“으응? 토비오군.”


나는 남자의 눈을 얼른 피했다. 아무래도 이름을 모르는 걸 들킨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남자는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대신 비밀을 말해주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츠무라고 해. 미야 토비오군.”


***


결혼식 한 달이 지나서 만난 쿠니미 아키라는 기분이 좋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쿠니미가 빨대로 커피를 저으며 물었다. 나는 막 받아온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려다가 ‘어?’ 하고 되물었다.


“첫날밤이었잖아.”

“아.”

“아, 가 아니지.”

“으.”

“으, 도 아니고. 잤어?”

“자야 돼?”


다시 물어보자 쿠니미는 눈썹을 위로 슬쩍 올렸다. 몇 년간 봐서 아는데 저건 짜증이 났다는 뜻이었다. 쿠니미는 휘젓고만 있던 커피를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놨다. 탕!


“보통은 그렇지.”

“안 잤어.”

“왜? 잘생겼고,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게다가 너한테 잘해준다며.”


‘너는 너한테 잘해주는 사람 좋아하잖아. 단순해 빠져가지고.’ 쿠니미가 그랬다. 나는 내가 왜 그날 밤 미야 아츠무씨와 자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우선 샌드위치부터 입에 넣어버렸다. 속에 든 계란이 맛있었다. 내가 먹는 걸 본 쿠니미도 포크로 조각 케이크를 잘라내며 말했다.


“그 여우 꽤 유명해. 성격 나쁜 걸로.”


나는 세 입 만에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하지만 쿠니미는 그저 케이크를 자르고만 있었다. 뭉개지는 초콜릿이 아까웠다.


“그래서?”


포크에 묻은 초콜릿을 보고만 있으니 쿠니미가 또 물었다.


“왜 안 잤어?”

“아, 그게.”

“…먹어. 바보야.”


쿠니미는 내 쪽으로 케이크 접시와 포크를 돌려놔줬다. 잘라놓은 걸 얼른 입에 넣으면서 나는 아츠무씨의 말을 기억해냈다.


“억지로 하고 싶지 않대. 서로, 그러니까 좀 친해진 후에.”

“놀고 있네.”

“왜?”

“너 토끼잖아. 애 낳을 토끼. 자궁 째로 산 주제에 무슨 착한 척이야.”


쿠니미는 뱀이었다. 미츠코 누나는 뱀과 여우에게 동시에 구혼을 받았는데, 알을 낳는 게 싫다는 이유로 여우를 선택했다. 만약 누나가 그때 뱀을 선택했다면 나는 쿠니미랑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쿠니미는 지금 내 앞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마 결혼을 했다면 쿠니미가 엄청나게 싫어했을 것이다. 왠지 못마땅해 보이는 쿠니미에게 반 정도 남긴 케이크를 돌려줬다. 배가 고프면 먹으란 뜻이었다. 쿠니미의 미간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나는 대꾸했다.


“아냐. 진짜 착한 것 같아.”

“미야 아츠무가 착하다고?”

“그리고 나 계속 배구해도 된다고 했어. 그만 두는 거 아깝대.”


그날 와인을 마시면서 나는 아츠무씨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츠무씨도 회사를 이어 받기 전에는 배구를 했다고 말했다. 취미 수준이었다곤 하지만. 내가 배구하는 모습도 찾아봤다고도 했다. 작년에 부상을 입은 어깨는 괜찮은 지를 물어봐주고, 재활 중이라고 하니 무척 아쉬워했다. 쿠니미는 내 말을 들으며 냅킨을 죽죽 찢어댔다. 정신 사나웠다.


“당연하지. 국대를 모르겠어?”

“나 재활 반 년 정도 봐야한다니까….”

“반 년?”

“여우는 두 달 만에 애 낳아. 반 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쿠니미가 얼굴을 구겼다.


“첫날밤에 섹스만 안했지 아주 만리장성을 쌓았네.”

“말리?”

“…넌 정말 얼굴 예쁜 걸 다행으로 생각해.”

“내가 어디가 예쁜데?”


아츠무씨도 나를 보고 예쁘다고 했다. 예쁘다는 소리는 쿠니미나 가끔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아츠무씨가 예쁘다고 말했을 땐 조금 놀랐다. 어디가 예쁘냐고 물으니까 아츠무씨는 그냥 웃었다. ‘귀엽고 예쁘다는 칭찬 들어본 적 없어?’ ‘있는데 딱 한 명만 그래요.’ ‘그게 누군데?’ ‘쿠니미라고….’ ‘아, 뱀 쪽의?’ 그리고 아츠무씨와 나는 다시 와인을 마셨다. 입 안에 갑자기 그날 마신 와인 맛이 느껴졌다. 꽃향기가 감돌고 달콤했다. 쿠니미는 나를 가만히 보다가 내 코를 잡아당겼다.


“아야.”

“말해도 넌 몰라.”

“내가 왜 몰라.”

“참, 아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러는 걸 보니….”

“응?”

“그냥 내가 책임졌어야했나.”

“책임을 져?”


나는 쿠니미가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는 걸 구경했다. 잔을 끝까지 비운 쿠니미가 말했다.


“지금 너한테 무슨 냄새가 나는지 모르지?”

“무슨?”

“엄청 지독해.”


‘나 정도나 되니까 지금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야. 알아?’ 쿠니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내 팔 안쪽의 냄새를 맡았다. 나오기 전에 샤워를 했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내 몸에서 아무….


“그 냄새 말고. 네 몸에서 나는 냄새 말고.”


쿠니미는 내 쪽으로 잠시 얼굴을 숙였다가, 인상을 쓰며 떨어졌다.


“도대체 그 여우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차라리 섹스를 했다는 게 나을 정도라고.”


‘섹스가 아직, 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 쿠니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 하고 물어봤다. 쿠니미는 대답 하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려는 찰나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토비오군, 친구는 만났어? 데리러갈까?’ 아츠무씨의 문자였다.


“가봐야 할 것 같아.”

“왜?”

“아츠무씨가 데리러온대.”

“…그러시겠지.”


쿠니미가 소리 나게 혀를 찼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보였다. 하지만 빨리 헤어지는 게 좋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쿠니미는 나를 잡았다.


“너 조심해.”

“뭐가?”

“네 옆에 있는 사람, 보통 사람 아냐.”

“…그렇지? 여우니까.”

“멍청아.”


내 손목을 잡은 쿠니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널 뜯어먹어버릴 것 같은 냄새가 풀풀 나니까 조심해.”

“…?”

“내 말 흘려듣지 마. 흘려들을 것 같긴 하다만.”


진지하게 말하는 쿠니미에게 놀라,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는 한숨을 쉬었다.


***


넓은 소파는 기대어 있기 좋았다. 아츠무씨는 내 입에 초콜릿을 넣어주며 말했다.


“친구가 조심하라고 했다고.”

“네. 아츠무씨는 위험한 사람입니까?”

“그렇구나. 토비오군이 보기에는 어때?”


아츠무씨는 내 뺨을 손가락으로 건드리고서 웃었다. 먹어보라는 뜻 같았다. 이로 초콜릿을 콱 깨물어보니 끈적거리고 단 맛이 나는 게 혀 위로 쏟아졌다. 안에서 흐르는 걸 꿀꺽 삼키고서 나는 아츠무씨를 쳐다봤다. 다정하게 웃어주는 얼굴, 언제나 친절한 목소리, 아무리 봐도 어디가 위험하다는 건지 몰랐다. 나는 또 쿠니미의 말이 생각나 내 손목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토비오군?”

“쿠니미가 여기서 아츠무씨 냄새가 난다고 했거든요.”

“그런 말도 했구나.”

“저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쿠니미와 했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음. 쿠니미는 아무래도….


“아츠무씨와 섹스를 안 한 게 이상한가 봐요.”

“아, 그래?”

“이거 맛있다….”

“더 먹어.”


내가 먹을 수 있는데도 아츠무씨는 굳이 초콜릿을 집어 입 안에 넣어줬다. 받아먹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츠무씨는 내가 먹기 쉽도록 은박의 껍질을 까주었다. 얇고 단 초콜릿을 깨물면 팍 터져 나오는 느낌이 재밌었다. 몇 개나 먹자 단 것을 갑자기 먹어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랫입술을 혀로 핥자 초콜릿 맛이 났다. 이상하게 눈이 자꾸 감겼다. 아츠무씨가 물었다.


“섹스를 안 한 게 이상하다고?”

“네. 그런 것 같아요.”


아츠무씨가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 한 번 해볼까?”

“네?”

“섹스.”


섹스, 라고 말할 때의 목소리는 무척 가까웠다. 눈을 뜨자 어느새 아츠무씨가 옆에 와 있었다.


“섹스….”

“응. 토비오군, 이제 우리 제법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데.”

“…맞아요.”

“그럼 괜찮을까?”


아츠무씨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귀 안쪽이 간지러웠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나, 토비오군과는 억지로 하고 싶진 않거든.”

“네….”

“허락을 받아보고 싶어졌어.”


귀에 닿는 게 아츠무씨의 목소리인줄 알았는데, 입술이었다. 뜨끈뜨끈한 입술이 귓불을 빨았다. 거기, 문지르면…. 팔에 소름이 돋았다. 더워서 살짝 몸을 뒤로 뺐다. 신기할 정도로 머리가 무거웠다. 오늘 쿠니미랑 만나서 피곤했나? 겨우 그 정도로? 아츠무씨는 내 몸을 끌어안았다. 나는 그에게 푹 안겨서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아츠무씨에서는 졸린 냄새가 났다. 내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아츠무씨가 말했다.


“토비오군은 체온이 높네. 아기 같아.”

“아츠무씨…. 몸이 이상해요.”

“섹스를 안 해서 그런가봐.”

“섹스….”

“방금 토비오군이 말했잖아. 섹스를 안 하는 거, 이상하다고.”


그렇게 말한 것도 같았다. 아츠무씨가 물었다.


“해볼래?”

“그럴까….”

“나랑 약속했잖아. 내 아이를 낳아주기로.”

“네….”


그런데, 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귀가 깨물렸다. 아!


“토비오군이 뱀 비린내만 몸에 안 묻히고 왔다면 좀 더 참아보려고 했거든.”


순식간에 몸이 뒤로 넘어갔다. 아츠무씨가 내 몸 위에 올라탔다. 옷 속으로 꾸물거리며 무언가가 들어왔다. 뒤늦게야 그게 손가락임을 알았다. 차가운 손가락들이 가슴을 더듬었다. 아츠무씨는 남은 손으로 내 손목을 들어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마음에 안 드는 냄새가 나. 토비오군.”

“어….”

“건방진 친구가 옆에 있었네.”


아츠무씨의 혀가 내 손목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혀는 원래 저렇게 새빨간 색인가? ‘아츠무씨.’ 하고 불러보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츠무씨는 내 뺨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눈만 깜박이며 아츠무씨를 쳐다봤다.


“토비오군, 술에 정말 약하구나.”


술? 내가 술을 먹었었나?


“피곤해보이니 토비오군은 가만히 있어.”


어쨌든 부부가 됐으니 섹스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갑자기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츠무씨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몸에서 셔츠를 벗겨냈다. 그리고 긴 손가락으로 내 아랫배를 더듬었다. 손이 닿을 때마다 머릿속이 근지러웠다. 감기에 걸린 것 마냥 몸이 무거웠다.


“토비오군.”


아츠무씨와 눈을 마주쳤다. 홀린 듯 그 눈을 쳐다보며 나는 문득 쿠니미의 말을 떠올렸다. ‘금방이라도 널 뜯어먹어버릴 것 같은 냄새가 나.’ 그런가? 그런, 가…? 어지러웠다. 모든 게 빙글빙글 돌았다. 아츠무씨가 고개를 숙이고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곧, 미칠 정도로 좋아하게 만들어줄게. 아츠무씨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


한바탕 하고 난 뒤에 먼저 뻗은 건 역시 토비오 쪽이었다. 아츠무는 토비오의 이마 위에 가볍게 키스하고서 침대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온 그는, 소파 구석에서 깜박이는 토비오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단 뜻이었다. 고민 없이 아츠무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늦은 시간에 메시지를 보낸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카게야마 미츠코 :


카게야마군. 나 때문에 곤란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어. 꼭 말해야할 일이 있어서 염치불구 하고 메시지를 보내. 우리 부모님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도망간 게 아니야. 미야 쪽에서 내가 외국으로 도망간 걸로 해달라고 부탁해온 모양이야. 우리 부모님은 그 대가로 다른 걸 더 받았겠지. 나는 파혼하고 그 보상금으로 유학을 온 줄로만 알았다가 며칠 전에야 카게야마군의 소식을 들었어.

파혼한 것도 아니고 내가 없으니 카게야마군이 나대신 결혼을 했을 거야. 처음부터 미야 쪽은 카게야마군을 노렸던 게 분명해. 무슨 사인 진 몰라도 정상적인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은 아니야. 그러니까 카게야마군, 이 메시지를 본다면 꼭 연락해줘. 내 생각대로 위험한 사람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미야 아츠무는 거기까지 메시지를 읽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나, 내가 사랑 좀 해보겠다는데 다들 반응이 이상하네.”


마음에 들어서, 소중하게 대해주려고 데려왔는데 왜 토비오의 주변이 난리인 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장문의 메시지를 끝까지 읽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미야 아츠무는 카게야마의 핸드폰에서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번호도 차단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계약 파기지. 자식 관리 똑바로 하라고 미츠코의 부모에게 말해줘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함….”


아츠무는 핸드폰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고 크게 하품했다. 내일 아침에는 토비오군이 좋아하는 카레나 먹을까?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토비오를 끌어안고서, 밥을 손수 먹여주는 재미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자신은, 오랫동안 바라던 걸 손에 넣어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아츠무는 문득 입술을 핥았다. 토비오가 먹었던 초콜릿 맛이 남아있었다.


“…진짜 맛있어.”


배부른 여우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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