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익명님의 리퀘로, '위험도와 호감도 둘 다 높은 수치를 가진 이와이즈미'의 아이를 가지게 된 IF 상황입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이와이즈미의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을 모른 채로 서궁에 한참동안 가지 않았습니다. 리퀘 분량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시점부터 진행됩니다.
이와이즈미의 호감도, 위험도, 카게야마의 호감도는 각각 79/79/70 으로 설정했으며, 쿠니미의 수치는 15일 당시 73/64/67 이었으므로 이것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간략한 전개이므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생략될 예정입니다. 그 동안의 이와카게 이벤트에서 벌어진 대화도 리셋됩니다.
몸을 정갈하게 씻은 카게야마는 의원의 말을 따라 손 끝에 피를 냈다. 검지 아래로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의원을 따라온 쿠니미는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상궁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들어온 카게야마는 황급히 옷을 걷었다. 흰 배를 쳐다보며 카게야마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표식이 나타난다는 것이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게야마는 뱃속에서 무언가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잠깐 요동을 치는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곧 잠잠해진다. 무언가 잘못 됐나? 깜짝 놀란 카게야마는 배를 손으로 가렸다. 둥글지 않은 배가 카게야마의 손에 전부 가려졌다.
"마마, 잠시. 손을."
그저 줄곧 쳐다보고 있던 상궁의 목소리가 놀라 떨렸다.
"마마.."
"왜?"
"표식이...!"
그 말에 카게야마는 가리고 있던 손을 서서히 내렸다. 마치 덩쿨이 자라난 것 같은, 붉은 아오바죠사이의 문양이 한 가운데에 떠올라 있었다.
"붉, 은."
상궁의 표정이 잠깐 흐려졌으나 다시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후계자의 표식은 푸른 색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표식은 아오바죠사이의,"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는 놀란 눈으로 한참 그 표식을 내려다보았다. 배를 문지르자 떠올랐던 표식은 곧 사라졌다.
*
생각해보면 카게야마에게 처음을 가르쳐준 남자는 이와이즈미였다. 누구보다 자주 잠자리를 하였으니 이와이즈미의 아이라 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설레는 표정으로 연신 배를 쓰다듬었다. 이와이즈미님의.. 카게야마는 그의 이름이 싫지 않았다. 한 동안 이와이즈미를 보지 못했다. 아마 오늘이라도 보게 될 것이다.
상궁이 나가서 이와이즈미의 이름을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린 카게야마는 옷을 내리고 밖을 나갔다. 궁녀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서 카게야마를 향해 절을 올렸다. 의원도, 상궁도 모두 엎드렸다. 홀로 서 있던 쿠니미는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단패궁 마마."
섭정의 목소리는 몹시 낮았다.
쿠니미 아키라
○: 73
◇: 64 (+5)
카게야마 토비오
□: 67
쿠니미는
홀 : 의원에게
짝 : 상궁에게
쿠니미는 상궁에게 직접 이와이즈미님의 소식을 알리라고 명했다. 상궁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곧 섭정의 명대로 움직였다. 궁녀들 또한 궁 전체에 기쁜 소식을 알리러 떠났다. 쿠니미는 자리에 앉았다.
"카게야마. 축하해."
"...실감이 안나."
"의원의 말로는 아이가 건강하다니 다행이야."
하긴 성국의 피를 이었으면 건강한 아들이겠지. 쿠니미는 중얼거렸다. 그런 쿠니미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워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쿠니미."
"응."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안색이 나빠."
"안 좋은 일.."
쿠니미는 짧게 웃었다.
"계속 생각해왔던 일이 어그러진 것 빼곤 다 괜찮아."
"그게 뭔데?"
"너는 몰라도 되는 일."
"...."
무시하는 것 같은 말투에 카게야마는 기분이 상했다. 한참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던 쿠니미는 품에서 약첩같은 것을 꺼냈다. 카게야마는 직접 손에 들고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좋은 향기가 나는 차였다.
"카게야마."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카게야마를 다시 불렀다.
"몸에 좋은 차라고 하니까...."
마셔. 쿠니미의 말에 카게야마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3월 5일. 길조가 나타나 섭정궁에서 북을 울리다
3월 15일. 단패궁의 카게야마, 아오바죠사이 이와이즈미 하지메에 의해 회임하시다
어차피 단패궁은 회임을 한 번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의무는 끝난다. 아이를 낳을 만한 모체가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게야마 왕조는, 이것으로 마지막이 된다.
몸을 차게 하는 약이 든 차를 단패궁에 놓아두고서 쿠니미는 궁을 나왔다. 카게야마가 회임을 했을 때부터 줄곧 생각해둔 방법 중의 하나였다.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약한 약을 준비했다. 몇 잔을 마셔야 유산이 되는 지는 쿠니미도 몰랐다.
"....."
쿠니미는 걸음을 멈췄다. 서궁에서 이와이즈미가 오고 있었다.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쿠니미를 보자마자 그는 물었다.
"카게야마는?"
"안에 계십니다."
"그렇군."
아오바죠사이의 검사는 성급한 얼굴로 다시 발을 옮겼다. 아...쿠니미는 탄식했다.
저 남자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
상궁이 전한 말에 오이카와는 벌떡 일어났다. 이와이즈미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이와쨩의?"
"예. 그렇습니다."
"들었어? 이와쨩?"
토비오쨩이, 네 아이를 임신했대. 오이카와는 조금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잘됐네. 이와쨩. 체면이 섰어."
"....."
"이와쨩?"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선 채로, 허리춤의 검을 꽉 쥐고 있었다. 그의 눈은 상궁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마치 그 너머의 다른 것을 보는 듯 했다. 한 동안 말없이 어두웠던 이와이즈미를 신경쓰던 오이카와가 다시 그를 불렀다.
"이와쨩?"
"..지금 가봐야겠어."
이와이즈미는 상궁보다 먼저 서궁을 뛰쳐나왔다. 단패궁을 향해 걸으며 그는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쁜, 황홀한 쾌감이 정수리에서부터 물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 감각에 젖어 이와이즈미는 정말로 물 속에 잠긴 사람처럼 헐떡였다.
이와이즈미는 단패궁의 문을 손수 열었다. 먼저 갔던 상궁도 앞세우지 않고서 들이닥친 이와이즈미를 보며 시위들이 우왕좌왕했다.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서 이와이즈미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궁녀들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방의 문을 열었다.
카게야마는
홀 : 바느질을
짝 : 차를
카게야마는 바늘을 들고 있었다. 아마 바느질을 하려던 참이었던 것 같았다. 성큼성큼 다가간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가 놀란 기색으로 일어서자마자 그를 끌어안았다. 한 품에 가두고서 언젠가처럼 입을 맞추자 카게야마가 흡, 하고 숨을 급하게 들이쉬었다.
"이ㅇ..!"
이름을 부를 틈도 주지 않고, 몇 주를 마치 몇 년처럼 느끼게 한 여자를 이와이즈미는 집어삼키는 것처럼 입맞췄다. 가슴을 밀어내는 손이 가소로웠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뒷목을 잡은 채 입을 맞추며 다른 손으론 허리를 안고서 바짝 당겼다. 얇은 천 아래로 카게야마의 배가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아..."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가 겨우 물러서면, 카게야마는 비틀거렸다.
"이..와이즈미님.."
"아직 안 끝났어."
"갑자ㄱ, 아, 읍..!"
너무나 오래 기다렸다. 우선은 만족할 때까지 카게야마를 품 안에 두어야만 했다. 이와이즈미는 자리에 앉아 카게야마를 무릎 위에 앉게 했다. 힘이 빠진 카게야마가 쓰러지듯 안겨오자 다시 정신없는 입맞춤이 계속 되었다. 들어오려던 상궁과 이와이즈미는 눈이 마주쳤다. 카게야마의 어깨 너머로 그는 고개를 슬쩍 저었다. 단호한 눈빛을 본 상궁은 멈칫했다가 결국 문을 닫고 나갔다.
조그만 머리통을 끌어안고서 입술 뿐만 아니라 뺨, 이마, 귀, 목덜미까지 모두 흔적을 남겨야 했다. 이와이즈미가 입술을 멈췄을 때는 카게야마의 눈이 조금 풀려있었다. 숨이 모자란 탓이었다. 진정이 된 이와이즈미는 슬쩍 제 입술을 깨물었다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벌어진 입술을 누르며 불어넣어주자 카게야마는 콜록콜록 기침했다.
"으, 흐, 으윽,"
"괜찮아?"
등을 두드려주자 원망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본다.
"이와이즈미, 님, 갑자기..!"
"응. 갑자기."
"그러..시면.."
"오랜만이다. 카게야마."
목을 잡아 이마를 맞대게 하고서 이와이즈미는 속삭였다. 바로 앞에 보이는 이와이즈미의 눈동자가 온전히 자신만을 담고 있어, 카게야마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는 괜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와이즈미가 다시 물었다.
"오랜만이지."
"예."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안 보여줬어."
이와이즈미의 손이 카게야마의 배 위로 올라갔다. 두텁고 뜨거운 사내의 손에 아랫배가 흠칫 떨렸다.
"...내 아이가 있다는 거, 더 빨리 알 수도 있었잖아."
"아..."
"보고 싶었어."
정말로 보고 싶었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배를 가볍게 눌렀다.
홀 : 보여줄래?
짝 : 이제
"이제.."
카게야마는 슬쩍 엉덩이를 들었다. 이와이즈미에게 안겨 있었던 몸이 뻐근한 것 같았다. 일어서려는 카게야마를 이와이즈미는 다시 끌어안았다. 손을 잡아 가지 못하게 하고서 어깨를 돌려 다시 무릎 위에 앉힌다. 순식간에 등을 기댄 채로 앉게 된 카게야마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는 이와이즈미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이 더듬더듬 다시 배를 쓸어본다.
"여기에 우리 아이가 있다는 거지?"
"우리.."
"너랑 나."
그 직접적인 단어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뒷목까지 빨개진 카게야마는 네..하고 작게 대답했다. 오늘의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에게 평소와 달리 버겁게 느껴졌다.
"...좋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를 안은 채로 바로 앞에 보이는 귓불에 입술을 비볐다. 아, 얕은 신음이 들려왔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 79 (+10)
◇: 79
카게야마 토비오
□: 70
품에 안긴 따뜻한 체온은 이제 이와이즈미만의 것이었다. 그는 한참 카게야마를 끌어안고서 여기저기 입술을 문질렀다. 귀에 숨이 닿으면 카게야마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동그랗고 보송보송한 민들레 홀씨 같은 몸이었다. 그래서 단단히 잡지 않으면 바람에 훅 날아가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카게야마."
"으, 응..."
이와이즈미는 몸을 비트는 카게야마에게 다정한 어투로 물었다.
"아이는 아들이겠지."
"아들, 네."
"키타가와의 후계자.."
"후계..자.."
열이 오른 목소리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몸을 풀고 나면 어떻게 할 거야?"
"저는.."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홀 : 내가
짝 : 나랑
"나랑 가자."
"....."
흐느낌과 신음이 멎었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아오바죠사이로 가자. 카게야마."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 너를 보지 못하는 하루가 일년 같았어."
"....."
"매일 네가 어느 궁을 갔는지 궁금해하고, 찾아듣고, 질투하면서.."
꼴사납게. 그는 슬쩍 투덜거리기까지했다.
"이렇게 네가 나를 꼴사납게 만들었는데.."
"....."
"또 한참을 못 보면 나는."
"이와이, 즈미님."
카게야마는 더듬거리면서도 이와이즈미의 말을 막았다.
홀 : 일단...
짝 : ..안돼요
"...."
침묵의 순간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답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손을 들어 입을 막으려했으나 카게야마는 야속하게도 조그만 입을 열었다.
"..안돼요."
".....왜?"
"키타가와..를 떠날 수는 없어요."
"....."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손안에 있는데, 자신의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무릎 위에 앉은 카게야마가 멀게 느껴졌다. 그는 카게야마를 확인하는 것처럼 허리와 배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에 카게야마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떠날 수 없구나."
"예. 죄송해요. 이와이즈미님."
"그래. 이해해."
이와이즈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짧게 말한 후 가볍게 귓바퀴에 입을 맞출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은 채로 어깨를 들썩였고, 이와이즈미는 눈을 카게야마에게로 고정시키고서 결코 감지 않았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 89
◇: 79 (+3)
카게야마 토비오
□: 70 (+3)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반겼다. 그는 살짝 복잡한 얼굴이었으나 이와이즈미가 없는 사이 마음을 정리한 것 같았다.
"이와쨩 어때? 아버지가 된 기분은?"
"오이카와."
"..꽤 심각한 기분인 거야?"
오이카와가 천천히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도와줘."
"..뭐?"
이와이즈미는 좀처럼 무언가를 원해본 적은 없었다. 그는 태어나기를 훌륭한 무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검을 배웠다. 검을 배워 당연히 궁으로 들어가, 후계자의 호위가 되었다. 모든 건 정해진 길이었으나 그 길을 원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원하기도 전에 그의 앞엔 그가 바라는 것들이 놓여졌다. 그러나 자신이 이제부터 손에 넣고싶은 건 길 밖에 핀 꽃이었다.
"그 애를 처음 품은 순간부터, 동생으로 보기가 힘들었어."
"이와쨩."
"참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
목소리는 전부 갈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와이즈미와 마찬가지로 결핍을 그닥 경험해보지 못한 오이카와는, 그런 친구가 낯설었다.
"카게야마가 아오바죠사이로 오지 않는다면 나는,"
"....."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서 키타가와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야."
"뭐? 그럴 순 없어."
친구에서 주인이 된 오이카와가 고운 이마를 험악하게 구겼다. 이와이즈미는 덤덤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를 도와줘."
"..이와쨩.."
"나는 반드시 아오바죠사이로 카게야마를 데리고 갈 거야."
그 말은 협박이었다. 굳어있던 오이카와는 잠시 후 피식 웃었다. 이와이즈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잠시 고개를 젖혀 한숨을 쉬다가,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오이카와는 결국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
"생각해봤는데,"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대답했다.
"키타가와를 떠나지 못하는 카게야마의 이유는 아마도 섭정이나 그 장군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반란을 일으킨 그 둘 말이지."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이카와의 동의를 받은 이와이즈미는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말했다.
"장군은 안 돼. 카게야마를 흠모하고 있거든."
어느 날 아침에 만난 어린 장군은,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얼굴로 이와이즈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캐물어도 소용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와이즈미가 말하는 동안 오이카와는 계속 듣고만 있었다.
"동태를 보니 섭정과 그, 오사와 대신은 확실히 사이가 좋지 않아. 아마 권력다툼일테니,"
"으음."
"섭정에게 오사와를 처치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면 어떨까. 오이카와. 그리고 그 이유를 알려달라고.."
"하아.. 내정간섭은 안 된다고 했는 걸."
그러나 오이카와의 말투는 무척 가벼워 결코 그것이 안된다고 여기는 사람같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살짝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오이카와를 보았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1~9 : 고개를 젓는다
0 : 고개를 끄덕인다
"이와쨩. 너는.."
오이카와는 사랑에 푹 빠져 안달난 친구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를 처음 안았던 건 그였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하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갈구하여도 아마 자신의 친구는, 결코 끝까지 냉정해지지는 못했다. 아마도 카게야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쨩은 참 오이카와씨를 곤란하게 하네."
확실히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상관없었다.
*
카게야마는 밤늦게 찾아온 오이카와를 거절하지 못했다. 잠시 산책 중에 들렸다는 오이카와는 말과 다르게 잘 정돈하여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걸까? 카게야마는 일부러 단패궁을 방문한 것 같은 오이카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토비오쨩. 회임 축하해."
"감사합니다."
"이와쨩의 아이를 가졌으니 이제 정말로 토비오쨩은, 아오바죠사이의 것이네."
그 말에 카게야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잠시 단어를 골랐다가 조심스럽게 내뱉았다.
"제 배 안에 있는 건 키타가와의 후계입니다. 오이카와님."
"고집스럽긴."
오이카와는 피식 웃었다. 상궁이 차를 내왔다. 참으로 좋은 향기가 풍기는 차였다.
홀 : 카게야마는
짝 : 오이카와는
오이카와는 차향을 한 번 맡아보았다가 입에 머금었다. 카게야마 또한 오이카와를 따라 차를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오이카와는 중얼거렸다.
"상당히 괜찮은 차네."
"섭..정 전하께서 주셨습니다. 몸에 좋은 차래요."
"그렇군."
홀 : 카게야마는
짝 : 오이카와는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에 든 찻잔을 손가락 하나로 들어올렸다. 손 안에 느슨히 쥐고 있던 카게야마는 공중에 떠오른 찻잔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바로 오이카와를 쳐다보자, 오이카와는 모른 척 제게로 찻잔들을 가져왔다.
"이와쨩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다른 남자가 준 차를 마셔? 토비오쨩 무심하네."
"예?"
"이와쨩이 알면 속상해할 거야."
"..설마."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말에 동요했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홀 : 카게야마는
짝 : 오이카와는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눈 앞에 있는 여자는 결코 이와이즈미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신경쓰고 있다.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를 원하는 만큼 카게야마 또한, 그와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며 확신했다.
"이와쨩에게 들었는데, 토비오쨩은 아오바죠사이로 올 생각이 없다며?"
아무렇지 않게 물어본 말의 파장은 컸다. 카게야마는 무릎 위에 둔 손을 꼼지락거렸다. 한참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이카와는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를 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대답해야지."
"..했어요."
"토비오쨩 자꾸 버릇없게 굴래?"
"...아오바죠사이로는 가지 못합니다."
"왜?"
카게야마는 눈을 들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파란 눈 속에 자신이 담겨있는 것을 보았다. 이와이즈미의 이야기를 할 때와 달리 망설임이 없는 눈동자는 또렷하게 제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갈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갈 수 없으니까요."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가 나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섭정과 장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오이카와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래서 카게야마의 이유를 확실히 알고 어떻게든 설득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와쨩. 너는.. 정말로 순진한 구석이 남아있네.
왜 타협을 모르는 토비오쨩과 협상하려 하는 걸까. 자신의 친구는 어려운 길을 가려고 했다. 키타가와와 협상 따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것이 아오바죠사이다.
*
넓은 키타가와를 어떻게 해보려는 기대감을 가지고서 왔을 나라도 있고, 나라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카게야마에게 마음을 품은 왕족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이미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없었다. 이와이즈미의 덕에 아오바죠사이는 카게야마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카게야마 토비오를 억지로 데려갈 수 있다. 어떤 구실을 삼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웃는 얼굴은 보지 못하리란 것을 오이카와는 알았다. 오이카와는 차 두잔을 모두 제가 마시고서 입을 열었다.
"토비오쨩."
"예."
"무지는 가끔 편리해."
"..무슨 말씀이세요?"
"모르면 죄책감도 가지지 않아."
".....?"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오이카와는 절대로 알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잠시 단패궁에 머물었다. 카게야마와 실없는 대화를 하며 오이카와는 섭정을 생각했다. 카게야마의 이야기를 할 때 눈에 띄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섭정은, 하필 오이카와에게 제 마음을 들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불쌍하지."
"예?"
"아무것도."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해야할 일에 그는 결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고맙게도 섭정이 먼저 시작해주었으므로.
오이카와는
1~9 : 이와이즈미
0 : 쿠니미
이와이즈미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이카와는 이미 일어나 자리에 앉아있었다. 차를 마시고 있던 그는 친구의 얼굴을 발견하고서, 가볍게 입 끝을 올려 웃었다. 이와이즈미는 잠시 살펴보다가 물었다.
"너.. 안 잤어?"
"이와쨩은 참 잘 자더라."
"...무슨 생각해."
"네가 하고 있는 생각."
이와이즈미는 앉은 오이카와를 내려다보았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웃었다.
"나에게 도와달라고 한 건 너야."
"오이카와."
"내가 어떻게 할 지 너는 아마 알고 있었을 텐데."
문득 이와이즈미는, 키타가와로 올 때 데려온 호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이카와에게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라끼리 문제를 일으키면 아무리 너라도,"
"....."
"내정간섭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런데 그게, 좀 달라졌어."
오이카와는 빈 찻잔을 빙글 돌렸다. 잔 안에 남은 찻잎이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섭정궁 쪽에서 단패궁을 유산시키려고 한 흔적을 찾았거든."
"....뭐?"
"아니, 원래는 찾아주려고 했는데, 정말로 나왔더라."
향은 좋으나 유달리 혀끝에 쓰게 감기던 맛은 수상했다. 따로 의원에게 남은 찻잎을 가져가 묻자 의원은 독성은 없다고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먹으면 좋으나 손발이 차거나 임신을 한 이에게는 좋지 않다는 답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원래' 자신이 단패궁에 놓아두려던 약이 필요없게 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그 말 많은 대신의 짓이라고 꾸밀 생각이었어."
"....."
"그런 핑계를 대고서 안전을 위해 데려갈 심산이었지만."
"안 돼."
이와이즈미는 순식간에 싸늘해져 허리춤에 찬 검을 꽉 쥐었다.
"그러지 마라. 오이카와."
"역시 이 쪽이 좋겠지?"
오이카와는 조용히 분노하고 있는 이와이즈미를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 따위 알지 않아도 좋았다. 그게 문제라면, 이유를 없애버리면 그만이었다.
3월 16일. 단패궁에서 독이 나오다
3월 16일. 아오바죠사이 오이카와 토오루가 직접 섭정을 문책하다
고문을 당해 머리가 헝클어졌었으나 놀랍게도 얼굴만은 깨끗했다. 오이카와는 유심히 제 앞에 무릎을 꿇은 쿠니미를 보았다. 죽지 않을 정도만, 이라고 말한 탓인지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죽을 것처럼 섭정은 기력이 없었다. 오이카와가 눈짓하자 옆에서 시위들이 억지로 쿠니미에게 약을 먹였다. 약을 거부하지 않는 쿠니미에게 오이카와는 말했다.
"사약인 줄 알았겠지만 사약은 아니야. 섭정쨩."
"....."
"보약이지. 죽으면 곤란하거든."
"오이카와님께서는 참 아까운 일을 하십니다. 곧 죽을 사람에게 비싼 약을 먹이다니."
턱을 타고 흐르는 약물을 닦지 않고서 쿠니미는 제법 또렷하게 말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곁에서 먼저 물었다.
"쿠니미 아키라. 네가 카게야마의 몸을 해치려 한 것을 인정하나?"
"...."
홀 : 긍정한다
짝 : 부정한다
쿠니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릎이 꿇린 다리가 아팠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도 그는 혹시나 이 자리에 카게야마가 있을것이 두려웠다. 쿠니미가 답이 없자 이와이즈미는 검을 쥐고 다가가려했다. 그런 친구를 오이카와는 말리고서 다시 물었다.
"섭정쨩."
"...."
"그렇게 급했으면 오이카와씨에게 약점을 보이면 안됐어."
"...무슨,"
"토비오쨩이 이 일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그게 궁금한 거지?"
오이카와의 말이 끝나자마자 섭정의 몸이 마치 얼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쿠니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카게야마의 유산을 계획했을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말에 순수하게 겁을 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된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부릅떴다.
"너, 설마..카게야마를,"
"이와쨩. 쓸데없는 건 알 필요 없어."
오이카와가 다시 한 번 이와이즈미를 막았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섭정쨩은 조용히 넘어가기엔 너무 큰 일을 저질러버렸거든."
"...."
"감히 아오바죠사이의, 이와쨩의 아이를 죽이려고 하다니.
"...."
"...그렇지만 고개만 한 번 끄덕여주면, 카게야마에게도 알리지 않고..살려줄게."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했다. 이와이즈미의 눈은 쿠니미에게 고정된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이제야 같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알아보았다. 방법도, 목적도 따지고 보면 같았다. 카게야마를 곁에 두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쿠니미에게는 힘이 없었고 이와이즈미에겐 힘이 있었다는 차이 뿐이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무릎을 꿇은 채로 생각에 잠긴 섭정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정말로."
오랫동안 닫혀있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저를 살려주시는 겁니까?"
"그래."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는 어깨를 들썩였다. 울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는 웃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오이카와를 보았다가, 이와이즈미를 쳐다본다. 공중에서 얽힌 시선은 곧 팽팽하게 당겨졌다. 쿠니미는 차가운 얼굴로 이와이즈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오바죠사이로 카게야마를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쿠니미의 말에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애초부터 카게야마를 빼앗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일을 꾸몄어."
"일을 꾸민 건 너겠지!"
이와이즈미가 소리쳤다. 검을 쥔 손날은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려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지."
또렷하던 목소리가 점점 광인처럼 흔들렸다. 오이카와가 눈짓하자 시위들이 달려들었다. 혹여나 혀를 깨물어 자살하지 못하도록 천을 구겨 입 안에 넣으려고 한다. 그것을 거부하며 쿠니미는 큰 소리로 웃었다. 목구멍의 안쪽에서부터 퍼지는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정말로, 정말로.."
이와이즈미는 쿠니미의 한탄을 들으면서 연신 문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카게야마가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정말로, 내가 해치려한 것은 맞지만."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따위 죽어도 내 알바가 아니다."
쿠니미는 시위에게 잡힌 채로 끝까지 말을 마쳤다. 오이카와는 재빨리 이와이즈미를 쳐다보았다. 눈가가 새빨개진 이와이즈미는 검을 들고서 경련하는 사람처럼 떨고 있었다. 이와쨩, 이와쨩.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홀 : ....
짝 : ....!
죽어도 알바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와이즈미의 시야엔 쿠니미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잡았다. 단단하고 익숙한 손잡이를 잡고서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조금씩, 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무척 빠른 속도였다. 그는 쿠니미 아키라만을 보며 걸어나갔다. 그리고 손에 닿을 만한 자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
이와이즈미는 허전한 손을 쳐다보았다. 뒤를 돌아보자 아슬아슬하게 검을 빼앗은 오이카와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와쨩."
"내 놔."
"죽여달라고 도발하는 거잖아."
"내 놓으라고."
"젠장. 정신차려! 이와이즈미 하지메!!"
오랜만에 이름 전부를 불린 이와이즈미는 잠시 눈을 깜박였다. 그는 손에 검이 없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시위들에게 붙잡혀있는 쿠니미는 웃음이 가신 얼굴로 이와이즈미를 보고 있었다.
"검이 없어도 네 목 따윈 꺾어버릴 수 있다."
이와이즈미는 쿠니미에게 말했다. 순식간에 영혼이 사라진 사람처럼 쿠니미는 답이 없었다. 그저 머리를 푹 숙이고서 목을 드러낼 뿐이었다. 카게야마를 해칠 생각을 한 저 목을, 정말로 꺾어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 놔."
"..이와쨩."
"...알아. 죽이면 안 된다는 거 안다고."
원하는 대로 해준다면 아마 자신은 평생 카게야마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이즈미가 손을 뻗은 채로 계속 버티자 결국 오이카와는 그 손 위에 검을 올려주었다. 공중에 멈춰있던 검이 떠올랐다가 조심스럽게 이와이즈미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이와이즈미는 피가 묻은 검을 털어내는 것처럼 공중에서 가볍게 휘둘렀다. 그리고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던 쿠니미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그런 섭정을 내려다보며 이와이즈미는 묵묵히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는 해주지 않아."
"...."
"나는 좋은 남자가 아니거든."
끌고가라. 오이카와의 말이 뒤에서 들렸다. 섭정은 다시 시위들에게 끌려 나갔다.
*
뒤늦게 소식을 들은 카게야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직접 말을 전해주러 온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오이카와씨의 말이 거짓말같아?"
"...그럴리가."
"너를 해치려고 했다는 답은 받았어."
"...그런.."
카게야마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동자가 가엾게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오이카와와 같이 왔던 이와이즈미는, 그런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화들짝 놀랐다가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보자 안심한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가 제게 의지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뒤의 말을 이었다.
"섭정의 말로는, 장군은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일단은 조사 중이야."
"....."
"...괜찮아? 카게야마?"
손을 잡아주면 비틀거리다가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머리를 얹는다.
"그럴리가 없는데.."
"...."
"왜..."
카게야마의 물음에 누구도 답해주지 못했다.
이와이즈미는 쿠니미의 광기를 보며 어렴풋하게, 카게야마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쿠니미의 것과 닮은 우정 혹은 애정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와 함께 그것을 부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카게야마의 아이를 해치려했는지 자세히 알려주며 이와이즈미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었고 그 외의 사정은 이와이즈미가 알지 못한다. 오이카와의 말대로 알 필요가 없는 일들이었다.
"..같이 가자. 카게야마."
어깨에 올려진 작은 머리가 움찔했다. 이와이즈미는 손을 꼭 잡은 채로 또 한 번 말했다.
"키타가와에 있으면 위험해."
"...이와이즈미님."
"여긴 너를 해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
카게야마는 말이 없었다. 조바심이 난 이와이즈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가 원하는 건 전부 다 가져가주마."
"....."
"익숙한 사람이 좋겠지. 상궁도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네."
"....."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내가 같이 키타가와에 머무를까? 그리고,"
이와쨩. 오이카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신경쓰지 않고서 카게야마만을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지친 얼굴이었다. 소꿉친구의 행적에 심하게 충격을 받아,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보였다.
1~9 : ..네
0 : ....
"....네."
한참 뒤 가느다란 대답이 흘러나왔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오이카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잠시 이와이즈미를 보았다가 자리를 떴다. 그가 나가자 이와이즈미의 입이 열렸다.
"카게야마. 나는 충동적으로 지금 묻는 게 아니야."
"...."
"한 번 키타가와를 떠나면 여기에 오기 힘들어."
"...."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와이즈미는 짧게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그는 품고 있던 말을 기어코 끄집어냈다.
"네가 청혼하고 있는 거야. 카게야마."
황망히 구르던 푸른 눈동자가 슬그머니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았다. 이와이즈미는 몹시 반짝거려 눈이 부신 것을 쳐다보는 사람처럼 가늘게 눈을 떴다. 잡은 손을 들어 입을 맞춘다. 손바닥 안에 이와이즈미의 입술이 닿자 마치 심장이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쿵쿵 뛰었다.
"키타가와의 하나뿐인 왕녀님."
"...이와이즈미님."
"이와이즈미의 성을 받고 태어나, 한 번도 이 말을 다른 여인에게 해본 적이 없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이와이즈미의 감은 눈이 보였다. 손금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는 것 같아 무척 간지러웠으나, 카게야마는 감히 잡힌 손을 빼지 못했다. 구석구석 입을 맞춘 이와이즈미는 눈을 떴다. 손가락 마디에 속눈썹이 사뿐 닿았다.
"저의 아내가 되어주십시오. 왕녀님."
카게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와이즈미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카게야마는 그게 싫지 않았다. 싫어하는 이의 아이를 낳는다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이즈미의 아이라면.. 카게야마는 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담 사이로 금이 간다. 벽은 부서져 물이 흘러내리고, 곧 홍수는 세상을 쓸어내 새로운 터전을 만들지도 몰랐다.
"..이와이즈미님. 저는.."
사랑, 애정, 호감. 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 감정이 버거워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이즈미는 흔들림없이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처를 받은 이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님과 가겠습니다."
카게야마의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새로운 세상에 보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 89 (+10)
◇: 82
카게야마 토비오
□: 70 (+10)
킨다이치는 옥문을 열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그 입구에서 킨다이치는 말없이 서있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다가, 킨다이치는 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어?"
응. 어두운 구석에서 그런 대답이 들렸다.
"...네 말을 따른 건 나니 후회는 하지 않겠지만."
"....."
"쿠니미. 나는 아무래도 우리가,"
"카게야마는 아오바죠사이로 가?"
불쑥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궁금했으리라. 킨다이치는 인상을 썼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자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척해진 쿠니미의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가는구나."
"쿠니미."
"카게야마, 가 또 나를 버리고..."
"이제 됐어. 쿠니미."
킨다이치는 어린 아이처럼 중얼거리는 쿠니미의 어깨를 잡았다. 밥을 먹지 않아 조금 가느다랗게 변한 쿠니미는, 킨다이치에게 벗어나려는 것처럼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킨다이치는 놓지 않았다. 그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이제 됐다. 카게야마는 잘 살거야."
"...킨다이치.."
"보내드리자."
"..싫어..싫.."
카게야마가 아오바죠사이로 가기로 한 후, 오이카와에게 직접 쿠니미와 자신의 사면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킨다이치는 쿠니미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들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동안 셋이 하나인 것처럼 살았다. 억지로 꿰어놓은 몸을 이제는 떼어내야할 시간일 지도 몰랐다. 비록 상처는 남고 고통이 있을 지라도, 자신들은 이제... 킨다이치는 쿠니미에게 말했다.
"보내드리자."
"안 돼..."
"..그럴 수 있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얼굴을 보겠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와이즈미는 더 권하지는 않았다. 자꾸만 마차를 들여다보는 이와이즈미에게 오이카와가 한숨을 쉬었다.
"자고 있다며. 도대체 이와쨩은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거야?"
"아직 회임 중이잖아. 무리해서 같이 갈 필요는 없는데."
"토비오쨩이 따라오겠다고 했거든. 억지로 목줄채워서 가는 거 아니거든요."
"목줄이라니 말 조심해라. 오이카와."
남의 부인에게 그런 농담하지마. 그리고 토비오쨩이라고 부르지도 마. 이와이즈미는 생각난듯 오이카와에게 다짐을 받아내려했다. 오이카와는 혀를 찼다.
"그렇게 좋으면 같이 마차에 타고 가지 그랬어."
"내가 있으면 편하게 못 쉬잖아."
"참나.."
"그리고 둘만 있으면 참지도 못할 것 같고."
솔직한 고백에 오이카와는 인상을 찡그렸다. 농들이 몇 마디 오가고, 오이카와는 중얼거렸다.
"할 수 있겠어?"
"뭐?"
"아직 토비오쨩 말이야. 못 잊은 눈치던데."
"....."
"대답은 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다면 이와쨩, 힘들겠지."
이와이즈미는 마차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말고삐를 잡았다.
"알고 있어."
"...."
"그렇지만 내가 싫었다면 따라오지도 않았을 거야."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었다. 반드시 아오바죠사이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사실 카게야마의 의지가 없었더라도, 이와이즈미는 두번째 거절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내민 손을 잡았다. 순간 흔들려서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 이와이즈미는 그 손을 놓아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후회할 시간조차 없도록 카게야마의 삶을 자신으로 꽉 채워줄 것이다.
"놓칠 수가 없었어."
말이 히히힝, 울었다. 뛰어가려는 말을 진정시키며 이와이즈미는 말했다.
"..내 아내가 될 단 한 명의 여자였으니까."
키타가와의 국경이 가까웠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새 땅이었다. 아오바죠사이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결코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자신은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만 그 사실을 몰라준다면, 이와이즈미 토비오만이 자신을 좋은 남자라고 생각해준다면 좋았다.
검이 움직였다.
서슬 퍼런 검날은 움직일 때마다 현란하게 반짝여, 그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검이 지키는 것은 이제부터 오직 한 사람일 터였다.
「패검의 주인」
끝
3월 20일. 성국 환궁
.
.
3월 24일. 섭정 쿠니미 아키라, 장군 킨다이치 유타로 환궁
3월 25일. 단패궁 카게야마, 요양을 위하여 아오바죠사이로 떠나다
3월 25일. 단패궁 폐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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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일. 섭정 쿠니미 아키라 사의를 표명하다
4월 4일. 오사와 타카히로의 난이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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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섭정 킨다이치가 직접 오사와 타카히로와 그 잔당을 정리하다
5월 30일. 섭정 킨다이치 유타로 사의를 표명하다
5월 30일. 귀족들이 킨다이치를 만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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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카게야마 토비오, 후계를 낳다
11월 20일. 후계의 몸이 약하니 아오바죠사이에서 돌보기로 합의하다
11월 25일. 섭정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방문할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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