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는 이름 모를 곳에서 눈을 떴다. 아직 초봄인 키타가와와는 어울리지 않는 더운 공기였다. 여기는 어디지, 키타가와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생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흐릿한 장식들이었다. 무엇인지 눈에 담기도 전에 사라졌으나 카게야마는 이상한 줄은 몰랐다. 천천히 일어난 카게야마는 맨 발로 바닥을 디뎠다. 그러면 순식간에 눈부신 초원이 나타났다. 뺨에 닿는 따스한 공기. 부드러운 풀 냄새. 왠지 이상해 옷을 내려다보면 카게야마는 언젠가 보았던 털옷을 입고 있었다. 더운 날에 털옷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유를 깨달았다.
"..여긴 네코마야."
이야기만 들었던 곳이니 제대로 눈이 그려내지 못했다. 네코마에 대해 아는 건 쿠로오의 털옷 뿐. 그래도 카게야마는 신기했다. 풀밭에 묻힌 발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개미 한 마리가 발등을 기어왔다. 잡아보려고 어린아이처럼 머리를 숙였다가, 올리면.
"쿠로오님."
유쾌한 웃음을 띤 흑발의 남자는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넘기며 다가왔다.
"마마님. 안녕."
카게야마는 옷 안에 딱딱하게 잡히는 것을 찾아 꺼냈다. 언젠가 쿠로오가 주었던 나무패가 보였다. 네코마에는 카게야마가 드나들 수 있는 궁이 있었다. 그 패를 쥐고 카게야마는 물었다.
"쿠로오님. 여긴 네코마인가요?"
쿠로오는 대답 대신 손끝으로 카게야마의 가슴 위를 꾹 눌렀다.
"네코마는 훨씬 좋아."
"...."
"마마님이 궁금하다면 같이 가볼까?"
쿠로오는 손을 내밀었다.
쿠로오 테츠로에 대한 호감도가 50 이상이므로 카게야마가 쿠로오의 꿈을 꾸었습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와 짧은 밤을 하고는 아침이 오기 전 돌아갔다. 상궁이 밤손님을 알지 못한 건지, 아니면 쿠니미이기 때문에 모른 척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휘말린 일이니 기왕이면 아무도 알지 않았으면 했다. 카게야마는 조금 저리는 몸을 손으로 주물렀다. 창 밖을 내다보면 꿈 속에서 보았던 푸른 초원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네코마는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정말 꿈같겠네."
카게야마의 꿈을 모르는 상궁의 귀에는 그의 마지막 말이 다르게 들렸다.
"네코마에 가보고 싶으신 겁니까?"
"어째서?"
"방금 꿈, 같겠다고 하셔서."
카게야마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궁을 쳐다봤다가 다시 눈을 돌렸다.
"꿈..꿈은 꿈이지."
덧없다는 목소리로 카게야마는 말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카게야마의 쿠로오에 대한 호감도가 50을 넘었으므로, 문안인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쿠로오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후의 수치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만난 상대의 위험도가 선택지에 따라 +3 혹은 +5로 오르게 됩니다. 카게야마의 호감도는 전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간밤 갑자기 쳐들어온 쿠니미는 싫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쿠로오의 생각이 언뜻 스쳤으나, 우선은 섭정궁에 가기로 카게야마는 마음먹었다.
"섭정궁에 가야겠다."
그래도 왠지 남궁에 가보고 싶어, 카게야마는 가는 동안에도 슬쩍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카게야마는 섭정궁에 도착했다. 이번엔 미리 연락을 넣어 킨다이치는 앞에서 카게야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모습에 카게야마는 슬쩍 웃었다. 궁녀들을 물리고 킨다이치의 앞으로 가면,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걱정스럽게 훑었다.
"폐하. 얼굴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간밤 편히 잠을 주무시지 못하셨습니까."
"...."
아무리 그래도 쿠니미가 한 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카게야마는 얼굴을 제 손으로 슥슥 문질러보았다. 킨다이치의 말 때문인지 좀 까슬하게 느껴졌다. 근심어린 킨다이치의 얼굴을 피하고서 카게야마는 아무렇게나 둘러대었다.
"..날이 건조해서 그런가보다."
"단패궁에 들어가는 물품에 더 신경을 쓰도록 말하겠습니다."
"네가 나설 것 없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젓고는 궁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잡은 후 슬쩍, 다시 한 번 남궁 쪽을 바라본다. 뒤에 서있던 킨다이치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홀 : 왜 그러십니까
짝 : 왜?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
"정말,"
"....무슨 일 있어? 카게야마?"
아무래도 걱정이 됐는지 제법 킨다이치의 추궁이 집요했다. 카게야마는 조금 얼굴을 붉힌 채 말했다.
"네코마의 꿈을 꿨어."
"네코마.."
"따뜻한 나라라고 하니, 쿠로오님께 어떤지 물어보고 싶어서."
"....."
"가고 싶다는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래."
마지막 말은 누가 들어도 변명처럼 들렸다. 킨다이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 몰라 카게야마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홀 : ..네코마는 (위험도 +3, 호감도 +1)
짝 : 쿠로오님? (위험도 +3)
그러나 귀에 거슬린 소리를 그대로 넘길 수는 없었다. 지나치게 곧은 킨다이치의 카게야마를 향한 마음은, 곧 그것을 입밖으로 내게 했다.
"쿠로오님?"
"...왜?"
"남궁에는 두 분이 계시는데, 쿠로오님이 좀 더 편한가보네."
그리고 그는 카게야마와 지난 밤을 보낸 사람이었다. 카게야마가 이 나라를 떠나 어디를 간다고 해도 킨다이치는 싫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간다고 해도, 결국 킨다이치는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네코마라고 하면.. 킨다이치는 선왕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네코마가 궁금해? 가보고 싶어?"
"갑, 자기 무슨 소리야."
카게야마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싫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킨다이치의 눈에는 그런 카게야마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카게야마 자신조차도 모르겠지만, 그는 아마도. 킨다이치는 몸을 조금 굽혀 카게야마와 눈을 맞췄다.
"카게야마. 나는 네코마는..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시 후 카게야마는 투덜거렸다.
"갈 생각 없다니까. 무슨 소리야."
"....."
"..어휴.."
카게야마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킨다이치가 그 뒤를 따랐다.
*
킨다이치가 뒤에서 말이 없는 것이 거슬렸다. 카게야마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섭정궁 안으로 들어섰다. 앉아있던 쿠니미는 심기가 불편한 카게야마를 알아차리곤 킨다이치를 쳐다보았다. 킨다이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폐하."
쿠니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늘 제가 폐하의 속을 썩였는데, 오늘은 장군께서 폐하를 노하게 하셨습니까."
"..너희 둘 다 똑같다."
카게야마는 시치미를 떼는 쿠니미를 보고는 기가 막혀 대꾸했다. 직접 의자를 빼주던 쿠니미는 그 말을 듣고 조금 고개를 숙여 웃었다.
홀 : 편하게
짝 : 밖에서
"지난 밤은 편하게 주무셨습니까."
쿠니미는 자리에 앉은 카게야마에게 차를 따랐다. 워낙 여상한 목소리라 카게야마는 간밤의 일이 자신만의 일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도 몸 속에는 열기가 남아 있었다. 조금 성급했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유난히 잘 웃는 쿠니미를 보며 카게야마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편히 잤다."
"다행입니다."
"얼굴에 꽃잎英 그림자가 져서 한 번 깬 것을 빼고는."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쿠니미 또한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침상 근처에 꽃병을 놓지 못하도록 상궁에게 말해놔야겠다."
"그러시겠습니까."
"...밤에 성가시게구니 내가 깜짝 놀라 깨지 않았느냐."
오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으니 이제 오지 않겠지. 카게야마는 차를 마셨다.
홀 : 꽃이
짝 : 그럼
"꽃이 폐하의 곁에 있지 못해 슬퍼하겠습니다."
쿠니미는 굳이 자신의 이름을 들어 말을 한 카게야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공부를 싫어했다고는 해도 어릴 때부터 매일 글을 배워야 했고, 무예를 익혀야 했다. 아직도 몸에는 그때 받은 교육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 카게야마의 조각들을 발견하면, 쿠니미는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쭉 함께 해온 것들은 카게야마의 체내에 남아 오랫동안 머무른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카게야마는 왠지, 더욱 기분이 좋아보이는 쿠니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슬퍼해도 어쩌겠느냐. 귀찮게 구는데."
"귀찮으시면 제가 상궁에게 말을 해놓겠습니다."
"..내 궁의 사람이니 내가 말할 것이다."
카게야마는 연신 부드러운 대답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1~3 : 그렇게 하십시오
4~6 : 혹여
7~9 : 단패궁을 (위험도 +1)
0 : 하지만
"그렇게 하십시오."
순순히 쿠니미는 물러났다. 또 무어라고 대들지 않을까,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쿠니미가 예상보다 쉽게 수긍하니 카게야마도 할 말이 없었다.
"..내 뜻을 알았으면 다행이다."
"폐하."
킨다이치는 종전의 심각한 표정을 거두고 카게야마에게 말을 걸었다.
"섭정도 잘 알아들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고 있다."
그리고 저 또한. 킨다이치는 네코마의 이야기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끝내,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킨다이치는 입을 다물었다.
쿠니미 아키라
○: 61 (+2)
◇: 52
카게야마 토비오
□: 52 (+2)
킨다이치 유타로
○: 44
◇: 35 (+3)
카게야마 토비오
□: 34 (+0)
킨다이치는 드물게 카게야마를 바깥까지 배웅하지 않았다. 그는 카게야마가 나가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쿠니미를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확인한 쿠니미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쿠니미. 너...!"
"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서."
"...."
"그래서 잠깐, 갔어."
킨다이치는 카게야마가 빗대어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도 카게야마와 함께 궁에서 공부를 했다. 꽃잎 운운하는 말이 누구를 말하는 지는 뻔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랍게도 약간의 불쾌함이 심장을 두드렸다. 또한 곧바로 그 원인을 알아차린 후에는, 킨다이치는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쿠니미."
"응."
"..나는 단패궁에 들어가면 안되는 거였어."
킨다이치는 자신을 탓하며 혼란스러운 머리 속을 삭이려 애썼다.
*
이제 쿠니미가 밤에 말없이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카게야마는 옆에서 대화를 듣던 킨다이치도 사실은 알아들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비유를 썼으니 알아듣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조금 고민하던 카게야마는 네코가 달려오자 활짝 웃으며 팔을 열었다.
"이제 잘 안기네!"
쿠로오의 냄새가 없어져 신이 난 네코는 흥을 이기지 못하고 왕왕, 짖기도 했다. 식사를 가져오게 하던 상궁이 눈살을 찌푸렸다.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카게야마는 자신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네코가 기특하여 계속 쓰다듬어주었다.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짐승만 챙기니 상궁의 불만이 더 커졌다. 결국 공을 꺼내오라고 하는 카게야마에게 상궁이 한 소리를 했다.
"마마. 지나치게 아끼시니 제가 다 걱정이 됩니다. 먼저 몸을 챙기셔야지요."
"내 몸은 튼튼한데 여기서 더 어떻게 챙기란 말이냐."
카게야마는 상궁의 눈을 무시하고서 네코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공놀이를 할까? 하고 말하면 공이란 단어를 알아듣고 네코가 꼬리를 흔들었다.
홀 : 손님이 찾아왔다
짝 :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공을 가져오려고 하면 상궁은 번쩍 문을 열었다.
"마마.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일부러 네코를 떼어놓는 손길이 유독 반가워보였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 지정
"츠키시마님께서..?"
뜻밖의 손님이었다. 카게야마는 어서 모시라고 말했다. 들어온 츠키시마는 상궁에 의해 끌려나가는 네코를 힐끔 보았다. 츠키시마님을 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츠키시마가 물었다.
"저 개는 네코마에서 받은 개지?"
"예."
"..왕님께서 정말로 아껴주고 있네."
털은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고 어디 하나 더러운 것이 묻은 곳도 없었다. 잘 손질된다는 건 그만큼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 애정이 과연 선물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선물을 준 사람에게까지 향하는 것인지 츠키시마는 궁금했다. ..그다지 선물에 보답받은 적은 없으니까 말이야. 츠키시마는 유치한 생각을 하며 방을 둘러보다가 흠칫 놀랐다.
홀 : 마른 꽃
짝 : 등
침상 바로 옆에는 츠키시마가 직접 만들게 한 등이 있었다. 위쪽으로 난 구멍을 통해 촛불을 넣으면 모양을 바꾸며 달이 뜰 수 있도록 만든, 제법 신경써서 만든 선물. 꽃도 보석도 싫어하는 것 같아 도저히 무엇을 보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보내고 싶은 것을 보냈다.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해 한 번 보고는 창고에 넣어두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츠키시마는 놀란 눈으로 그 달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알아차린 카게야마가 순순히 대답했다.
"밤에 켜두면 참 예쁩니다."
"...아직까지 방에 두고 있는진 몰랐네."
"..? 선물로 주셨으니..가지고 있으면 안되는 건가요?"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의 눈치를 살폈다. 선물을 받고 서신을 하지 않은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츠키시마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북궁에 왕님이 그다지 오지를 않아서."
"..예?"
"한참 오다가, 저번 밤에 내가 히나타에 대해 말한 이후론.."
츠키시마는 말을 하다가 인상을 썼다. 냉철한 눈동자, 그러나 안경 밑의 얼굴은 살짝 붉었다.
"..그다지 우리한텐 와주지 않았으니까."
"그건,"
"존속살인은 충격받을만한 일이긴 했고..."
홀 : 그런 일로
짝 : 그런 일에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의 얼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일에, 츠키시마님께서 신경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라니."
"..제가 어디를 가거나, 아니면 가지 않거나.. 하는 일이요."
츠키시마는 기가 막혀 웃었다. 이 여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침마다 단패궁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카게야마가 어느 궁에 가는지 살펴보고 있다는 걸 이 여자는 몰랐다. 아오바죠사이의 영역권에 있는 나라의 후계에 히나타의 핏줄이 섞이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명예가 된다. 히나타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츠키시마는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계산을 하며 눈을 들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그 파란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고,
순간 복잡하던 머리는 텅 비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츠키시마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저 등, 마음에 들어?"
"예? 예. 마음에 듭니다."
"...그럼 됐어."
츠키시마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감쌀 듯 손을 댔다가 안경을 벗었다. 그는 천천히 안경을 닦았다. 원래도 더럽지 않았던 안경은 그가 앉아있을 핑계를 만들어주기 위해 오랫동안 닦였다.
카게야마는 오늘 츠키시마와의 시간이
1~3 : 츠키시마님, 왜 오신걸까? (호감도 +0)
4~6 : 예쁜 등을 주셔서 감사해요 (호감도 +1)
7~9 : 오래 계셔서 좋아 (호감도 +2)
0 : 안경 벗은 얼굴 보고 싶어 (호감도 +3)
카게야마 토비오
□: 40 (+1)
츠키시마는 오늘 카게야마와의 시간이
1~3 : 마음에 들면 다행 (호감도 +1)
4~6 : (자주 보고 싶..) (호감도 +2 위험도 +1)
7~9 :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호감도 +3 위험도 +2)
0 : 저 눈동자 때문에 (호감도+3 위험도+3)
츠키시마 케이
○: 49 (+1)
◇: 29
츠키시마는 제법 오랜 시간을 앉아있다가 일어섰다. 츠키시마가 가기 전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츠키시마님. 예쁜 등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번에 보내주셨던 꽃도 참 예뻤습니다."
참 빠르게도 인사를 한다, 비꼬려던 츠키시마는 잔잔한 얼굴 안에서 푸른 달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츠키시마는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들면 다행이고."
그러라고 준 선물이니까. 츠키시마는 빠르게 내뱉고는 단패궁을 떠났다.
*
츠키시마의 방문으로 미뤄진 공놀이는 저녁식사 전까지 계속 되었다. 단패궁에 딸린 정원에서 공을 던져주니 네코는 폴짝거리면서 잘도 따라왔다. 상궁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마마. 그만 들어오십시오."
"아직 이렇게 밝은데."
"...마마께서 회임을 하시게 되면 제가 단단히 모실 겁니다."
태교를 시작하면 당장 저 공부터 치울 것이라고 상궁은 결심했다.
1~3 : 밤산책을 했다
4~6 : 침상에 누웠다
7~9 : 손님이 왔다
0 :
이렇게 걷다보면 누군가와 만나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 지정
"토비오쨩."
성큼성큼 다가온 목소리는 꼭 밤, 그리고 이때 쯤 자주 만나던 사람의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서둘러 인사했다. 머리 위에서 큰 한숨이 들렸다.
"토비오쨩. 토비오쨩."
"오..오이카와님?"
고개를 들라는 허락보다 먼저 손이 내려왔다. 오이카와는 거칠게 카게야마의 머리통을 헤집었다.
"토비오쨩 머리 동글동글하네."
"오이카와님, 무슨 일이세요!"
"토비오쨩이야말로 무슨 일인거야."
도대체 왜 서궁엔 안 와? 오이카와씨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이카와씨가 직접 활도 가르..쳐주지는 못하겠지만 보여준다고는 했는데."
"아..그건.."
"토비오쨩 울면서 오이카와씨한테 매달려놓고 너무하네."
"제..제가 언제 울었어요!"
활을 가르쳐달라고 울었던 적은 없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락도 없이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그 유려한 얼굴에, 못마땅한 미간주름이 잔뜩 잡혀있었다.
"정말 없어?"
오이카와는 궁녀들도 없이 돌아다니는 카게야마를 마음껏 잡았다. 오이카와만을 피하는 것처럼, 거의 열흘 가까이 보지 못한 얼굴은 얄미웠다. 조금 짓궂게 정말로 없어? 라고 다시 한 번 물으니 그제야 카게야마의 얼굴이 빨개졌다.
"얼굴 빨갛네. 하긴 이렇게 잘생긴 오이카와씨 얼굴을 봤으니 그럴 수 밖에."
"오이카와님!"
오이카와와 만나면 언제나 정신없이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밀어내려했지만 요령좋게 피하면서도 어깨는 놓지 않았다. 토비오쨩, 지금 감히 아오바죠사이 황자의 몸에 흠집을 내려는 거야?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는 밤공기에 섞여 유독 나른하게 들렸다. 결국 오이카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보면 최근 서궁의 분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 것 같았다.
"일부러 인사를 가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자주..갈게요."
"저번에도 자주 오겠다고 했었지."
대답이 빨라서 못 믿겠다고 하면 말을 느릿느릿 늘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또 웃음이 나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어두운 밤 속에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까만 머리카락.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얼굴은 오이카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토비오쨩, 거짓말쟁이였네. 서궁에 자주 온다고 했으면서."
"...! 아닙니다. 저..정말로,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럼 오이카와씨가 보고 싶지 않았거나?"
"뵙고 싶었어요!"
기어코 튀어나온 건 오이카와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오이카와씨는 절대로 토비오쨩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토비오쨩이 오이카와씨를 보고 싶어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언제나 우위에 있고 싶어하는 이 욕망은 카게야마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생긋 웃었다.
"그래? 그러면 오이카와씨가 데려다줄게."
홀 : 부탁드려요
짝 : ....
카게야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오이카와에게 그런 부탁을 해도 될지 망설여졌다. 그리고 그 침묵은 곧바로 오이카와에게 닿아,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오이카와씨가 싫다는 거지?"
"아, 저, 오이카와님."
"...그럼 됐어. 오이카와씨도 피곤했으니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휙 돌렸다. 이제와서 다시 부탁드리는 것도 우스워 카게야마는 그 등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후원, 단패궁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걷고 있었다. 피곤하시다더니... 마치 자신이 들어가는 걸 뒤에서 지켜보는 듯한 걸음이었다.
"설마.."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이카와 토오루
○: 48
◇: 34 (+1)
카게야마 토비오
□: 40
상궁은 돌아온 카게야마를 보고서 한숨을 쉬었다.
"마마..제발 어디 가실 땐 말씀 좀 하고 가십시오."
"기껏 가봤자 저 후원 정도인데 난리구나."
"혹여 몸이 상하시면 어떡합니까. 지난 번 우시지마님의 말씀처럼 혼자 다니시면 저희가 혼이 납니다."
카게야마의 잠자리를 보아주면서 상궁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당부를 했다.
"절대로 혼자 다니시면 안됩니다."
"그래."
"마마. 대충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알겠어.."
많이 걱정한 모양이라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궁의 손은 빈틈없이 이불을 덮어준 후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건방지다고 여기셔도 할 말은 없으나 걱정이 되어서 올리는 말씀입니다. 귀담아 주십시오."
"..네 뜻은 잘 알았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궁은 편히 주무시라고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카게야마 외에는 아무도 없는 방. 네코조차 궁녀가 돌보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또 오지는 않을까 싶어 카게야마는 괜히 몸을 틀어 문쪽을 보았다.
"...."
또 오지는 않겠지. 카게야마는 풀썩 자리에 도로 누웠다. 오랜만에도 조용한 밤이었다.
24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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