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님. 귀여워. 내 생각하면서 정말.. 한 거야?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들리던 목소리는 꿈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계속 자신의 생각만 하라고 고집을 부리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흔들리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계속, 쿠로오님의, 으응, 쿠로오님의, 생각만. 그렇게 말하며 감았던 눈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열렸다. 카게야마는 몽롱한 얼굴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물기가 없는 눈동자는 달라붙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ㅇ...응.."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더듬었다. 손에 따뜻한 것이 닿았다. 부드러운 털. 기분이 좋아질만한 온도. 왠지 기분이 좋아져 무의식적으로 쓰다듬던 카게야마는 순간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쿠..쿠로오님."
카게야마의 옆에서, 거대한 검은 표범이 어깨뼈를 들썩이며 그르릉거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허둥지둥 이불로 잡아당겼다. 간 밤 그렇게 벗은 몸을 보았지만 이 표범 앞에선 부끄러웠다. 몸을 가리려고 더 이불을 잡아끌어보니 이불은 표범의 배 아래에 깔려있었다. 쿠로오님..! 일부러 이러는가 싶어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곧 표범은 날렵하게 몸을 일으켜 카게야마의 맨 무릎에 머리를 얹었다.
"피곤해. 마마님.."
"쿠로오님. 일어나세요."
"피곤하다니까.."
카게야마는 울상이 되어 흑표범을 잡고 흔들었다. 일어나세요, 적어도 사람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자 표범은 무릎에 기대에 웃었다.
"마마님이.. 날 완전 쪽쪽 빨아먹어서 말이야."
"윽.."
"책임져야 돼. 나 이젠 다시는 인간으로 못 돌아갈지도."
기력이 없어. 능청스럽게 말하는 표범의 얼굴 위에, 카게야마는 이불을 확 덮어버렸다.
*
이대로 있다간 상궁이 놀라서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한참을 달래어, 겨우 쿠로오는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또 다른 식으로 부끄러웠다. 카게야마는 옷을 헐렁하게 입는 쿠로오에게 말했다.
"기력 없다고 하셨으면서, 이제 쿠로오님의 말씀은 믿지 않을 겁니다."
"응? 안 되는데?"
"..전부 다 거짓말이셨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하면 쿠로오는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난 마마님한테 거짓말 한 적 없는데."
"그.. 잘 모른다고 하셨으면서."
어쩜 저렇게 뻔뻔할까. 카게야마가 눈을 흘기자 쿠로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마님. 그렇게 노려보지 마. 긴장해서 그랬어."
"긴장하셨다구요?"
"그래, 남자는 섬세한 동물이라 낯선 환경에선 긴장하거든."
"...."
카게야마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쿠로오는 활짝 웃었다.
"그런데 마마님이 귀여워서 나도 같이 흥분한 거지."
"..귀엽진 않지만.. 그렇습니까?"
"그래. 마마님, 난 잘못 없어. 마마님 탓이야."
상궁이 들어왔다. 쿠로오는 안녕, 하고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는 돌아갔다. 카게야마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상궁에게 말했다.
"남자들은 참 신기하군.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쉽게 터득하다니.."
"마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상궁은 빨개진 낯으로 카게야마를 말렸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식사를 하며 카게야마는 네코를 불렀다. 하지만 카게야마에게 웬일로 오지 않았다. 구석에 쳐박힌 채로 몸을 웅크리고서 구슬프게 울기만 했다.
"왜 그러지? 내가 싫어졌어?"
카게야마는 수저를 놓은 채 얼른 자리에서 내려와 네코에게로 다가갔다. 조그만 강아지는 마치 카게야마가 맹수라도 되는 것처럼 벌벌 떨며 낑낑거렸다. 그제야 짚이는 것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속상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상궁이 카게야마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이게 다 쿠로오님 때문이다."
쿠로오가 짐승 냄새를 묻힌 탓에 네코가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카게야마는 오늘 아침 인사를 갈 대상에서 남궁을 지웠다. 북궁도 어제 갔으니 지우고, 섭정궁도 그저께 갔으니 지운다. 남은 궁은 동궁과 서궁.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와 이와이즈미의, 오이카와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늘은 조용히 있고 싶었다.
"동궁에 가야겠다."
"알겠습니다."
상궁은 얼른 네코를 궁녀의 손에 안겨 내보냈다.
*
우시지마를 만날 생각을 하니 지난 번의 입맞춤이 떠올랐다. 카게야마는 동궁의 앞에 서서 얼굴을 붉혔다. 궁녀들은 머뭇거리는 카게야마의 뒤에서 저희들끼리 눈을 맞추었다. 마마,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뒤에서 결국 누군가 묻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궁녀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라면 제법 많은 시간이 지체됐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문을 열었다.
홀 : 우시지마가
짝 : 궁녀가
궁녀는 카게야마가 들어오자마자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우시지마님께선 지금 안에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겠다."
카게야마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궁 안에 들어와 우시지마를 보지 못한 적은 처음이었다. 한 번 사냥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황제는 카게야마를 보물이라도 되는 양 반겨주었다. 조금 쓸쓸해져 주위를 돌아보면, 카게야마의 눈에
홀 : 반지
짝 : 서신
지난 번 보았던 반지가 보였다. 카게야마는 일어서서 고개를 빼고 서신 옆의 반지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그 반지가 맞았다.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지마는 그 반지를 쓰다듬으며 누가 가져가버리지 않을지를 걱정했다. 귀한 반지를 저렇게 바깥에 두어도 괜찮을까? 카게야마가 고민하는 사이 우시지마는 환한 얼굴로 나왔다.
"카게야마."
"우시지마님."
카게야마를 덥석 안는 바람에 우시지마의 품 안에 갇히듯 안겼다. 카게야마가 뒤로 몸을 빼려하면 우시지마는 더욱 힘을 주어 안았다. 약간은 섭섭한 어조로 황제가 말했다.
"얌전히 있지 않으면 나를 언짢게 여기는 것으로 알겠다."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오랜만이군."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안은 후 헛웃음을 지었다. 품에 안은 여자에게선 낯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짐승의 냄새가 예민한 성국 황제의 코를 찔렀다. 그 모양이 가소로워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조금 힘을 주어 쓰다듬었다.
"네코마의 표범이 건방지게도 이빨을 세웠어."
우시지마가 짧게 중얼거렸다.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낸 후 동궁을 찾으면, 우시지마가 날카롭게 반응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우시지마의 품에서 눈을 들었다.
"우시지마님. 화가 나셨습니까?"
"화를 내더라도 네게 내지는 않는다."
"....화가 나셨단 말씀처럼 들립니다."
"걱정할 것 없다."
우시지마는 한 손으로 카게야마의 턱을 들어 자신을 보게 했다. 남자의 얼굴은 오직 카게야마만을 보고 있었다.
"나는 네게 화를 내려고 이 곳에 온 게 아니니까."
그 말엔 묘한 확신이 차 있어, 카게야마는 눈을 그저 깜박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카게야마는 제 옷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우시지마가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었다.
"왜 그러느냐."
"..우시지마님께서도 제 몸에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시니까... 신경쓰입니다."
"그렇겠군.."
"네코도 절 피했고."
카게야마는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네코라면 카게야마가 키우는 개였다. 그것도 네코마 쪽에서 주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도 수상쩍은 이름이라, 우시지마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옷을 문지르는 카게야마를 지켜보았다.
1~3 : 이상하지 않으니
4~6 : 걱정할 것 없다
7~9 : 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위험도 +2)
0 : 냄새를 (위험도 +2)
"걱정할 것 없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어차피 짐승의 냄새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렇습니까?"
"애초에 짐승이란 그 정도밖엔 되지 않는다."
단호하게 말하는 말에, 카게야마는 그런가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면.. 카게야마는 갑자기 생각이 나 말했다.
"우시지마님. 저 우시지마님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
"호랑이가.. 우시지마님으로 변하셨어요."
집채만한 호랑이는 카게야마의 몸 위에 올라탔다. 신기한 꿈이었노라고 말하는 카게야마를 보고 우시지마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 내가 그런 짐승껍질을 뒤집어 썼을 리 없지."
우시지마 와카토시
○: 64 (+2)
◇: 30 (+1)
카게야마 토비오
□: 53 (+1)
카게야마는 단패궁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보아 기쁘긴 했으나 역시 잠깐 본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어서 의무를 다한 후에, 시라토리자와로 데려가면... 우시지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반발이 심할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찾았던 여자였다. 저 여자 외에는 아무도 품고 싶지 않았다.
"....."
우시지마는 골치아픈 얼굴로 서신을 노려보았다.
*
카게야마는 단패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네코를 찾았다. 상궁은 곤란한 얼굴로 궁녀들이 잘 돌보고 있다고 말을 전했다. 괜히 네코를 데려와 카게야마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궁의 뜻을 알아차린 카게야마는, 뾰로통하게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마마. 그것보단 선물이 왔습니다."
"...어느 분께?"
"보시지요."
"쿠로오를 제외하고 선물을 보낸 사람을 정합니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코즈메 켄마
9, 0 : 리레주 지정
북궁의 히나타가 보낸 선물이었다. 카게야마는 네코와 함께 가지고 놀던 공을 떠올리곤 약간 울적해졌다. 그런 얼굴을 알아차린 상궁은 재빨리 밝은 소리로 떠들어댔다.
"마마. 히나타님께서 보내주셨으니 얼른 보십시오."
"음.."
카게야마는 함을 열였다. 그 속에는
"리레주의 지정으로 선물을 정합니다. 까마귀 목걸이는 제외 부탁드립니다."
ㄴ봄에 어울리는 예쁜 꽃신
함 속에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고운 신이 있었습니다
"어머나, 예뻐라."
꾸며낸 소리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감탄하여 상궁은 탄성을 내질렀다. 조그만 비단 꽃신은 카게야마가 보기에도 예뻤다. 곱게 꽃자수를 놓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마마. 북궁에서 마마의 발치수를 묻기는 했습니다. 그걸 잊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보내셨군요."
"..히나타님께서..내 발치수를.."
평소에는 잘 보여주지 않는 발의 치수를, 히나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카게야마는 조금 민망해졌다. 상궁은 무릎을 꿇고 카게야마의 신을 벗겼다. 정성스럽게 만든 꽃신을 만져보며 상궁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주사위를 굴려 카게야마의 호감도를 정합니다 : 18
30 이하 : 호감도 1
60 이하 : 호감도 2
90 이하 : 호감도 3
99 이하 : 호감도 4
하지만 예쁜 꽃신은 조금 헐거웠다. 발을 조금 움직이면 카게야마의 발에서 톡 하고 신발이 떨어졌다.
"천을 뒤에 대면 괜찮을 겁니다."
상궁은 어쩔 줄 몰라하며 카게야마의 기분을 좋게 하려 애썼다. 바닥에 떨어진 신을 손수 주은 카게야마는 그 조그만 것을 매만져보았다.
"부드럽다..."
공을 들여 만든 신은 신기 아까울 정도였다. 자신은 험하게 다니니 이런 신을 신으면 금방 닳게 할 것이 분명했다. 카게야마는 신을 잘 보관해두라고 말했다.
히나타 쇼요
○: 38
◇: 23
카게야마 토비오
□: 37 (+1)
저녁을 먹기 전 카게야마는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좋은 향이 나는 물로 카게야마의 몸을 씻긴 궁녀들은, 카게야마가 원하는 대로 새 옷을 가져왔다. 아직 2월의 밤에 입기엔 얇은 잠자리옷이었다. 상궁이 내어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카게야마는 삼일에 한 번씩 거의 벗고 자는데 무슨 소리냐고 우겼다. 결국 상궁은 카게야마에게 새로 지은 옷을 가져왔다. 옷을 입고 카게야마는 네코를 불렀다.
"네코. 이리 와."
카게야마의 눈에도 조그만 짐승이 힘껏 고민하는 게 보였다. 주인의 목소리에 꼬리를 치고 있지만 발은 슬슬 뒤로 도망가고 있다. 카게야마는 성큼성큼 다가가 네코를 안아올렸다. 깽, 소리를 냈지만 카게야마가 품에 안아주면 얌전히 꼬리를 흔들었다.
"착하다."
기분이 좋아진 카게야마는 네코의 보송보송한 귀와 동그란 이마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1~3 : 밤산책을 했다
4~6 : 침상에 누웠다
7~9 : 2
0 :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어안고 침상에 누웠다. 오늘은 우시지마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피곤한지는 알 수 없었다. 봄이 오기 때문일까. 겨울에 잔뜩 긴장했던 몸은 봄이 오면 스르르 풀어져, 유쾌하지만은 않은 나른함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요즘 잠이 많이 왔던 것 같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강아지가 카게야마의 팔 아래에서 웅크렸다.
23일 밤 끝
.
.
.
그러나 끝인 줄 알았던 어느 순간, 카게야마는 잠에서 깼다.
홀 : 쿠니미
짝 : 쿠니미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그러나 아주 옅은 달빛만으로도 카게야마는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잠이 덜 깨 습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쿠니, 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손을 더듬으면 네코는 없었다. 침상 옆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내보냈어."
"..왜?"
"둘만 있고 싶어서."
"....왜?"
쿠니미는 폐하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꿈이야?"
"그랬으면 좋겠어?"
"...."
몰라. 카게야마가 대답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걷다 보니까.. 네가 보고 싶었어."
"...."
"들어오면, 넌 자고 있었고."
난 네 잠을 깨우고 싶었던 걸까, 잠자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온 걸까. 뭘 하려고 온 것 같아? 쿠니미가 물었다. 모르겠다, 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면 곧 쿠니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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