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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61. 2월 22일



정원에 쪼그려앉아 킨다이치를 기다리던 카게야마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자신보다 키가 작을 것 같았는데, 일어나서 보면 조금 얼굴을 들어야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끄러운지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


"왕자, 전하."

"넌 누구야?"

"쿠니미 아키라에ㅇ..입니다."


어색하게 높임말을 쓰는 쿠니미를 보며 카게야마는 짝, 한 번 박수를 쳤다. 아이의 손바닥에서는 싱그러운 소리가 났다. 카게야마는 신이 나 물었다.


"너도 유타로처럼 나랑 놀거야?"

"유타로?"

"아바마마가 데려와주셨어!"


유타로는 키가 크고, 힘도 세! 카게야마는 제 자랑을 하듯 킨다이치에 대한 말을 늘어놓았다. 쿠니미는 열심히 들어주었다가 울적한 얼굴을 했다.


"나ㄴ..저는 힘이 세지 않은데.."

"괜찮아. 밥을 열심히 먹으면 키도 크고 힘도 세져."

"...정말이야?"

"응! 이것 봐. 난 어제 밥을 많이 먹고서.."


카게야마는 조그만 주먹을 보여주었다.


"오늘 좀 컸어."

"우와.."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저보다 키가 큰 쿠니미를 보며 카게야마는 활짝 웃어주었다. 수줍어하던 쿠니미는 정말? 하고 다시 물어왔다. 손 줘봐. 카게야마는 늘어트린 쿠니미의 손을 잡아 쥐었다. 


"여기 다 들어왔으니까, 오늘 밥 많이 먹으면 내일은 내가 못 잡을 지도 몰라."

"그럼.. 빨리 밥 먹고 싶어."


어느새 말을 놓은 쿠니미는 열심히 카게야마의 손에 잡힌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카게야마를 흉내내어 쿠니미가 짝, 소리나게 박수를 치면.


아침이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떴다. ...쿠니미의 꿈을 꾸었다.



쿠니미 아키라에 대한 호감도가 50 이상이므로 카게야마가 쿠니미의 꿈을 꾸었습니다



카게야마는 처음 만났던 그 아이를 기억했다. 유난히 수줍어하던 작은 얼굴. 키는 자신보다 컸으나 마른 몸이라 킨다이치나 자신이 유달리 챙겼다. 쿠니미의 벗은 몸을 잠시 떠올린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을 조금 숙였다. 계란 요리를 떠먹는 척 하며 속으로는, 그때 그렇게 챙기지 않았어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마.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상궁이 의아하게 물었다. 카게야마는 수저를 입에 물고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카게야마를 쳐다보던 상궁은 어제 저녁 카게야마가 손을 닦았던 천을 집어들었다. 이게 왜 여기에 걸려있지? 혼자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카게야마의 귀에 선명히 들렸다. 이번엔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카게야마는 군소리없이 식사를 하며 그릇을 비웠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오늘은 단패를 뽑는 날이었다. 그러면 문득 카게야마는 지난 밤을 보내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히나타를 떠올렸다.


"츠키시마님도..오래 뵙지 못했지."

"북궁에 가시겠습니까?"

"그래. 전에 히나타님이 놓고 가신 옷이 있었지."


북궁에서 딱히 찾으러 오지 않았기에 카게야마도 잠시 잊고 있었다. 상궁은 개어둔 히나타의 옷을 챙겼다. 그 옷을 보면 제게 달려들었던 히나타가 생각났다. 카게야마는 쉽게 식지 않는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열이 있으십니까."


계속 얼굴이 달아올라있는 카게야마에게 상궁은 근심이 되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얼른 대꾸한 카게야마는 열을 식히려 허둥지둥 단패궁을 나왔다.



홀 : 히나타

짝 : 츠키시마



늘 정원에는 히나타가 있었다. 등을 돌리고 서있는 남자는 당연히 히나타라고 생각했다. 태양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나는 머리카락. 히나타님, 하고 부르면 츠키시마가 무심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돌아보았다. 카게야마는 멈칫했다가 츠키시마에게 다시 인사했다.


"츠키시마님을 뵙습니다."

"왕님. 히나타는 안에 있어."

"예. 제가 착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카게야마는 궁녀에게서 히나타의 옷을 받았다. 츠키시마는 그런 카게야마를, 꼼꼼히 훑어보고 있었다.



홀 : ..얼굴이 

짝 : 히나타



"히나타를 보고 싶었는데 내가 나와있어서 왕님, 불편했겠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 키가 훨씬 큰데도."


이제 여기에 오면 히나타 생각 뿐인가. 다행이네. 츠키시마는 가벼운 어조로 말했으나 카게야마의 귀에는 왠지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멀리서 보고 짐작만으로 실수를 한 건 자신이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츠키시마님."

"히나타가 실수한 건 없지?"

"...예?"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해를 등진 츠키시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왕님. 얌전하진 않잖아. 고집도 세고."

"...그렇지 않았습니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까발려진 밤의 기억들은 카게야마를 수치스럽게 하고 있었다. 동요한 주먹이 꽉 쥐어졌다. 츠키시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홀 : ...그냥  

짝 : 그러면 나와



"....그냥 물어본 거야. 히나타는 처음이었어. 딱히 알려준 것도 없고.."


츠키시마는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카게야마에게 츠키시마가 보였다. 


"..실수했다면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내 잘못이기도 하니까."

".....그런 건..없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옷을 꼭 끌어안았다. 츠키시마는 그 옷을 알아보았다. 히나타가 자주 입었으나 언제부터 입지 못한 옷. 아침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돌아온 히나타는 그 후로 왠지, 궁 안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히나타에게 옷을 돌려주러 왔어?"

"예."

"들어가자."


츠키시마는 먼저 앞서 걸었다. 카게야마는 그 뒤를 따랐다. 


*


카게야마는 오랜만에 북궁 안으로 들어갔다. 훈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북궁이 춥다고 말한 후로, 이곳에 올 때면 늘 남궁만큼이나 따스했다. 안을 보면 츠키시마가 놓던 바둑판과, 식지 않은 찻잔 두 개가 나와 있었다.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히나타는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를 올려보았다. 츠키시마의 얼굴에 약간의 곤란함이 떠올랐다.


"...진짜 좋아하나.."

"예?"

"왕님은 앉아있어. 찾아올 테니까."


카게야마는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앉았다. 무릎 위에 히나타의 옷을 두고서 만지작거리면,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는 귀를 기울였다.



홀 : 부끄러워! 

짝 : 그럼 내가 상대해?

0 : 그치만!  



"부끄러워!"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토비오랑..."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절부절 못한 얼굴로 안쪽을 쳐다보고 있으니, 히나타는 결국 츠키시마에게 이끌려 나왔다.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치자 확 고개를 돌린다. 지난 밤에는 자신에게 이름을 부르라며 강요하던 남자는 오늘은 또 어린 소년처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제가 더 멋쩍어 얼른 인사했다.


"히나타님을 뵙습니다."

"..토비오. 안녕."

"저.. 이것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옷을 내밀었다. 히나타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홀 : 고마워  

짝 : 토비오는



"고..마워."

히나타는 서둘러 옷을 가져갔다. 원래 걸친 겉옷을 벗어버리고는 카게야마가 가져온 옷으로 다시 갈아입는다. 츠키시마는 히나타의 옷을 궁녀에게 줍게 하며 한숨을 쉬었다.

"기껏 같이 밤을 보냈는데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야."
"...넌 조용히 해."
"정작 왕님도 아무렇지 않으신 얼굴인데."

첫 여인이었다. 히나타는 츠키시마의 말대로 멀쩡해보이는 카게야마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그날 밤에는 쇼요, 쇼요, 라고 부르며 자신의 품에 기댔던 여자였다. 다시 생각해도 좋았다. 손에 달라붙어오던 카게야마의 몸은 시간이 허락했다면 절대로 놓지 않았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좋지 않았던 걸까. 자신은 처음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랑은 좀 달랐나? 히나타는 혼자 그런 고민을 하며 카게야마를 다시 쳐다보았다.


1~3 : 저도 부끄럽지만
4~6 : 히나타님
7~9 : 의무이니까 (위험도 +2) 
0 : 다음에는



"의무이니,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

"다른 분들과도 똑같은.. 일이었으니까요."


카게야마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대꾸했다. 히나타는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츠키시마는 히나타를 힐끔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히나타의 눈이 카게야마의 이곳저곳을 재빠르게 훑었다. 그날 밤 신기해하며 자신이 남긴 자국들은 카게야마의 몸에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토비오."

"예."

"부끄럽지 않다고?"

"..예."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아니었다. 히나타의 품에서 카게야마는 몹시 울고, 부끄러워하며, 마지막엔 연인처럼 히나타의 이름을 불렀다. 의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그 밤은 거짓이 아니었다. 


"..토비오."

"예."

"쇼요라고 불러봐."

"예?"


확 달아오른 카게야마가 츠키시마의 눈치를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는 츠키시마만이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히나타는 완전히 기운을 차린 채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부끄러워하잖아."


토비오, 거짓말쟁이구나. 히나타는 조금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히나타 쇼요

○: 37 (+1)

◇: 21 (+2)

카게야마 토비오 

□: 36 (+1)


츠키시마 케이 

○: 48 (+1)

◇: 29

카게야마 토비오 

□: 39 (+1)



"쇼요라고 부르라는 건 무슨 말이었어."


카게야마가 떠난 후 츠키시마는 히나타에게 물었다. 목에 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히나타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츠키시마."

"어."

"토비오는 좀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

"..그런가."


난 잘 모르겠네. 츠키시마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

단패궁으로 돌아온 카게야마는 상궁에게 무사히 히나타의 옷을 돌려주었단 말부터 해야했다. 혹시나 또 주인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너는 내가 영 골칫거리인가보구나."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흥, 하고 고개를 돌리면 궁녀들이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궁은 부드럽게 카게야마를 달랬다.

"마마. 준비하셔야합니다."


홀 : 좋아 
짝 : 나는 골칫거리야


북궁에 잘 다녀왔는데도 자신을 걱정하는 상궁이 카게야마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술이 오른 얼굴로 상궁을 쳐다보자, 상궁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나는 골칫거리이니, 네 말은 듣지 않겠다."

"마마!"

"..조금 걷다 올게."


카게야마는 후다닥 궁녀들도 떼어놓고 단패궁을 나왔다. 그러면 빨리 오셔야합니다! 상궁의 목소리가 뒤에서 아련하게 들렸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 지정



네코를 데려올 걸 그랬다, 하고 아쉬워하는 카게야마의 앞에 어제처럼 쿠니미가 나타났다. 일을 보고 섭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듯 했다. 숨을 헐떡이는 카게야마를, 쿠니미는 당황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궁에 계시는 날이 아니십니까."

"잠깐 걷고 싶으니 나온 것이다."

"...."


뻔뻔한 카게야마의 말에 쿠니미는 평정이 깨진 얼굴로 훗 웃었다.


"궁녀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네가 알아서 녹을 잘 챙기거라."

"알겠습니다."


걷고 싶으시다하니, 제가 같이 걸어드릴까요.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홀 : ..그럴까 

짝 : 혼자서



굳이 거절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후원을 걸었다. 그러고보면, 오늘은 쿠니미의 꿈을 꾸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쿠니미를 불렀다.

"쿠니미."
"..응."
"오늘 네 꿈을 꿨어."

눈을 감으면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파랗게 풀이 올라온 정원. 찌르는 듯한 햇빛. 오래된 나무의 냄새. 홀로 지내던 '왕자'의 손을 킨다이치와 쿠니미는 잡아주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긴장한 목소리로 쿠니미가 물었다.

"어떤 꿈?"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은 채 후원을 한 바퀴 같이 돌고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말없이 따르던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인사를 하곤 뒤로 돌아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급히 반기는 궁녀들을 보았다가, 카게야마는 등을 돌려 쿠니미를 불렀다. 쿠니미, 부르면 기다렸다는 듯 급히 카게야마를 쳐다본다. 카게야마의 입이 열렸다.

"..좋은 꿈이었어."
"...다행이네."

카게야마의 악몽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얼굴로 쿠니미는 자리를 떠났다. 


쿠니미 아키라
○: 60 (+1)
◇: 52
카게야마 토비오 
□: 51 (+1)



궁녀들은 이제 카게야마에게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한숨을 푹푹 쉴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젖은 머리를 긁적였다. 변덕이 들어 밖을 다녀왔지만 역시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힘들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가만히 따라주자 치장 또한 금방 끝났다. 거울을 보는 카게야마에게 상궁이 패를 가져왔다.


"마마. 가져왔습니다."


또 여기서 하나를 골라야했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은 채 패를 집었다. 



1 : 오이카와 토오루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츠키시마 케이      

4 : 쿠니미 아키라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쿠로오 테츠로      

8 : 킨다이치 유타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쿠로오 테츠로]


카게야마의 귀에 마마님, 하고 간지럽게 부르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젯밤 자신은 쿠로오를 생각하며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 혼자 느꼈던 쾌감과 죄책감이 다시 한 번 연하게 몸을 파고들었다.


"마마..?"


상궁의 부름에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였다.  


"어, 응."

"괜찮으십니까."

"..그래."


쿠로오의 이름이 새겨진 단패가 상궁의 품 속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식지 않던 뺨은 다시 한 번, 그 단패의 색처럼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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