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는 상궁에게서 새장을 받았다. 궁 안에서 푹 쉬며 잘 먹은 방울새는 그 사이 통통해진 채로 쪼롱쪼롱 곱게 울었다. 카게야마의 손가락이 새장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저를 공격하는 줄 알고 조그만 부리로 콕콕 찍는다. 카게야마는 얼른 손을 뺐다.
"이제 놓아줘도 되겠지?"
"그래보입니다."
아침을 먹기 전 카게야마는 새장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며칠이었지만 정이 들어 보내고 싶지 않았다. 네코가 혹시 달려들까 걱정이 되어, 카게야마는 궁녀에게 네코를 단단히 잡고 있도록 했다. 새장을 열어주면 두리번거리다가 뛰듯이 풀밭에 튀어나온다. 카게야마는 속삭였다.
"어서 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방울새는 몇 번 날개를 접었다가 펴더니, 포르르 날아갔다.
*
철새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산다. 그렇게 사는 일은 몹시 고되지만 한편으론 메인 것이 없어 속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말을 상궁에게 하면 상궁은 카게야마의 기분을 살피며 살짝 웃었다.
"하지만 마마, 결국 그 새들도 매번 머무는 곳이 정해져 있답니다."
"그래?"
그러니..부러워하실 것 없으십니다. 상궁은 카게야마에게 위로를 건네려다가 그만 두었다.
1~2 : 동궁
2~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고작 며칠 밖엔 보지 못한 새였다. 왔을 때는 가볍게 받아들였지만 보내고 나니 서운해진다. 쓸쓸해진 카게야마는 무심코 친구들을 생각했다.
"..섭정궁에 가봐야겠다."
"미리 알리겠습니다."
"알리지 마라."
자국을 잔뜩 남겨 자신을 부끄럽게 한 킨다이치나, 반지를 가져가버린 쿠니미를 곤란하게 해주고 싶었다. 결국 카게야마가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궁도 오직 섭정궁 뿐이다. 상궁은 카게야마의 고집을 외면하지 못했다. 가볍게 옷을 걸치고 나가면 새소리가 들렸다. 보내주었던 새인지 아니면 그 동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섭정궁에 도착하면 조금 소란스러웠다.
홀 : 킨다이치
짝 : 오사와 대신
카게야마는 발을 멈췄다. 오사와는 쿠니미에게 말했다.
"그래서, 섭정 전하의 뜻과 내 뜻은 역시 다른 듯 하군."
"전쟁광이었던 왕을 몰아내고 싶었기에 대신과 함께 한 것이 아닙니까."
"....."
"살려두는 건 대장군의 고집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왕을 연모 했으니."
오사와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요사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
"처음과 다르게 혹시, 섭정 전하께서도 여인을 품에 안으면 생각이 달라졌나 싶거든."
젊은 사내들이 보통 그렇지. 오사와의 말에 쿠니미는 크게 웃었다.
"저는 결코 단패궁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흠.."
카게야마는 몸을 숨긴 채 숨만 내쉬었다. 쿠니미는 나긋한 목소리로 인사한 후 오사와를 보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섭정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카게야마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
쿠니미는 얼마 전 자신에게 오사와 대신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사와에게는 카게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을 믿어야할까. 카게야마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섭정궁 안으로 들어가면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쿠니미가 놀란 얼굴로 카게야마를 맞이했다.
"폐하.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
"폐하."
카게야마는 뻗는 쿠니미의 손을 보았다. 어제 저녁 저 손은 카게야마의 손을 잡고, 결코 자신을 밀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여전히 나는 네 친구가 맞아? 그렇게 물어보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홀 : 쿠니미
짝 : ....
쿠니미가 무엇을 위해 자신을 단패궁에 두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단순히 반란을 일으킬 거였다면 굳이 자신을 살려둘 필요는 없었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마지막 왕가의 여식이 살아있다면, 반란군의 입장에선 득이 될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는 살아남았다.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쿠니미."
일부러 모욕을 하기 위해서일까. 단패궁에 가두어 남장을 했던 왕을 조롱하려 함일까. 하지만 자신과 닿을 때마다 쿠니미는 숨길 수 없는 괴롭고도 황홀한 얼굴로. 그렇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를 미워해?"
"...."
"너는 내게 너를 미워하라고 했어. 그렇게 버티라고 했지."
"...."
"그러면 너는, 너는..내가 미워서 내게 그랬어?"
쿠니미는 모든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들었어?"
"나는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네 근처에선 귀를 닫은 적이 없어."
카게야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쿠니미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한 발자국 다가섰다.
"오사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가 미워?"
"....카게야마.."
"반란에 대한 이유는 묻지 않을게.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아."
"...."
"그렇지만 쿠니미. 나는..."
나는 딱 그 것 하나만 궁금한 거야. 카게야마의 파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쿠니미는 막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홀 : ...단 한 번도
짝 : 울지 마
카게야마의 눈에서 눈물이 가득 고있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쿠니미는 끝없이 그 눈물을 쳐다보았다. 한 방울 한 방울마다 아까웠다. 카게야마. 너는 나를 위해서 울 필요가 없어. 쿠니미는 떨리는 손으로 카게야마의 어깨를 잡았다. 끌어안으면 쿠니미의 어깨가 촉촉하게 젖어간다.
"...단 한 번도."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가져가 자신의 다리 위에 얹었다. 움찔 하는 손을 강하게 잡아쥐고 다리를 만져보게 한다.
"단 한 번도 너를 미워한 적이 없어."
"ㅇ..."
"내가 미워한 건.. 쭉 나뿐이야."
쿠니미와 킨다이치, 키타가와를 지키려고 하던 순진한 왕. 강해져야한다는 집착은 카게야마를 좀먹어 안쪽에서부터 갉아댔다. 쿠니미는 제대로 다리를 만지지 못하는 카게야마의 손을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이 깨끗한 손에 처음으로 묻었던 피. 그 피가 쿠니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면 카게야마는 행복했을까. 쿠니미는 분명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은 어떻게해서라도 카게야마를 붙잡았을 것이다.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쿠니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듯 웃었다.
"그러니까, 카게야마."
"...쿠니, 미..."
"날 쏘려면 심장을 쐈어야지."
카게야마의 눈앞에 눈물이 화살처럼 후두둑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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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가와 과거편 (카게야마, 킨다이치, 쿠니미의 어린 시절 회상)
2월 21일 일정편 (섭정궁의 문안인사에서 이어지는 나머지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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