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Q/카게른/폐왕의 밤

60-1. 과거 회상



"난 왕이 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을 속이고서 왕위에 오르고 싶지 않아."


어린 카게야마가 말했을 때 킨다이치는 고개를 끄덕여 공감해주었다. 하지만 쿠니미는 서운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토비오. 우리는 네가 왕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어."

"...도망치고 싶어."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높은 목소리는 기가 죽어 대꾸했다.


"아키라. 나는..도망칠 거야."

"토비오가 원한다면 도와 줄게."


킨다이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쿠니미는 불안감을 느꼈다. 


"난 토비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걸 원해도?"


카게야마는 파랗고 커다란 눈으로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곧 카게야마는 아오바죠사이로 떠나게 될 것이었다. 아오바죠사이로 가게 되면 오랫동안 보지 못하지만 다른 곳으로 숨으면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카게야마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고 싶어."


키타가와의 후계는 카게야마 토비오 오직 한 명이었다. 쿠니미는 열심히 설득했다. 토비오, 네가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결국 폐하께선 널 찾아낼 거야. 하지만 낙천적인 어린 둘은 쿠니미의 염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도우려하지 않는 쿠니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키라 넌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아오바죠사이로 떠나기로 한 날에 도망치겠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알아봤는데 그 날은 아오바죠사이로 먼저 병력을 일부 보낼거랬어."


킨다이치는 자리에 앉아 돌을 집었다. 쿠니미의 발치에 돌을 놓고는 이만큼, 하며 말을 이었다.


"토비오를 안전하게 데려다줘야하니까 곳곳마다 배치를 할 거야." 

"그래서 더 안 된다는 거야."

"일단 궁에서 나가기는 더 쉬워. 우리 셋이서.."

"셋이 가면.. 눈에 띄잖아."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어린 아이 셋이 돌아다니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한숨을 쉬던 쿠니미는 어떻게해서든지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도울 것이란 걸 알았다.


"그럼 이렇게 해."


쿠니미도 자리에 앉았다. 제 발치에 있는 돌을 하나 들어 다시 킨다이치의 앞에 가져다 놓는다.


"셋이나 둘이나 같이 나가면 안 돼. 그리고 아오바죠사이로 가는 당일도 안 돼."

"왜?"

"토비오의 안전을 위해 키타가와에서부터 쭉 아오바죠사이까지 가는 길목을 지킬 거야."


그러니까..쿠니미는 돌을 전부 킨다이치 쪽으로 두었다.


"차라리 나가려면 나가기 어렵더라도 아오바죠사이에 가기 전이 좋아."

"...응."

"우리가 연관되어 있으면 찾기가 더 쉬울거야. 그러니 너는 먼저 궁 밖에 나가있어."


요양이나, 그런 걸로 핑계를 대란 말이야. 알겠어? 쿠니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


킨다이치는 몸이 아파 한동안 키타가와 궁에 출입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의 병문안을 위해 궁 밖으로 나간다. 의심받는 것은 피해야하므로 킨다이치의 집에 들렸다가, 호위들을 따돌리고서 미리 준비한 평복으로 갈아입는다. 쿠니미의 말에 따라 카게야마는 오월제가 열리는 날에 나오기로 했다. 카게야마의 몸을 가릴 사람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기 때문이었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가 필요한 물건들을 몰래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리고..나중에 같이 다른 나라로 도망치자."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으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카게야마의 들뜬 눈이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그럼 아키라는?"


그럼 넌? 쿠니미는 동그랗게 눈을 뜬 두 명의 친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못 가."

"왜?"

"...가고 싶지 않아."


좋은 말만 해주었다.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엉성한 계획이었다. 아무리 카게야마가 귀가 좋고, 활솜씨가 좋아도 어린 몸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왕은 자신을.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쿠니미는 전부 다 말하지 못했다. 카게야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다른 쪽으로 실망한 카게야마가 짧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반색한다.


"그렇지만, 나 아키라가 부르면 꼭 올게."

"...."

"아무도 몰라. 내가 귀가 좋은 줄 아바마마도 몰라! 그러니까 꼭 나를 불러."


무조건 내가 찾아갈 거야.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와 쿠니미를 보며 활짝 웃었다. 


-


킨다이치 가의 아들은 몸이 아파 궁에 나오지 못하고 왕자는 그런 놀이동무를 친히 보러 궁을 나갔다. 오월제의 첫날이었다. 쿠니미는 일부러 카게야마를 보지 않고 궁에 마련된 제 방에 앉아있었다. 최대한 의심을 사지 말아야했다. 무작정 도망치겠다고 나선 카게야마나 킨다이치에 대한 원망과, 결국 저질러버린 일의 결과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사이 친구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무겁게 몸을 짓눌렀다.


도망치면, 도망치면 그 다음은?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다. 분명히 왕은 쫓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카게야마 토비오가 여자라는 게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더욱 큰일이었다. 또한 킨다이치나 자신의 가족들은.. 쿠니미는 쌓여있는 책을 집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책을 읽어도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결국 쿠니미는 도로 책을 집어던졌다.  작은 손이 얼굴을 감쌌다. 쿠니미는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실패할 거야.."


작은 소동으로 끝나고 카게야마는 돌아오게 될 것이다. 도망치고 싶었던 카게야마는 더욱 엄중한 감시 속에서 아오바죠사이로 떠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오게 되면 쿠니미의 왕이, 된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쿠니미는 제 안에서 떠오른 감정을 알아차렸다. 어린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어두운 욕구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서 태어나고 있었다. 


실패할 거야.

실패할 거야.

실패..


...실패했으면 좋겠다. 


그 때 쿠니미의 방문이 열렸다. 막 들어온 키타가와의 왕이 쿠니미를 쳐다보며 물었다.


"왕자는 어디에 있지?"

"..킨다이치의 집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폐하."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어디에 있지? 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쿠니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


아이의 행동반경이란 어른들의 손바닥 위였다. 제 아무리 똑똑한 쿠니미 가의 아들, 제 아무리 무예에 뛰어난 킨다이치 가의 아들이 돕는다고 해도 어린 아이들. 그래봤자 어린 아이였다. 왕은 카게야마가 사라진 진 것을 안지 하루 만에 그를 도로 데려왔다. 킨다이치와 함께 잡혀온 카게야마는 눈물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왕의 앞에 엎드렸다.


"폐하,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이니 킨다이치는 혼내지 말아주세요."

"잘못인 건 아는 구나."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서럽게 우는 카게야마의 뺨은 눈물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왕은 병사들을 물렸다. 궁 안에는 우는 카게야마와, 끌려오며 다리를 삔 킨다이치의 신음으로 가득했다. 왕이 물었다.


"왕자는 왜 도망치려고 했지?"

"저는..."

"키타가와가 싫었구나."

"아닙니다."

"그러면 왜?"


카게야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저는 남장을 하고, 다른, 흐윽, 사람들을, 속이며, 왕..왕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

"폐하. 저는,.."

"왕자는 잘 듣거라."


왕은 번들번들 빛나는 눈으로 카게야마를 노려보았다.


"네가 도망치면 키타가와는 카게야마씨가 아닌 다른 놈들의 손에 들어간다."

"ㅎ..."

"그래도 너 혼자 편히 살겠다고, 친구들도 위험에 빠트리며 도망가려고 했구나."


친구라는 말에 카게야마의 깜박이던 눈이 멈췄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보고는, 다시 왕을 보았다.


"폐..아바마마. 유타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너를 도망치게 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 습니다."


왕은 죄책감의 덫에 걸린 카게야마를 내려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정을 붙일 이도 없이, 극도로 제한된 사람만을 만났던 카게야마의 소중한 것. 가장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네게 누누히 말했지. 강해져야 이 키타가와를 지킬 수 있다고."


왕은 우는 카게야마의 발치로 카게야마가 놓고 간 활을 던졌다. 


"네 그 연약한 몸으론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

"하지만 강해지면 키타가와도, 네 친구들도 지킬 수 있겠지."

"아바마..아버ㅈ.."

"정녕 도망치고 싶다면 너보다 강한 나를 그 화살로 쏘고 가거라."


믿기 힘든 제안에 카게야마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패륜을 저지르라는 말에 고개를 저으면 왕은 고함을 쳤다. 


"도망치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말을 듣지를 않는구나!"

"어떻게..아버지..아버지를.."


카게야마는 화살을 끌어안고 울었다. 킨다이치 또한 옆에서 아픈 다리를 쥐고 말했다. 폐하. 이번 일은 제가 모두 저지른 일이니 왕자 전하를 벌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왕의 시선은 카게야마에게로 꽂혀있었다. 연약한 생각을 하는 저 머리를 뜯어고쳐놔야했다.


"그렇게 네가 효자라면.. 나를 쏘지 못하는 대신에."


왕은 메마른 눈으로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내 뒤의 병풍을 맞출 순 있겠지."


왕의 뒤에 놓인 병풍 속 용은, 카게야마의 눈물이 울렁거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렸다. 지나치게 울어 힘이 빠진 카게야마의 귀에는 놀랍게도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심한 채로 병풍을 본 순간 세상은 고요해졌다.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세계였다. 


-


킨다이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껏 윽박지르던 왕이, 저 용의 눈을 화살로 맞추는 것으로 용서해줄 리 없었다. 토비오... 킨다이치의 입에서 신음이 섞인 이름이 흘러나왔다. 

이상해. 

하지마. 

토비오. 


그러지 마.

킨다이치의 손이 허공을 쥐었다. 벌떡 일어난 카게야마는 눈물을 닦았다.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쉽군."


왕과 카게야마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어린 아이의 근력으로는 결코 맞추지 못할 거리였다. 그러나 어린 카게야마는 온 전신을 사용해, 활시위를 당겼다. 작은 팔이 파들파들 떨렸다. 보호대 없이 활시위를 당기면 손가락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지킬 것이 있었다. 키타가와만큼, 키타가와보다 더 사랑하는, 친구들. 킨다이치가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한 카게야마에겐 들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간절하게 화살을 쏘았다. 왕의 다리 뒤로 날아간 화살은 병풍에 굵은 소리를 내며 박혔다.


"빗나갔군."


왕은 화살을 던졌다.


"다시 쏘거라."


카게야마의 활은 오로지 용의 눈을 노려보며 화려하게 만개한다.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용의 눈동자를 노리는 카게야마의 모습은 지켜보던 킨다이치에게도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시 이상한 위화감은 남아있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의 화살이 날아가는 병풍을 쳐다보았다. 금색 병풍 아래로 붉은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토..비오.."


킨다이치의 몸이 떨렸다.


-


"너는 똑똑하지."


왕은 쿠니미에게 어떤 추궁도, 고문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선택을 하게 했다.


"똑똑하니까 내 말을 잘 알 것이다."

"폐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왕자는 마음이 약해, 왕이 될 재목은 아닐 지도 모른다."

"...."


쿠니미는 그가 무엇을 바라는 지 몰라 그저 듣고만 있었다. 왕은 쿠니미의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지켜야하는 것이 있다면 강해지는 법이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니 왕자의... 카게야마의,"


왕은 쿠니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왕의 손길이었다. 멍하니 올려다보면 왕은 쿠니미를 보며 웃었다.


"소중한 것이 되어주렴."


후에 쿠니미는 수많은 밤을 보내며 그 날을 생각했다. 만약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카게야마는 행복했을까. 무사히 도망쳐 키타가와의 국경을 넘고, 어린 시절의 친구는 잊어버리게 되었을까. 적어도 분명한 건 쿠니미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어떻게해서라도,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아키라는 토비오를 붙잡았을 것이다.


-


카게야마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킨다이치에 의해 활을 놓쳤다. 무슨 짓이야, 하고 돌아보면 킨다이치의 눈은 핏줄이 선 채로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ㅇ..유타로?"

"안 돼. 하지 마."

"..왜?"


카게야마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금보다 더욱 가느다랗고 깊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피투성이의 손이었다. 킨다이치에게 피가 묻을까 걱정이 된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폐하께서 눈만 맞추면,"

"아니야.."

"어..?"

"아니..아니야."


킨다이치는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도무지 왜 그러는 지를 몰라 카게야마는 왕을 바라보았다. 흡족한 얼굴이었다. 어리둥절하여 다시 병풍을 보면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얼룩이 보였다. 검은 하늘에서 여의주를 물고 구름을 타는 금색 용의 얼굴은, 빼곡하게 박힌 화살 덕에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화살이 박힌 곳에선 신기하게도, 붉은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폐하..?"


카게야마는 손을 옷에 문질렀다. 왕에게 다가갈 수록 심장이 거세게 뛴다. 온 몸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가, 식은땀이 쭉 등줄기 아래로 흘러내렸다. 


"폐하. 저는.. 용..눈 맞췄나요?"


가까이 가서 물어보면 왕은 직접 보렴, 하고 카게야마를 병풍 앞에 세웠다. 떨리는 손으로 카게야마는 화살 위를 더듬었다. 어디가 눈인지, 입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하나씩 빼보기로 한 카게야마는 힘을 주어 화살촉을 잡아당겼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병풍이 찢어진다. 거대한 병풍이 카게야마의 위로 쓰러졌다. 놀라서 얼른 빠져나오면 벽 뒤에는


"ㅇ...아..키ㄹ..?"


카게야마의 닫혀있던 귀에, 드디어 쿠니미의 다리에서 흐르는 핏소리가 닿았다. 


-


아키..아키라..폐하..아키라가 왜..여기...폐하.. 카게야마는 헐떡이며 왕을 쳐다보았다. 왕은 핏물이 고인 쿠니미의 다리에서 화살을 하나 빼어 던졌다.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쿠니미가 무너져내렸다. 킨다이치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감히 허락도 구하지 않고 올라와 쿠니미를 안았지만 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카게야마를 책망했다.


"네가 도망치려해서, 친구가 다쳤구나."

"..아키라..가.."

"친구가 다친 건 네가 약한 탓이지."

"...내가...."


왕은 정신을 잃기 직전인 카게야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정녕 도망치겠느냐."

"아버..지..아버지..아키라..살려주..ㅅ.."

"말해라. 가겠냐고 물었다."


왕이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카게야마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제까지 하얗고 깨끗했던 손엔 피가 묻어 있었다. 자신의 피, 아니, 쿠니미의 피였다. 눈물도 나오지 않아 입만 벌린 채 손을 보면, 왕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가겠느냐."

"....ㅇ.."

"키타가와도, 네 친구들도 버리고."


카게야마는 옆을 보았다. 킨다이치가 쿠니미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화살을 쏘았다. 모조리 쿠니미의 다리에 박혀 있다. 만약 그 중 한 개의 화살이 다시 카게야마에게 돌아왔다면,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카게야마는 자신의 손을 쏘았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느리게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왕은 카게야마의 뺨을 쓸었다.


"아들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폐하.."

"아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강해지렴. 왕자. 키타가와를 지키려면 너는 강해져야한다. 되새기듯 불어넣는 말에 카게야마는 비에 젖은 꽃처럼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


키타가와 왕자의 가출은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오월제 도중, 쿠니미는 익숙하지 않은 사냥 도중 활을 잘못 쏘아 다리를 절게 되었다. 의원의 말로는 평생 가는 상처라고 했다. 쿠니미는 병상에 누운 동안 어떤 이의 문안도 거절했다. 오월제가 끝난 일주일 후 카게야마는 아오바죠사이로 갔다. 킨다이치가 마중을 나왔다. 


"유타로."


카게야마는 붕대로 감싼 손을 흔들었다.


"나, 아오바죠사이에 가서 꼭 강해져올게."

"토비오.."

"폐하의 말씀이 맞아. 내가 강해지면..나..너희들 지킬 수 있어."


짧은 시간 동안에도 키가 큰 킨다이치는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으로 카게야마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눈은 킨다이치와 마주치면 안심시키려는 듯 웃었다.


"그러니까 걱정 마. 나는 너희를 지켜."


오직 걱정되는 건 카게야마 뿐이라고 킨다이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곧 떠나야하는 카게야마를 두고 킨다이치는 마음이 급해 서둘렀다.


"나도, 나도 더 커서 너를 지킬 거야. 토비오."


여기서 나도 열심히 수련할게. 너도 쿠니미도 지킬 수 있도록! 킨다이치는 말에 탄 카게야마를 따라가며 외쳤다. 병사들의 긴 행렬이 카게야마의 뒤를 따른다. 왕자의 행차를 구경하러 나온 인파에 섞여 킨다이치도 멀어졌다. 카게야마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유타로..아키라..흐느끼는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오직 둘만의 것이었다. 



'HQ/카게른 > 폐왕의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 2월 22일  (3) 2016.03.22
60-2. 21일  (0) 2016.03.21
60. 2월 21일  (0) 2016.03.20
59. 2월 20일  (4) 2016.03.19
58-1. 19일 밤  (2) 201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