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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66. 2월 27일

어제 부었던 발은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계속 잠은 쏟아져, 카게야마를 깨우기 위해 상궁이 제법 고생을 해야했다. 일어날 줄을 모르는 카게야마의 침상 위로 네코가 올라왔다. 분홍색 혀로 뺨을 핥으며 깨우면 카게야마는 그제야 간지러워 킥킥 웃었다.


"네코.."


입술과 뺨을 정신없이 핥는 네코를 끌어안고서 카게야마는 한참을 미루다가 일어났다. 봄이 오니 잠이 많이 오시는가 봅니다, 라고 상궁은 말했다.


"그래? 봄..봄에 이렇게 졸린 적은 없는데."

"...."


상궁은 카게야마의 아침 식사를 챙기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오늘도 날씨는 좋았다. 카게야마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궁녀들이 씨앗을 뿌리라고 권한 곳은 창에서 카게야마의 눈이 바로 닿는 곳이었다. 새벽 이슬이 아직 묻어 반짝반짝 빛나는 잔디들을 보다가 카게야마는 천천히 말했다.


"..어제, 서신을 잊었어."

"제가 챙겼어야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어제 쿠로오님을 만나서 말씀을 드렸으니 괜찮겠지."


그래도 생각해보면 마음에 걸렸다. 카게야마는 결국 상궁에게 남궁에 가겠다고 말했다.


"요즘 남궁을 자주 가시는 군요."

"가면 편하고.. 또.."


카게야마는 슬그머니 입술을 문질렀다. 쿠로오가 생각났다. 


*


카게야마는 남궁에 가기 전 씨앗을 뿌린 곳에 가보았다. 하룻밤 사이에 무언가 변했나 싶어 찾아보는 주인의 모습에, 궁녀들이 뒤에서 웃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카게야마는 민망한 얼굴로 남궁을 향해 걸었다. 여기저기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쿠로오의 말이 사실이라면 곧 카게야마가 뿌린 꽃도 피게 될 것이었다. 남궁에 도착하니



홀 : 쿠로오 

짝 : 코즈메



"마마님."


카게야마가 인사하기 전 쿠로오가 먼저 다가왔다. 흠...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카게야마를 쳐다본다. 카게야마의 발을 들여다보려하자 뒤에 서있던 궁녀들이 동요했다. 옷을 걷지는 않은 채, 쿠로오는 발치에서 몸을 숙이고 앉아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마마님. 발은 괜찮아?"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잘 못 걷겠으면 업어줄까."


카게야마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저었다.


"장난치지 마시라니까요."

"오야, 마마님. 장난 싫어하지."


훌쩍 일어선 쿠로오에 가려 카게야마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가까웠다.



홀 : 장난 아닌

짝 : 네



"네..하지 마세요."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눈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가 가까워질 듯 기울었다가 소리없이 멀어졌다. 얼굴을 가린 그림자가 걷어지고,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쿠로오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마마님. 어제 저녁부터 내가 싫어졌나봐."

"예?"

"계속 거절만 하잖아."


쓸쓸하네. 쿠로오는 들으란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를 속상하게 만들기 위해 온 건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쿠로오님. 저.."

"응."

"어제 주신 씨앗..아직 자라지 않았어요."


오늘 보고 왔는데.. 말하는 도중에도 쿠로오의 시선이 느껴서, 카게야마는 목덜미 뒤쪽이 왠지 간지러웠다. 그 앞에서 긁을 수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그저 꽃씨의 이야기만 웅얼거렸다.


"다음달에 꽃이 핀다기에 오늘 싹은 틀 줄 알았는데."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면 쿠로오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홀 : 마마님 

짝 : 그래?



쿠로오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꽃씨 이야기를 한 건 오히려 안 좋은 선택이었나? 잘 돌보고 있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지만 쿠로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카게야마가 당황하는 사이 쿠로오는 입을 열었다.


"마마님."

"예.."

"..일부러 그러는 거야?"

"예?"


카게야마는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쿠로오는 살짝 턱을 뒤로 젖혔다가 다시 카게야마를 보며 웃었다. 


"그런 거 말이야."

"예?"

"일부러 귀여워보이려고 하는 거, 정말 아니지?"

"..! 귀엽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 것도."


카게야마 앞의 남자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귀여운 걸 모르고 하는 행동같은데, 귀엽게 보이면.."

"....?"

"마마님이 잘못하는 거야. 아니면 내 눈이 이상한 거야?"


엉뚱한 소리를 하는 쿠로오에게 카게야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것도 장난치시는 건가요?"

"...글쎄."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머리 위에 붙은 먼지를 떼주겠다며 손을 댔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왠지 쿠로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카게야마의 얼굴에선 의아한 빛이 떠나지 않았다. 쿠로오는 카게야마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카게야마의 걸음을 힐끔 내려다본다.


"발목을 삔 적은 없지?"

"최근엔 없습니다."

"이상하네."


걸음이 묘하게 무거워보여, 그것이 쿠로오의 마음에 남았다. 궁 안에 들어오면 고양이 산쇼쿠가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쿠로오가 들어서자 깜짝 놀라 후다닥 털을 세웠다. 도망치는 고양이를 따라 눈을 돌리면 코즈메가 있었다. 차를 마시고 있던 코즈메가 카게야마를 보고 살짝 웃었다.


"카게야마. 안녕."

"코즈메님을 뵙습니다."


남궁에 자주 오네..코즈메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홀 : 오늘도 

짝 : 꽃씨는



"오늘도 날씨, 좋아?"


코즈메가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어제 같이 쬐었던 햇살을 떠올리며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코즈메님. 오늘은 나가시지 않으시나요?"

"조금 피곤해서."

"그래도 안에만 계시는 것 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카게야마는 창백한 코즈메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권했다. 쿠로오가 옆에서 박수를 짝 쳤다.


"그래. 켄마. 너 요즘 통 나가지 않았잖아."

"..귀찮은데.."

"마마님. 켄마도 같이 나갔으면 좋겠지?"


쿠로오가 불쑥 물었다. 



홀 : 예 

짝 : 피곤하시면



산쇼쿠는 코즈메의 무릎 위에 올라가 그릉거리며 앉아있었다. 남궁의 안락한 광경.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나른함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같이 일광욕을 하며 카게야마는 코즈메와 함께 있던 시간이, 좋았다.


"예.."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코즈메는 살짝 놀란 눈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나도 같이?"

"같이 나가서 걸어요. 코즈메님."


쿠로오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걷지는 말고 앉아있자."

"...걷고 싶은데."

"마마님 발이 다 나을 때까진 안 돼."


코즈메는 일어섰다. 산쇼쿠가 야옹거리며 후다닥 무릎에서 내려왔다. 발이 아파? 코즈메가 옆에서 묻자 카게야마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아프진 않습니다. 조금 부었을 뿐이니까.."


쿠로오가 평소보다 느리게 걷는 이유를 깨달은 코즈메는, 쿠로오의 속도에 맞추어 걸었다.


나뭇가지가 아직 다 뻗지 못한 어린 나무였다. 궁녀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두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드문드문 얼굴에 닿았다. 이거라면 켄마 너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잖아?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햇살이 따갑지 않을 정도로만 비추어 눈이 부시지 않았다. 


"마마님. 신 벗어. 편하게 있어."

"예?"

"누가 본다고 그래."


쿠로오가 은근히 신을 벗기를 권했다. 카게야마는 망설였다. 코즈메는 그런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1~3 : 보지 않을

4~6 : 편하게 있어

7~9 : (어차피) (위험도 +1) 

0 : 어서



어차피 카게야마의 발은 쿠로오가 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앞이라서 벗지 못하는 걸까? 코즈메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코즈메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혔다. 


"....."


바람이 불었다. 코즈메의 긴 머리카락이 몇 가닥 눈 위로 흘러내렸다. 손으로 걷어내면 바로 눈 앞에, 바람을 피해 눈을 찡긋 감은 카게야마가 보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긴 검은 머리카락. 뒷덜미를 반쯤 덮은 머리카락 아래엔 코즈메가 모르는 몸이 옷 속에 숨겨져있었다. 바람결에 살짝 나부낀 비단옷은 그 윤곽을 옅게 드러내며 달라붙었다. 코즈메는 고개를 훽 돌렸다. 


"...쿠로. 카게야마가 불편한 것 같으니 그냥 둬."


신을 벗기 망설이는 카게야마에게 그렇게 말해주면, 카게야마는 약간 안심한 모양이었다. 그 얼굴을 확인하자 코즈메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쿠로오 테츠로

○: 59 (+2)

◇: 35

카게야마 토비오 

□: 59 (+1)


코즈메 켄마 

○: 39 (+1)

◇: 26 (+2)

카게야마 토비오 

□: 44 (+2)



야외에서 차를 한잔 얻어마신 후 카게야마는 궁녀들과 함께 돌아갔다. 앉아있던 곳이 경직된 궁 안이 아니어서 그런지, 걸음걸이는 한결 편해보였다.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뒤를 눈으로 쫓다가 코즈메에게 물었다.


"어제 오늘 마마님, 몸이 편해보이지 않네."

"..응. 그래 보여."

"....흠.."

"어디 아픈가?"


코즈메의 말에, 쿠로오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


단패궁으로 돌아와 카게야마는 신부터 벗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벗고 있는 쪽이 훨씬 편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카게야마가 발을 가만 두지 않아, 상궁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마. 발이 불편하시면 좀 주물러드릴까요."

"괜찮다."

"제가 보기 불편해서 그럽니다."

"계속 건방지구나."


상궁의 핀잔에도 아랑곳않고 카게야마는 이리저리 발을 굴렸다. 밑에 내려와있던 네코가 그 발을 쫓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발이 이러니 안에 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상궁은 결국 카게야마의 산만한 발을 붙잡아 주무르며 말했다. 굳이 나가고 싶지도 않아 카게야마는 얌전히 상궁에게 발을 내주었다. 조물조물 손가락들이 발을 주물러 시원했다.



홀 : 손님이 찾아왔다

짝 :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상궁에게 발을 맡긴 채 꾸벅꾸벅 졸았다.


"마마. 피곤하시면 침상에 가셔서 주무시지요."

"으응..."


상궁은 눈을 뜨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부축해 침상에 데려다주었다. 오랜만의 낮잠이었다. 햇살이 쏟아져 눈이 부실까, 상궁은 침상의 휘장을 내려주었다. 어둡게 둘러진 침상의 안에 있자니 잠이 솔솔 왔다. 카게야마는 베개에 얼굴을 비비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1~3 : 일어나 밤산책을 했다

4~6 : 그대로 계속 잤다 

7~9 : 손님이 왔다

0 :



마마. 저녁은 드십시오. 카게야마의 눈이 가물가물 떠졌다.


"아침..?"

"저녁입니다."

"....저녁.."


카게야마는 크게 하품을 했다. 


"왜 이렇게 졸린 거지.."

"피곤하시면..계속 주무시겠습니까."

"...응.."


상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게야마를 들여다보았다. 이마에 차가운 손이 얹어졌다.


"열은 없으신데."

"....."

"..마마?"


카게야마는 다시 고롱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상궁은 다시 휘장을 내렸다.








.

.

.

깊은 밤 단패궁의 문이 삐걱, 열렸다.


1~2 : 쿠니미 아키라 (호감도○ 63)

3~4 : 우시지마 와카토시 (호감도○ 68)

5~6 : 이와이즈미 하지메 (호감도○ 63)

7~8 : 츠키시마 케이 (호감도○ 56)

9~0 : 쿠로오 테츠로 (호감도○ 61)



일찍 불이 꺼진 단패궁의 앞을 지나가던 쿠로오는 호기심에 문을 밀어보았다. 궁녀들은 긴장이 풀려 자고 있었다. 상궁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호위들이 쿠로오를 보고 놀라 발을 멈췄다. 쿠로오는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쉿, 잠시 얼굴만 보고 갈 것이다."


일국의 황자가 거짓을 말할 것 같지는 않아, 호위들은 안쪽의 문을 열어주었다.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자 카게야마는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마마님.."


작게 불러보아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마님. 지금 엄청 위험한 상황인 거 알아? 키득거리면서 뺨을 건드리면 카게야마는 으응, 하고 뒤척였다.


"..정말 자네."

"...."

"여자들은 무슨 꿈을 꿀까."


쿠로오는 손가락으로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빙글, 감았다가 놓았다. 마지막으로 귓가에 마마님. 잘 자. 하고 속삭이니 카게야마는 대답하는 것처럼 으응..신음했다.



27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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