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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82. 3월 13일



읍, 카게야마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목 안쪽에서부터 신물이 고여 메스꺼웠다. 괴로워하는 카게야마에게 상궁이 서둘러 물을 가져다주었다. 마마, 많이 힘드십니까. 상궁이 걱정하며 등을 몇 번이나 두드려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원을 부를까요."


상궁이 카게야마의 손을 주무르며 물었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쓴 채 고개를 저었다. 


"됐다. 입덧으로 소란 떨 것은..읏.."


아무것도 먹지 않은 속에서는 올릴 것도 없어 그저 신물만 계속 고였다. 카게야마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배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것이나 먹어도 탈이 난 적이 없는데, 너는 왜 이리 까탈스러운 것이냐."

"마마. 아기님께서 뭘 아시겠습니까."

"분명 고약한 성격의 아이일 것이다."


창백한 얼굴을 한 카게야마는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투덜거렸다.


*


제가 품은 아이에게 화가 난 카게야마는 아침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상궁이 가져온 딸기가 하도 먹음직스러워보여 금방 항복을 했다. 


"딸기만 먹어대는 구나. 이 아이는 여아일까?"

"...."


카게야마의 말에 상궁은 대꾸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이 땅에 여인이 왕이 되는 법은 없었다. 카게야마가 공주를 품었다면 그 공주 또한 이 단패궁 안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상궁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카게야마는 그녀를 힐끔 보았다.


"여아라면, 이번엔 내가 확실히 남장을 알려주어 왕으로 키워야겠구나."

"..마마."

"...농담이다."


카게야마는 묵묵히 딸기를 먹었다.



홀 : 1

짝 : 2 

0 : 3



상궁이 카게야마의 말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무렵, 단패궁 앞에서 두 사람이 멈춰섰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 지정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던 히나타의 걸음이 멈췄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츠키시마 케이

7 : 쿠로오 테츠로 

8 : 코즈메 켄마 

9, 0 : 리레주 지정



네코마의 후계자. 켄마와 함께 지내는.. 히나타는 빙글빙글 웃는 얼굴의 남자를 보고 먼저 인사를 했다. 그다지 이야기를 해본 적 없는 남자는 히나타에게 넉살 좋은 얼굴로 말했다.


"마마님을 보러왔나보네."

"응.. 그렇죠."

"같이 들어가면 되겠다. 나도 보러 왔거든."


히나타의 눈이 쿠로오를 훑었다. 왠지 짐승의 냄새가 났다. 히나타는 제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그 것을 본 쿠로오가 웃었다.


"왜 몸을 풀고 그래?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버릇이라."


둘의 눈이 마주쳤다. 쿠로오가 먼저 손을 문 쪽으로 내밀었다.


"들어갈까?"

"...."


조금 싫어하는 기색의 히나타를 보며 쿠로오는 의미없이 웃었다. 아마 눈앞의 소년은 카게야마를 제법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단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았으니 싫을 만도 했다. 쿠로오는 재촉했다.


"그럼 나 혼자?"


그 말을 한 후에야 히나타의 발이 움직였다. 


*


손님"들"이 오셨단 소식에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일어서자 속이 울렁거렸다. 읍.. 햇빛을 정면으로 본 사람처럼, 카게야마는 눈을 찡그렸다. 눈을 감았다 뜨자 앞에는



홀 : 히나타

짝 : 쿠로오



"쿠로오님."


카게야마는 반갑게 그를 불렀다. 


"얼마 전 쿠로오님의 꿈을 꾸었는데.."

"마마님. 내 꿈을 꿨다고?"


농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꿈에서 들은 것과 똑같았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쿠로오가 물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히나타는 살짝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무슨 꿈을 꿨어?"

"아.."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였다.



홀 : 우선 안으로

짝 : 그게



"그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토비오."


히나타의 말에 이번엔 쿠로오가 멈칫했다. 


"얼굴이 안 좋아보이는데, 들어가자."

"..! 제가 두분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네요."


카게야마는 허둥지둥 안으로 둘을 모셨다. 쿠로오는 히나타를 힐끔 보았다.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켄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과연 당돌할 정도로, 어린 카라스노의 황자는 카게야마를 부르고 있었다. 미숙한 도발이었다. 그러나 신경쓰이지 않는 정도도 아니었다. 쿠로오는 자리에 앉자마자 또 한번 물었다.


"내 꿈을 꿨다니, 마마님 매일 내 생각만 하는 거야?"

"..! 아니, 무슨 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에이, 마마님. 야한 꿈 꿨을걸."

"...!! 쿠로오님."


히나타님의 앞에서 무슨 말씀을. 카게야마는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카게야마를 쳐다보던 히나타는 손바닥을 한 번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 안쪽에서 기분 나쁜 식은땀이 느껴졌다. 


*


어제 만났던 킨다이치나 코즈메에 비해 대화하기 편한 상대일거라고 카게야마는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히나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쿠로오나 히나타가 서로 대화를 하는 법은 없어, 카게야마는 점차 부담감을 느꼈다.


"마마님. 오늘 아침은 뭘 먹었어?"

"딸기를,"

"토비오는 딸기 좋아하는구나."

"예. 좋아합니다."

"딸기만 먹어서 이렇게 가늘어졌나?"


쿠로오의 손이 다가와 카게야마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히나타의 몸이 카게야마 쪽으로 숙여졌다.


"네코는 어딨어?"

"네코는 궁녀가 돌보고 있어요. 히나타님."

"아아, 네코?"


쿠로오가 기분 좋게 웃었다.



홀 : 히나타 

짝 : 쿠로오



"히나타님을 참 잘 따랐지요."


카게야마는 이틀 전 단패궁을 찾아와, 네코와 놀던 히나타를 떠올리고서 조금 웃었다.


"히나타님께서 보고 싶으시다면 데리고 오게 할게요."

"응."


히나타의 고개가 짧게 끄덕였다. 카게야마는 궁녀를 불러 강아지를 데려오게 했다. 방금까지 아침을 배부르게 얻어먹고 졸고 있던 강아지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비틀거리며 주인에게로 왔다.


"네코. 이리 와."


카게야마가 이름을 부르자 얼른 품 안으로 들어온다. 쿠로오는 손등으로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마마님한테 선물하길 잘했어. 그렇게 좋아하니 말이야."


카게야마 쪽으로 손을 뻗으려던 히나타는 그 말에 잠시 멈췄다. 그러나 곧 도로 손을 내밀었다. 히나타가 머리를 쓰다듬자 네코는 기분 좋은 얼굴로 꼬리를 흔들었다. 히나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토비오의 강아지 정말 귀엽다."

"그렇지요?"


히나타의 칭찬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토비오가 잘 키워서 그런 것 같아."

"감사합니다."

"누구라도 줄 수는 있지만, 애정으로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쿠로오는 히나타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저 작은 왕자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와 함께 네코를 쓰다듬으며 쿠로오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쿠로오는 코즈메가 가져온 물엿을 잘 먹었다고 말했다. 


"켄마가 좋아했어."

"코즈메님의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에요."

"나는?"

"예?"


고개를 들자 쿠로오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내 입맛은 걱정되지 않았어? 마마님?"

"당연히.."

"응?"


쿠로오님도, 라고 말하려던 카게야마는 읏..갑자기 속이 뒤틀려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웃고 있던 쿠로오의 얼굴이 굳었다. 히나타 또한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홀 : 토비오 

짝 : 마마님



쿠로오보다 먼저 히나타가 카게야마에게 달려와 부축했다. 


"토비오! 괜찮아?"

"흡, 속이.."


히나타는 빠르게 눈을 굴렸다. 지난 번 카게야마에게 찾아왔을 때,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했었다. 그때 카게야마는 뭘 보고 있었지. 왠지 얼굴을 붉히며 눈이 향했던 곳은..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등을 두드려주며 쿠로오에게 말했다.


"저 꽃 좀 가져와주세요."


쿠로오는 히나타의 말대로 화병을 가져왔다. 카게야마의 바로 옆에 두자 헐떡이던 숨이 잦아들었다. 창백한 얼굴을 본 히나타는 울상이 되었다. 


"이렇게 고생해서 어떡하지."

"...감사합니다. 히나타님. 쿠로오님."


진정이 된 카게야마가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쿠로오는 한숨을 쉬었다.


"입덧이 심하다더니, 마마님 정말 큰일이네."

"괜찮아요."

"꽃을 더 보내줄까?"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등을 두드리며, 그 꽃이 네코마의 국화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하지만 누가 주었다고 하더라도 카게야마에게 괜찮으면 좋은 것이다.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보살피는 사이 네코가 왕왕 달려와 주변을 맴돌았다. 쿠로오가 방해하지 말라는 듯 안아들었다. 네코가 한 번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몸을 축 늘어트렸다.


*


보기 흉한 모습을 보였다며 카게야마가 맥없이 말했다. 희게 질린 얼굴이 안타까워 쿠로오는 물었다.


"마마님. 많이 힘들어?



홀 : 괜찮아요 

짝 : 조금..



"괜찮아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괜찮았다. 그러나 속이 뒤집히듯 요동치는 건 빈번해지고 있었다. 누구의 아이길래 이런 걸까.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눈 앞의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걱정하는 얼굴이라 카게야마는 그저 감사했다. 


"일부러 찾아와주셨는데, 부끄럽습니다."



홀 : 히나타 

짝 : 쿠로오



"무슨 말이야."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쳐다보며 살짝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을 하면 여인들이 고생이니, 당연히 사내가 보살피는 게 당연해."

"히나타님."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체구의 남자는 카게야마를 단단히 부축한 채 버텼다. 왠지 그런 히나타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쑥스러운 눈으로 히나타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히나타님."


관망하던 쿠로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만 가봐야겠어. 마마님도 쉬어야지."

"이제 괜찮은데.."

"아니, 마마님은 쉬어. 우리가 가야 마마님이 편하겠어."


히나타는 쿠로오의 말을 듣고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기 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카게야마 또한 히나타를 보며 계속 눈을 맞추다가 고개를 숙였다.



히나타 쇼요

○: 48 (+3) 

◇: 28 (+1)

카게야마 토비오 

□: 46 (+3)


쿠로오 테츠로 

○: 66 (+2)

◇: 41 (+2)

카게야마 토비오 

□: 67 (+1)



상궁은 누워있는 카게야마의 입에 약을 흘려넣어 주었다. 의원이 카게야마를 위해 만든 약은 여인의 몸을 따뜻하게 하여 입덧을 돕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꼴깍꼴깍 약을 마신 카게야마가 쓴 혀를 식히는 것처럼 내밀었다. 상궁의 손이 그 위로 단 과자를 쏙 올려준다.


"조금 주무세요. 마마."


상궁은 어깨까지 이불을 올려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피곤했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눈을 감은 채로 카게야마는 품고 있던 걱정을 내뱉었다.


"계속 졸립구나. 잠만 자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쩌지.."

"아기님을 제가 깨워드리면 되지요."


상궁의 말에 카게야마는 살짝 웃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짧아서 더욱 단 낮잠이었다.


*


왕왕, 네코가 정원에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쫓는 건지 조그만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뒤척거리던 카게야마는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도 네코와 함께 밖으로 나가 놀고 싶었다. 



1~3 : 산책

4~6 : 공부

7~9 : 선물

0 :



일어나려던 카게야마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나비를 쫓던 네코만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웃으며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정말 날씨가 좋구나."


카게야마는 해가 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날 궁에만 있어야한다니 좀이 쑤시는 일이었다. 네코에게 쉿, 하고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시킨 후 카게야마는 궁 안을 걸었다. 낯설지 않은 길, 익숙한 풍경. 그리고.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 지정



"이와이즈미님!"


눈앞의 남자가 반가워 카게야마는 제법 빠른 속도로 걸었다.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다가, 뛰듯이 걷는 카게야마를 보고 이와이즈미는 놀랐다. 얼른 다가와 걸음을 멈춰세운다. 이와이즈미는 드물게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카게야마. 뛰면 안 돼."

"뛰지 않았어요."

"조심해야지..놀랬잖아."


그 말에도 카게야마는 생긋 웃었다. 강아지도 품에서 따라 웃는 것처럼 혀를 내민다. 어쩔 수가 없어, 이와이즈미 역시 누그러진 채 물었다. 

 

"궁녀도 없이 혼자 나오다니, 어디 가?"

"답답해서 나왔어요. 궁에는 아무도 없어서.."

"몰래 나왔구나."


이와이즈미가 쿡쿡 웃으며 카게야마의 귀밑에서 흘러내린 머리를 넘겨주었다.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살피다가 물었다.


"이와이즈미님께선 어디 가시나요?"

"잠깐 밖ㅇ.."

"저도 같이 가요!"


반색을 하며 카게야마가 말했다.



1~9 : 어.. 

0 : 안돼



"어..."


회임을 한 몸으로 따라가려고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한 얼굴로 조르니 거절할 틈을 찾지 못했다. 이와이즈미가 당황하는 사이 카게야마가 덥석 이와이즈미의 팔을 붙잡았다.


"이와이즈미님.."

"...안되는데.."

"저 조심할게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서."

"오늘 몸 튼튼하게 하는 약도 마셨어요. 괜찮아요."


카게야마는 손으로 배를 통통 두드렸다. 이와이즈미는 난감한 눈으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1~9 : 음..으.. 

0 : 마마!



누군가 와서 카게야마를 말려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었다. 석달을 줄곧 이 궁 안에 갇혀있었다. 밖에 나가고도 싶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1~9 : 천천히 

0 : 말



"나도 그저 걷고 싶었던 거니까, 잠깐 요 앞에만 나가보자."

"정말요?"

"그래. 멀리 가면 위험하고..너도 피곤할 테니까."


고작 그 정도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가 몹시 기뻐해, 이와이즈미는 되려 머쓱해졌다. 이와이즈미가 잡은 손을 카게야마가 따라서 붙잡았다. 손을 잡고 흔들흔들 팔을 흔든다.


"그렇게 좋아?"


보다못한 이와이즈미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카게야마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저 궁 담벼락만 보지 않아도 좀 살 것 같아요."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말에 고개를 들어 높은 담을 보았다. 시야를 꽉 막고 있는 담은, 울창하게 심어놓은 나무들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함부로 나가지 못하는 카게야마에게는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나가보자."


카게야마가 이와이즈미를 보고는 방긋 웃었다. 


*


키타가와의 궁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궁의 문을 열면 완만한 내리막길이 펼쳐져있다. 긴장한 채로 굳어있던 문지기들은,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놀랐다. 그들이 뒤로 굴러 떨어지는 건 아닐까 카게야마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이와이즈미는 문지기에게 자신의 패를 확인하게 하고는, 카게야마와 함께 나왔다. 뒤늦게 상궁이 걱정할 것이 염려된 카게야마는 문지기에게 말했다.


"단패궁에 내가 서궁의 이와이즈미님과 밖에 나갔다고 말해놓거라."

"알겠습니다."


이와이즈미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얼른 그 손을 잡았다.


"날씨가 좋아요."

"나와 걸으니 더 좋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이와이즈미가 말했다. 어제 자신이 했던 말임을 기억하고,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와이즈미님과 걸으니까.."


그저 좋은 일 뿐이었다. 


다정하게 잡은 손. 그 손을 따라 눈을 올리면 어릴 적부터 의지해오던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 봄날의 따뜻한 공기. 카게야마는 궁이 멀어질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잡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길을 따라 옆에 난 작은 시내에선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와이즈미가 몸을 숙여 손을 담갔다. 햇빛을 받아 따뜻한 물에는 개구리가 올라와 있었다.


"개구리."


카게야마의 중얼거림에 이와이즈미는 조그만 개구리를 잡았다. 돌 위에 올라와있던 연두색 개구리가 깜짝 놀라 퍼덕거렸다. 그 것을 들여다보던 카게야마가 손끝으로 톡 개구리를 건드렸다.


"작아요."

"아직 새끼인가봐."

"어미는 어딨을까요?"

"음.."


이와이즈미가 답을 찾아 고심할 때 개구리가 펄쩍 뛰어 물 속으로 도로 들어가버렸다. 카게야마는 까르르 웃었다.


"어미를 찾아갔나봐요."

"그런가보다."


카게야마도 이와이즈미를 따라 물 속에 손을 담가보았다. 딱 시워하다고 느낄 정도로 차가웠다. 


*


생각해보면 어릴 적엔, 아오바죠사이로 가기 전까지는 이 냇가에서 쿠니미나 킨다이치와도 자주 놀았던 기억이 있었다. 몰래 빠져나와 간다는 곳은 고작 궁 앞이었다. 그래도 그땐 가장 즐겁게 느껴졌다. 봄에는 개구리를 잡고, 여름에는 물장난을 했다. 가을에는 단풍잎 배를 만들어 띄우고 겨울엔 매끄러운 얼음 위를 굴러다녔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카게야마의 앞에 있었다.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은 이다지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해?"


입을 다문 채로 손을 휘젓는 카게야마에게 이와이즈미는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이와이즈미님."

"응."

"저, 지금을 잊지 않을 거예요."


내민 손을 잡고서 궁 밖으로 데려와준 남자. 이와이즈미에겐 별 것 아닌 호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자신이 이 봄날을 무척 소중히 여길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와이즈미님과 있었던 시간들..그런 거. 전부요."

"...."


이와이즈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카게야마는 물기가 뚝뚝 흐르는 손을 닦지도 않고 일어섰다. 그러면 이와이즈미가 다가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카게야마의 손을 닦아준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려는 카게야마에게 이와이즈미는 말했다. 


"나도."

"..?"

"절대 못 잊을 거야."


물 속에 들어있어 체온이 내려간 손이 이와이즈미의 손 안에서 데워졌다. 마음이 따끈따끈해졌다. 카게야마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


냇가를 따라 아래로 걸었다. 좋지 않은 길에 카게야마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며, 이와이즈미는 눈여겨본 것이 있었다. 해가 지기 직전에야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이와이즈미는 봐두었던 꽃을 꺾었다. 조금 높은 곳에 피어 있어 보지 못했던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가 내민 꽃가지를 받았다.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궁에는 흔하다고 개나리는 잘 심어놓지 않잖아."


난 꽃 중엔 제일 좋던데. 노랗고..이와이즈미는 쑥스럽게 말했다.


"향은 별로 안 나도, 왠지 개나리가 없으면 봄이 오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그렇네요."

"가져가. 며칠은 싱싱하게 볼 수 있을 거야."


카게야마는 개나리 가지를 가득 끌어안았다. 노란 꽃잎이 옷에 묻어나왔다.


"그럼 제가 저 궁에서 제일 먼저 봄을 보는 거네요."

"그런가?"


이와이즈미는 머리를 긁적였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가 준 봄을 안고서 카게야마는 궁으로 돌아왔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 70 (+3)

◇: 35

카게야마 토비오 

□: 65 (+3)




"마마!"


개나리를 들고 돌아온 카게야마를 보며 상궁은 큰소리를 내려다가, 곧 따라온 이와이즈미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와이즈미는 상궁에게 점잖게 말했다.


"바람쐬고 싶어서 요 앞만 잠깐 다녀온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상궁의 눈이 정신없이 카게야마를 살폈다. 이와이즈미가 돌아간 후 얼른 카게야마를 안으로 모신 상궁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마마.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나가버리십니까."

"그래서 내가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

"안 계신 걸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섭정궁 찾아가기 전 사람이 와서 다행이지.."


아마도 카게야마가 궁 안에 없었다는 것을 섭정궁에서 알면, 자신은 산 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궁은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보기 딱해 카게야마는 괜히 말을 걸었다.


"개나리는?"

"....담아놓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나가기 전에 꼭 말할 테니 너무 섭섭하게 굴지 말거라."

"마마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실 것인데 제가 문제겠습니까."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눈치를 보다가 아..하고 배를 문질렀다.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를 빗겨주던 상궁이 놀라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안 먹어도 괜찮더니 오늘은 좀 걸었다고 배가 고프구나."

"..! 제가 정신이 없어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어서 식사를 하셔야지요."

"그래. 네가 준 약을 먹었더니 오늘은 구역질도 덜하다."


카게야마의 말에 상궁은 결국 조금 웃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식사가 차려지고, 카게야마는 모처럼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상궁은 개나리를 화병에 담아왔다. 푸른 자기 속에 노란 꽃을 꽃아두니 무척 근사했다.


"봄이군요."


상궁은 카게야마가 잘 보이는 쪽으로 화병을 두며 말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봄이야."


고즈넉한 봄날의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13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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