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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18. 10일 <북궁>





"더 추워지는군."

키타가와의 겨울은 혹독한 편이었다. 카게야마는 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아지는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궁녀를 시켜 탕파에 뜨거운 물을 부어오게 했다. 뜨끈뜨끈해진 탕파를 이불 안에 넣어주니 강아지는 얼굴만 내민 채 카게야마를 보고 있었다.

"저 녀석 밤에도 안에 들여놔야겠다."

상궁에게 말하자 제 얘기를 하는 줄은 아는 건지, 강아지가 캉캉 짖었다.

"너 너무 시끄러워."

카게야마는 옷을 입다 말고 일부러 다가와 강아지를 툭 건드렸다. 약하게 쥐어박자 강아지가 으르릉거린다. 그래도 첫날처럼 겁을 먹은 것 같진 않아 카게야마는 뿌듯했다.

"마마."

가볍게 아침을 먹은 후 상궁이 조급하게 불렀다.

"어제 북궁에 가신다는 말씀, 잊지 않으셨지요."
"아.."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녀들이 잘 손질해놓은 활이 반짝반짝했다. 오늘 가져다주는 것이 좋을 터였다. 상궁은 반색을 하며 미리 인사를 간다고 알리겠노라 말했다.


홀 : 그렇게 하거라
짝 : 활을 가져다 주는 것 뿐인데


"활을 가져다 주는 것 뿐인데 거창하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셔서 다정하게 말도 거시고... 마마도 어여쁨받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카게야마는 상궁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문안인사를 가는 것은 평국의 마지막 왕족으로, 성국에게 공경을 보이는 일이었다. 그 일이 나중엔 어여쁨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는 건가. 아니면 애초에 처음부터.

".... 이만 가보겠다."
"마마?"

상궁은 심기가 불편해진 카게야마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카게야마는 모처럼 냉랭한 얼굴로 단패궁을 나왔다. 역시나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날이었다.

"토비오!"

북궁의 정원에 나와있던 히나타가 손을 흔들었다. 히나타님, 하고 꾸벅 고개를 숙이려는데, 얼른 손목을 잡고 들어가자 조른다. 그늘이 없어 활기에 찬 얼굴을 보자 카게야마는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날이 추운데 밖에 계셨군요."
"응? 카라스노는 키타가와보다 훨씬 추워."

여기의 겨울은 나한텐 봄날같아. 히나타는 싱글벙글 웃었다. 어떤 이에겐 춥고, 어떤 이에겐 따뜻한 날. 카게야마는 두툼하게 입은 자신의 옷과 상대적으로 얇은 히나타의 옷을 쳐다보았다. 그렇군. 하나의 정답만 있는 건 아니었다. 카게야는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 신기했다.

북궁의 안에 들어가니 츠키시마는 


홀 : 바둑을 두고 있었다
짝 : ? 을 읽고 있었다


옥으로 만든 예쁜 바둑알들이 바둑판 위에 잔뜩 올라가 있었다. 히나타가 소란스럽게 카게야마를 끌고 오자 집중이 깨진 모양이었다. 츠키시마는 바둑판을 밀어내고 카게야마를 맞이했다.

"매번 동궁만 찾던 왕님께선 여기에 무슨 일로?"
"...활을 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웬일로 오셨나 했더니 역시 목적이 있었네."

츠키시마는 유난히 삐딱해보였다. 카게야마는 그런 그가


홀 : 신경쓰였다
짝 : 평소대로라 무시한다


카게야마는 그런 츠키시마가 신경쓰였다. 평소의 태도 같으면서도 묘하게 날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악의는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왕이었던 카게야마는 폭군이었다. 하지만 잘못을 모른 채 미움받는 것은 아무리 카게야마라도 싫었다.

"츠키시마님."
"...."
"제가 무슨 잘못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드물게 카게야마가 직설적으로 묻자 옆에 있던 히나타가 더 초조해했다.

"토비오. 원래 저러니까.."
"오늘은 좀 다르신 것 같습니다."
"...무딘 줄 알았더니.."

츠키시마는 굳어있던 얼굴을 풀었다. 예의 그 비웃는 듯한 미소가 돌아왔지만 처음보단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방금 괜찮아졌어. 왕님."
"....?"

그러니까 저 체력만 남아도는 전하와 놀아주도록 해. 츠키시마는 다시 바둑판에 집중했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화를 냈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옆에서 옷을 잡아당기자 히나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만다. 히나타는 제 목에 건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거 봐."

까마귀 모양의 목걸이였다. 카게야마는 예쁩니다, 하고 대답하며 자세히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공들여서 만든 목걸이는 귀한 물건처럼 보였다.

"카라스노의 후계자는 이 목걸이를 걸고 있어야 돼."
"그렇군요."
"지금 난 당장 가지고 있는 보석이 없으니까, 뭐라도 주고 싶은데.."
"그 목걸인 절대 안 돼."

바둑판을 노려보던 츠키시마가 참견했다. 카게야마는


홀 : 그런 증표는 못 받는 게 당연
짝 : 어..그런데?


방금 어떤 위화감이 스쳐지나갔지만 정확히 뭔지는 알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웃어보였다. 

"히나타님. 그런 귀한 증표는 못 받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내가 왕이 되면 카게야마에게 뭐든 줄게. 보석이든 뭐든."
"왕님은 애초에 보석은 별로랬어. 히나타"

츠키시마가 피식 웃었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단월일에 츠키시마를 보석점에서 만난 일이 떠올랐다. 

"그러니 까다로운 왕님의 선물은 다른 걸 알아보자."
"좋아. 토비오는 뭘 좋아해?"
"그게..."

카게야마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 히나타에게 군색하게 대답했다.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1~3 :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4~6 : 활..?
7~9 : 뭐든 좋습니다
0 : 히나타님이 주시면 무엇이라도


"응? 뭐가 좋아?"
"저.."
"가지고 싶은 게 없어? 나, 구해줄 수 있는 거라면 다 구해줄테니까."
"그게.."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반짝이며 발광하는 듯한 작은 남자는 카게야마에게 늘 솔직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카게야마도 어제 울었는지도 모른다. 진심을 부딪혀오는 남자를 피할 길이 없었다.

"히나타님이.."
"응?"
"히나타님께서 주신다면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카게야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히나타의 눈이 커졌다가 기쁨으로 휘어졌다.

"그렇구나. 토비오는 내가 준다면 뭐라도.."
"그냥 한 말 같은데 너무 기뻐하지 말지?"

들뜬 히나타에게 츠키시마가 핀잔을 던졌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정말로 히나타님께서 주신다면.."
"응! 나 열심히 토비오한테 줄 선물 생각하고 있을게!"
"멍청아. 선물만 주려고 키타가와에 온 게 아니라고."
"나랑 같이 놀러나갈래? 지금 나갈까?"

히나타는 완전히 츠키시마의 말은 무시했다. 좀 더 같이 놀자는 히나타를 겨우 뿌리치고 카게야마는 북궁을 나왔다. 단패궁에서 나올 때보다 추위가 가신 것 같았다. 여전히 입김이 나왔으나 마음은 따뜻했다.


히나타 쇼요
○: 17 (+3)
◇: 16
카게야마 토비오
□: 14 (+3)

츠키시마 케이
○: 17 (+3)
◇: 18
카게야마 토비오
□: 15 (+3)


돌아온 단패궁에서는 좋은 향기가 풍겼다. 식사를 마친 카게야마가 뒤늦게 무엇이냐 묻자, 질좋은 향을 구해 물에 풀어놓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단패를 뽑으시는 날이니 향을 푼 물에 목욕을 하시면 좋으실 겁니다."

카게야마가 언성을 높였던 상궁이, 말을 조심스럽게 골랐다.

"치장을 하셔야하니 안쪽으로 드시지요."


홀 : 그럴까
짝 : ....


저번에는 괜히 뿌리치고 나갔다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 쓸쓸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궁녀들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된 목욕물에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옷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궁녀들이 비단천으로 카게야마의 몸을 문질렀다. 궁녀 한 명이 가라앉은 카게야마의 기분을 띄우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쩜 이렇게 피부가 고우신지 모르겠습니다."
"피부가 고우면 무슨 소용이냐. 흉터가 많은데."

괜히 말을 꺼낸 궁녀가 입을 다물었다. 배의 큰 상처 말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잘한 흉터가 있었다. 다른 궁녀가 눈치를 보다가 얼른 말했다. 

"머리카락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검어서 밤엔 보이지도 않는다."
"...."

결국 궁녀들은 말붙이는 것을 포기하고 정성들여 카게야마의 몸을 닦았다.


그래도 세 번째라고 긴장은 덜했다. 아니, 덜하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호흡을 가가듬으며 아홉개의 나무패를 보았다. 오늘은 또 누구를 보게 될까. 몸에선 지나치게 달콤한 냄새가 나서 머리가 아팠다.
 
"마마."
 
상궁이 단패를 들고 왔다.
 
"고르셔야합니다."
 
카게야마는 손을 내밀었다.
 
 
1 : [오이카와 ]       
2 : [우시지마 ]       
3 : [츠키시마 ]       
4 : [쿠니미 ]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         
7 : [쿠로오 ]         
8 : [킨다이치]        
9 : [코즈메 ]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그의 이름이었다. 카게야마는 눈보다 머리로 먼저 글자를 읽었다. 어떤 글씨인지 끝까지 인식하고 나서야, 아..하고 짧은 신음을 한다. 상궁이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동궁에 알리겠습니다."
"...."
"마마?"
"...조금.."
"...."
"무섭구나." 

카게야마의 몸이 떨렸다. 언제까지나 다정한 옛 사람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설사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도 있었다. 카게야마는 두 번째 밤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긴장한 손이 차가웠다. 카게야마는 손에 쥐고 있던 패를 상궁에게 건넸다. 


오늘의
밤은 

우시지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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