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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20. 12일 <동궁-츠키시마>


잠에서 깬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코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세상은 고요했다. 옷을 두껍게 입고 밖으로 나가본다. 이슬이 맺힌 풀들이 옷에 쓸려 젖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젖으면 감상적인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다.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카게야마는 목적지 없이 걸으며 생각했다. 여자의 몸으로 왕이었던 자신. 두말할 것 없는 폭군이었다. 전쟁을 일삼으며 서쪽의 평국들을 무너트렸다. 나라는 커졌지만 백성들의 삶은 힘들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강해지기 위해. ...애초에 나는 왜 왕이 되려고 했지. 왕이 되는 것이 먼저였나, 아니면 강해지는 것이 먼저였나.


왜 강해지려고 했었지.


카게야마가 돌아와 식은 차를 마시는 동안 상궁은 손에 옷을 잔뜩 들고 왔다. 들뜬 상궁은 카게야마의 옷이 이슬로 젖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마. 새 옷이 완성되었습니다."

"..보기 좋구나."

"옷에 보석을 달아 입으시면 아름다우실 것입니다."

"그렇느냐."


상궁은 카게야마가 옷에 관심이 없음을 알고 직접 펼쳐 보여주었다.


"여기 꽃술에 작은 비취를 달아 무척 아름답습니다. 보십시오."

"그래.."

"마마.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카게야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왠지 의욕이 없었다. 네코를 쓰다듬던 카게야마가 상궁에게 물었다. 


"내일도 단패를 뽑지?"

"그렇습니다."

"또 다른 분을 뵐 수도 있겠군."

"...힘드십니까."


왜 강해지려고 했지. 아마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나? 카게야마는 지금껏 보낸 밤이 싫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와 우시지마 모두 카게야마를 아껴주었다. 무서웠으나 나중엔 카게야마도 같이 매달렸다. 평생 생각해본 적 없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계속 변해간다면 나중엔 익숙해질까. 카게야마는 식사를 거절했다. 빨리 문안인사를 다녀온 후 자고 싶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동궁에 가겠다."


카게야마는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을 말했다. 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을 보낸 분이시니 뵙고 싶으시겠지요."

"...내가?"

"마마께선 피곤하실 때마다 동궁에 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편해서.."


편해서, 라고 말하기엔 이제 편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전날 밤 자신을 안았던 우시지마의 손길이 생각났다.




카게야마가 동궁에 도착했을 때, 우시지마는 서신을 쓰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들어서자 붓을 놓는다. 


"제가 방해를 한 것 같습니다."

"네가 방해일 리 없다."


카게야마는 그 말에 조금 웃어보였다. 우시지마는



홀 : 안색이 좋지 않구나

짝 : 웃는 입술이



"안색이 좋지 않군."

"우시지마님께선 언제나 빨리 알아차리십니다."

"네 일이니 그런 것이다."


역시 어제 내가 치료를 해줬어야..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붙잡고 몸의 이곳저곳을 눈으로 살폈다. 과한 관심이 이젠 싫지 않았다. 예전엔 그저 부담스럽기만 했었다. 확실히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우시지마님. 괜찮습니다."

"몸은 괜찮아보이는데, 마음이 아픈 것인가."

"..마음이 아프다면 고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카게야마가 물었다.



홀 : 그렇다

짝 : 아니다



"그렇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뺨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어보았다.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와의 밤을 떠올렸다. 손길이 뜨거웠다.


"네가 나를 은애한다면."

"..제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까."

"내 여자가 되면 네가 바라는 대로 살게 해주겠다고 했었지.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시라토리자와의 황제가 못할 것이 무엇이냐. 나를 따라 오거라."


무엇이든 가능해. 우시지마는 다정히 말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우시지마님. 저는 지금 고쳐주실 수 있는 지를 여쭙는 것입니다."


카게야마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우시지마여서 가능한 억지였고, 우시지마였기에 아니라고 해주길 원했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것이라도 해도 제멋대로라 잡히지 않는다. 자상한 말은 듣기 좋았으나 결국은 도망치라는 말처럼 들렸다.


"우시지마님."

"...."

"제가 바라는 대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것은 누군가를 따라가서 얻어지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누군가라면 나를 말하는 거겠지."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뺨을 더듬다가 입술을 엄지의 안쪽으로 매만졌다. 


"보통의 여자였다면 내게 건방진 말을 했다는 죄목으로 다리를 자를 수도 있었다. 알고 있느냐."

"...."

"네가 오늘 피곤한 것 같으니 넘겨주마."

"우시지마님."


카게야마는 쓸쓸해보이는 우시지마의 이름을 저도 모르게 불렀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1~3 : 다음에는 다른 대답을

4~6 : 다리를 자르는 대신..

7~9 : 바로 고쳐주지 못해 미안하군

0 : 입술



"내가 대답을 잘못했다."


우시지마는 제게 제법 독한 소리를 하고는, 곧바로 죄책감으로 물든 눈동자를 계속 미워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다. 그런 여자에게 굳이 이기려들고 싶지 않았다.


"네 말대로 사람의 마음은 쉽게 고칠 수 없는 것이지."

"...우시지마님."

"미안하군. 네가 나를 따르지 않고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가 없다."


황제의 사과에 카게야마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처럼 억지를 부렸다. 그것도 몇 번이나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한 남자에게, 그 호의를 이용하듯.


"..오늘, 제가 변하는 모습이 무서워 감히 폐하의 아량에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랬느냐."

"왜냐하면..모든 게 너무나 갑자기였기에. 그래서."

"카게야마."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괜찮다. 나는 기다릴 수 있으니, 너는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40 (+1)

◇: 18

카게야마 토비오

□: 26 (+2)



카게야마는 흉한 꼴을 보였다 자책하며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상궁이 걱정스럽게 카게야마를 살폈다.


"마마. 불편해보이십니다."

"내가 잡생각으로 머리가 차서 그런 것이니 신경쓰지 말거라."

"마마.."


궁녀들은 소리없이 카게야마의 시중을 들었다. 다만 눈치없는 네코만이 카게야마에게 짖으며 같이 놀자 졸랐다. 강아지가 배를 보이며 놀아달라 떼를 쓰자 카게야마는 결국 웃었다.


"네코. 이리 와."


이름을 부르자 몸을 펄쩍 펄쩍 뛰며 신나 달려왔다.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놀러갈까?"


카게야마가 네코의 목에 목줄을 걸며 말했다. 상궁이 카게야마를 말렸다.


"마마. 아침부터 피곤하셔서 주무신다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이 녀석도 심심할 것이다. 놀아줘야지."

"궁녀들에게 살피게 하겠습니다."

"다들 일이 바쁜데 개 한 마리를 내가 건사하지 못하겠느냐."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고 단패궁을 나왔다. 제멋대로 가게 두자 네코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여긴..?"


딱 한 번 왔었던 서고였다. 저번 날 빌렸던 책은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께름칙한 기분으로 네코를 끌어안고 서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고 안의 정원에 강아지를 풀어두자 다시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카게야마의 코에도 오래된 종이 냄새가 맡아졌다.



1~3 : 켄마

4~6 : 츠키시마

7~9 : 킨다이치

0 : 세 인물 중 리레주 지정



서고에 들어오기 망설였던 이유를 깨달았다. 카게야마는 또다시 서고에서 마주친 츠키시마를 보고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떠올렸다. 두꺼운 책을 잔뜩 쌓아둔 채 읽던 츠키시마는 서고로 들어온 이가 카게야마임을 깨닫고 슬쩍 웃었다.


"왕님."

"츠키시마님을 뵙습니다."

"책도 안 읽으면서 왜 서고에.. 히나타는 궁도실에 있어. 활 쏘는 거 좋아하지 않아?"


츠키시마의 말에 카게야마는



홀 : 책도 좋아합니다

짝 : 무슨 상관



"책도 좋아합니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다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시 발끈했다. 왠지 이 남자의 앞에선 지기 싫었다.


"그렇겠지. 책도 좋아하겠지."

"...."

"저번 동화책은 다 읽었어?"

"아, 아직."

"책을 좋아하지만 열흘 동안 동화책을 다 못 읽을 정도라면 어쩔 수 없네."


츠키시마는 책장을 넘기며 살살 카게야마를 약올렸다. 이익..! 카게야마는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또 반박할 수 없었다. 대신 카게야마는



홀 : 카라스노

짝 : 츠키시마



"..츠키시마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츠키시마는 대답 대신 카게야마에게 책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어로 되어있어서 카게야마는 읽을 수 없었다. 애초에 사어라는 것을 모르는 카게야마는 자신이 모르는 글자를 보자 흥미가 일었다. 카게야마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츠키시마는 몸을 뒤로 뺐다. 


"처음 보는 글자입니다."

"..그렇겠지. 네코마 평국의 사어야."

"사어..?"

"이젠 안 쓰이는 글자. 죽은 나라의 글자야."


카게야마는 신기하게 책을 훑어보았다. 츠키시마는 안경을 슬쩍 올리다가 결국 설명해주었다.


"아오바죠사이 평국은 최근 어떤 왕님의 전쟁때문에 소란이 일었지만 언어를 없애진 않았어. 그렇지?"

"..예."

"왕님의 바로 윗대일까, 남쪽의 네코마 평국들은 나라와 문화가 아예 망가져 흔적이 사라졌지. 네코마 성국 왕족들이 제법 치열하게 후계다툼을 하다가 평국을 끌어들였거든."

"....?"

"이해가 안 돼? 쉽게 말해서 네코마 윗놈들이 싸우면서 아랫놈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줄을 잘못 탄 아랫놈들이 전부 지도에서 사라졌단 말이야."


카게야마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눈을 반짝이며 듣자 츠키시마가 한숨을 쉬었다.


"왕님은 따로 수업같은 건 안 들었어?"

"선왕께서 강하기만 하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특이한 분이셨네."

"...."

"키타가와에 남쪽 평국 책이 있을 정도면 교류가 제법 깊었을텐데."


츠키시마는 책을 뒤지며 말했다.


"갑자기 뚝 끊겨서 더 이상 읽어볼 수가 없어."

"키타가와가 네코마와 교류가 있었단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겠지."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의 곁에 앉아 글자들을 구경했다. 책을 멀리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글자를 싫어하기도 했고, 선왕이 책은 계집애들이 읽는 것이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글을 다 뗀 후엔 신하들의 상소 정도나 읽었다. 그것도 귀찮아서 재상이 요약해주어야 읽었다.


"없어진 나라의 글자..신기합니다."


처음 보는 글자들은 전부 어려워보였다. 



1~3 : 츠키시마님은 대단하시네요 (호감도 +1)

4~6 : 저도 읽을 수 있을까요? (호감도 +2)

7~9 : 키타가와의 글자가 사어가 되지 않게.. (호감도 +2 위험도 +1)

0 : 더 듣고 싶습니다! (호감도 +3)



"저는..키타가와의 글자가 사어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군요."


츠키시마는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카게야마는 아침부터 복잡했던 심정을 슬그머니 드러내었다. 어두운 서고 안. 상대는 언제나 까다로워 곤란한 남자였다. 자주 보아 편했던 우시지마에게 투정을 부렸듯, 불편한 남자에겐 조금 속내를 털어놔도 괜찮지 않을까. 카게야마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부터 변하는 제 모습이 낯설어 생각이 많았습니다."

"...."

"어차피 지금 제가 이런 처지가 된 일은 키타가와를 위해서고.."

"...."

"츠키시마님의 말씀을 들으니 키타가와도 어쩌면 없어져 책으로만 남을 수도 있겠지요."


카게야마는 눈이 흐려져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옆을 돌아보자 츠키시마가 하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말은 없었으나 카게야마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키타가와의 글이 사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을 생각하겠습니다."

"...."

"제가 빨리..다른 분들과 함께해서 후계를 낳으면."


어떻게든 버텨서. 카게야마는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묵묵히 듣고 있던 츠키시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 내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왕님."

"예?"

"따지고 보면 나도 그 후계를.."

"...?"

"..아니야. 왕님. 그래서 좀 편해졌다면 다행이네."


츠키시마는 눈가를 가늘게 휘었다. 기분이 나아진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번의 책도 다 읽고 싶고."

"그래. 왕님. 궁도실에도 자주 들려줘."


츠키시마는 늘 히나타의 말을 물었다. 카게야마는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 몰라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나왔다. 궁도실도 좋지만, 가끔 서고에 와도 좋을 것 같았다. 



츠키시마 케이

○: 20 (+2)

◇: 18 (+1)

카게야마 토비오

□: 18 (+1)



카게야마는 예전에 서고에서 빌려왔던 동화책을 저녁을 먹으며 모두 다 읽었다. 네코가 놀아달라고 짖었지만 카게야마는 천천히 글자를 곱씹었다. 결국 네코는 토라져 침상 아래에 몸을 말고 잠이 들었다.


"식사 중에 책을 읽으시다니, 그렇게 재밌으셨습니까."

"응. 재밌네."


상궁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순순히 답했다.


"다른 책도 나중에 가져와야겠다."

"기왕 책을 읽으셨으니 공부를 해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자수도 배우시구요. 상궁이 살살 카게야마에게 권했다. 카게야마는 딴청을 피우며 다 읽은 책을 덮었다.



1~3 : 밤산책을 했다

4~6 : 침상에 누웠다

7~9 : 손님이 왔다

0 : 어디선가



"피곤하군."


카게야마가 일부러 크게 기지개를 피자 상궁은 한 발자국 물러났다.


"주무시겠습니까."

"응."

"아침부터 힘드셨으니 어서 주무십시오."


강아지를 데리고 침상 위로 올라갈까 하다가, 자는 것을 깨우고 싶지 않아 카게야마는 혼자 누웠다. 괜히 마음이 어지러워 약해진 날이었다. 동궁에서의 일을 생각하자 카게야마는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우시지마님, 나를 약하다고 생각하시겠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이불을 얼굴까지 푹 뒤집어썼다. 


"나는 빨리 아이를 낳으면 돼."


스스로 내뱉은 말이 부끄러워 그는 눈을 꼭 감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12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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