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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21. 13일 <남궁-오이카와>



"아들이었으면 좋았겠지. 그래도 바라던대로 자라주었다." 


죽기 직전 왕은 카게야마를 불러 말했다. 카게야마는 묵묵히 왕을 내려다보았다.


"명심해라. 왕자."


네 자리에서 도망친다면

나는, 너는,

다시 


한 번 






카게야마가 침상 위에서 목이 졸리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상궁이 놀라 카게야마를 일으켰다.


"마마. 무슨 일이십니까."

"...아.."

"마마?"

"..도망치면 안된다고.."

"마마? 마마? 어의를 부르겠습니다."

"괜찮다."


카게야마는 이마에 솟은 땀을 훔쳤다. 네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맴돌았다. 단패를 뽑는 날이었다. 



*



어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는 주인에게 상궁은 걱정스레 차를 올렸다.


"마마. 역시 어의를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

"마마."

"입이 쓰구나. 단 것이 먹고 싶다."

"..! 얼른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카게야마는 식사를 거르고 차와 함께 약간의 간식을 먹었다. 설탕물에 조린 과일조차 입에 썼다. 접시를 물리고 네코를 끌어안자 강아지는 주인의 마음을 안다는 듯 혀를 내밀어 카게야마의 입술을 핥았다. 따뜻한 온기가 위안이 되었다. 상궁이 카게야마에게 다가왔다.


"마마. 오늘은 어느 궁을."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섭정궁에 가고 싶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았다. 동궁의 우시지마님은 뵐 낯이 없었다. 서궁은 이와이즈미님이 걸렸고, 북궁은 츠키시마님이 책에 대해 물어볼까 무서웠다. 카게야마는 네코를 쓰다듬었다.


"남궁.."

"남궁에 가시겠습니까."

"..남궁에 가겠다."


시달린 정신이 안정을 바라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따뜻한 남궁과, 고양이와, 물고기를 떠올렸다.


"네코. 너도 가겠느냐."


카게야마가 강아지의 젖은 코를 톡톡 건드렸다.



홀 : 왕왕

짝 : (도망)



같이 나가자는 말을 알아들은 건지 강아지가 품 안에서 바둥거렸다.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는 모습을 보며 카게야마는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그래. 같이 가자."

"마마. 오늘 날이 추우니 옷을 더 입으시지요."

"남궁은 늘 더우니 조금만 입히거라."


상궁은 안쪽에 털이 달린 옷을 잔뜩 껴입게 했다. 모자를 쓰고, 귀가 시릴까 목도리를 뺨까지 올려준다. 카게야마는 거울을 보았다. 눈만 빼꼼 보였다.


"남궁에서 못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네 탓이다."

"그래서 제 목을 베셔도 좋으니 따뜻하게 입고 나가십시오."


상궁은 농을 던지는 카게야마의 눈치를 보며 대꾸했다. 카게야마는 직접 강아지를 끌어안고 남궁을 향했다. 과연 몸 안의 피까지 얼어붙을 듯한 추운 날이었다. 카게야마는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털이 있다고 하지만 추울 것 같았다. 옷을 입혀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추워?"


네코는 카게야마의 품에 안긴 채 낑낑거렸다. 역시 옷을 입혀줘야겠다. 남궁에 도착하자 



홀 : 쿠로오

짝 : 코즈메

0 : 그림자



쿠로오가 웬일로 밖에 나와있었다. 어디 다녀온 것인지 밖에서 옷을 털다가 카게야마를 보고는 크게 웃었다.


"하하. 마마님. 많이 추워?"

"춥습니다."

"오늘 유독 춥네."


쿠로오는 카게야마에게 얼른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품에 안긴 네코가 고개를 내밀자 짐짓 험상궂은 표정을 한다.


"이 녀석. 넌 오지 말라고 했지?"

"제가 데려온 것입니다."

"마마님이 데려왔어? 마음에 드나보네."


쿠로오는 싱긋 웃었다.



홀 : 그런데

짝 : 추워요



카게야마가 후후 입김을 불었다. 목도리 사이로 빠져나온 입김이 하얗게 번졌다.


"이런."


쿠로오가 얼른 문을 열었다.


"마마님이 추운데 들어오란 소리도 안했네."

"아닙니다. 쿠로오님께서 하시던 일 마저 하시고."

"먼지를 좀 털려고 했을 뿐이야. 들어가자."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뒤를 따라 남궁으로 들어갔다. 근래 자주 와서 그런지 어느새 남궁이 편하게 느껴졌다.



남궁에 들어오자마자 카게야마는 모자와 목도리를 벗었다. 네코를 내려놓자 배를 쓰다듬어달라는 듯 발랑 몸을 뒤집었다. 그 배를 긁어주며 카게야마가 물었다.


"코즈메님께선 어디 계십니까?"

"응. 안 쪽에서 식사 중이야."

"식사를 늦게 하시는군요."

"천천히 먹거든."


쿠로오는 카게야마를 보며 물었다.



홀 : 식사는 했어?

짝 : 오늘



"오늘 밤은 단패를 뽑지?"

"..예."


카게야마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느리게 대답했다. 쿠로오는 물끄러미 카게야마를 내려다보았다. 남궁에 들어오자마자 쉽게도 옷을 끄른 여자였다. 남궁의 남자들 또한 오늘 밤 단패궁으로 들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지하고 사랑스러운. 아마 이 여자에게 빠진다면 속이 꽤나 탈 것이다. 


"그런 중요한 날에 와주다니, 고맙네."

"고맙다니."



홀 : 어차피

짝 : 고양이가



카게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는 순간 고양이가 후다닥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카게야마는 삼색고양이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소리없이 번지는 웃음을 눈앞에서 보게 된 쿠로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은 좀 위험한데.."

"예?"

"아무것도 아니야. 마마님. 산쇼쿠랑 놀래? 네코는 내가 놀아줄테니까."


으르릉거리는 강아지가 쿠로오의 손에 붙잡혀 순식간에 낑낑거리고 애처롭게 굴었다. 카게야마는 산쇼쿠에게 손을 뻗었다. 붙임성이 좋은 고양이가 고롱거리며 카게야마에게 다가왔다.


"..귀여워."


개와는 다른 촉감의, 융단같은 고양이의 털을 쓸자 야옹야옹 울었다. 코즈메는 졸린 얼굴로 안쪽에서 나왔다가, 카게야마를 보고 슬쩍 눈인사를 했다. 코즈메가 나오자 산쇼쿠가 주인을 찾아갔다. 쓰다듬어달라고 고양이가 머리를 비비자 코즈메는 대충 손으로 훑어주었다. 귀찮아하면서 쓰다듬어주어도 좋다고 그르릉 목을 울린다. 카게야마는 코즈메의 곁을 기웃거렸다. 


"줄까?"


코즈메가 묻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코즈메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고양이를 쳐다보는 것이다. 코즈메는 슬쩍 카게야마 쪽으로 산쇼쿠의 몸을 밀었다.



홀 : 식사를 늦게

짝 : 밥은?



산쇼쿠가 순순히 밀려나 카게야마의 품으로 돌아갔다. 쿠로오가 네코를 괴롭히며 신기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산쇼쿠 원래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마마님이 좋은가보다."

"쿠로만 안 따르는 거야."


괴롭히니까. 코즈메가 단언했다. 쿠로오는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려 했으나 잠깐의 틈을 타 쿠로오의 손에서 네코가 빠져나왔다. 헥헥거리며 카게야마에게 달려와서는 품 안에 있는 산쇼쿠를 못마땅하게 노려본다. 왕, 짧게 짖어도 산쇼쿠는 느긋한 얼굴로 카게야마에게 머리를 비볐다. 꼬리가 살랑거리며 카게야마의 손목에 감겼다. 정신없이 카게야마가 개와 고양이를 만져주는 사이 쿠로오가 차를 내오게 했다. 향긋한 남궁의 차와 먹기 좋은 떡을 보자 카게야마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코즈메가 부끄러워하는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밥은?"

"아침을 걸렀습니다."

"뭐? 그럼 식사를 차리게 할까?"

"아, 아닙니다!"


쿠로오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코즈메가 카게야마의 앞에 제 몫의 떡을 내밀었다.


"난 안 먹으니까 먹어."

"하지만."

"어차피.. 안 먹어서."


코즈메가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1~3 : 감사합니다

4~6 : 같이..

7~9 : 코즈메님이 안 먹는다면 나도 (위험도 +1)

0 : 왜?



카게야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떡을 집었다. 예전에도 남궁에서 코즈메에게 떡을 받았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먹어."


코즈메는 입에 차를 한 모금 대는 시늉을 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쿠로오가 제 몫의 떡도 카게야마에게 내밀었다.


"코즈메가 괜찮은 말을 하네. 내 것도 줄까?"

"괜찮습니다."

"엇. 코즈메 것은 받아주고 내 껀 안 먹는 거야?"


쿠로오가 섭섭하단 목소리로 말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깜짝 놀란 카게야마가 얼른 쿠로오의 떡을 입에 넣었다.


"ㅁ.맛 이스비ㄴ다..(맛 있습니다)"

"응. 맛있게 먹어. 마마님."


언제 풀이 죽었냐는 얼굴로 다시 활짝 웃는다. 카게야마는 속은 기분이 되었다.



쿠로오 테츠로

○: 20 (+2)

◇: 17

카게야마 토비오

□: 18 (+1)


코즈메 켄마

○: 14 (+1)

◇: 13

카게야마 토비오

□: 16 (+2)



남궁의 떡은 달고 맛있었다. 배가 부르자 추위도 덜하게 느껴졌다. 



카게야마가 단패궁으로 돌아오자 궁녀들이 부산스럽게 카게야마를 맞이했다. 네코가 왕왕 짖었다.


"마마. 오늘 단패를 뽑으시는 날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마, 강아지는 밖에 두고.."


궁녀들이 떠느는 목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한 명씩 말하거라. 그리고 이 녀석에게 네가 옷 좀 만들어주고."


그는 아무 궁녀 한 명을 잡아 네코를 내밀었다. 



홀 : 밥 먹고 치장인지 뭔지 하겠다

짝 : 당장 옷부터 만들어줘



"당장 이 놈 옷부터 만들어주거라."


난 그 동안 잠시 바람 좀 쐬고 올테니, 너희 할 일부터 해. 카게야마는 궁녀들의 아우성을 피해 후원으로 나갔다. 도망칠 곳이 없어 그저 주위를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1 : 쿠니미

2 : 킨다이치

3 : 우시지마

4 : 오이카와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7 : 츠키시마

8 : 쿠로오

9 : 코즈메

0 : 아무도 없었다



"토비오쨩. 뭐해?"


단패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후원을 맴돌고 있자, 뒤에서 카게야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찬바람을 맞아 빨개진 얼굴 하고 오이카와에게 인사했다.


"오이카와님을 뵙습니다."

"...왜 나와있어? 준비 해야하지 않아?"


오늘은 단패를 뽑는 날이에요. 토비오쨩은 모를 지도 모르겠지만. 오이카와가 아름다운 얼굴을 찡그리듯 웃었다. 카게야마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그럼 왜 나와있을까?"

"...."

"혹시 누구를 기다렸어?"


카게야마는 양옆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귀에 걸은 홍옥 귀걸이가 달랑거렸다.


"그냥..심란하여서."

"...."

"오이카와님은..걱정되시지 않나요?"


오이카와님께서도 제가 이름을 뽑아버리면, 불편하시겠지요. 카게야마가 조근조근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팔짱을 낀 채로 한 쪽 눈썹을 올렸다.


"어제 오이카와씨가 뭐하러 선물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거야. 토비오쨩."

"예?"

"오이카와씨는 뽑힐 게 걱정이 아니라, 안 뽑힐 게 걱정이에요."

"...?"


카게야마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오이카와는 피식 웃었다.


"추우니 이만 토비오쨩은 돌아가. 데려다줄까?"



홀 : 감사합니다

짝 : 감사합니다만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옆에서 말없이 걸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가는 어깨를 살짝 보았다가, 자신의 겉옷을 잡았다. 벗으려다가 그만 둔다. 오이카와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간지러우니 오이카와씨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예? 오이카와님?"

"혼잣말에 하나하나 반응하지 말아줄래?"

"그렇지만 오이카와님. 다 들리게 말씀하셨고.."

"토비오쨩 정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엉망이 된 머리의 카게야마를 단패궁으로 밀어넣으며, 오이카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머리가 엉망이니 예쁘게 꾸며달라고 해."



오이카와 토오루

○: 15 (+1)

◇: 19

카게야마 토비오

□: 14 (+1)



돌아오니 네코가 옷을 입은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옷이 싫은 모양이었다.

 

"마마. 강아지에게도 옷을 입혔으니 이제 마마께서도 어울려주셔야겠습니다."

 

상궁이 엄한 얼굴로 말하며 카게야마를 끌고 갔다. 머리가 감겨지고 향유를 발라 반들반들하게 다듬고, 새 옷을 입었다. 무거운 장식들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어안으려했으나 장식이 망가진다며 궁녀들이 말렸다.

 

"마마. 패를 뽑으시지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뻗었다.

 

 

1 : [오이카와 ]       

2 : [우시지마 ]       

3 : [츠키시마 ]       

4 : [쿠니미 ]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         

7 : [쿠로오 ]         

8 : [킨다이치]        

9 : [코즈메 ]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그는 이름을 확인하고 몸을 움츠렸다. 방금 만났던 오이카와가 다시 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상궁은 카게야마의 손에 들린 패를 확인했다. 


"마마. 서궁에 알리겠습니다."

"이보거라."

"예."

"내 머리가 지금 괜찮느냐."

"아름다우십니다."


카게야마가 서투르게 얼굴을 붉혔다. 제 입으로 칭찬을 요구한 기분이었다. 


"그것을 물어본 게 아니다."


오이카와님이 트집을 잡으시면 어떻게 하지. 오이카와란 남자에 대해 무지한 머릿속의 걱정은 오직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