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는 힘없이 일어났다. 삼일에 한 번씩 남자를 받아들이는 날이었다.
"마마. 불편하십니까."
어제까지 멀쩡했던 카게야마의 몸에 열이 올라있는 것을 본 상궁이 놀라 물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이 선왕을 보러 갈 때마다 자주 몸이 아프고 어지러웠던 걸 기억해냈다. 상궁의 걱정에 카게야마는 덤덤히 말했다.
"꾀병이다."
"..예?"
"..꾀병이니 신경 쓰지 말아라."
카게야마의 꾀병은 거짓으로 아프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주인을 위해 이유없이 아픈 척을 했다.
"약을 먹는다해도 나아지지 않아. 그만 두거라."
약해진 마음이 부끄러워 카게야마는 더욱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상궁이 카게야마의 몸을 염려해 보양식을 내왔다. 몇 입 겨우 떠먹은 카게야마가 입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궁의 주인이 어의도 부르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며 밥도 제대로 못 먹으니, 단패궁의 궁녀들이 모두 비상이었다.
"마마.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
"마마."
"유자차를 내다오."
카게야마는 향긋한 유자차로 속을 데웠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카게야마는 밤에 찾아왔던 오이카와를 생각했다.
"서궁에 가볼까."
"..요즘 서궁을 자주 찾으십니다."
"예전에 같이 있었으니.. 내가 그리운가 보다."
카게야마는 유자차를 한 잔 더 청했다. 따뜻하게 마시고 단패궁을 나오자 표면이 언 호수가 보였다. 괜히 심술이 나 카게야마는 돌멩이를 집어 호수로 던졌다. 파삭, 하고 호수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궁녀들이 당황해 카게야마를 서궁으로 모셨다.
서궁에 도착한 카게야마는 앉아있는
홀 : 오이카와
짝 : 이와이즈미
오이카와에게 인사를 했다. 얏호,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이카와씨를 보러 왔어?"
"..오이카와님과 이와이즈미님을,"
"그래. 오이카와씨를 보러왔구나. 이와쨩 핑계를 대도 좋아요."
"...."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이카와가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에게 따뜻한 자리를 내주었다.
홀 : 오늘
짝 : 오늘 밤
"뭐지? 토비오쨩 얼굴이 오늘..."
카게야마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본 오이카와가 고개를 갸웃했다.
"토비오쨩 어디 아파?"
"예?"
"좀 마른 것 같기도 하고."
"...아프지 않습니다."
홀 : 이마를
짝 : 손을
오이카와가 손을 들어 카게야마의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손. 오이카와의 몸에서 좋은 향기가 훅 풍겨왔다. 기분 좋은 냄새였다. 아오바죠사이에 있을 때에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이 향을 맡았다. 상쾌하고 시원한 냄새. 오이카와와 어울렸다.
"뜨겁잖아. 네 궁녀들은 주인을 돌볼 줄도 몰라?"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리곤 카게야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카게야마는 느리게 부정했다.
"별 것 아닙니다."
"...뭐, 오이카와씨가 딱히 걱정한다는 건 아니지만."
"예.."
"..우시와카쨩에게 고쳐달라고 해보면? 동궁에 가지 그랬어."
카게야마는 열이 오른 눈으로 오이카와를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서궁에 오고 싶었어요."
"..그래."
오이카와는 만족스러워보였다. 막 옷을 걸치고 나온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를 보고 인사했다.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가 일어섰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아 도로 앉혔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옆에서 주저앉아버린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카게야마. 저 녀석이 또 괴롭히기라도 했어? 얼굴이 빨간데."
"이와쨩! 오이카와씨에 대한 신뢰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오이카와가 불평했다. 카게야마는 가까이 다가오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살짝 웃었다.
"오이카와님께서 걱정해주셨습니다."
"..! 얼굴이 안 좋아. 카게야마. 괜찮아?"
"괜찮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카게야마가 스스로에게 되새기듯 고개를 끄덕였다.
홀 : 아프면
짝 : 참으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돼. 카게야마. 안되겠다."
"이와이즈미님..?"
"어의를 불러줄테니 쉬고 있어."
"아, 안 됩니다!"
카게야마가 벌떡 일어났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열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일때문인지 어지러웠다.
"꾀병이에요. 이와이즈미님. 어의는 필요없습니다."
"...카게야마?"
"제가, 약해서 이런 것이니 어의는 필요없어요."
오이카와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이와이즈미 역시 카게야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홀 : 다들
짝 : ..그렇다면
"카게야마. 다들 아플 수 있어. 약한 것과 아픈 일은 별개야."
약간 화난 얼굴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가리켰다. 그래도 목소리는 카게야마를 위해 누그러트린다.
"저 녀석도 겨울이면 때마다 감기에 걸려. 나도 몸이 안 좋을 땐 쉬고."
"..그치만."
"무슨 일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아픈 걸 꾀병이라고 넘기면 안 돼."
"..오늘 밤에 또.. 단패를 뽑아야 해서."
카게야마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마 그걸 피하고 싶어서 아픈 것입니다. 제가 어리석은 마음을 가져서 아픈 것이니 부끄러워요."
이와이즈미는 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오이카와가 차분한 눈동자로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1~3 : ..어리석지 않아
4~6 : 좀 더 자신을
7~9 : 만약 우리 중에 (위험도 +1)
0 : 만약 내가
"...좀 더 자신을 아껴. 카게야마."
남의 탓은 할 줄 몰라 자신을 탓하는 카게야마에게 이와이즈미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넌 충분히 힘들 테니까, 꾀병 좀 부려도 괜찮잖아."
"이와쨩. 좋은 말 하네."
카게야마의 뺨이 붉어졌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웃었다.
"만약에 내가 오늘 밤 가게 되면 부드럽게 안아줄게."
"..오이카와님!"
"오이카와!"
카게야마와 이와이즈미가 동시에 오이카와에게 소리쳤다.
오이카와 토오루
○: 30 (+3)
◇: 29
카게야마 토비오
□: 26 (+2)
이와이즈미 하지메
○: 29 (+2)
◇: 20
카게야마 토비오
□: 28 (+2)
카게야마는 어의를 꼭 찾으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은 얼버무렸다. 고집 센 카게야마를 보며 이와이즈미도 더 이상은 권하지 못했다.
"혹시 계속 아프면 꼭 이야기를 해. 시라토리자와 황제라도 데려갈테니까."
"오이카와씨는 그건 반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이마를 다시 짚었다.
"아직도 좀 뜨거운데..토비오쨩. 그러니까 오늘 밤 힘들고 싶지 않으면 오이카와씨를 뽑아요."
농담같기도 하고 진담같기도 한 말에 카게야마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오이카와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궁녀들이 오늘 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마. 몸이 아프시니 오늘은 식사 후에 단패궁에 계시지요."
홀 : 그럴까..
짝 : 내 몸은 괜찮아
카게야마는 순순히 궁녀들을 따라 식사를 하고 쓴 약을 마셨다. 오늘 주인의 품에 한 번도 안기지 못한 네코가 카게야마의 주변에서 꼬리를 쳤다. 사람의 병이니 개한텐 괜찮겠지?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어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잠깐 이 놈을 데리고 걷고 오마."
"마마!"
진작 카게야마를 씻길 준비를 하던 상궁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카게야마는 얼른 네코를 끌어안고 후원으로 나왔다.
1 : 쿠니미
2 : 킨다이치
3 : 우시지마
4 : 오이카와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7 : 츠키시마
8 : 쿠로오
9 : 코즈메
0 : 아무도 없었다
그 곳엔 어쩌면 보고 싶기도 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아침에 유자차를 마셨던 일을 기억했다. 섭정궁의 유자. 향기가 좋았다. 쿠니미가 쓸쓸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불렀다.
"폐하."
"날이 추운데 어째서 나와 있지."
"몸이 불편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상궁은 카게야마의 하루를 전부 쿠니미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언제 나올 지도 모르는 이 곳에서 자신을 기다린 걸까. 네코가 카게야마의 발치에서 쿠니미를 쳐다보다가 짖었다. 쿠니미는 강아지를 힐끔 보곤 다시 카게야마와 눈을 맞췄다. 카게야마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늘상 있는 꾀병이다."
"그래도 실제로 아프시지 않습니까."
"...."
"폐하. 정말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랬던가.."
왜, 어째서. 실제로 쿠니미를 보면 묻고 싶었던 말들의 물음표가 사라져간다. 얼굴을 보니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쿠니미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카게야마는 마음이 아렸다.
"추운데, 다리는 괜찮은가."
"걱정해주셔서 기쁩니다."
"..어서 들어가라."
"폐하를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홀 : ..오랜만이니까
짝 : 네 다리가 아프니
"네 다리나 신경쓰거라."
카게야마는 일부러 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날이 찬데 이렇게 돌아다니다니. 다신 이러지 마."
"폐하."
"기다리지 말라고."
"카게야마. 기다리게 해줘."
"...돌아갈테니 섭정도 빨리..들어가십시오."
등을 돌리자 네코 역시 아쉽게 카게야마의 뒤를 따랐다. 카게야마는 예민한 귀로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쿠니미의 숨결을 들을 수 있었다. 멀어질 수록 숨소리가 약해졌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의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추울 텐데 도대체 언제부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쿠니미 아키라
○: 19
◇: 25 (+1)
카게야마 토비오
□: 15
카게야마는 얼른 눈을 비비고 단패궁으로 들어갔다. 상궁은 카게야마의 눈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마.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겠습니다."
궁녀들의 시중을 받아 씻은 후 여러가지 옷을 골라 입고, 또..카게야마는 이마를 제 손으로 짚었다. 아직 미열이 남아있었다. 몸이 뜨거웠다. 염려하는 얼굴이었으나 상궁은 마지막으로 패를 가져왔다.
"힘드시겠지만 뽑으시지요."
카게야마는 천천히 패를 집었다.
1 : [오이카와 ]
2 : [우시지마 ]
3 : [츠키시마 ]
4 : [쿠니미 ]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
7 : [쿠로오 ]
8 : [킨다이치]
9 : [코즈메 ]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처음 그의 이름을 보게 되었을 땐 무서웠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무섭기 보단 떨렸다. 카게야마는 얼마 전의 우시지마를 생각했다. 무척 다정했다. 손을 잡아준다고도 했었다.
"마마. 동궁에 알리겠습니다."
"그러거라."
"오늘은 차분하시군요."
"..두 번째니까."
카게야마는 손등으로 얼굴을 만져보았다. 여전히 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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