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기 전 카게야마는 침상 옆을 더듬었다. 손끝에 무언가 닿았다. 벽과 침상 사이의 빈 공간에 그는 어제 받은 그림을 숨겨두었다. 상궁이 벽에 걸겠느냐고 물었으나 카게야마는 그것을 거절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방 안에 두고 싶지 않았다.
"마마? 기침하셨습니까."
상궁이 카게야마를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손끝으로 그림을 더듬어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이었다.
*
젓가락을 쥔 카게야마는 생각난 듯 물었다.
"어제 섭정궁에.. 킨다이치 장군께서 계시지 않던데, 무슨 일인지 아느냐."
출정할 일 없는 장군은 보통 군사를 정비하고 궁의 보안을 담당한다. 전쟁이 없으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한 나라의 군권을 가진 자의 책임은 컸다. 킨다이치는 제멋대로 궁을 비울 사람이 아니었다. 카게야마의 질문에 상궁은 입을 열었다.
"북궁에 가신 걸로 압니다."
"북궁에..?"
카게야마는 살며시 눈을 떨어트렸다. 발 아래에선 네코가 챙겨준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마마. 오늘은 어느 궁으로 인사를 가시겠습니까. 미리 기별을 넣겠습니다."
식사를 마쳐가는 카게야마에게 상궁이 물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지난번 쿠니미는 북궁으로 항의를 넣었다고 했었다. 그와 관련된 일일지도 몰랐다. 냉정하게 따져보려던 카게야마는 오후에 쿠니미가 반가워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킨다이치를 보지 못한 지도 오래 되었다.
"섭정궁."
"마마?"
"..섭정궁에 가겠다."
상궁은 카게야마의 말에 미소를 띠었다.
"오랜만에 섭정궁을 찾으십니다."
"저번에도 갔었고, 어제도 다녀왔지 않느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으시는 건 오랜만이십니다."
"...그랬던가."
카게야마는 흘깃 침상 쪽을 보았다. 섭정이 보낸 상궁의 쓸데없는 참견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따라나오려는 네코를 궁으로 밀어넣고 섭정궁을 향했다. 어제 오후 뛰어갔던 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카게야마가 섭정궁에 도착하자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폐하."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맞이했다. 카게야마는 따라오던 궁녀들을 물렸다.
킨다이치는 상기된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또 호들갑을 떠는구나."
"어제 섭정궁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들린 것 뿐이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서둘러 궁의 안으로 모셨다. 그를 뒤따라가며 카게야마는 새삼 킨다이치의 키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도 뒤를 본 적이 없기에 이렇게 큰 줄도 몰랐다. 뒤에서 보는 킨다이치는 그림 속과 달리 훌쩍 커 카게야마를 전부 가렸다.
"밖이 차니 차를 올리겠습니다."
"..유자차로."
카게야마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쿠니미가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날씨가 추울수록 아파하던 쿠니미를 생각했다. 카게야마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처럼 킨다이치가 찻잔을 놓으며 말을 꺼냈다.
"섭정은 잠시 후에 나올 터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많이 아픈가."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늘 그러지 않느냐."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며 차를 마셨다. 달콤한 유자향이 먼저 코를 스쳤다. 달고 뜨거운 것이 목으로 쉽게 넘어갔다.
"킨다이치."
"예."
카게야마는 대답하는 킨다이치를 쳐다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홀 : 그림
짝 : 북궁
"어제 섭정에게 그림을 받았다."
"그러십니까."
"너도 알았느냐."
"..알았습니다."
킨다이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혹시라도 카게야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고민하는 눈이었다.
"옛 기억이 떠올라.. 폐하의 초상화가 남지 않았으니 보낸 것입니다. 불편하셨습니까."
"그게 아니다. 어떻게 너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그림을 받았을 땐 몰랐으나 생각해보니 의아했다. 왕자의 얼굴이 담겼으니 함부로 궁 밖으로 나갈 순 없었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길게 한 자리에 앉아있어야한다고 해서 카게야마는 떼를 썼다. 그랬기에 궁녀들은 킨다이치와 쿠니미를 데려와 카게야마를 달랬다. 화공은 그런 카게야마를 그렸다. 옆의 두 아이 또한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이렇게 그릴 것이라고 달래준 것이었다. 하지만 초상화를 그린 후 카게야마는 한 번도 셋의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화공은 분명 내게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후에는 본적이 없어 어딘가에 처박혀있는가 했다."
"...."
킨다이치는 입을 달싹였다.
홀 : 그것은
짝 : ....
말해도 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카게야마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킨다이치는 망설이던 입을 드디어 열었다.
"선왕께서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처분하라고 하신 것을 쿠니미가 몰래 숨겨두었습니다."
"...."
"저희를 지나치게 아끼시니 걱정이 되시어 그런 것입니다."
킨다이치가 급하게 덧붙였다. 카게야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원래는 없어질 그림이었어."
"폐하."
"..보여주어서 고맙다."
킨다이치는 감격한듯 카게야마의 앞에서 머리를 푹 숙였다. 삐죽하게 튀어나온 머리가 길었다. 카게야마는 무심코 웃었다.
"장군은 언제나 그 머리구나."
"..보기에 마땅치 않으십니까."
"전에 머리를 내렸던 것도 좋던데."
킨다이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몰라 그저 제 뒤통수를 슥슥 만졌다. 쿠니미가 마침 다리를 절뚝이며 나왔다. 폐하, 하고 부르는 소리는 어제처럼 반가웠다.
"폐하. 어제도 귀한 걸음을 하셨는데 오늘도 와주셨으니 이 기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자리에나 앉거라."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다리를 눈으로 살폈다. 절뚝임은 겨울마다 심해졌다. 의원을 불러 치료해보아도 신통치 않았다. 그러면 카게야마는 누군가를 금방 떠올렸다.
"...동궁의."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서 천천히 말했다.
"동궁의 우시지마님은 치유력이 있으시다. 부탁을 해볼까."
염치없었으나 쿠니미의 다리가 낫는다면 부탁할 수도 있었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건 싫지만 혹시라도, 저 다리가 낫는다면. 카게야마의 말에 쿠니미는 부드러운 얼굴로 웃었다.
홀 : 폐하께서 저를 너무나
짝 : ....
본인이 괜찮다는데 다시 한 번 물을 순 없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쿠니미와 킨다이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보았지만 마치 매일 본 것처럼 낯이 익었다. 하기야 어릴 때는 같이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자주 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얼굴을 덧그리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다.
"폐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말이 없는 카게야마에게 쿠니미가 입을 떼었다. 카게야마는 손등으로 턱을 괴었다.
"어릴 때 본 얼굴과 참으로 많이도 달라졌단 생각을 했다."
"이제는 몸이 컸으니 달라진 것이 당연합니다."
킨다이치가 카게야마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얼굴만이 아니었다. 함께 하자던 약속도, 관계도, 모두 변했다. 섭정궁 안에서만 자신은 왕이었다. 왕은 왕으로 모셔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카게야마는 자신이 쿠니미와 킨다이치만의 왕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 와서 왕이었단 생각을 하다니 부질없었다.
"카게야마..?"
오랜 침묵에 쿠니미가 문득 이름을 불렀다.
홀 : 섭정
짝 : 쿠니미
"섭정은.."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약간 긴 머리카락. 나른하게 뻗은 눈매. 계집애처럼 어여쁘다고 실컷 놀림을 받았던 얼굴이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눈. 낯이 익으나 낯설기도 한 저 섭정의 속이 카게야마는 궁금했다.
"나는 섭정이야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
"내가 좋은 왕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킨다이치가 얼른 부정했다. 카게야마는 아주 살짝 웃었다. 비꼬는 웃음은 아니었다.
"자리에서 끌어냈으면서 좋은 왕이었다고는 말하지 말거라."
"폐하."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불렀다.
1~3 :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4~6 : 좋은 왕이셨습니다
7~9 : 혹시라도 (위험도 +2)
0 : 그래야만 (위험도 +2)
"폐하. 혹시라도 제가 섭정의 자리가 탐나 그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지요."
"....."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그게 아닌 것을 압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곧 쿠니미가 일어나 손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얼굴이 절로 쿠니미를 향한다. 킨다이치가 섭정, 하고 짧게 외쳤다. 저지하려는 킨다이치에게 카게야마는 다른 손을 올려 막았다.
"저는 폐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변한 건 없습니다. 커서 생김은 달라졌다 하더라도 변한 건 결코 없습니다."
"....."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토해놓듯 말하는 속내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알겠으니 놓거라."
"폐하."
"쿠니미. 알겠으니 자리에 앉아."
카게야마가 엄하게 말했다. 쿠니미는 천천히 손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쿠니미 아키라
○: 23 (+1)
◇: 29 (+2)
카게야마 토비오
□: 22 (+1)
킨다이치 유타로
○: 25 (+2)
◇: 28
카게야마 토비오
□: 17 (+2)
카게야마는 차를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킨다이치와 쿠니미가 배웅하려해 카게야마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혀를 차며 섭정궁을 나섰다. 킨다이치를 보았다가, 쿠니미를 본 카게야마는 결국 또 한 번 말을 꺼냈다.
"섭정은 치료를 잘 하거라."
폐하께서 걱정해주시는데 제가 무엇하러 이 다리를 낫게 하겠습니까. 쿠니미는 말하지 않은 말을 삼키며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 추운 겨울이었다.
카게야마는 서둘러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카게야마를 기다리고 있던 네코가 튀어나와 다리 아래로 들어왔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강아지를 두고 상궁이 기겁하였다.
"마마!"
"괜찮다."
"괜찮지 않습니다!"
"네코, 물어라. 물어."
카게야마의 발 아래에서 어린 강아지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강아지를 품에 안으면 이미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상궁은 네코의 발을 닦아주었다. 싫어하는 강아지를 꼭 붙잡고서 발을 닦으며 상궁은 한탄했다.
"이 놈이 마마의 옷들을 흙발로 밟아 엉망이 되었습니다."
"털어 입으면 되지 않느냐."
"오늘은 입으실 옷이 없으니 나가지 마시고 궁에 계시지요."
"...."
카게야마는 부러 상궁의 심기를 건드리기 귀찮아 얌전히 식사를 마쳤다.
홀 : 손님이 찾아왔다
짝 :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어제 먹던 간식을 내오라고 하던 카게야마는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운 날 누가 찾은 걸까.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 지정
"섭정.."
아침에 본 섭정은 언제 보았냐는 얼굴로 서있었다. 카게야마는 서둘러 쿠니미를 들어오게 했다. 엄하게 쿠니미를 쳐다보면, 쿠니미는 모른 척 웃는 얼굴이었다.
"치료나 하라고 했더니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는구나. 왜 온 것이냐."
홀 : 드릴 말씀이
짝 : 보고싶어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무슨..?"
카게야마는 쿠니미에게 앉기를 권했다. 쿠니미는 잠시 의자를 보았다. 바로 앉지 않고 방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가 아쉬운 목소리로 카게야마에게 말을 건다.
"그 그림은 방에 걸어두지 않으셨군요."
"..버린 것은 아니니 염려할 것 없다."
"버리셨으면 제가 바로 알았을 겁니다."
쿠니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대답 대신 차를 내밀었다. 찻잔을 두 손으로 받아든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홀 : 북궁
짝 : 궁녀
섭정은 카게야마가 설마 키타가와를 떠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패궁은 섭정의 철저한 관리 속에 있었다. 카게야마에 대해서는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카게야마 본인의 마음을 쿠니미가 전부 다 알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카게야마가 북궁에게 정을 주었다면.. 쿠니미는 킨다이치에게 전해 들은 북궁의 말을 기억했다. '단패궁을 카라스노로 데려가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폐하."
쿠니미는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아침은 경황이 없어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북궁에 지난 일로 항의문을 보내어 답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카게야마는 눈을 내리깔고 제게로 오는 네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작 그 일로 찾아왔진 않을 것이다.
"카라스노의 3황자께선 어떤 의도도 없으셨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 약조해주셨습니다."
"...."
"내일이 단패를 뽑는 날이시니 혹시라도 걱정하실까 싶어 직접 말씀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홀 : 3황자
짝 : ....
3황자..? 카게야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쿠니미는 시간을 두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듯 카게야마에게 설명한다.
"폐하께서는 잘 모르셨겠군요."
"무슨 말이냐."
"카라스노의 후계싸움은 몹시 치열합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카게야마의 마음에 카라스노에 대한 정이 자라난다면 조금이라도 방해할 수 있도록. 의도하지 않았으나 궁금해하니 말해준다는 어조로. 천천히 대답을 했다.
"카라스노 황제의 묵인 하에 9황자가 3황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
"원래 오시기로 한 분은 3황자인 히나타 다이고님이시나, 오시는 길에 목숨을 잃으셨답니다."
"..그게."
카게야마는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다면 9황자가 3황자를 죽이고 대신 키타가와로 왔단 뜻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쿠니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 3황자로 공식명칭을 바꾸겠다고 하니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카게야마는 자그마한 몸으로 자신을 데리고 날아주겠다고 하던 히나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편으론 키타가와의 마지막 왕족인 자신을 이용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던 츠키시마도 떠올렸다. 왕좌를 두고 형제를 죽일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이용하겠지.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말을 전부 이해했다.
"그런가.."
카게야마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쿠니미도 따라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분명, 카라스노의 히나타님이나 츠키시마님께선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
"허나 폐하께 혹시라도 카라스노의 일이 엮인다면 위험하실 것이 걱정됩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카게야마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카라스노로 갈 일도 없을 것인데 그들의 정당한 전쟁이 내게 무슨 소용이겠느냐."
"..그러십니까."
네코가 카게야마의 손을 핥았다. 달랑 들어 품에 끌어안고 고개를 들면, 쿠니미는 여전히 눈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목적을 이룬 쿠니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게야마는 투덜거렸다.
"히나타님께서 실은 3황자였다는 말을 해주기 위해 일부러 온 것이군. 걱정도 참으로 다양하게 한다."
"송구하옵니다."
"어서 들어가거라. 날이 차다."
쿠니미는 다시 한 번 카게야마의 방을 둘러보고는 돌아갔다. 머리가 복잡해진 카게야마는 얼른 네코를 끌어안았다. 히나타의 손에 피가 묻었다고 생각하자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마냥 어린애같은 분인데..카게야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오늘 쿠니미와의 시간이
1~3 : 뭐하러 일부러 와서는 (호감도 +0)
4~6 : 오랜만에 길게도 이야기를 했어 (호감도 +1)
7~9 : 다리는 괜찮은지 (호감도 +2)
0 : 키타가와를 떠날 리 없는데.. (호감도 +3)
쿠니미는 오늘 카게야마와의 시간이
1~3 : 일단은 안심했다 (호감도 +1)
4~6 : 만족스럽다 (호감도 +2 위험도 +1)
7~9 : 우선 북궁은 당분간.. (호감도 +3 위험도 +2)
0 : 어디에도 보내지 않아 (호감도 +3 위험도 +3)
카게야마는 하루 종일 궁 안에서 강아지와 장난을 치며 놀았다. 때가 되어 저녁을 먹고 나서야 아침의 문안인사 이후로 한 발자국도 궁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궁에만 계시니 제가 안심이 됩니다."
상궁은 카게야마의 옷을 가져다주고 머리를 빗었다. 짧은 머리를 어떻게든 치장해보려 애쓰는 상궁을 두고 카게야마가 조금 웃었다.
"머리가 참으로 길지 않으십니다."
"길면 내가 다시 확 자를 것이다."
"...!!"
상궁이 경악한 얼굴이 거울로 전부 보였다.
1~3 : 몰래 나가 밤산책을 했다
4~6 : 강아지와 침상에 누웠다
7~9 : 손님이 왔다
0 : ㅇ..죄.ㅅ...
상궁이 정성스레 닦아준 네코는 궁에 두고서, 카게야마는 옷을 입고 훌훌 밖으로 나갔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춥지만 상쾌해 기분이 좋았다.
1~5 : 그런데 너무 춥다
6~0 : 누군가 있었다
네코를 데려올 걸 그랬나. 카게야마는 괜히 아쉬워져 단패궁의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다. 추운 몸은 따뜻한 불을 보는 것만으로도 녹는 듯 했다. 하아.. 하고 입김을 불면 하얀 김이 몽글몽글 흘렀다.
"돌아가자."
아무도 없는 밤에 대고 말한 후 카게야마는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지금 돌아갈 곳은 저 궁 뿐이었다.
24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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