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카게야마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궁녀들을 먼저 보았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눈에 잘 보였다. 카게야마는 날짜를 세어보았다.
"오늘 또 단패를 뽑는 날이군."
"그렇습니다..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상궁이 카게야마의 머리를 빗어주며 물었다. 카게야마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불편한 곳이 있다고 한다면, 네가 궁의 문을 닫아줄 것이냐."
"...송구하옵니다."
괜히 상궁에게 짜증을 냈다. 카게야마는 입을 다문 채 거울을 보았다. 상궁은 여전히 머리가 짧다고 말했으나 카게야마의 눈에는 지나치게 길었다. 이런 삶을 살아보리라 생각한 적이 있을까. 자신은 한 번도..
"마마."
상궁이 물었다.
"오늘은 어디에 인사를 가시겠습니까."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지난 아침 이와이즈미와 헤어진 이후 보지 못했다.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던 손길이 생각났다. 언제나 자신의 걱정을 해주는 이와이즈미. 어린 시절이 떠올라 그립기도 했고 같이 있으면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카게야마는 허전한 목을 만져보았다. 상궁이 재빠르게 눈치를 챘다.
"마마. 서궁에 가시면 목걸이를 준비할까요."
목걸이를 걸고 서궁에 갔다가 오이카와에게 혼난 기억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그렇지만 서궁엔 한 번 가야겠군."
추운 날 따뜻한 사람이 보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불며 서궁을 찾았다. 왔다고 알리고 들어가자 안에는
홀 : 오이카와
짝 :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는 얼른 반갑게 인사를 했다. 검을 닦고 있던 이와이즈미 역시 카게야마를 보고는 따라 웃었다.
"카게야마."
"검을 손질하고 계셨어요? 제가 방해가 됐습니다."
"아니야. 오늘도 날씨가 추운데 얇게 입었구나."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를 불 앞에 데려다놓았다. 손을 내밀자 따뜻한 온기가 손끝부터 번졌다.
"오랜만이네."
얼른 손을 녹이는 카게야마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조용히 말했다. 카게야마의 귀가 아니었다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홀 : 네
짝 : 오랜만..?
이틀을 보지 못했다. 고작 이틀이었는데도 카게야마 역시 이와이즈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왠지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 들었다.
"네. 지난 아침 이후로 처음이니까.."
카게야마의 대답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카게야마. 귀가 정말 밝구나."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카게야마는 얼버무렸다. 이와이즈미 역시 생각없이 수긍했다. 잠시 얼었던 몸은 금방 녹았다.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옆눈으로 훔쳐보았다. 긴 장검을 이리저리 살피는 이와이즈미는 어릴 적에 본 모습 그대로 멋있었다.
"이와이즈미님께선 활도 검도 다 잘 다루시는군요."
카게야마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홀 : 오이카와가 더
짝 : 그.. 렇지
이와이즈미는 반사적으로 오이카와의 말을 하려 했다. 오이카와가 가장 뛰어났다는 건 이와이즈미도, 카게야마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오이카와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이와이즈미는 순간적으로 든 욕심에 놀란다.
"그..렇지."
말끝을 흐려 대답하면 카게야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검이 어려우니까요, 좀처럼 잘 늘지 않더군요."
"카게야마. 네 실력을 내가 잘 알고 있잖아. 활을 가장 잘 다룰 뿐이지 너 정도라면 검도 훌륭해."
"그런가요.."
카게야마는 생긋 웃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도 모르게 오이카와의 방문 쪽을 보았다. 때마침 문이 열려 화려한 옷자락이 보였다. 친구의 얼굴이 보이자 이와이즈미는 짧게 신음했다. 잠시라도 들었던 욕망이 부끄러운 탓인지, 아니면 둘만의 시간이 아쉬었던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토비오쨩."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아름답게 치장한 오이카와를 보며 카게야마는 자신의 상궁이 오이카와같은 주인을 모셨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옆에 앉아 살짝 목덜미를 확인했다. 그 희고 긴 목에 걸린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눈치를 볼 필욘 없는데.. 오이카와는 입술을 핥았다.
"오늘은 어떻게 왔어?"
"...예?"
카게야마가 무슨 일이냐는 듯 되물었다.
홀 : 오이카와씨가
짝 : 오이카와씨를
0 : 동궁엔 요즘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를 뽑아주려고 온거려나."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뒤늦게 입을 쭉 내밀었다.
"제가 마음대로 뽑지 못합니다. 오이카와님."
"그래?"
"뒤집어 있는 패를 뽑는 것인데 제가 어떻게.."
"그렇다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벌써 남자와 몇 번의 밤을 보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여자는 언제라도 처음이라는 듯, 단순한 의무를 말하며 오이카와에게 항변하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건드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보고 뽑을래?"
"예?"
"보고 뽑으면 오이카와씨를 뽑을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말에 한 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카게야마는 몹시 당황해 오이카와를 꿈벅거리며 쳐다본다. 달콤한 색의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졌다.
홀 : 갑자기 왜..
짝 : ....
무어라 대답해야하지. 한 번도 카게야마는 누군가를 바라며 단패를 집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서궁에서 뽑는다면.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이와이즈미의 쪽을 보았다.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걸 오이카와는 확실히 알아차렸다.
"토비오쨩. 너무하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거짓말이라도 오이카와씨를 뽑아주겠단 말을 하지 않다니."
"아..저.."
"오이카와씨 상심했어요."
오이카와는 잡았던 카게야마를 놓아주었다. 카게야마는 어쩔 줄 모르며 눈을 내리깔았다. 오이카와는 농담인 것처럼 진담을 말하고, 진담인 것처럼 농담을 말했다. 카게야마는 어디서부터가 농담이고 진담인 지 알 수 없었다. 내리깔았던 눈을 올리면 오이카와는 이미 다른 화제로 이와이즈미와 대화하고 있었다.
"오늘도 남궁에 가보게?"
"그래. 네코마의 황자가 청하더군."
"어지간히 심심한가봐요..."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한 사람만 기다리고 있으니 심심하기도 하겠지."
"제 얘기인가요."
카게야마는 겨우 눈치를 채고 물었다.
1~3 : 아니거든 (호감도 +1)
4~6 : 글쎄
7~9 : 그렇다면
0 : 알려주지 않아
오이카와는 묘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보았다가, 볼을 잡고선 쫙 늘어트렸다. 또다시 오이카와에게 장난감처럼 볼을 잡힌 카게야마가 으응 하고 신음했다.
"아니거든."
"마ㅈ아여!"
"아니거든요. 무슨 말 하는지 오이카와씨는 하나도 모르겠어."
"놔ㅇ..주스.."
오이카와는 마음대로 카게야마의 볼을 놀리며 생각했다. 아마도 누군가만을 좋아하는 마음은 뒤늦게 피어날 것이 분명한 여자. 그러면 굳이 알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이렇게 제 손에 있다.
"오이카와..그쯤 해둬."
이와이즈미는 보다못해 오이카와를 말렸다. 오이카와가 손을 놓자, 빨개진 카게야마의 얼굴이 여기저기 붉었다.
"오이카와님! 아픕니다!"
"아팠어요?"
"...."
카게야마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달래며 입 안에 단 것을 넣어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 34 (+1)
◇: 30
카게야마 토비오
□: 27 (+0)
이와이즈미 하지메
○: 36 (+2)
◇: 20 (+1)
카게야마 토비오
□: 35 (+2)
카게야마는 서궁에 나가기 전 오이카와가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뺨을 양 손으로 감쌌다. 오이카와가 흥, 하고 새침하게 말했다.
"오이카와씨가 만져주면 영광이잖아."
"....네.."
"대답이 너무 느리죠?"
카게야마는 얼른 인사하고 도망치듯 서궁을 나왔다. 차가운 바람에 얼얼한 볼이 따끔거렸다. 볼을 문지르며 돌아오자 궁녀들이 카게야마를 잡아 끌었다.
"마마. 준비하러 가셔야 합니다."
또 씻고, 화장을 하고, 벗기기는 쉬우나 입기는 어려운 이상한 옷을 잔뜩 입어야 했다. 카게야마는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홀 : ..알겠다
짝 : (도망)
카게야마는 궁녀들을 따르는 척 하다가 슬그머니 내뺐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궁녀들이 오기 전 얼른 도망친 카게야마는 잠깐이라도 걷기로 했다. 궁에 돌아가자 마자 치장을 하는 건 싫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카게야마는 자신을 찾는 궁녀들을 피해 후원으로 달아났다.
1 : 쿠니미
2 : 킨다이치
3 : 우시지마
4 : 오이카와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7 : 츠키시마
8 : 쿠로오
9 : 코즈메
0 :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후원에 도착하면 책을 가득 안은 킨다이치가 걸어오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걸음을 멈췄다. 킨다이치 역시 놀랐다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품 안의 책이 와르르 쏟아졌다. 카게야마가 얼른 다가가 한 권을 주웠다. 무슨 병법서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애소설..?"
킨다이치는 황송하다는 듯 얼른 카게야마의 손에서 책을 받았다.
"네가 그런 책도 읽었느냐."
"..예."
"처음 들어보았다."
킨다이치는 어정쩡하게 책을 안고 있었다. 좀 들어줄까, 하고 물으면 역시나 거절한다.
"폐하께선.. 궁에 계셔야하지 않습니까."
"도망쳤다."
"도망.."
카게야마의 농에, 킨다이치는 진지한 눈이 되어 물었다.
"도망치고 싶으십니까."
"...."
"혹시.."
"됐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킨다이치는 안타깝게 카게야마를 보았다가 물었다.
"추우실 터이니 모셔드리겠습니다."
홀 : ...좋아
짝 : 둘이 가면 추위가 덜하나
둘이 가면 이 추운 날이 덜 춥기라도 하나. 카게야마는 핀잔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다고 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당장 자신을 데리고 가줄 것 같은, 눈앞의 친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좋아."
"...!"
"무얼 그리 놀라지."
네가 꺼낸 말이 아니냐. 카게야마는 짐짓 차갑게 대꾸했으나 킨다이치는 그저 웃는 낯이었다.
"폐하."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궁 앞에 데려다주며 속삭였다.
"혹시라도, 힘드시다면 꼭.. 말씀해주십시오."
"...."
"이번에야말로 제가.."
"시끄럽다."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쳐주었다.
"날이 차다. 어서 들어가라."
"...."
궁녀들이 소란스럽게 카게야마를 모셨다. 힐끔 뒤를 돌면 자리에 그대로 서서 카게야마를 쳐다보는 킨다이치가 있었다. 단지 같이 걷기만 했는데도 확실히 몸이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카게야마는 서둘러 궁으로 들어갔다.
킨다이치 유타로
○: 27 (+1)
◇: 28
카게야마 토비오
□: 19 (+1)
궁녀들의 투정을 들어주며 치장을 했다. 카게야마는 어느새 제 앞에 서 있는 상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뒤집어진 아홉 개의 패. 카게야마는 상궁이 내민 패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마마. 어서."
상궁이 재촉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하나를 골랐다.
1 : 오이카와 토오루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츠키시마 케이
4 : 쿠니미 아키라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쿠로오 테츠로
8 : 킨다이치 유타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그는 아침에 만난 오이카와의 말을 떠올렸다. 오이카와씨를 뽑을래? 카게야마는 굳이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에 오이카와와 동침을 했을 땐, 무척 느껴 울었던 기억이 났다.
"..물을 좀 다오."
카게야마는 패를 받아드는 상궁에게 말했다.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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