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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35. 27일 <동궁-쿠니미>


눈은 그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궁녀들이 머리를 빗어주고 치장을 돕는 동안 안에 들여놓은 네코와 놀았다. 강아지들이란 눈오는 날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자꾸만 나가고 싶어하는 네코를 끌어안고서 카게야마는 옷을 입혔다.


"이러면 따뜻하겠지?"


두꺼운 털옷을 입은 네코는 불편한지 어정어정 움직였다. 구석에서 옷을 벗으려 애쓰는 네코를 둔 채 카게야마는 어제 받은 공을 쳐다보았다. 상궁이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카게야마의 시야를 가렸다.


"마마. 아침부터 공놀이를 하실 것은 아니시지요."

"...."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침식사를 끝낸 후 문을 열어보면 하얀 하늘과 땅이 한데 이어져 구분할 수가 없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카게야마는 어제 서궁으로 가는 길 마주쳤던 우시지마를 떠올렸다.


"내가 동궁에 얼마나 가지 않았지?"


상궁은 손가락을 들어 세어보았다.


"18일 가신 후에 따로 인사를 가지 않으셨으니 제법 됩니다."

"그렇게나 오래 됐나."

"오늘은 동궁에 가시겠습니까."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궁은 궁녀에게 눈짓해 우시지마가 준 망토를 가져오게 하였다.


"추운 날이니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몇 발자국이나 된다고.."


상궁의 말대로 몹시 추운 날이었다. 카게야마는 가죽망토를 단단히 두르고 단패궁을 나왔다. 


*


동궁은 조용했다. 우시지마 홀로 있는 궁이라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침묵에 잠긴 동궁의 문을 열었다. 우시지마는 붓을 들어 쓰던 손을 멈추고 카게야마를 반겼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잘 몰랐으나, 얼굴을 보자마자 비로소 정말로 오랜만이란 걸 깨닫는다.


"와줬군."


서둘러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망토 속에 들어가지 않은 손은 추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야 오는 것이냐."

"제가 온 것이 싫으십니까."

"또 그런 매정한 말을 하는구나."


우시지마는 자신의 손으로 카게야마의 손을 녹였다. 따뜻한 온기가 옮아 손은 금방 녹았다. 우시지마의 눈이 정답게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았다. 손을 꼭 잡힌 채 시선을 뗄 수 없으니 카게야마는 부끄러워졌다. 양 손을 잡고 놔주지 않는 커다란 손은 카게야마의 손등을 쓸어보며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린다.


"우시지마님. 놔주세요."

"왜 놔줘야 하느냐."

"부끄럽습니다."


그 말을 하는 카게야마의 귀가 붉어졌다. 우시지마는 손을 놓고 카게야마의 귀를 쓸어 짧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귀에 손이 닿자 움찔하는 몸이 사랑스러웠다.



홀 : 네 말대로 해야지

짝 : 좀 더



"좀 더."

"우시지마님."

"좀 더 만져보게 해다오. 오랜만이지 않느냐."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귀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예민한 귀가 간지러워 카게야마는 어깨를 움츠린다. 손가락은 작은 귓불을 간지럽히다가 아쉽게 떨어졌다.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보게 되는구나."


우시지마는 다시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아까보단 따뜻한 손이 얌전히 잡혔다. 카게야마는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의 우시지마님은 무서웠습니다."

"지금도 내가 무섭나."

"그때는 제가 남장을 한 것을 들킬까 두려웠으나.."


그 때 쏘았던 호랑이는 가죽이 되어 카게야마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다.


"지금은 두려울 것이 무어가 있겠습니까."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는 카게야마를 우시지마는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역시나 손에 넣고 싶은 여자였다.



홀 : 시라토리자와로 

짝 : 망토를



너무나 오랜만에 보았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쉽게 풀려 아래로 떨어진 망토를 카게야마는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우시지마님..?"

"언젠가 내가 망토를 벗겨주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지."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에게로 다가갔다. 안에는 얇은 옷을 입은 카게야마의 가슴이 위아래로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망토를 보았다가 우시지마와 눈을 맞췄다.


"좀 더 가까이 있고 싶다."

"충분히 가깝습니다."

"조바심나게 하지 말고 오거라."


잡힌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에게로 끌려가듯 안겼다.


"이대로 널 가질 수도 있다."

"...싫습니다."

"...그래. 넌 그렇게 말하겠지."


대신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끌어안고 등을 쓸었다. 우시지마의 가쁜 심장소리가 들려 카게야마는 더 이상 밀어내기가 힘들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53 (+1)

◇: 24 (+3)


카게야마 토비오 

□: 39 (+0)




"내가 무서운가."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무섭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서워했다면, 어떻게든 시라토리자와로 데려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치의 의심도 없는 눈을 보니 우시지마는 차마 제 생각을 전부 다 말할 수 없었다.


"놀랐을 텐데 대범하군."

"...그러니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주세요."

"약속은 못 하겠구나."

"우시지마님.."


카게야마는 자꾸만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우시지마에게서 겨우 벗어났다. 단패궁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제 눈이 그쳐있었다. 



눈이 그치자 궁녀들은 네코를 풀어주었다. 작은 강아지가 눈밭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카게야마도 공을 가지고 나가려다가 상궁에게 잡혀 나가지 못했다.


"마마. 점심부터 드신 후에 나가십시오."


카게야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카게야마는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식사를 마친 카게야마는 신이 나 네코와 함께 공을 굴리러 나갔다. 눈밭에서 강아지처럼 노는 카게야마를 보며 어린 궁녀들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한참 공을 던지고 있는 카게야마의 뒤에 인기척이 들렸다.



1~3 : 오이카와

4~6 : 쿠로오

7~9 : 쿠니미 

0 : 세 인물 중 리레주 지정



다리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폐하."


쿠니미는 모처럼 솔직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추운 날인데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너는 어딜 가는 길이냐."

"잠시 볼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기다렸던 것은 아닌듯 하여 카게야마는 그렇군, 하고 짧게 답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 발치의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낯을 가리는 줄 알았던 네코는 얼른 쿠니미에게로 달려가 손을 핥았다.


"저 놈은 나만 겁냈던 모양이다. 너는 잘 따르는군."


카게야마는 허탈하게 말했다.



홀 : 추우니 들어가라

짝 : 강아지를 산책시켜야하니




쿠니미는 말없이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무릎을 굽히고 앉은 것이 신경쓰였다. 굳이 직접 궁을 돌아다닐 이유가 무엇일까. 궁녀를 시키면.. 카게야마는 손을 내밀었다. 잠시 고민하던 네코가 결국 주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이 놈을 데리고 잠깐 걸으려 했는데.."


카게야마는 잠시 침묵했다가 쿠니미에게 말했다.


"섭정궁까지 걸으면 딱이겠군. 같이 가자."

"..저와 같이 걸으시겠습니까."


오히려 쿠니미 쪽이 놀라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못갈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


카게야마는 꼬리를 흔들며 쫓는 네코를 살피며 쿠니미와 함께 섭정궁까지 걸었다. 쿠니미의 걸음을 맞추어 느리게 걸으며,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눈이 그쳐 다행이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많이 내리더니.."


카게야마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이 그친 하늘은 아직 희었다. 바로 옆을 돌아보면, 쿠니미의 창백한 얼굴에 까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가 길었군."


카게야마가 무심히 한 말에 쿠니미의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홀 : 폐하의..

짝 : 보기에



"보시기에 나쁘십니까."


쿠니미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카게야마는 조금 긴 쿠니미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예전에는 저 머리를 마음대로 만졌었다. 


"내가 나쁘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말하는군."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소리를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니다."


섭정궁 앞에 도착했다. 네코가 깡총깡총 뛰어 눈밭에 파묻혔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돌아보았다. 


"잠시 차라도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홀 : 그럴까

짝 : 됐다



아무래도 쿠니미의 다리가 신경쓰였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이만 가볼 테니 쉬거라."

"...폐하."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향해 손을 뻗는 듯 했다가 멈칫 주먹을 쥐었다.


"폐하. 머리를 자르겠습니다."

"바빠보이니 알아서 하거라."

"그러면 또 저에게 머리가 짧아졌다고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무엇이라고, 간절히 기대하는 사람의 눈을 하고 서있었다. 무거운 애정이 카게야마의 가슴을 억눌렀다. 심장이 조이듯 아파온다. 카게야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라도 숨을 토해내야 했다.


"그러마. 쉬어라."

"살펴 가십시오."


등을 돌린 채 귀를 기울여보면 쿠니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달리려는 네코를 끌어안고서 얼른 돌아왔다. 



쿠니미 아키라 

○: 26 (+2)

◇: 32 (+1)


카게야마 토비오 

□: 26 (+1)




상궁은 털이 마르자 흙투성이가 된 네코를 보며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마마. 어딜 다녀오셨기에 이 개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풀어놓으니 신나서 뛰어다니는데 내가 쫓아가면서 말릴 순 없지 않느냐."


카게야마는 괜히 신이 나 상궁의 약을 올렸다. 네코를 닦아주기 위해 상궁이 잡으려 나섰다. 그러나 이제 제법 자란 강아지는 약삭빠르게 도망치는 것이었다. 아이고, 상궁이 한탄했다. 배가 고파 저녁을 일찍 먹던 카게야마는 그제야 네코를 불러주었다. 주인이 부르면 잘 왔다. 얼른 잡고서 상궁에게 넘겨주자 상궁은 네코의 털을 거칠게 문질렀다.


"아무래도 씻겨야겠습니다."

"날 풀리면 씻기거라. 사람도 추운데 개는 오죽할까."

"언제 이렇게 꼬질꼬질해져서."


강아지가 상궁의 품을 벗어나려 캉캉 짖어댔다.



1~3 : 강아지와 함께 밖으로 도망쳤다 

4~6 :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7~9 : 손님이 왔다

0 : 조용하다



"네코."


카게야마가 짧게 부르자 발버둥치던 강아지가 얼른 튀어나왔다. 상궁이 붙잡기도 전에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갔다.


"마마!"

"잠시 걷고 오마."


상궁의 탄식이 계속 들렸다. 카게야마는 더럽다고 구박을 들은 네코를 살펴보았다.


"그렇게 더럽지도 않은데."


카게야마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 네코가 품에서 혀를 내밀어 카게야마의 손을 삭삭 핥았다.



1~5 : 조금 걷다가 궁으로 돌아갔다 

6~0 : 누군가와 마주쳤다




밤에 혼자 눈을 밟아보면 발자국 소리 때문에 혼자인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 뽀드득거리며 일부러 눈길을 골라 걷던 카게야마는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네코를 세게 끌어안았다.


"알지 않느냐. 너마저 도망가면 아무도 없어."


추운 날이었다. 카게야마는 선선히 돌아본 후 등을 돌아 왔던 길을 보았다. 카게야마의 발자국이 눈밭에 남아 있다. 일부러 그 자국에 발을 대보면 꼭 맞았다. 조심조심 발자국을 따라 걷자 어느새 다시 단패궁이었다. 아직도 상궁의 불평이 들리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살짝 웃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 명의 발자국만이 희게 남은 밤이었다.



27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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