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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49. 2월 10일


"마마. 어떠십니까."

"다 똑같은데."


봄에 입을 옷은 미리 지어야한다며 상궁은 카게야마를 재촉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으나 부드러운 버들잎같은 감촉의 천을 몇 번이나 몸에 대어본다. 카게야마는 하품을 했다. 공중에서 흔들거리는 천을 잡고싶은 네코가 머리를 흔들며 쫓았다. 


"무슨 색이라도 잘 어울리십니다."

"춥다. 빨리 끝내거라."

"...."


칭찬을 하기에 여념이 없던 상궁은 시큰둥한 카게야마의 반응에 결국 물러났다. 일찍 일어난 탓에 카게야마의 얼굴 가득 잠이 맺혔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네코를 보고 있으면 어제 쿠니미와 만난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네코가 도망가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신경쓰는 티는 내고 싶지 않아 카게야마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섭정궁에 가볼까."


지나가듯 흘리는 말에 상궁은 반색했다.


"마마께서 자주 드셔서 유자차도 떨어진 참입니다. 아이들을 시켜 가지고 오게 해야겠습니다."

"한 번에 좀 많이 가져오면 될 것을."

"여기서 만든 것은 마마께서 자주 찾지 않으셨습니다."

"다 똑같은 유자인데 네가 잘 못 만든 것이겠지."

"남귤북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똑같이 만들었는데도 맛이 달라지니 궁 위치때문인 것 같습니다."


상궁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뭐? 하고 되묻는다.


"남쪽 귤나무를 북쪽에 심으면 탱자로 변한단 뜻입니다."

".....네코마의 귤이 카라스노로 가면 탱자가 된단 말이냐?"


카게야마는 이해하기 힘들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이 상궁은 얼른 챙겨 카게야마를 배웅했다. 가뜩이나 졸린데 괜히 어려운 말을 들어 더 피곤해졌다. 카게야마는 조금 입술을 삐죽인 채 섭정궁에 도착했다.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킨다이치는 안색이 나쁜 카게야마를 보자 얼른 다가왔다.


"폐하. 어디가 좋지 않으십니까."

"탱자 때문에 그렇다."

"예?"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쳐다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얼굴은 언제나와 같았다.



홀 : 너 혹시 남귤북ㅈ..? 

짝 : 쿠니미는?



늘 자신에게 공부를 해야한다며 잔소리하는 상궁에겐, 더 묻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따라 궁 안에 들어와서는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장군."

"예."

"혹시 남귤..남.."

"?"

"남귤북..ㅈ..? 란 말을 알고 있느냐. 네코마의 귤이 카라스노로 가면 탱자로 변한다던데."


카게야마의 물음에 킨다이치는 웃지도 않고 '남귤북지'말입니까. 하고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혼자 되뇌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사람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단 뜻입니다."

"..그런 뜻인데 유자차에 비교해?"

"예?"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의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곰곰히 생각하던 카게야마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렇군. 나랑도 비슷하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패궁으로 간 나는 그 전과는 분명 다를 테지."


카게야마의 가감없는 말에 킨다이치의 입술이 달싹였다.



홀 : 전혀

짝 : ....



서운해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평소라면 겨울 내 국경 너머에서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을 왕은, 봄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킨다이치는 조심스럽게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위로를 해야할까, 부정을 해야할까. 어떤 것도 단패궁으로 직접 카게야마를 밀어넣은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


킨다이치는 입을 다물었다. 카게야마는 궁녀들이 가져온 유자차를 마셔보았다.


"확실히 이 궁의 차가 더 맛있어."

"..그러시면, 더 많이 가져가십시오."


줄 수 있는 게 그 정도라면 전부 다 가져가도 괜찮았다. 킨다이치의 말에 카게야마는 차를 마시다가 웃었다.


"단패궁으로 가져오면 맛이 덜하다."

"그럴 리가..."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묻자마자 쿠니미가 안에서 나왔다. 폐하, 하고 부르는 얼굴은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재밌게 하고 계셨습니까."


쿠니미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카게야마는 단 유자차를 꿀꺽 삼켰다.


"섭정궁에서 먹는 유자차는 맛있는데, 가져가서 내 궁에서 먹으면 맛이 떨어지는구나."

"많이 가져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런 말씀이라 당황했습니다."


킨다이치는 겨우 말했다. 쿠니미는 킨다이치를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많이 가져가시면 안됩니다."

"아까우냐."


어이가 없다는 듯 카게야마가 웃으며 물었다. 



홀 : 적게

짝 : 저희



"저희가 폐하를 생각하며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쉽게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쿠니미의 말에 카게야마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무엇을 내놓아야 하느냐."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쿠니미는 궁녀에게 손짓해 카게야마의 잔에 유자차를 따르게 했다. 맑은 황금빛의 차가 푸른 찻잔에 가득 부어졌다.


"폐하께선 다만 이 곳에서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겨울 유자향이 물씬 풍겼다. 


"..건방진 청이군."


카게야마는 눈썹을 까닥이고는 차를 마셨다. 킨다이치가 신중히 말을 받았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폐하께서 좋아하시니 섭정이 기뻐서 그럽니다."


쿠니미의 편을 들면서도 카게야마를 신경 쓰는, 킨다이치다운 말이었다.


"마음에 두셔야합니다."


좋은 분위기가 흐트러질까 걱정한 킨다이치의 대답을 쿠니미는 바로 부정했다.


"마음에 두셔서, 제 말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섭정."


킨다이치가 짧게 말렸다. 그제야 쿠니미는 뒤로 몸을 기댔다.



홀 : ..적어도

짝 : ....



친구들은 어릴 적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언제나 든든했던 친구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욕심이 담겨 있었다. 카게야마 또한 피하듯 몸을 뒤로 뺐다. 남에는 귤, 북에는 탱자. 친구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단패궁으로 내려온 자신이 변한 건가. 킨다이치는 종전 자신이 했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말을 해줘야할 지 몰랐다. 


"...."


대답없는 카게야마를 보며 쿠니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1~3 : ..장군.  

4~6 : 그저 (위험도 1) 

7~9 : 제가 무서우십니까 (위험도 2)

0 : 카게야마 (위험도 2)



"그저."

"...."

"이 궁에서 차를 한 잔 마실 시간만을 청하는 것입니다."


쿠니미는 천천히 무마하듯 말했다. 킨다이치가 옆에서 같이 한숨을 쉬었다. 차를 홀짝이는 카게야마에게 분위기를 바꾸려 킨다이치가 물었다.


"폐하. 안색이 좋지 않아보이셨는데 지금은 좀 어떠십니까."

"...뭐, 괜찮다."

"저번처럼 쉬다 가셔도 좋을 것입니다."

"되었다. 나만 돌아오길 바라는 궁녀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 말에 킨다이치는 오늘이 카게야마가 단패를 뽑는 날이란 걸 알아차렸다. 쿠니미는 말없이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쿠니미 아키라

○: 41 

◇: 38 (+1)

카게야마 토비오 

□: 36 (+0)


킨다이치 유타로

○: 33 (+2)

◇: 30 (+1)

카게야마 토비오 

□: 24 (+1)



카게야마가 돌아간 후 킨다이치는 심각한 눈으로 쿠니미에게 말했다.


"왜 계속 폐하를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내 말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대답해 줄 때까지."

"쿠니미..."

"..약 좀 발라야겠다."


쿠니미는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가, 곧 쿠니미를 따라 들어갔다.


*


단패궁에 돌아오면 네코가 놀고 있었다. 같이 좀 놀아주려하니 궁녀들이 우는 소리를 냈다.


"마마. 어서 들어가서 준비를 하셔요."

"무어가 늘 그리 바쁜 것이냐."

"마마.."


네코를 품에 안아든 카게야마는 들으란 듯 짜증을 냈다.



홀 : 어휴 

짝 : 네코, 가자



그러나 짜증을 내면서도 궁녀들의 애타는 얼굴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카게야마는 아쉬워하는 네코를 다른 궁녀에게 안겨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향을 풀어넣은 물에 들어가 몸을 씻고, 머리를 빗으며 왕이었던 여자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머리가 조금 기신 것 같기도 합니다."


상궁은 반들반들한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뒷목을 조금 덮은 머리카락은 상궁의 손이 닿을 때마다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마마."

"...."


치장을 끝낸 카게야마의 앞에 또다시 패가 올려졌다.



1 : 오이카와 토오루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츠키시마 케이      

4 : 쿠니미 아키라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쿠로오 테츠로      

8 : 킨다이치 유타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어머나."


상궁이 가장 먼저 놀란 신음을 내뱉았다.


"어찌 이런 우연이 계속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이와이즈미님.. 좋은데."

"..하긴 마마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겠지요."


궁녀들은 입술색이 지워졌다하며 다시 카게야마에게 다가왔다. 상궁은 패를 안고 서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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