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는 거북한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 보았다. 오늘은 밖에 나가야하니 평소보다 더 꾸며야한다고 궁녀들이 아침부터 요란하였다. 붉은 것을 입술에 찍어 바르고, 눈에도 뺨에도 뭔가를 발라 카게야마가 보기엔 그저 괴상해보였다. 하지만 궁녀들은 자신을 그 꼴로 만들어놓고는 아름답다며 칭찬하는 것이었다.
"마마. 인상 펴시지요."
궁녀들을 내보낸 상궁이 쓰게 웃었다.
"이제는 이 차림에 익숙하실 때가 안 되셨습니까."
"....거추장스럽다."
치렁치렁한 옷을 걸치며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 번 카게야마가 연극이 지루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 쿠니미는, 오늘은 전쟁극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무장한 청군과 홍군이 싸우는 내용이었다. 연애놀음보다야 흥미진진하겠으나, 실내에서 전개할 수는 없기에 야외로 나가야하는 것이다. 조금 단상을 쌓아두고 아래에서 병사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게 된다. 킨다이치가 그동안 훈련을 시켰다고 했다.
안 그래도 귀를 열면 시끄러운 병사들의 발소리가 제법 들렸다. 성국의 황족들이 있는데 병사들을 무장시켜도 되겠느냐고 카게야마는 상궁에게 물었다. 다들 쉽게 허락했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묘해졌다.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올라 카게야마가 애써 끌어모았던 병사들은, 아마도 성국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겠지.
"마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상궁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기분이 가라앉으니 왠지 이와이즈미가 보고 싶었다.
"서궁에 가겠다."
"..동궁에 안 가신지 제법 되었습니다."
상궁은 손으로 숫자를 헤아려보았다.
"한 번은 가셔야할 텐데요, 황제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오래 되었나. 오늘 같이 뵐 수도 있으니 그때 인사를 드리겠다."
"...."
상궁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카게야마는 상관하지 않고 서궁을 향했다.
서궁에는
홀 : 오이카와
짝 : 이와이즈미
조금은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기대했었던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실망한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토비오쨩이네."
고개를 들라고 하지 않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머리를 숙인 채 있어야 했다. 바로 앞에 도착한 오이카와의 신발 끝이 보였다. 남색의 정갈한 신발이 더 가까이 올 듯 들렸다가 멈췄다.
홀 : 오늘
짝 : 사과를
0 : 요즘
"오늘.."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으란 말을 하는 대신 직접 손끝으로 카게야마의 턱을 들어올렸다. 평소보다 공을 들여 화장을 한 카게야마는 짧은 머리카락이 무색하게도 예뻤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싱긋 웃었다. 손가락 하나로 들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빛을 받아 파랗게 눈이 부시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오이카와님?"
카게야마는 입을 뗀 후 말을 하지 않는 오이카와를 보며 초조하게 물었다.
"아직도..화가 풀리지 않으셨나요?"
"응?"
"제가 활을.."
오이카와는 손을 뗐다. 방금 느낀 감정이 조금 당황스러워 그는 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오이카와씨가 그만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둘까봐?"
"...."
"어라. 토비오쨩. 표정 왜 그래?"
"..아닙니다."
못 미더웠지만, 카게야마는 그래도 오이카와의 기분이 좋아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활은 잘 다룰 수 있겠어?"
오이카와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가 준 활은 카게야마가 만져보려고 했지만 역시 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는 쓸 수 있더라도 아마 능숙하게 다루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터였다. 카게야마의 대답에 오이카와씨는 활짝 웃었다.
"토비오쨩도 혼자 배우기엔 무리라니 역시 오이카와씨는 대단해!"
"..예. 오이카와님은 대단하십니다."
"방금 정말 진심이 안 담겨있지?"
"아, 아닙니다!"
오이카와가 장난스럽게 던진 말. 그러나 과할 정도로 카게야마는 부정했다.
"오이카와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들 중에서라도 가장, 활을 잘 쏘시니까요."
"...갑자기 그런 말 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거든."
하지만 사실인 걸요, 카게야마는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가 곧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이 사람을 닮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오이카와에게 활을 배우려고 했던 이유는 사라졌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홀 :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짝 : 하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곰곰히 생각에 잠긴 카게야마의 머릿속은 오이카와에게 쉽게 보였다. 반란에 의해 폐위되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원했던 대로 깔끔하게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왕으로 몰려 자리를 내려놓았으니 함부로 죽을 수도 없는 처지다. 혹자는 어쨌거나 살아있는 편이 낫지 않냐고 하겠지만, 오이카와는 어릴 적 제 곁을 따라다니던 카게야마를 떠올렸다. 지겹고 귀여운 꼬맹이였다. 또래보다 조금 작았던 몸은 언제 이렇게 커져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었을까.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오이카와는 문득 눈앞의 여자를 동정하며 말했다.
"오이카와씨, 하나하나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말이야. 가끔은 활쏘는 걸 보여줄 테니까."
"..예?"
"그때 훔쳐봐. 토비오쨩 그런 거 잘 하잖아."
어릴 때도 내 뒤에서 계속 감탄하며 서있었죠? 그렇게 물으면 카게야마는 살짝 들뜬 얼굴이었다.
"그래도 되나요?"
"여기 자주 오면."
"자주 오겠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라서 오이카와씨, 신용이 안 가."
"..자주..오겠습니다.."
"토비오쨩.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오이카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활을 배우려고 했던 이유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배우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궁 안에 덩그러니 놓인 활을 생각했다. 주위가 어떻게 변해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역시 카게야마는 활을 쏘고 싶었다.
오이카와는 궁녀에게 자신의 활을 가져오게 했다. 카게야마의 앞에서 뽐내듯 오이카와는 과녁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잔뜩 긴장한 공기가 카게야마의 팔에 닿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눈에 생생히 새긴다. 오이카와의 자세, 오이카와의 손 위치, 오이카와의..
"그렇게 쳐다보다가 오이카와씨 구멍나겠어요."
돌아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시선에 오이카와 또한 오싹해졌다. 누군가의 동경을 받는 건 즐거움보다는 부담이 늘 컸다. 그래도 오이카와는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카게야마의 눈 또한 빠르게 화살을 쫓았다. 고개를 돌릴 틈조차 아까웠다. 순식간에 날아가 콱 꽂힌 화살은 당연하게도 과녁의 정중앙이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보호구를 매만지고는 활을 잡았다.
"이 정도로는 만족 못 하지?"
"오이카와님께서 피곤하시다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 줄도 알게 됐고, 토비오쨩 정말 많이 컸다."
오이카와는 피식 웃고는 몇 개의 화살을 더 쏘았다. 모두가 명중이어도 볼 때마다 새로워 카게야마는 한참이나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오이카와씨는 정말 멋지네. 안 그래도 멋진데 큰일이야."
오이카와는 궁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말에도 카게야마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멋있으셨어요!"
"..하긴 토비오쨩은 오이카와씨가 활 쏠 때를 제일 좋아했지."
"예. 정말 멋있으셨습니다. 오이카와님이 활을 쏠 때는, 그..우선 자세가 정말 완벽해서,"
카게야마가 무어라 더 떠들려고 하자 오이카와는 그만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됐거든요. 오이카와씨가 활을 잘 쏘는 건 오이카와씨도 잘 알아."
"예..."
"다른 칭찬은 없어?"
"어떤?"
"정말 대답 빠르죠. 토비오쨩."
카게야마가 고심하고 오이카와가 살짝 열이 받기 직전, 이와이즈미는 반갑게 등장했다. 앉아있던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이와이즈미님!"
이와이즈미는 안에서 활을 쏘는 오이카와와, 그런 오이카와를 쳐다보는 카게야마를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연신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즐거운 얼굴을 보니 좋으면서도 왠지 이와이즈미는, 조금 아쉽게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를 질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으며 이와이즈미는 방에서 나갔다. 궁 안에 들어왔던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발견함과 동시에 일어서서 인사했다.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 왔구나."
보고 싶었다고 온 몸으로 외치니 눈을 뗄 수 없었다.
홀 : 오늘
짝 : 활을
"오늘.."
이와이즈미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놀라선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오늘 왜 그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예?"
"오늘 평소보다 더 예쁜데..."
"...이와이즈미님?"
놀리는 말 같았으나 진지하게 묻는 질문이었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빨개졌다. 오이카와는 질색했다.
"이와쨩. 혹시 몰라서 물어보는데 미쳤어요?"
"아니지, 오이카와. 눈이 있으면 봐라. 카게야마가 저렇게 예쁜데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윽.."
오이카와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이와이즈미를 보았다가, 카게야마를 살짝 외면했다. 이와이즈미의 눈이 카게야마의 얼굴 곳곳을 훑었다. 카게야마는 얼굴을 서투르게 문질렀다.
"궁녀들이 화장을 많이 해줘서 그렇습니다."
"본판이 별로라면 화장해봤자지. 토비오쨩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오이카와가 투덜거렸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오이카와 녀석도 네가 예쁘다네. 정말 예쁘다."
"..감사합니다."
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카게야마는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워하는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굳이 뺨에 붉은 칠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귀여운 기색이었다. 그저 남동생같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흠뻑 빠져서 도무지 자제가 될 것 같지 않아 무서웠다. 이와이즈미는 뒷머리를 긁다가 서둘러 카게야마에게 차를 권했다.
"아침은 먹고 왔어?"
"조금 먹었습니다. 아침부터 좀 바빠서."
"하긴, 오늘 궁 후원에 나간다고 했지."
그럼 뭐 좀 먹어야하는 거 아냐? 이와이즈미는 바쁘게 궁녀들에게 간식을 챙겨오게 했다. 그저 두고 보고 있던 오이카와가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와쨩. 제발 그만해줘. 오이카와씨 부끄러워."
"무슨 소리야."
"토비오쨩이 아가에요? 아예 먹여주지 그래."
오이카와는 혀를 찼다.
홀 : 그럴까?
짝 : 그랬냐
이와이즈미는 힐끔 카게야마를 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피곤해보였다. 먹여줄 수 있다면 먹여주고도 싶었다.
"카게야마. 그럴까?"
"예?"
"피곤하면 입만 벌려. 내가 먹여줄 테니까."
"이와쨩.."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보았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저를 든 이와이즈미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이와이즈미님. 저 혼자 먹을 수 있어요."
"그래, 이와쨩. 음식 정도는 혼자 먹게 해주는 게 오이카와씨에게도 예의겠죠."
"나도 괜찮은데.."
이와이즈미는 아쉽게 수저를 카게야마 쪽으로 돌려주었다. 단팥을 조려 만든 간식을 카게야마는 한입 떠넣었다. 무척 달아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1~3 : 그러면 조금 뒤에
4~6 : 너무
7~9 : 이렇게
0 :
오이카와는 피곤해졌다며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둘만이 남았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슬슬 가봐야지?"
"예."
"나가자."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지난번 보았던 매화나무엔 꽃봉오리가 매달려 있었다. 3월이 된다면 아마도 보기 좋게 꽃이 필 것이다. 그때가 기다려졌다. 손을 잡고 걸으며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었다.
"..어쩌지?"
"예?"
꽃을 보느라 앞의 말을 듣지 못한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돌아보았다. 이와이즈미가 곤란한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보았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렇게 예쁜데.. 아까워서 어쩌지."
"이와이즈미님. 농이 과하세요."
"나도 농담이라면 좋겠다."
잠시 후면 남들 또한 이런 카게야마를 보게 될 것이다. 그건 싫었다. 정말로 싫었다. 이와이즈미는 조심스럽게 카게야마의 손을 끌어당겼다. 천천히 손이 잡힌 채로 다가온 몸을 끌어안으며 이와이즈미는 속삭였다.
"정말 어떡하냐."
그 말은 카게야마에게 하는 말인지 이와이즈미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 45 (+2)
◇: 33 (+1)
카게야마 토비오
□: 37 (+2)
이와이즈미 하지메
○: 59 (+3)
◇: 29 (+1)
카게야마 토비오
□: 54 (+3)
오이카와는 들어오는 이와이즈미에게 싱긋 웃었다.
"이와쨩. 토비오쨩이 그렇게 좋아?"
"뭐?"
"부정할 거라면 관둬."
한시도 눈을 떼지도 않았잖아. 그러며 오이카와는 무심히 손에 든 책을 팔락팔락 넘겼다. 이와이즈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이카와의 손이 다시 한 번 짜증스럽게 책을 옆으로 던져두었다.
"좋아하는데 눈치 볼 건 없잖아."
"눈치는 무슨."
"오이카와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단패궁이 아이 낳은 후 제 나라에서 제대로 살 리가 없잖아? 오이카와는 눈썹을 위로 슬쩍 올리며 말했다.
"온갖 수식어를 붙여놓았어도 결국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야."
"오이카와."
"사람들 참 이상하지. 단패궁이라고 모셔두고는 아이만 낳으면 쉽게도 버리더라. 모두 그랬어"
"....."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오이카와가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을 확인했다. 단패궁에 대한 역사서였다. 후대에는 카게야마도 이 곳에 오를 것이다. 오이카와는 기지개를 폈다.
"여러 남자를 상대했다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느니, 다른 나라로 가는 게 토비오쨩에게도 훨씬 낫겠지."
"....."
"역시 데려가는 편이 좋잖아. 그쵸?"
그래서 데려가면? 그때는 어떻게? 이와이즈미는 그 후의 질문은 물어보지 못했다.
한달에 한 번 있는 호감도 상승의 날입니다. 카게야마는 장소로 가서 오사와 대신을 포함한 열 명의 사람을 만나고, 5번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대화를 했던 사람은 선택지에서 빠집니다. 카게야마는 각 상대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질문은 리레주가 정합니다. 어떤 질문이라도 상관없으나, 질문의 내용이 전개 상 아직 나오지 않았거나 나올 예정일 경우 상대가 답을 피하거나 거짓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대화 없이 끝납니다.
대화가 끝나면 서로 호감도만 +1 씩 오르며, 질문을 받은 후 카게야마가 질문하는 선택지의 레스 끝자리가 0일 경우 서로 +3 씩 오릅니다. 약속을 잡는 질문의 경우 다음날 오후의 약속으로 한정됩니다.
단상으로 올라가니 아래로 병사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래를 살펴보고 있으니 누군가 위로 올라왔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오이카와 토오루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츠키시마 케이
8 : 쿠로오 테츠로
9 : 코즈메 켄마
0 : 오사와 대신
"폐하."
쿠니미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밖에서 이러느냐."
"아무도 없으니 이러는 것입니다."
쿠니미는 얄밉게 웃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첫 리레주의 질문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ㄴ오사와 대신 밑에 있었다던 어린궁녀를 알고있어?
확실히 아무도 없었다. 오사와 대신 또한 없었다. 카게야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궁녀가 있었는데."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어떤 미동도 없는 얼굴엔 카게야마가 알아차릴 만한 흔적이 떠오르지 않았다.
"궁녀가 있었다.
"..예. 궁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쿠니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 왜 신경을 쓰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궁녀는 많고, 또 그만큼 많이 죽습니다."
"그 애 사야코를 닮았었어."
"...."
"얼굴이 닮은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자신을 위해 도망치자고 말했던 옛 약혼녀를 카게야마는 떠올렸다.
"오라비가 전쟁터에서 죽었다던데."
"...."
"혹시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해다오."
쿠니미는 가만히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알아보았자 기분좋을 리 없다는 걸 알텐데도 끝까지 묻는 모습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미련했고, 또 그 또한 쿠니미가 경애하는 카게야마였다.
"오사와 대신의 첩자였습니다."
"...."
"폐하께 갔을 때부터 눈여겨 보았습니다. 폐하를 독살하려 했던 것도 여러번입니다."
"..그랬군."
"상궁이 그때마다 발견하여 치우긴 했지만 혹시 머리를 잡을까 하여 두었더니."
어느 날 죽었더군요. 보기 흉해 치웠습니다. 쿠니미는 냉랭하게 말했다.
쿠니미 아키라
○: 48 (+1)
◇: 44
카게야마 토비오
□: 39 (+1)
오사와대신이 폐하를 계속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건 알고 계시지요. 궁녀를 왜 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궁녀가 적어도 폐하를 죽이려 했던 건 확실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쿠니미는 지저분한 일에 신경쓰지 말라고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카게야마도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극이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집중할 수 없었다.
1 : 킨다이치 유타로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오이카와 토오루
4 : 이와이즈미 하지메
5 : 히나타 쇼요
6 : 츠키시마 케이
7 : 쿠로오 테츠로
8 : 코즈메 켄마
9 : 오사와 대신
0 : 리레주 지정
ㄴ저 말고 다른 여자에게도 그렇게 예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궁녀가 무엇을 위해 들어왔는지는 쿠니미조차 정확히는 몰랐던 것 같지만, 쿠니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잘 알았다. 자신에게 무엇도 말해주지 않던 쿠니미가 일부러 오사와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를 경계하란 뜻일 것이다. 궁녀와 오사와의 일로 복잡하던 카게야마는, 그러나 이와이즈미를 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와이즈미님. 이 정도로 목소리를 줄일까요?"
작게 물어보는 소리를 듣고 이와이즈미는, 무릎에 얹은 카게야마의 손을 꽉 잡았다.
"그래. 딱 좋아."
"다행이에요."
"..예쁘다. 정말 예뻐."
아침에도 들었던 말을 들으니 쑥스러웠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이와이즈미쪽으로 기울였다가 불쑥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와이즈미님. 예쁘다는 말씀..자주 하셔요."
"예쁘니까.."
"여자들에게 다 예쁘다고 해주시는 것이 아니시구요?"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물어보면 이와이즈미는 놀란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매번..좋은 말씀만 해주시니까."
"그거야 네가 듣고서, 즐겁기를 바라며 말하고 있으니 그렇지."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손등을 어루만졌다. 무척 따뜻했다. 이와이즈미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나도 이렇게 자주 말해보는 건 처음이니 어색해하지마."
"예.."
"오해하지도 말고."
정말 예쁜데 그럼 뭐라고 말해? 이와이즈미가 오히려 궁금하다는듯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 62 (+1)
◇: 30
카게야마 토비오
□: 57 (+1)
청색과 홍색의 깃발이 펄럭였다. 한참 북을 두드리더니 전쟁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진영을 짜서 각자 자리로 위치했다. 대단한 장관이었다.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가 떠난 후 한참 집중했다. 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챙챙 귀를 울렸다. 와아아! 다시 한 번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옆을 돌아보면 누군가 와있었다.
1 : 킨다이치 유타로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오이카와 토오루
4 : 히나타 쇼요
5 : 츠키시마 케이
6 : 쿠로오 테츠로
7 : 코즈메 켄마
8 : 오사와 대신
9, 0 : 리레주 지정
동궁에 오래 가지 않아 걱정이 됩니다. 상궁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카게야마는 오랜만에 보는 우시지마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가 얼른 인사했다.
"우시지마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주는구나. 어서 고개를 들어라."
우시지마는 괴로운 목소리였다. 카게야마는 조금 가슴이 찡해졌다.
"첫 리레주의 질문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0을 잡았으므로 +3이 됩니다)
ㄴ오랫동안 뵙지 못해 보고싶었어요! 우시지마님은요? 후원에 꽃이 있어요 우시지마님과 같이 산책하며 보고싶어요 같이 보러 가실래요?
고개를 들고 카게야마는 철렁하였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시지마는, 마치 동궁에 홀로 앉아있는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를 마지막에 본 일이 언제였는지를 생각했다. 문안인사는 저번 달이 마지막이었다. 우시지마 또한 단월일날 보고 보지 못했다. 찾아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건 지나친 어리광이었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에게 솔직한 마음을 토해낸 남자였다. 그 기대가 무거워 은연 중에 피하면서도 혹시나, 자신을 계속 기다려주길 바란 건 아닐까. 카게야마는 못난 자신이 미워졌다. 다시 고개를 숙이면 우시지마의 손이 카게야마를 잡을 듯 하다가 멈췄다.
"그간 내가 보기 싫어졌느냐."
"아닙니다."
"사냥을 같이 가자고 한 것이 부담이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쁜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미뤄둔 남자에게 고개를 저었다.
"우시지마님께서, 바쁘실 것이 두려워서.."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내가 너를 볼 시간이 없을까."
"...제가 우시지마님을 괴롭게 한 것 같아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다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다시 들게 했다. 천천히 들어올리니 다시 우시지마가 보인다. 사내의 정직한 얼굴에는 애수가 잠겨있었다.
"면목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
"우시지마님."
"보지 못한 동안 이렇게 어여뻐졌으니, 황제를 기다리게 하기에 충분하구나."
익숙하고 다정한 말투. 저도 모르게 카게야마는 먼저 우시지마의 손을 잡았다. 살짝 놀란 우시지마는 호응하듯 큰 손으로 카게야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시지마님. 저도 오랫동안 인사드리지 못해 뵙고 싶었습니다."
"그랬구나."
"후원에, 꽃이 피었을 테니.."
카게야마는 우시지마를 올려봤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 부탁을 해도 되나 고민하였어도, 지금은 말하고 싶었다.
"꽃을 같이 봐주시겠습니까."
"..나와 함께?"
"와주신다면 기쁠 겁니다."
우시지마는 오랜만에 웃었다.
"가지 않을 수 없는 청이군."
우시지마 와카토시
○: 57 (+3)
◇: 30
카게야마 토비오
□: 42 (+3)
우시지마는 내일 가겠노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떴다.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카게야마는 다시 병사들에게 집중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은 킨다이치가 직접 훈련을 시켰다더니 과연 대단했다.
실제의 전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죽는 사람도 없으니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 나약한 생각이 들었다.
1 : 킨다이치 유타로
2 : 오이카와 토오루
3 : 히나타 쇼요
4 : 츠키시마 케이
5 : 쿠로오 테츠로
6 : 코즈메 켄마
7 : 오사와 대신
8, 9, 0 : 리레주 지정
ㄴ츠키시마
이런 자리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츠키시마가 옆에 있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깜박 떴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밤에 어땠어? 왕님."
"예?"
"설마 두 번째의 선물도 무시당할 줄은 몰랐거든."
"아..저, 무척 예뻤습니다. 어젯밤에 불을 켜 보니 정말 아름다워서.."
횡설수설하는 카게야마를 보고 츠키시마는 비웃었다.
"됐어. 왕님. 그 짧은 어휘력으로는 그정도가 한계겠지."
"첫 리레주의 질문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ㄴ선물이 너무 예뻐 넋놓고 보느라 서신을 잊어버렸습니다 죄송해요 그런 어여쁜 물건은 어디서 구하신건가요?
첫 번째는 꽃밭을 옮겨다놓은 듯한 꽃다발. 두 번째는 밤하늘에서 따온 것 같은 등. 츠키시마의 선물엔 감수성을 건드리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자신을 비웃는 츠키시마에게 화도 내지 않고서 카게야마가 말했다.
"정말.. 정말 예뻐서 그랬습니다."
"그래. 이제 됐어. 왕님."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카게야마의 큰 소리에 츠키시마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왕님. 조용히 해."
"츠키시마님께서 제 말을 무시하셔서.."
"선물을 무시한 건 왕님이거든."
"아닙니다. 낮보다 밤에 보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켜봤는데,"
카게야마는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빛나는 달은 그대로 하늘에 올려보내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보다가 예뻐서..서신을 잊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츠키시마를 쳐다보면 그닥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하긴, 왕님께선 하나만 보고 또 하나는 잊어버릴 것 같긴 해."
"...칭찬은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츠키시마님."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츠키시마님. 그런데 그런 어여쁜 물건은 어디서 구해오시는 건가요?"
"응?"
"보통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달을 만들 수 있도록 가림막을 친 것도 그렇구요."
"만드는 거야 주문하면 만들 수 있지."
도안만 있으면 만들지 못하는 곳이 어딨겠어. 츠키시마는 흘리듯 말했다. 그러면 그 도안이란 건 어느 분께서, 라고 묻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진 츠키시마가 자리를 떴다.
츠키시마 케이
○: 47 (+1)
◇: 29
카게야마 토비오
□: 38 (+1)
청군의 우세로 보이던 흐름은 순식간에 홍군으로 넘어갔다. 점점 청군의 푸른 기로 접근하던 홍군의 장군이, 요란하게 기를 낚아챘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함성이 다시 들렸다. 북을 터질 듯이 두드린다. 홍군의 승리가 눈앞이었다. 카게야마는 감탄하며 보았다.
1~2 : 킨다이치 유타로
3~4 : 오이카와 토오루
5~6 : 히나타 쇼요
7~8 : 쿠로오 테츠로
9~0 : 코즈메 켄마
"토비오쨩. 전쟁을 그렇게 했는데도 저런 게 재밌어?"
놀리듯 말하며 옆에 앉은 남자는 오이카와였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습니다."
"왜?"
"아무도 안 죽어서, 편하게 볼 수 있어요."
"..그건 그렇네."
오이카와는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졸렸던 모양이었다.
"첫 리레주의 질문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ㄴ혹시 이와이즈미님의 취향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오이카와의 등 뒤로 이와이즈미가 보였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였다. 소꿉친구라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카게야마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오이카와님."
"응."
"혹시 이와이즈미님은 어떤 걸 좋아하시는 지 알고 계시나요?"
"네?"
오이카와가 되물었다. 카게야마는 멋쩍게 물었다.
"좋아하시는 거나..음식이나.."
"여자나?"
"예?"
"취향같은 거 말이지."
오이카와의 얼굴이 카게야마의 앞으로 바싹 닿았다. 무언가를 속삭일 말하려다가 생긋 아름답게 웃어보인다.
"이와쨩이 어떤 취향을 좋아하는 지 궁금해?"
"..예."
"왜?"
"..저한테 잘 해주시니까, 저도 이와이즈미님께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도와드리고 싶어서."
"...토비오쨩 답네."
오이카와의 숨소리가 천천히 귓가에 닿았다. 속삭이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 귀를 잡아먹을 듯 입을 대어, 카게야마는 몹시 간지러웠다. 괴로움을 참는 것처럼 미간을 찡그리면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박하고.."
"...?"
"엄청 야한 여자를 좋아해."
"예?"
"천박하고 경박해서, 눈뜨고는 못 볼 그런 여자. 그런데 몸은 야해도 마음은 꼿꼿한 거지."
오이카와는 쿡쿡 웃었다.
"몸이 마음을 배반해서 괴로움을 느끼면 더 좋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결국은 손 안에 꺾고 싶어지는 그런 여자를, 좋아해."
카게야마는 뒤늦게 이와이즈미님께서요? 라고 물었다.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
○: 47 (+1)
◇: 34
카게야마 토비오
□: 39 (+1)
홍군의 승리로 극이 끝났다. 카게야마는 박수를 쳤다. 떨어져있던 킨다이치가 다가왔다.
"보기에 괜찮으셨습니까."
"재밌었다. 네ㄱ..장군께서 수고하셨습니다."
카게야마는 스쳐지나가는 오사와대신을 보고는 말을 높였다. 그래도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했다.
"별 것 아니었습니다."
"고생 많았다."
짜맞춘 듯 움직이던 병사들의 움직임은 가볍게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킨다이치에게 치하한 카게야마는 얼른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간식을 먹어 배가 빵빵해진 네코가 달려왔다.
"심심했구나."
왕왕, 네코가 대답하듯 짖었다. 상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어찌나 마마를 기다리며 우는 지 귀가 다 아팠습니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쪽쪽 입을 맞춰주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기분 좋게 네코를 안아든 카게야마는 침상으로 올라갔다. 모처럼 재밌는 것도 보고, 여러 사람과 만났다. 마음에 무거웠던 일들을 덜어내 훨씬 가벼웠다.
"오늘은 참 근사했어."
혼자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았다. 팔 안에서 꼬리가 움직여 간지러웠다.
15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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