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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55. 2월 16일



네코가 뺨을 핥았다. 으응..뒤척이던 카게야마는 눈을 감은 채 웃으며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갑자기 주인에게 안긴 강아지가 낑낑 소리를 냈다. 아마 카게야마의 팔에 꼬리가 깔린 모양이었다. 착하게도 물지는 않지만, 거북한지 온 몸을 비튼다. 한참 네코를 안고 있던 카게야마는 상궁이 들어오는 소리에 겨우 일어났다.

자유의 몸이 된 네코가 후다닥 침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마마. 오늘도 날씨가 참 좋습니다."


밤새 카게야마의 방을 밝혔던 월등을 끄며 상궁이 말을 걸었다. 대답 대신 열린 창을 보니 반짝반짝 햇살이 빛났다.


"정말 좋구나.."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날이 따뜻하면, 쿠니미의 다리도 추울 때보다야 걷기 편할 것이다. 어제 단상을 오를 때도 한결 좋아보였다. 오사와 대신이 지나치는 바람에 킨다이치와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섭정궁을 가겠다고 하니 상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극이 아주 멋졌다고 하니, 고생한 섭정궁을 위로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너는 내가 섭정궁에 간다고 하면 기뻐하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상궁은 민망한 얼굴로 웃었다. 쿠니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을 죽이려던 궁녀를 막은 건 이 상궁이라고 했다.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몰라도 믿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무심히 말했다.


"늦겠다. 빨리 챙겨라."

"예."


카게야마는 네코를 둔 채 단패궁을 나왔다. 정말로 날이 좋았다.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섭정궁에 다가갈수록 검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조심히 걸었다. 섭정궁 근처에 가니 앞서 카게야마의 방문을 알리려던 젊은 궁녀들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수련을 하는 킨다이치에게 방해가 될까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 탓이다. 궁녀들의 나이가 어린 탓도 있겠지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워낙 날랬기 때문이기도 했다. 


불쑥 말을 걸면 베어질 것 같은 공기가 흘러 넘쳤다. 아마 카게야마가 오늘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카게야마는 궁녀들을 돌려보냈다. 한참 그 자리에 서서 보고 있으면 그리움이 안쪽에서부터 고여갔다.



홀 : 킨다이치

짝 : 폐하?



든든하게 자신의 옆을 지켜주던 친구. 몸을 꽉 채운 감정은 이름으로 부화해 카게야마의 입 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부르기 전, 킨다이치는 불현듯 카게야마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쳤다. 놀란 킨다이치가 얼른 검집에 검을 넣고 카게야마에게로 뛰듯이 걸어왔다.


"폐하? 오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내가 장군을 방해할 순 없지 않느냐."

"아닙니다. 오늘, 와주실 줄은 몰랐기에.."


킨다이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감격한 얼굴이었다. 카게야마가 오면 늘 킨다이치는 이런 표정이었다. 왕도 아닌 자신에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는 듯 황송하게 올려본다. 카게야마의 키가 더 작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홀 : 여전히 

짝 : 어제는



"여전히,"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보며 조금 웃어주었다.


"멋진 검이구나."

"...아직 부족합니다."

"사양할 것 없다. 네 실력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킨다이치는 검집에 넣은 손잡이를 꾹 쥐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듯해 카게야마는 기다렸다. 몇 번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고르던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킨다이치의 등 뒤로 해가 떠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가 진 얼굴을 카게야마는 올려다보았다.


"..제가 지켜야할 것이 있으니 더욱 정진해야합니다."

"알고 있다. 너는, 키타가와의 장군이지."


카게야마가 가장 신임하던 장군은 돌아온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킨다이치도 호위하듯 그의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걷는 걸음걸이에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피곤했을 텐데 일찍 일어난 모양이군."


어제의 연극에 대해 언급하면 킨다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즐겁게 보셨으니 개의치 않습니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늘 하던 훈련을 조금 바꾼 것이니 큰 수고를 들인 건 아닙니다."


킨다이치의 계속된 겸양에 카게야마는 일부러 입을 삐죽였다.


"그럼 나는 네가 수고를 덜한 걸 보고 기뻐했단 말이구나."

"..! 그런 말이 아닙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섭정이 이마를 손으로 가리고서 웃고 있었다. 


"폐하. 장군을 지나치게 놀리지 마십시오."


사심없이 웃는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은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장군이 폐하께 심약한 구석이 있는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매번 장군을 놀리십니다."

"폐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저는,"


킨다이치가 머뭇거리며 놀이상대가 되어주겠다고 자원했다. 워낙 진지한 말투라 또 놀리기엔 양심이 찔렸다. 카게야마는 궁녀가 내온 유자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날씨가 참 좋더군."


카게야마가 툭 말을 뱉었다. 쿠니미가 얼른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있구나."

"봄은 언제나 오지요."



홀 : 네 다리도 

짝 : 봄이 오면



"네 다리도 날이 따뜻해지면 좀 괜찮아져야하는데.."

"...."


카게야마의 말에 쿠니미는 입을 다물었다. 방 안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킨다이치가 침묵을 깨고서 말했다.


"폐하께서 걱정하시니 금방 좋아질 겁니다."

"몇 년을, 몇 년 동안이나, 낫지 않으니.."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처를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면 카게야마는, 눈 앞이 깜깜해지다가 그만 죽을 것처럼 손이 떨려오고는 했다. 미간을 잔뜩 찡그린 카게야마의 손을 쿠니미가 잡았다.


"폐하. 언제나 제 걱정을 해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

"...빨리 좋아져야하는데."

"좋아질 겁니다."


옆에서 킨다이치가 거들었다. 하지만 그 말이 그저 위로에 그친다는 걸 셋은 알고 있었다. 마구 난도질당했던 다리다. 저 다친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강해져라, 왕자. 강해져. 그래야만...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였다. 쿠니미의 손이 살짝 떠는 카게야마를 꽉 쥐었다.


"폐하."

"...."

"무슨 생각해."

"키타가와는, 강해지겠지?"


카게야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쿠니미 너는 똑똑하고, 킨다이치 너도 출중한 무예를 가졌잖아."

"...이미 좋았던 나라야."

"내가 망칠 뻔했어."


오며가며 듣는 이야기로는 전쟁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이 지내기 좋다고 했다. 젊은 남자들이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보면 모든 것 은 카게야마의 잘못이었다. 카게야마는 자꾸만 궁녀의 생각이 났다. 전쟁으로 오라버니를 잃었다는 그 궁녀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죽이고 싶어했을까. 



홀 : 네가

짝 : ..내 다리는



"..내 다리는..."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위로하려던 입을 멈췄다. 실상은 위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카게야마가 자신을 걱정하는 일이 좋았다. 미칠 듯이 좋았다. 계속 걱정해준다면 나머지 다리 또한 똑같은 꼴이 되어도 상관 없었다.


"폐하. 날이 따뜻해지면 섭정도 걷기 편하니 염려마십시오.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킨다이치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장군만 믿겠다."


섭정은 워낙 제 몸을 돌보지 않으니까.. 카게야마는 어색하게 웃었다.



1~3 : 장군은

4~6 : 저는

7~9 : .... (위험도 +2) 

0 : 돌보지 않아야 (위험도 +2)



"...."


몸을 돌보지 않아야 저를 더 자주 보러오실 것이 아닙니까. 쿠니미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눌렀다. 지금 입을 열면 카게야마가 놀라서 도망가버릴 만한, 그런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쿠니미는 말없이 웃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킨다이치는 한결 편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듯 말했다. 


"폐하. 그러니 울적한 얼굴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가슴이 아픕니다."

"...잠시 옛 생각이 나서 그랬다. 너는 쓸데없이 또 걱정을 하는 구나."

"장군은 덩치에 맞지 않게 새가슴이지 않습니까."


쿠니미가 동참했다. 킨다이치는 또 다시 곤란해져 아닙니다, 아닙니다, 연신 그런 말이었다.




쿠니미 아키라

○: 49 (+2)

◇: 44 (+2)

카게야마 토비오 

□: 40 (+1)


킨다이치 유타로 

○: 35 (+2)

◇: 31 

카게야마 토비오 

□: 25 (+2)



카게야마는 반역자들을 신경 쓰이게 했다고 생각했는지, 방금의 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한 후 돌아갔다. 카게야마를 밖에 모시고 나갔던 킨다이치가 궁 안으로 돌아왔다. 손으로 다리를 주무르던 쿠니미에게 킨다이치가 말했다.


"폐하께서 지나치게 네 다리를 걱정하시니 조금은 괜찮은 척이라도 해."

"...그게..."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쿠니미."

"폐하가 네가 아닌 성국의 아이를 임신하면 어쩌려고?"

"..뭐?"

"벌써 여러밤을 보냈지. 아직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


그래서 그 누군가가 카게야마를 데려가려고 하면 어쩌려고? 쿠니미의 말에 킨다이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말했다.


"...그걸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보내드릴 수 밖에."

"넌 그렇겠지만 난 아니야."

"....."

"나는 절대 못 보내."


다리를 인질로 삼아서 붙잡는다. 그래도 쿠니미는 언제나 그런 상상을 했다. 카게야마는 도망가려다가 문득 자신의 다리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그러면 뒤에서부터 쿠니미는 그를 끌어안았다. 그런 시시한 상상이었다.


*


카게야마는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가벼운 얼굴로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오늘 밤을 위해 준비하던 궁녀들은 카게야마에게 인사하곤 제각기 흩어졌다. 결국 치장을 하는 건 자신인데 무엇이 그렇게 바쁠까. 대충 요기를 한 카게야마는 



1~2 : 단패궁 

3~4 : 단패궁 

5~6 : 단패궁 

7~9 : 단패궁 

0 : 단패궁



카게야마는 궁에 남았다. 네코를 쓰다듬어보다가 슬쩍 고개를 창 밖으로 보았다.



홀 : 손님이 찾아왔다 

짝 : 손님이 찾아왔다



"우시지마님.."


약속을 잊으신 걸까. 카게야마는 시무룩해졌다. 역시 무리하게 약속을 잡았던 걸지도 몰랐다. 어떤 연락도 없으니 잊으신 게 분명했다. 카게야마는 쓸쓸하게 일어섰다. 네코가 카게야마를 따르듯 종종 뛰었다. 


"우시지마님께서 안 오시는구나."


오늘은 못 뵙는 걸까.. 카게야마는 단패궁의 문을 열었다.



1 : 우시지마 와카토시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우시지마 와카토시 

5 : 우시지마 와카토시 

6 : 우시지마 와카토시 

7 : 우시지마 와카토시 

8 : 우시지마 와카토시 

9 : 우시지마 와카토시 

0 : 우시지마 와카토시



문을 연 그 순간 앞서 했던 모든 상념이 사라졌다. 무언가가 바뀐 기분이었다. 눈 앞에 선 우시지마를 본 카게야마가 밝게 웃었다. 우시지마가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우시지마님."

"기다리게 했나보군."

"아닙니다."

"..기다리길 원했는데 아쉽구나."


사실은 기다렸습니다. 살짝 아쉬운 우시지마의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고분고분 말했다.


*


어제 보았는데도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손을 단단하게 잡고 후원으로 나섰다.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와 있는 시간이 좋았다. 후원으로 돌아가보면 살짝 풀린 날씨에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구경할 만큼은 아니었다. 꽃이 피었을 테니 같이 봐달라고 말했던 카게야마는 부끄러워졌다.


"아직 꽃들에겐 겨울인가봅니다."


그렇게 말하면 머리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가 우시지마를 올려다보았다.



홀 : 피지 않은 꽃 

짝 : 그래도



"미처 피지 않은 꽃으로 유혹받은 건 처음이다."

"..죄송합니다."

"그만큼 네가 나를 부르고 싶었다는 뜻이겠군."


말 한마디로 황제를 움직이게 하다니 대단한 여자로다. 우시지마가 기분 좋게 웃으니 다행이었다. 카게야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꽃이 핀 줄 알았습니다."

"실컷 꽃 구경은 했으니 괜찮구나."

"어디에서,"


어디에서 보았냐고 물으면 우시지마의 손이 카게야마의 뺨에 살며시 닿았다. 천천히 쓰다듬어주다가 귓바퀴를 타고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카게야마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어차피 내가 보러 온 건 이 꽃 외엔 없으니 말이다."

"..우시지마님."


우시지마의 심장소리가 가까워졌다.



홀 : 입맞춤

짝 : 포옹



눈을 감으면 심장과 심장이 맞닿아 두근두근하는 고동이 전해졌다. 우시지마는 품에 안은 카게야마의 어깨를 꽉 잡았다. 정말로 꽃이었다면 좋았을 터였다. 그러면 보석으로 만든 화분에 심어두고서 매일 금비료를 주며 고이 길렀겠지만. 품 속의 여자는 그런 식으로 관상당하는 걸 견디지 못할 것이다. 


"네가 오지 않는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으냐."

"...우시지마님..."

"보게 되면 당장 화를 내리라 생각했지. 감히 시라토리자와의 황제를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우시지마를 올려다보는 얼굴은 어제처럼 꾸미지는 않았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화를 내지 못하겠구나."

"...."

"정말 무섭게 화를 내려고 했는데."

"..무서운 건 싫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자주 얼굴을 보여다오, 우시지마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는 오늘 우시지마와의 시간이


1~3 : 꽃이 피었으면 좋았을 텐데(호감도 +0)

4~6 : 평소의 우시지마님이셨다 (호감도 +1)

7~9 : 우시지마님은 정말 다정하셔 (호감도 +2) 

0 : 더 자주 찾아가고 싶어 (호감도 +3)


카게야마 토비오 

□: 45 (+2)



우시지마는 오늘 카게야마와의 시간이


1~3 : ...마음이 풀렸다 (+1)  

4~6 : 나를 위해 마음을 쓰다니 (호감도 +2 위험도 +1)

7~9 : 오늘 밤은 누구와 (호감도 +3 위험도 +2)

0 : 어서 시라토리자와로 (호감도 +3 위험도 +3)


우시지마 와카토시

○: 60 (+1)

◇: 30



조금 늦게 단패궁으로 왔던 것은 여자에게 푹 빠진 자신의 모습이 혹시나, 우스워보일까 걱정해서였다. 못 본 사이에 생긴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우시지마는 끌어안은 카게야마의 머리 위에 짧게 입을 맞추고 놓아주었다. 입술이 닿은 곳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는 카게야마는 언제나와 똑같았다. 무섭게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염려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 마음이 풀린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에게 입을 열었다.  


"..네 궁에 직접 오는 건 처음인 것 같군."

"그러세요. 처음이십니다."


자신이 궁 안에 있을 동안 얼마나 다른 사내들이 들락날락했을 지 알 수 없다. 우시지마는 단패궁을 둘러보았다. 오늘 오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에는.


"가봐야겠구나."


다정히 말하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우시지마님! 하고 우시지마를 불렀다. 걸음을 멈춘 우시지마가 돌아본다. 카게야마는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했지 않느냐. 오지 않을 수 없는 청을 하였다고."


우시지마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주었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를 배웅하고서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궁녀들이 서둘러 준비를 해야한다며 카게야마를 잡았다. 서둘러 씻고 치장을 한 카게야마는 머리에 닿은 입술이 생각나 그 주위를 만져보았다. 상궁이 정색했다.


"마마! 머리가 흐트러지십니다."

"짧은 머리가 흐트러져봤자.."

"좀 더 머리카락이 기셔야하는데.."


어쩜 이렇게 머리털이 자라시지 않습니까. 상궁은 한탄했다. 궁녀들이 보석함을 들고 왔다. 과실이 달린 나무처럼 주렁주렁 보석을 달고 있자니 상궁이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마마."


상궁이 패를 내밀었다. 더 이상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말없이 쳐다보던 카게야마는 서둘러 하나를 집었다.



1 : 오이카와 토오루    

2 : 우시지마 와카토시 

3 : 츠키시마 케이      

4 : 쿠니미 아키라      

5 : 이와이즈미 하지메 

6 : 히나타 쇼요        

7 : 쿠로오 테츠로      

8 : 킨다이치 유타로   

9 : 코즈메 켄마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킨다이치 유타로]


"어머나."


상궁이 짧게 신음했다. 지난 밤에는 쿠니미였고 오늘은 이어서 킨다이치니 놀란 탓이었다. 카게야마 또한 뚫어져라 패를 보았다. 킨다이치 유타로.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친구. 키타가와의 대장군. 아침까지 놀리던 친구의 이름을 본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이름을 보았을 때처럼 막연한 먹먹함을 느꼈다. 


"마마. 그럼 섭정궁에 알리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친구와 밤을 보내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도 카게야마는 한참 동안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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