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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68. 2월 29일





카게야마는 베개 뒤로 고개를 젖혔다. 그러면 계속 카게야마를 괴롭게 만들던 입술이 부드럽게 따라왔다. 목에 난 푸른 손자국. 그 목줄기를 훑으며 오이카와는 입을 맞췄다. 카게야마는 가늘게 눈을 떴다.


"오..이카와님..!"


카게야마는 손을 들어 오이카와의 가슴을 밀었다. 응? 왜? 오이카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밤새도록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품에 안아주었다가 재촉하듯 다시 깨웠다. 몇 번을 그렇게 당하니 오이카와가 뒤에서 끌어안을 때마다 겁이 났다. 카게야마는 훌쩍거렸다.


"응...읏..아침, 인..흐앙...!"


더 이상 오이카와를 기쁘게 할 힘이 없었다. 단지 들어온 것을 품은 채 카게야마는 꿈틀거렸다. 짐승의 새끼처럼 젖어 있는 카게야마는 빈 말이라도 예쁘다고 할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보기좋던 화장도 지워지고 장신구는 전부 바닥에 떨어져 그야말로 날 것의 상태.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가슴에 잇자국을 내자 시달린 몸이 다시 한 번 오이카와를 꽉 물었다. 밤새도록 가지고 놀았던 귓불을 핥으며, 오이카와는 물었다. 


"아침이야?"

"ㅎ..응...아침..그만.."


오이카와는 창을 보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의 말대로 새벽이었다. 창 밖으로 해가 뜨고 있어, 희고 푸르스름한 새벽 하늘이 보였다. 


"오이카와씨는 아직 시간 남은 것 같은데?"

"흡..ㅇ..오, 이카, 와..아, 아응..!"

"오이카와씨의 아기 줄 테니까, 얼른.."


토비오쨩, 임신해야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다리를 잡아 올렸다. 흰 다리가 무력하게 끌려왔다가, 곧 꿰뚫려 공중에서 흔들렸다. 


*


아침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놔주었다. 카게야마는 그대로 풀썩 엎어졌다. 상궁이 깨우는 소리가 들렸으나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카게야마의 귀로 '자게 해도 좋아,' 라는 오이카와의 말이 들렸다. 오이카와님. 떠나고 계셔. 어서 인사를.. 그러나 까무룩 잠이 든 후 눈을 뜨면 상궁이 다시 카게야마를 부르고 있었다.


"마마. 마마. 일어나십시오."

".....못 일어나겠다.."


상궁은 난처한 얼굴로 우선 카게야마의 몸을 닦았다. 다리 사이에서 울컥거리며 흐른 것도 조심스레 닦아내고, 얼굴에 번진 화장도 닦아낸다. 마마. 일어나십시오.. 그녀는 카게야마를 억지로 일으켜 입가에 꿀물을 묻혔다. 단 것이 입가에 닿자 카게야마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달다..눈을 감고 카게야마는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냈다. 상궁은 수저로 꿀물을 떠 먹여주며 말했다.


"아침은 드셔야지요."

"..먹지 못하겠어."

"인사는.."


상궁이 어렵게 물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오이카와의 호감도가 50을 넘었으므로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오이카와는 단패궁에서 서궁으로 돌아가던 중 서궁의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남궁을 제외하고 한 명과 마주쳐 대화를 합니다. 



1~3 : 섭정궁

4~6 : 동궁 

7~9 : 북궁

0 : 리레주 지정 (이와이즈미, 남궁 제외)



우시지마는 흐트러진 차림새로 걸어오는 오이카와와 마주쳤다. 어젯밤 누가 단패궁에 들어갔는지 우시지마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을 섞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달랐다.


"우시와카쨩. 좋은 아침."

"....이제 나오는군."


오이카와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늦게 나왔지. 토비오쟝이랑 좋은 시간.. 보냈거든."


우시지마는 일부러 자신을 건드리는 그 말투를 바로 떠올렸다. 언젠가 단패궁을 나와 마주쳤던 우시지마에게 오이카와가 물었던 말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의 우시지마는,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카게야마의 생각 뿐이었으므로. 오이카와는 엉망으로 구겨져있는 옷을 추슬렀다. 우시지마는 더 이상 그런 오이카와를 보고싶지 않았다.


"가겠다."

"우시와카쨩."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재밌는 이야기 들었거든."


우시지마는 고개를 돌렸다. 오이카와의 얼굴에서는 왠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토비오쨩한테 신경쏟을 때가 아니지 않아? 황제 폐하께서는."

"...시라토리자와의 일에 아오바죠사이가 건방지군."

"굳이 따지자면 시라토리자와가 아니라 우시와카쨩의 일이지?"

"...."

"애초에 황제가 이렇게 오래 나라를 비우는 것도 말이 안되잖아. 그러니까 어서 돌아가."


건방지군.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노려보았다.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올렸다.


"토비오쨩이랑 나는 계속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이쪽은 아직 여유가 있어서 말이야."

"...오이카와."


우시지마는 이 대화가, 단순히 자신을 놀리기 위함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이카와는 자신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 말은 오이카와 역시 카게야마를.. 우시지마가 망설이는 사이 오이카와는 뒤로 물러서 길을 비켰다. 그리고 말했다. 


"황제 폐하. 어서 궁으로 돌아가지 그래."


그 말은 동궁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반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우시지마와 만났을 경우 일정한 확률(0잡이)로 전의 상황과 상관없이 오이카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며 레점에 따라 오이카와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위험도가 올라갈 최소확률이 생깁니다



카게야마는 쉬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을 알고 있을 섭정궁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수면이 부족한 머리는 속에서 누가 붙잡고 흔드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카게야마는 중얼거렸다.


"남궁.."

"마마?"

"..남궁에 가겠다."


카게야마의 말에 상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가서 또 주무시는 건 아닐까. 분명 그럴 것 같았다. 목의 흉한 손자국을 옷으로 가리지 못한 상궁은 대신 분을 목에 발라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서 보면 티가 났다. 상궁은 근심하며 카게야마를 배웅했다. 카게야마는 거의 반쯤 졸며 남궁에 도착했다. 햇빛 아래 서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도착하면, 정원에 누군가 서있었다.



홀 : 쿠로오 

짝 : 코즈메



쿠, 로오님. 밤에 얼굴을 보시고 가셨단 말을 들었다. 혹시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걸까? 카게야마는 멍한 얼굴로 쿠로오를 쳐다보았다가 뒤늦게 인사했다. 움직일 때마다 빈 속에 먹은 꿀물이 뱃속에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마마님?"


손을 들어 인사하려던 쿠로오는, 카게야마가 평소와 다른 것을 깨닫고 다가왔다. 가까이에 온 쿠로오를 보고 카게야마는 입을 옆으로 벌려 미소지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남궁에 오면 늘, 즐거운 일만 가득...



홀 : 손 

짝 : 목



쿠로오는 근처에 오고 나서야 카게야마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화장으로 가리려고 했지만 차마 다 가리지 못한 목의 손자국. 푸른 손자국은 분명 남자의 것이었다. 아오바죠사이. 미쳤군..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살펴보면 카게야마의 눈에 졸음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한 눈 아래는 피곤에 절어 있었다. 쿠로오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마마님. 손."


흐릿하게 눈을 감고 있던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말에 얼른 손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쿠로오의 손위에 올린 손가락들은 무언가를 쥐려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졸립구나."

"아닙..니다.."

"눈 감아봐. 마마님."


반가운 말에 카게야마는 눈을 얼른 감았다. 잠이 왔다. 따스한 햇볕을 쬐며 이대로 눕고 싶었다. 



홀 : 입 

짝 : 발



"피곤해?"

"아니요.."

"정말?"


카게야마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반은 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손 안에서 꼬물거리는 손가락들이 귀여웠다. 쿠로오는 이런 얼굴을 본 적 있었다. 바로 얼마전 밤이었다. 머리카락을 만지고 뺨을 쓸어도 카게야마는 깨지 않았다. 갓난아이처럼 잠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또 귀여웠다. 나도 미쳤군. 쿠로오는 감은 채로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쳐다보았다. 손끝으로 건드려보면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뜨지 않는다. 


"마마님."

"...."

"자는 거야?"


..오늘도 위험한 상황이거든? 쿠로오의 말에도 카게야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아래로 기울인 채 꾸벅꾸벅 잠을 청하고 있다.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그 기울어진 턱 아래를 잡았다. 손끝으로 들어올리자 카게야마의 입이 벌어졌다.


"마마님..안 자는 거 맞지?"

"ㅇ..."


긍정도 부정도 아닌 신음소리.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벌어진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손을 내려 어깨를 잡아 가까이 끌어당긴다. 카게야마는 깜짝 놀라 후다닥 눈을 떴다. 


"읍..!"


쿠로오의 눈동자가 똑바로 카게야마를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태양. 발 밑의 잔디들. 온화한 봄바람은 남궁의 정원에 구비구비 흘렀다.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였다. 눈을 돌리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벚나무가 하얗게 시야에 들어왔다. 옷 위에서 카게야마를 잡아당기는 손은 꿈이 아니었다.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리면 더 가까이 느껴지는 쿠로오의 숨결. 읍..! 고개를 저으면 따라오는 것 같이 뒤쫓다가 순순히 입술을 떼었다. 카게야마는 젖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쿠로오님. 갑자기..!"

"에이, 마마님 깼네."


쿠로오는 빈 손을 들었다. 금방 풀어져 웃는 얼굴에 화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잠 깨워줬으니까 좋은 거 아니야?"

"...놀랐잖아요."

"손."


쿠로오의 말에 다시 카게야마는 손을 내밀었다. 잠시 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기도 전에, 쿠로오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카게야마가 당황해 손을 빼려해도 힘을 주어 잡는다. 


"얼른 들어가서 쉬자. 마마님."

"앗..쿠로오님. 손이..!"

"응. 얼른 가."


쿠로오는 끄덕끄덕 웃으며 카게야마를 데리고 남궁으로 들어갔다.


*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손에 잡혀 남궁으로 들어왔다. 안에서 책을 보고 있던 코즈메가 살짝 일어나 인사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갸웃 움직인다. 고양이같이 귀여운 움직임이었다. 카게야마는 졸린 눈으로 킥킥 웃었다.


"왜?"

"코즈메님. 고양이같으세요."


평소라면 실례라며 참았을 말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말을 해놓고 아차, 하며 코즈메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코즈메는 기분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난 고양이, 좋아해."

"저도 좋아합니다."


카게야마는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쿠로오가 마마님, 많이 졸린가보네..따라 웃는 소리가 들렸다. 코즈메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홀 : 피곤

짝 : 혹시



코즈메는 들어올 때부터 피곤해하던 카게야마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저번에도 계속 몸이 불편해보였다. 코즈메는 망설이던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 혹시.."

"예."

"어디 아파?"

"예?"


카게야마는 뻑뻑한 눈을 억지로 뜨고 코즈메를 쳐다보았다.


"..?..아픈 곳은 없습니다."

"오늘..무척..."


창백하고, 지쳐보였다. 코즈메가 더 물으려하자 쿠로오가 말을 막았다.


"켄마. 마마님은 잠을 못 잔 것 뿐이야."

"..아."


코즈메는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카게야마를 살펴보면 졸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은 아래로 떨어져 어색한 목으로 간다. 누군가 조른 흔적이 있는 목. 금방 기분이 나빠졌다. 



홀 : 피곤

짝 : 약



아오바죠사이는 여자를 이렇게 대하는 건가? 코즈메는 멀쩡하게 생긴 오이카와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은 코즈메에게는 특히나 민감한 부위였다. 카게야마가 그런 일로 목을 다쳤다면 자신은 결코 오이카와를 좋게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코즈메님?"


꾸벅꾸벅 졸던 카게야마는 벌떡 일어난 코즈메를 올려다보았다. 쿠로오 또한 곤란한 얼굴로 코즈메를 보고 있었다.


"..약 가져올게."

"약..?"

"멍들었잖아."


돌아가면 상궁이 약을 발라줄 것이라고 말했지만 코즈메는 듣지 않았다. 늘 보아왔던 코즈메의 태도와는 달리 강경한 모습이었다. 카게야마는 결국 얌전히 수건으로 자신의 목을 닦아냈다. 분으로 가려진 목이 드러나자 코즈메와 쿠로오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쿠로오는 살며시 그 목을 쓸어보며 물었다.


"아프지 않았어?"

"아프지는.."


코즈메는 카게야마의 말을 끊고 말했다. 카게야마. 입 벌려봐.  나긋나긋한 코즈메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단호한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놀란 눈으로 코즈메를 쳐다보았다가, 고분고분 입을 벌렸다. 그 뺨을 코즈메는 한 손으로 쥐었다. 입을 다물려고 하면 고개를 저어 계속 벌리게 한다.


"..이걸론 정확한 건 아니지만.."


카게야마는 코즈메가 자신의 입 안으로 물약을 떨어트리자 혀를 내밀어 꼴깍 삼켰다. 눈앞의 남자는 카게야마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아프지 않아?"

"괜찮습니다."

"거짓말 하면 안 돼."

"..괜찮아요. 코즈메님."


아프지 않다는 말에 코즈메는 다시 물약을 집어넣었다. 쿠로오는 코즈메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곤 설명했다.


"목 안의 점막이 다쳤을 때 이 약을 쓰면 빨리 낫지만, 그만큼 아프거든."

"..저는 아프지 않았어요."

"고개 들어봐."


코즈메는 한숨을 쉬고 다시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그 명령에 카게야마는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들었다. 코즈메의 흰 손이 약을 듬뿍 떠올려 고루고루 발랐다. 화끈거리는 열감이 올랐다가 곧 싸하게 식었다.



1~3 : 감사합니다

4~6 : 아프지 않아요 

7~9 : 괜찮은데.. (위험도 +2)

0 : 아프지 않게 (위험도 +3)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쉽게 화는 풀리지 않았다. 코즈메는 약을 다 바른 후 인상을 찌푸렸다. 가까이에서 본 목은 가늘고 길어, 어떻게 이런 목에 손을 댔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코즈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던 카게야마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왜 코즈메가 과민반응을 하는 지 카게야마 또한 알고 있었다.


"코즈메님."

"...."

"아프지 않아요. 코즈메님 덕에 빨리 나을 것 같습니다. 


카게야마는 잔뜩 약이 발린 목 위로 어색하게 손을 쓸어보았다. 코즈메는 그 손을 잡아 내렸다.


"..약 지워지니까 만지지 마."

"예."

"...그리고.."


그런 일을 또 당하게 된다면 내게 말해줘. 도와줄게. 한참 뒤 코즈메는 당부하듯 말했다.



쿠로오 테츠로

○: 61 (+2)

◇: 35

카게야마 토비오 

□: 60 (+2)


코즈메 켄마 

○: 40 (+1)

◇: 28 (+2)

카게야마 토비오 

□: 46 (+2)



코즈메는 직접 카게야마를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구석이 푹 앉아 무릎을 세웠다. 그 옆을 쿠로오 또한 같은 자세로 앉았다. 저리가. 쿠로. 코즈메는 쿠로오를 밀었지만 쉽게 밀리지 않았다. 밀어내는 걸 포기한 코즈메에게 쿠로오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도와주려고 그런 말을 한 거야?"

"..몰라."


쿠로오는 큭큭 웃었다.


"켄마 네가, 그렇게 구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네."

"...그런 대접을 받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

"아마 아오바죠사이만 그런 거 아닐까. 키타가와는 그 쪽 나라니까."


코즈메는 쿠로오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오바죠사이에 속한 나라라고 해서 그런 일을 당해야할 이유는 없어."

"엄청 화났나보네. 진정해. 켄마."


쿠로오는 코즈메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도 코즈메의 얼굴은 한동안 굳어 있었다. 


*


카게야마는 하품을 하며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혹시 또 가서 실례를 한 건 아닌지 카게야마를 살펴보던 상궁은 목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마마. 설마 남궁..분들께서 약을 발라주셨습니까."

"그래. 친절하시지."

"...."


어젯밤에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손에 목이 졸렸다는 걸 네코마들은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혹시 나서서 오이카와와의 밤을 떠들은 건 아닌가 싶어 상궁은 캐물어보았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계속 피곤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만 할 뿐이었다.


"마마. 오늘 보내주신 선물을 보시겠습니까."


상궁은 결국 카게야마를 포기하고 함을 들고 왔다.



"오이카와를 제외하고 선물을 보낸 사람을 정합니다."


1 : 쿠니미 아키라 

2 : 킨다이치 유타로

3 : 우시지마 와카토시

4 : 이와이즈미 하지메

5 : 히나타 쇼요

6 : 츠키시마 케이

7 : 쿠로오 테츠로

8 : 코즈메 켄마 

9, 0 : 리레주 지정



"섭정 전하께서 선물을 아침부터 보내주셨습니다."


상궁은 어서 열어보라며 카게야마의 품에 함을 안겨 주었다. 무엇을 보낸거지? 카게야마는 함을 서둘러 열어보았다. 



"리레주의 지정으로 선물을 정합니다"

꽃신


함 속에는 봄꽃을 수놓은 신이 있었습니다



"예쁜 신입니다. 마마."


상궁은 함 속의 물건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얼마전 히나타가 주었던 신은 카게야마가 신기 아까워했었다. 똑같이 아름다운 신이니 어떤 반응을 보여줄 지 몰랐다. 카게야마는 잘못 손대면 망가질 것 같은, 예쁜 꽃신을 손 위에 올려보았다. 나비와 꽃들이 가득해 무르익은 봄이었다. 카게야마는 상궁에게 신을 건넸다.


"기왕 받았으니 신어보자."


섬세한 수를 놓아 만든 꽃신이었다.



주사위를 굴려 카게야마의 호감도를 정합니다 : 87


30 이하 : 호감도 1

60 이하 : 호감도 2

90 이하 : 호감도 3 

99 이하 : 호감도 4 



신은 발에 딱 맞았다. 카게야마는 옷을 살며시 걷어 신은 신을 살펴보았다. 


"....예쁘구나."

"마마께 참 잘 어울리십니다."


상궁은 조그만 발을 자신의 손 위에 올려놓고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딱 맞습니다. 신이 편하시지요?"

"걸어봐야겠어."


카게야마가 내민 손을 상궁은 얼른 잡아주었다. 천천히 방을 걸으면, 옷 아래로 꽃이 수놓아진 신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신이 편한 걸 확인한 상궁은 기분이 좋아보이는 카게야마에게 얼른 물었다.


"마마. 그간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못해 감사인사를 종종 잊으셨지요."

"아..."

"붓을 가져올테니 서신을 쓰시겠습니까."



홀 : 그래

짝 : 아니



"아니..."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번 섭정궁에 갔을 때 카게야마는 쿠니미에게 화를 냈었다. 서신보다는 얼굴을 보며 말하고 싶었다. 


"섭정께 이쪽으로 오실 수 있냐고 말씀을 올려보겠느냐."

"그리 청해보겠습니다."


상궁은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카게야마는 궁녀에게 새 차를 끓이게 했다. 잠시 후 단패궁에 손님이 찾아왔다. 상궁이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다. 빨리도 찾아온 쿠니미를 보며 카게야마는 눈인사를 했다. 쿠니미는 따라들어오려는 상궁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카게야마의 근처에서 차를 따르던 궁녀도 자리를 피했다. 쿠니미, 하며 이름을 부르려던 카게야마는 다가온 쿠니미에 의해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났다.


"폐하."

"섭정. 왜.."


쿠니미의 시선은 카게야마의 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목을 노려보는 쿠니미를 보며 카게야마는 뒤늦게 기억해냈다. 어젯밤의 일은 자신과 오이카와. 그리고 쿠니미만이 알고 있었다. 기록하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면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어떤 일을 당했는 지 읽었을 터였다.


"아프지 않으니 걱정마라."

"....."

"..쿠니미."


쿠니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항의를 해보았자 아오바죠사이의 그 황자는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이고."

"..괜찮다니ㄲ,"

"손을 댈 수도 없으니, 아예 제가.. 단패에서 이름을 빼버릴까요."


카게야마의 어깨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그를 불렀다.


"쿠니미. 쿠니미."

"아침부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괜찮아."

"정말. 아무 생각도."


...오직 카게야마 네 생각 뿐이었어.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목을 만져보고는, 약때문에 끈적거림이 남아있는 목을 제 소매로 닦았다. 하지마. 남궁분들이 발라주셨단 말이야. 불평을 해보아도 쿠니미는 전부 다 닦아냈다.


"이게 더 좋은 약이야."


쿠니미는 미리 챙겨온 약을 손가락으로 떠서 카게야마의 목에 고루고루 발라주었다. 선물을 칭찬하려고 불렀다가, 되려 약을 바르게 되었다. 카게야마는 투덜거렸다.


"네가 이럴 줄 알았다면 부르지 않았을 거다."

"너무하잖아."

"..아프지 않았어. 걱정할 것 없으니까..."


카게야마의 말에 쿠니미는 약을 바르던 손을 멈췄다.


"...왜 그 남자 편을 들어?"

"뭐?"

"오이카와의 편을 들고 있잖아."

"오이카와라니..그렇게 부르면.."

"내 앞에서 그 남자 이야기는 다시는 하지 마."


꼼꼼하게 약을 바르고 난 후에야 쿠니미는 손을 뗐다. 왔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 그렇게 말하면 쿠니미는 못들은 사람처럼 곧 몸을 숙였다.


"신발 보여줘."

"...자."


카게야마는 옷자락을 조금 걷었다. 신의 앞을 꾹꾹 눌러보고, 뒤축을 만져본 쿠니미는 처음보단 풀린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딱 맞네. 다행이다."

"...고마워." 


잘 신을게. 카게야마의 말에도 대꾸없이 쿠니미는 지그시 발등 위를 손으로 감싸보았다. 손 아래에 꽃이 가득 피어있는 것 같았다. 조그만 발이 자신이 준 세계 속에 있어, 쿠니미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쿠니미 아키라

○: 64 

◇: 52

카게야마 토비오 

□: 54 (+3)



차를 마신 쿠니미는 조금은 느슨해진 얼굴로 돌아갔다.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다보면 곧 저녁을 먹을 때였다. 어느새 방 안에 네코가 들어와 있었다. 네코...이리 와. 침상에 누워 손을 아래로 내밀자 네코는 손가락들을 혀로 핥아주었다. 궁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일어났다. 껄끄러운 입으로 식사를 하는데 자꾸 잠이 왔다. 예전엔 하룻밤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거뜬했는데... 카게야마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1~3 : 밤산책을 했다 

4~6 : 침상에 누웠다

7~9 : 손님이 왔다

0 :



괜히 속상한 마음이 들어 카게야마는 식사 후 몸을 일으켰다. 마마. 그냥 주무시지 않구요. 상궁이 말려도 카게야마는 듣지 않았다.


"잠깐 바람이나 쐬고 오마."


궁녀를 데리고 후원을 나가면 한적한 밤이었다. 춥지 않은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1~5 : 역시 피곤했다 

6~0 : 후원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몇 발자국 걷던 카게야마는 걸음을 멈췄다. 궁녀가 뒤에서 마마? 하고 불렀다.


"....."


몸이 무거웠다. 잠을 자도 자꾸만 피곤했다. 카게야마는 목 근처를 쓰다듬었다. 목이 아파서 그런가? 하지만 멍이 든 만큼 아픈 것도 아니었다. 


"마마. 돌아가시겠습니까."


카게야마를 따르던 궁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게야마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시다면 어서 들어가 쉬셔야해요."

"하는 일도 없는데 왜 이러지.."


정말로 몸이 이상했다. 어두운 밤, 궁녀는 혹시라도 발을 헛딛을까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을 잡고 걸으며 카게야마는 배를 슬슬 만졌다. 곧 달거리가 시작된다. 그러면 한 동안은 또 단패를 뽑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오면, 단패궁은 주인을 기다리며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29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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