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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78. 3월 9일



쿠니미는 오늘 열릴, 카게야마의 회임을 축하하는 연회의 순서를 차근차근 훑었다. 오사와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또 궁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지겨운 일이었다. 천천히 읽어내려가던 쿠니미는 한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


카게야마. 나는 언제나, 네게 확인하고 싶어. 쿠니미는 붓을 들어 글씨를 고쳤다. 


*


시위들이 단패궁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액운으로부터 카게야마를 보호하고, 물리칠 수 있는 길일이었다. 우선 깨끗하게 목욕을 하는 것으로 하루는 시작된다. 궁녀들은 새벽부터 창포꽃을 끓여 목욕물을 만들었다. 목욕물 속에 있던 카게야마는 손바닥으로 물을 튕겼다. 그를 씻기던 궁녀들이 꺄, 꺄, 하는 소리를 냈다. 옆에서 옷을 준비하던 상궁이 웃었다.


"마마. 향기가 좋지 않습니까."

"응..좋구나."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꽃을 끓인 물에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궁녀들은 흉터가 남은 카게야마의 살갗을 닦으며 말했다.


"마마. 오늘은 늦은 시간까지 연회를 계속 하실 것이니 피곤하시면 언제든 부르세요. 다리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단패궁 안에 역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액신을 베셔야하니까요."


길일의 해가 저물기 직전, 카게야마는 단검을 들고서 직접 역귀를 베어내야 한다고 궁녀들은 말했다. 보통의 여인이라면 부정을 탈 일이었으나 단패궁의 배 안에 든 것은 나라를 이끌 왕이었다. 역귀를 베어, 뱃속에서부터 강한 왕이 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미신이군."


조그만 단검 같은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지. 카게야마가 투덜거리자 궁녀들은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 것이라며 은근히 질책했다. 


*


아직 배는 나오지 않았으나 품이 넉넉한 옷을 입고서 카게야마는 단패궁을 나왔다. 궁녀와 시위들이 뒤를 따랐다. 카게야마는 새로 만든 향을 손수 들고서 위패를 모신 궁으로 왔다. 키타가와의 왕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


미리 들은 대로 향을 올린 후 카게야마는 고요한 눈으로 위패들을 바라보았다.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키타가와에는 그만큼 많은 왕이 있었다. 성군도, 폭군도, 현군도, 암군도 존재했다. 폐위되어 쫓겨난 왕조차도 죽은 후에는 이곳에 모셔졌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아니었다. 


위왕으로 지워진 카게야마의 이름은 단패궁으로만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마마. 이제 돌아가시면 됩니다."


카게야마가 말없이 위패들을 보고있자 상궁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카게야마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한 번 위패를 쳐다보았다. 가장 최근 만들어진 선왕의 위패는 잘 관리하고 있는 지 반들반들 빛이 났다.


"..마마..?"


갑자기 안색이 좋지 않은 카게야마를 상궁이 서둘러 부축했다. 카게야마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조금 어지러워 그랬다."

"..불편하시면 어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응."


강해져야한다는 선왕의 말을 카게야마는 지키지 못했다. 왠지 배가 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곤 궁을 나왔다. 



궁에 돌아와 가볍게 식사를 하면, 연회가 준비되었단 소식이 들렸다. 가장 크기가 큰 섭정궁에서 열리는 잔치였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 회임을 축하한다며 정작 나를 오라가라하는 구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 마마께서 피곤하실 것이니 그렇지요."


상궁은 카게야마의 얼굴을 이슬로 닦아냈다. 대단한 경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옷들은 열벌이 훌쩍 넘었다. 그 옷들을 몸에 걸쳐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 하여 카게야마는 제일 소박한 옷을 골랐다. 물색 비단옷은 카게야마의 머리 위에 장식한 산호와 잘 어울렸다.


"마마. 무척 아름다우십니다."


상궁의 말에 카게야마는 거울을 힐끔 보았다. 사내처럼 짧았던 머리카락은 조금씩 길어 이제는 뒷목을 거의 다 덮고 있었다. 


"머리, 잘라야겠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마.."


상궁은 진저리를 쳤다. 


*


카게야마는 단패궁을 나왔다. 섭정궁으로 가까이 갈 수록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연회였다.



카게야마는 섭정궁으로 가서 아홉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전부와 대화합니다. 다만 섭정궁의 행사이므로 쿠니미/킨다이치 둘 중 한명과 가장 먼저 대화하게 됩니다. 한 번 대화를 한 사람들은 선택지에서 빠집니다. 카게야마는 각 상대들에게 질문이나 혹은 대화하고 싶은 화제를 고를 수 있습니다. 질문은 리레주가 정합니다. 그러나 질문의 내용이 전개 상 아직 나오지 않았거나 나올 예정일 경우 상대가 답을 피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끝나면 호감도가 +1씩 오릅니다. 카게야마가 질문하는 선택지의 레스 끝자리가 0일 경우 서로 +3씩 오릅니다. 약속을 잡는 질문의 경우 다음날 오후 약속으로 한정됩니다. 



섭정궁에 도착하면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오셨습니까. 폐하."


쿠니미는 서둘러 카게야마를 안으로 모셨다. 연회라면 응당 음식 냄새가 나야할 것이나, 왠지 거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물어보기 전 쿠니미가 먼저 말했다.


"폐하께서 고기와 생선은 드시지 못한단 말을 듣고 전부 뺐습니다."

"신경을 써주어 고맙구나."

"폐하."


쿠니미는 몸을 돌려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제가 드린 창포 향기가 풍기는군요."

"...몸을 씻었으니까."

"좋은 냄새.."


눈을 감고서 쿠니미는 숨을 들이켰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쌍방 호감도 +3)

다른 분들은 다 오셨어? 



가까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의 몸에서 풍기는 근사한 향기는 자신이 준 청포꽃의 냄새였다. 눈을 감고 맡으면 그 보라색 꽃 속에 파묻힌 카게야마가 보이는 것 같았다.


"..섭정."


카게야마는 눈을 감은 쿠니미를 불렀다. 


"다른 분들은, 다 오셨나보지?"

"...."

"....섭ㅈ.."


눈을 뜬 쿠니미의 손이 카게야마의 팔뚝을 잡았다. 아픈지 카게야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쿠니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기분 좋아?"

"..뭐?"

"나를, 그렇게 뒤흔들어놓으면."


쿠니미의 입술이 카게야마의 얼굴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갑작스런 비난에 울컥한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널 흔들었다ㄱ,"

"내가 준 꽃으로 치장하고 와서 다른 남자들을 찾다니."

"...."

"나 말곤 누구에게도 꽃은 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잡고 있는 손을 뿌리쳤다. 찡그린, 아름다운 미간엔 화가 고여있었다. 


"난 꽃을 달라고 한 적 없어."

"...카게야마."

"누구한테도.."


입술을 깨문 카게야마를 쿠니미는 조금 진정된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카게야마를 볼 때마다 울컥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최근에는 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쿠니미는 부드러운 얼굴로 카게야마를 달랬다. 


"카게야마."

"...."

"미안해. 갑자기 네가 다른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니까.."


속상해서 그랬어. 의외로 고분고분한 사과였다. 카게야마는 그게 뭐야, 하며 조금 인상을 풀었다.  



쿠니미 아키라

○: 70 (+3)

◇: 64

카게야마 토비오 

□: 62 (+3)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전 네 향기를 더 맡게 해줘. 쿠니미는 그렇게 말하며 카게야마를 살짝 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으나 카게야마는 힘을 빼고 쿠니미에게 안겼다. 가볍게 어깨를 끌어안은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뒷머리를 스치듯 만져보곤 물러섰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킨다이치


홀 : 쿠로오 

짝 : 코즈메



"마마님이다."


카게야마는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그 호칭에 고개를 들었다. 쿠로오는 눈가를 휘어 웃는 얼굴이었다. 


"마마님이네.."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은 카게야마의 배에 닿아 있었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원하신다면 배를 만져보시겠어요?



쿠로오의 눈은 줄곧 배에 있었다. 회임 소식을 알린 후 처음 만나는 쿠로오였다. 신기한 걸까..? 카게야마는 말이 없는 쿠로오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카게야마 쪽에서 먼저 손을 잡자 쿠로오는 놀란 얼굴을 했다. 


"마마님. 갑자기 설레게 손은 잡고 그래."

"쿠로오님, 신기하시면 만져보셔도 돼요."

"응?"

"저도 제 배에 아기가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손을 잡은 채 눈을 아래로 내렸다. 아직 티도 나지 않는 배였지만 쿠로오가 만져보고 싶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카게야마에게 손을 잡힌 쿠로오는, 검고 동그란 머리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마마님.."

"예?"

"아무한테나 그러면 안 돼."

"..? 쿠로오님은 아무나가 아니시잖아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을 지도 모르면서, 숨기지도 않고 호감을 드러낸다. 쿠로오는 웃던 얼굴을 멈췄다. 아, 이것 참. 정말로.


"마마님..날 오늘 정말로 설레게 하네."

"...?"

"늘 그랬지만."


쿠로오는 배를 만져보는 대신 카게야마의 손을 한 번 꾹 잡고 놓아주었다.



쿠로오 테츠로

○: 65 (+1)

◇: 41

카게야마 토비오 

□: 64 (+1)



마마님 배에는 아이가 있으니까, 함부로 만지게 하면 안 돼. 아무리.. 그게 나라도. 쿠로오는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카게야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코즈메

7~8 : 북궁 

9~0 : 킨다이치


홀 : 히나타

짝 : 츠키시마



자리에 앉은 카게야마는 츠키시마를 발견하고 눈인사를 했다. 


"츠키시마님."

"안녕."


얼굴은 괜찮아보이네. 츠키시마는 안경 너머로 카게야마를 지켜보며 짧게 말했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오늘 좀 예뻐보이나요?



왕님이라고 한 번은 부를 줄 알았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안부를 물을 뿐, 평소처럼 왕님이라고 비꼬는 말투는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이번 달 초에 츠키시마가 단패궁을 찾았던 날을 기억했다. 무심해도 다정한 말이 듣기 좋았다. 더 듣고 싶었다.


"오늘 좀.. 괜찮아 보이나요?"


카게야마는 조금 기대하는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츠키시마님."

"...."


아침부터 일어나 치장한 얼굴을 예쁘냐고 묻기엔 부끄러웠다. 그래도 괜히 기다리듯 물어본다. 벌어져있던 츠키시마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괜한 소리를 했다고 카게야마가 생각할 때 쯤 그 입술은 천천히 열렸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저,"

"내가 보기엔 예쁘지만."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였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휙 돌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어떨 지 모르지."

"..ㅇ..감사합ㄴ.."

"회임 축하해. 선물은 나중에 보내줄게."


츠키시마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츠키시마 케이 

○: 63 (+1)

◇: 37

카게야마 토비오 

□: 50 (+1)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떠났다. 혼자 남은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의 말을 되새기다가 얼굴이 붉어졌다. 츠키시마에게 저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1~2 : 동궁

3~4 : 서궁 

6~7 : 코즈메

7~9 : 히나타

9~0 : 킨다이치


홀 : 오이카와

짝 :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는 그리운 얼굴을 확인하고서 활짝 웃었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언제나 반갑게 자신을 봐주던 이와이즈미였다. 카게야마의 부름을 듣지 못한 건지 얼굴을 돌린다. 다시 한 번 이와이즈미님! 하고 부르면 그제야 눈이 마주쳤다. 입꼬리를 올리려던 카게야마는 잠시 후 어색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아. 카게야마."


이와이즈미가 천천히 다가왔다. 회임.. 축하해. 웃는 얼굴은 이상하게도 조금 지쳐보였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제가 안 보고싶으셨어요?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제가 안 보고 싶어셨어요..?"

"...."

"저는.."


이와이즈미를 만나게 되면 웃는 얼굴로 자신을 불러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보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카게야마가 당황스러워하자 이와이즈미는 곧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안 보고 싶었겠어."

"...."

"..매일 보고 싶었어."


매일, 매일 보고 싶었다. 카게야마가 아침마다 어느 궁에 갔는 지를 신경썼다. 그리고 계속 이와이즈미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끓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한참동안 보지 못했다가 겨우 마주친 오늘은, 누구인지 모를 아이를 임신한 걸 축하하는 자리. 이와이즈미는 피곤한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간밤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와이즈미님."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며 카게야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몸이 안 좋으세요?"

"..괜찮아."


이와이즈미는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그 손을 어깨로 내렸다. 가느다란 뼈대가 느껴지는 어깨를 만지면 그 위로 카게야마가 다른 손을 뻗어 포개었다.


"물색이 잘 어울린다."

"손이 차요. 이와이즈미님."

"...정말 왜 이렇게 예쁘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이와이즈미에겐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 63 (+1)

◇: 33

카게야마 토비오 

□: 58 (+1)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와 두런두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준 이와이즈미는, 힘들더라도 제대로 먹어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이와이즈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노력해볼게요."

"착하다."


이와이즈미는 떠났다.



1~2 : 동궁

3~4 : 오이카와 

6~7 : 코즈메

7~9 : 히나타

9~0 : 킨다이치



고개를 들자, 걱정스러운 표정의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폐하."

"왜 그런 얼굴이야."

"...."


킨다이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한 번 젓고는, 물었다.


"헛구역질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임신을 하면 그렇다고 하는구나."

"...큰일입니다."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을. 킨다이치는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킨다이치 내 아이도.. 지켜줄거지?



언제라도 변함없는 친구의 목소리.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올려다보았다. 함께 자라난 남자는 어디서나 자신의 뒤를 지켜주었다. 설령 자신을 내쳤다고 해도 카게야마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는 오직.


"킨다이치."


카게야마는 장군이 아닌 친구를 불렀다.


"부탁이 있어."

"말씀.."

"킨다이치에게 부탁이 있어."


심상치 않은 카게야마의 표정을 확인한 킨다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른다. 아이를 낳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하니, 어머니처럼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쳐다보았다.


"내 아이도, 지켜줄거지?"

"...."

"키타가와의 왕이 될 아이야. 그러니까.."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도 부탁해. 혹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믿을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신뢰했다. 


"...."


킨다이치는 말없이 카게야마를 바라보다가 제 허리춤에 찬 검집을 쥐었다.


"카게야마. 당연히 난 네 아이도 지키겠지."

"고마ㅇ.."

"그렇지만 그건 키타가와의 왕이 될 아이라서가 아니야."

"...."

"네 아이니까. 네 아이를 나는 지킬 거야."


킨다이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먹먹하게 귓가에 울렸다.


"네 뒤를 지켰던 게, 네가 왕이어서가 아니라..."

"...."

"네가 카게야마 토비오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킨다이치 유타로 

○: 49 (+1)

◇: 39

카게야마 토비오 

□: 36 (+1)



킨다이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대답이 아니라 맹세였다. 카게야마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온갖 감정으로 벅차올라 버거울 지경이었다.



1~2 : 우시지마

3~4 : 오이카와 

5~6 : 코즈메 

7~8 : 히나타

9~0 : 리레주 지정



"....?"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코즈메의 하얀 손이 가지고 온 것은 딸기 그릇이다. 눈이 마주치니 코즈메는 눈을 조금 돌렸다.


"아무것도 안 먹고 있잖아."

"아.."

"이거라도, 먹어."


일부러 자신을 위해 가져와준 것이다. 카게야마는 코즈메에게 딸기를 받으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코즈메님."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코즈메님을 만나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아요.



"코즈메님을 만나면.."


카게야마는 딸기를 먹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항상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딱히 내가 해준 건 없는데."

"지금도 이렇게 와주셨잖아요."

"....그거야."


네가 아무것도 안 먹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려던 코즈메는 불쑥 가까워진 카게야마의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딸기물이 입가에 번진 카게야마가 웃고 있었다.


"코즈메님. 정말 맛있습니다."

"....다행이다."

"코즈메님을 만나면, 늘 따뜻하신 분 같아서.. 좋아요."


그렇지 않다고 해도 카게야마는 듣지 않았다. 맛있게 딸기를 먹는 모습을 보자, 코즈메 역시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 되었다. 그는 고양이처럼 나른한 얼굴로 카게야마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이었다.



코즈메 켄마

○: 52 (+1)

◇: 33

카게야마 토비오 

□: 54 (+1)



코즈메는 카게야마가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네코마의 과일을 가져다주고 싶다고, 그는 생각했다.



1~3 : 우시지마

4~6 : 오이카와

7~9 : 히나타

0 : 리레주 지정

ㄴ오이카와



"토비오쨩, 잘 못 먹는다더니 거짓말이었어?"


야금야금 딸기를 먹던 카게야마는 소리나는 쪽으로 눈을 들었다. 물색의 수수한 옷을 입은 카게야마와 대조적으로, 한껏 화려한 옷차림의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그와 함께 했던 입맞춤이 생각나 카게야마는 얼굴을 붉혔다. 오이카와는 흐응, 비뚤어진 얼굴로 딸기를 집어들었다. 곧바로 한 입 물었다가 꿀꺽 삼킨다.


"엄청 맛있게 먹길래 특별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어. 오이카와는 딸기를 내려두었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ㄴ이제 아이를 가진 몸이니 전의 그 아침 때처럼 절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오이카와씨가 맛 없는 걸 고른 걸까?"


오이카와는 다른 딸기를 집어들었다가, 또 다시 한 입만 먹고는 고개를 저었다. 침묵한 채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부끄러운 일은 마치 자신만의 기억 같았다. 장난치듯 딸기를 고르는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이카와님."

"으응?"

"저 이제, 아이를 가졌으니까요."

"오이카와씨도 알아."


빙긋 웃는 아름다운 얼굴. 카게야마는 무심코 아래의 딸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느 새 대부분의 딸기들은 끄트머리만 잘려나간 채로 남아있었다. 전부 다 오이카와의 짓이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다. 카게야마는 더듬더듬 말했다.


"이제..아이를 가진 몸이니, 전의 그 아침처럼 절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 아침?"


오이카와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오이카와씨가 어떻게 괴롭혔단 거야?"

"...아시잖아요."

"토비오쨩이 기대해서 오이카와씨는 원하는 걸 들어준 것 뿐인데."

"...."

"너무하네, 토비오쨩."


오이카와에게 몰아세워지면 카게야마는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를 몰랐다. 저... 카게야마가 다시 어렵게 입을 떼자 오이카와는 벌어진 입 속에 딸기를 넣었다. 카게야마가 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깨물어."

"?"

"먹어야지."


시키는 대로 한 입을 베어물었다. 그러면 오이카와는 나머지 반을 가져와 먹었다. 깜짝 놀란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이카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에 묻은 물을 혀를 내밀어 핥았다.


"이건 좀 맛있네."

"으.."


오이카와에게 휘둘려 카게야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딸기의 달콤함만이 입에 남았다.



오이카와 토오루 

○: 60 (+1)

◇: 42

카게야마 토비오 

□: 44 (+1)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오이카와의 성격을 아직도 카게야마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몇 개의 딸기를 더 먹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을 푹 숙였다. 오이카와가 재미삼아 먹어버린 반만 남은 딸기들이 그릇에 남아있었다.



홀 : 우시지마 

짝 : 히나타



"어디 아픈 것인가."

"우시지마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 카게야마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얼굴이 뜨겁군."

"괜찮습니다."


자연스럽게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손으로 얼굴을 기댔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누구 아이일까요?



"네가 어리광을 다 부리는 구나."


우시지마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카게야마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무섭지."

"아이를 낳는 것이.."


우시지마의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뺨을 간지럽히듯 건드렸다. 카게야마는 양 손으로 감싸듯 배를 만졌다. 누구의 아이인지 안다면 이 불안감이 사라질까. 갑자기 생긴 아이에 대해 궁금한 것도, 무서운 것도 많았다. 


"우시지마님. 혹시.."

"음."

"어느 분의 아이인지 아실 수.. 있으십니까?"


망설이며 물어오는 질문은 우시지마였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한없이 신뢰하는 얼굴이 이 손 안에 있었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뺨을 다시 한 번 쓸었다. 매끄러운 감촉은 따스해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내 능력 밖의 일이구나."

"...제가 괜한 것을."

"하지만 무엇을 그리 걱정하지."


얼굴을 만지던 손이, 고개를 숙이느라 흘러내린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내가 있지 않느냐."

"우시지마님."

"네가 아프다면 어련히 내가 곁에 있어줄 것이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부드러운 열망을 품은 우시지마의 눈은 카게야마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76 (+1)

◇: 41

카게야마 토비오 

□: 68 (+1)



우시지마와 눈을 마주치면 마치 그 새벽, 새하얀 자작나무 숲 속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우시지마는 손등으로 카게야마의 이마를 더듬었다. 우시지마 때문에 얼굴에 열이 오른 것이라고 카게야마는 말하지 못했다. 



1~0 : 히나타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모두 고마운 일이었다. 


"토비오."


카게야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카라스노의 왕자는 가장 마지막에서야 카게야마를 찾아왔다.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은 얼굴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히나타님.."

"소식 들었어. 축하해."

"감사합니다."



"첫 리레주의 말이 카게야마의 말이 됩니다"

(쌍방 호감도 +3)

히나타님 나중에 또 저를 데리고 하늘을 날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배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카게야마는 한 쪽 손을 배 위에 얹고 있었다. 저 배는 부풀 것이고, 그러면 키타가와를 떠날 때가 온다. 히나타는 아쉬운 마음에 계속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히나타님..? 마음 쓰이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기왕이면 쇼요라고 불리고 싶었다. 히나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제나 대화를 이끌던 히나타가 입을 다물자 카게야마는 당황했다.


"히나타님.."

"...."


카게야마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천성과, 카게야마가 자신에게 신경을 더 써줬으면 좋겠다는 욕망. 두 가지가 충돌하여 히나타는 왠지 괴로워졌다. 그러나 곧 튀어나온 카게야마의 말에 히나타는 고개를 들었다. 히나타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무척 듣기 좋았다. 


"그 때, 저를 데리고 날아주셔서 참 좋았어요."

"....어?"

"비록 지금은 아이를 가져 날지 못하지만."


카게야마는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 히나타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 함께 하늘을 날았던 날이 있었다. 즐거워하던 얼굴이 생생했다.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저를 데리고 또 날아주실 수 있으세요?"

"....."

"..아, 싫으시다면.."


히나타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싫지 않아."

"히나타님."

"나는.. 토비오가 절대로 싫지 않으니까."

"저도 히나타님이 좋아요."


싫지 않다는 말에 돌아온 건 좋아한단 대답이었다. 그 말이 히나타는 기뻤다.


"응. 언젠가 같이 또 하늘을 날자."


비로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히나타를 따라 카게야마도 같이 웃었다.



히나타 쇼요

○: 42 (+3)

◇: 27

카게야마 토비오 

□: 41 (+3)



연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귀를 기울이면 쿠니미와 킨다이치의 목소리였다. 왜, 라는 생각이 들기 전 상궁이 다가왔다.


"마마. 이제 안으로 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셔야합니다."

"왜..?"

"의식이 남았습니다."


아침 일찍 해가 뜰 시간에 선왕들에게 향을 올렸다. 해가 지기 전 카게야마는 직접 역귀들을 쫓아내야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소리가 나던 쪽을 다시 보자, 쿠니미가 보였다.



1~9 : 쿠니미 

0 : 킨다이치



의식을 치를 옷을 갈아입기 위해 카게야마는 안으로 들어갔다. 섭정궁의 정원 한 가운데에 역귀상이 놓여졌다. 역귀상은 마른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시위가 한 번도 쓰지 않은 단검을 들고 왔다.


"아니. 그건 필요없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단패궁께서 쓰실 것을 미리 준비했으니."


킨다이치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쿠니미는. 그는 카게야마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


상궁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고서 카게야마는 정원을 나왔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카게야마의 의식을 지켜보기 위해 마련해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쿠니미는 섭정의 자격으로 가장 앞에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그저 가서, 단검으로 찌르시면 됩니다. 상궁은 긴장할 것 없다고 말했다. 본인이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회임하신 마마께 칼을 들릴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이 무어가 대수라고."

"마마께서 놀라시면.."

"사람을 찌르는 것도 아닌데."


카게야마의 말에 상궁은 아휴, 그런 흉한 말씀 하지 마십시오. 하고 질색을 했다. 그러나 막상 보아도 대단한 건 아니었다. 나무조각에 징그러운 얼굴을 새긴 역귀상은 그저 나무일 뿐이다.


겁날 건 하나도 없었다.


"단패궁 마마."


양 손으로 물건을 떠받든 채 시위가 다가왔다. 카게야마는 시위가 들고 온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치고 만다. 그는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왜 활을?"

"단패궁 마마께서 쓰시기에 더 편하실 거라고 섭정 전하께서 명하셨습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활을 보았다가 다시 쿠니미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활을 기다리는 쿠니미의 시선은 오히려 화살처럼 카게야마에게 꽂히고 있었다.


*


오이카와는 화살을 든 카게야마를 보고는 쿠니미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이카와씨는 검으로 알고 있었는데?"

"단패궁께선 활을 잘 쏘시니 그것으로 바꿨습니다. 꼭 단검이어야만 한다는 법이 없기에."

"흠.."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섭정이 바꿨다고 하니 뭔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이와이즈미 또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게야마. 좀 이상한데."


활을 잡은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팔짱을 낀 채 카게야마를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활을 다루는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카게야마가 활을 다루는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 역시 이상함을 느꼈다. 겁에 질린 것처럼 카게야마는 쿠니미 쪽을 살피고 있었다. 활시위를 당기지 못한 손은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


쿠니미는 그 모습을 빈틈없이 눈에 담았다. 카게야마. 나는, 정말로 언제나, 네게 확인하고 싶어. 최근에는 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이런 일까지 해야만 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쿠니미 앞에서는 화살을 쏘지 못한 카게야마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카게야마는



홀 : ...

짝 : 검을



눈을 감으면 아직도 생생한, 핏물이 고인 웅덩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귀. 병풍 뒤에서 하얀 얼굴로 쓰러지던 쿠니미의,


다리가.


카게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쿠니미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쿠니미가 어디있는 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바로 역귀상 뒤에 서있었다. 고개를 젓고 쳐다보면 원래대로 자리에 앉아있다.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귀를 기울였다. 웅성웅성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카게야마..왜... 망설...이상...활.....다른 이들의 목소리들 가운데 쿠니미의 것은 없었다.


"아..으.."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카게야마의 뒤에 무언가 부딪혔다.


"...!"

"카게야마."


서둘러 달려온 킨다이치는 쓰러질 것 같은 카게야마를 붙들었다.


"킨다이치."

"응."

"검을.."


검으로.. 무척이나 연약한 목소리였다. 킨다이치는 서둘러 자신이 가져온 검을 내밀었다. 안심하는 얼굴을 보며 킨다이치는 쿠니미를 노려보았다.



보석이 박힌 단검은 결코 무언가를 찌르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침착해진 카게야마는 역귀상을 노려보다가 급소를 노리듯 단숨에 찔렀다. 마르고 가벼운 나무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반으로 쩍 갈라졌다. 길조였다.


"오랜만에 카게야마가 활을 쏘는 모습을 보게 되었나 싶었는데.. 아쉽군."


어째서 다시 검으로 바뀌었는지 모르는 우시지마가 중얼거렸다. 오이카와는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활을 쏘지 못하였는데도 쿠니미는 웃고 있었다. 무척 만족한 얼굴이었다. ..이상하네. 정말. 오이카와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아. 킨다이치."


카게야마는 자신이 쪼갠 역귀상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가, 킨다이치가 다가오자 검을 돌려주었다.


"네 덕에 다행이었다."

"...별 말씀을 하십니다."


킨다이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카게야마의 뒤에서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카게야마는 그 병풍 뒤에 쿠니미가 갇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게, 쿠니미가 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해가 저물었다. 모두 섭정궁을 떠났다.



킨다이치 유타로

○: 50 (+3)

◇: 39

카게야마 토비오 

□: 37 (+3)



카게야마는 지친 몸을 끌고서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하였으나 입맛이 있을 리 없었다. 카게야마는 하품을 했다.


"마마. 피곤하십니까."

"...응."

"오늘 워낙 바쁘셨으니 그럴만 하십니다. 어서 주무시지요."

"일단 씻고.."


활을 들고서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몸이 축축했다. 식은땀을 흘렸다고 말하자 상궁은 목욕물을 준비하게 했다. 창포꽃 냄새가 났다. 쿠니미가 준 꽃.. 카게야마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며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쿠니미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놀란 카게야마가 숨을 흡, 들이쉬었다. 쿠니미는 무척 기분좋은 얼굴이었다.


"폐하."

"...이 시간에?"

"얼굴을 뵙고 싶어 왔습니다."

"...뜬금없구나."


카게야마는 잠이 와 어질어질한 머리를 조금 흔들었다. 씻으려고 했는데...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려 상궁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는 이가 없었다. 


"제가 모두 나가있으라고 했습니다."

"..왜?"

"너와 단 둘이 있고 싶었으니까."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난.. 목욕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도와줄게."

"뭐?"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팔목을 잡았다.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얼떨결에 카게야마는 쿠니미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목욕물을 받아놓은 통에선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카게야마. 나 지금 굉장히 기분 좋거든."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러니 네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카게야마가 물었으나 쿠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물 속에 넣어 휘저었다. 카게야마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딱 좋다. 적당히 뜨겁고."

"....쿠니미?"

"옷도 벗겨줘야해?"

"네가 왜?"


카게야마의 말은 무시되었다. 쿠니미는 절뚝거리며 다가와 카게야마의 옷 매듭 위에 손을 얹었다. 매듭을 풀려는 손을 막으며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보았다. 궁녀도, 상궁도 보이지 않았다. 쿠니미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무도 없다니까."

"너, 내가 이렇게 밤에 몰래 오지 말라고 했지."

"궁녀들 대신 씻겨주는 것도 안 돼?"

"안 돼!"


옥신각신하여도 쿠니미를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게야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쿠니미를 쳐다보다가, 결국 제 손으로 매듭을 풀었다. 어차피 다 본 사이니까...어릴 때부터도.. 그렇게 속으로 되뇌어도,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얼른 물 속으로 들어갔다. 얼굴까지 푹 파묻자 보글보글한 거품이 위로 올라왔다. 


"카게야마. 넌 나한테 정말로 물러."


쿠니미는 창포꽃 몇 송이를 물 속에 던져넣었다. 


*


물을 어깨 위로 끼얹어주는 손길은 의외로 능숙하고 다정했다. 천천히 몸을 문지르면, 그때마다 카게야마는 조금씩 움찔했다. 쿠니미는 모른 척 카게야마의 살갗을 더듬듯이 닦아냈다. 긴장하였던 몸은 물 속에서 풀려 천천히 녹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아?"


쿠니미가 카게야마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세지 않은, 기분 좋은 자극. 카게야마는 눈을 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 어때?"


뭉친 근육을 꾹꾹 누르자 카게야마가 으응, 하고 신음했다. 쿠니미는 벗은 어깨 위에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깜짝 놀라 카게야마가 돌아보았다. 쿠니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왜?"

"방금..?"


자신이 잘못 알아차린 거였나 싶어 다시 고개를 돌리면 쿠니미의 입술이 또 내려왔다. 카게야마는 이번에는 손으로 물을 튀겼다. 물벼락을 맞은 쿠니미가 키득키득 웃었다. 웃는 얼굴이 미워져 카게야마의 손이 다시 한 번 물을 튀긴다. 옷까지 젖은 쿠니미도 지지 않고서 카게야마에게로 더운 물을 쏟았다. 


"다 젖었잖아."

"네가 먼저.."

"안되겠다."


쿠니미는 웃옷을 벗어던지고 자신 또한 목욕통 안으로 들어왔다. 출렁거리며 물이 넘쳤다. 카게야마의 몸이 바짝 통 가장자리에 붙었다. 흰 가슴이 바로 코앞이었다. 예전에도 느꼈으나 의외로 단단하게 보이는 모양새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쿠니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왜 피해?"

"저리 가."

"나 좀 봐."


카게야마의 턱을 돌려 기어코 자신을 보게 한다. 찰박거리는 물소리. 도망갈 곳 없는 시선. 하나도 걸치지 않은 카게야마의 맨 다리가, 쿠니미의 바짓단을 건드렸다. 물 속에서 어디가 어떻게 겹쳐있는지 몰랐다. 카게야마의 가슴이 들썩였다.



홀 : 입술

짝 : 볼



쿠니미는 투명한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영원할 거란 착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카게야마가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란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카게야마."

"응?"


카게야마를 끌어안듯 쿠니미가 가까워졌다. 물이 찰랑거리며 또 다시 넘쳤다. 볼에 입을 맞춘 쿠니미는 그대로 짓누르듯 입술을 찍었다. 카게야마는 어색한 손을 들어 쿠니미의 어깨를 짚었다. 


"..감기 걸리겠다. 이제 나가자."

"....응."


흠뻑 젖은 쿠니미가 먼저 나와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그 손을 잡고 통 안에서 나왔다. 창포꽃 향기가 물씬 풍기는 몸을 닦아주며 쿠니미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쿠니미 아키라

○: 73

◇: 64

카게야마 토비오 

□: 65 (+2)



쿠니미와의 호감도가 70을 넘어, 카게야마와의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쿠니미의 애정표현에 카게야마의 호감도가 +2 올라갔습니다



쿠니미 또한 옷을 갈아입어야했다. 물기를 닦고 옷을 걸친 채 나오면 상궁이 안절부절 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


카게야마가 흘겨보자 상궁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너는 내 사람이니 섭정의 말은 듣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면 안 된다. 결국 내 말을 들어주시거든."


쿠니미의 말에 카게야마는 미간을 찡그렸다. 쿠니미는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한 번 쓸어넘겼다. 물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카게야마를 닦아주느라 쿠니미의 머리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머리라도 말리고 가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저항없는 손등은 방금의 목욕으로 촉촉했다. 손등에 입을 맞추며 올려다보자 카게야마의 얼굴은 금방 붉어졌다.


"감기에 걸리면."

"...."

"네가 더 걱정해줄 테니까, 이대로 갈래."

"..바보같아."


카게야마는 손을 뒤로 뺐다. 쿠니미는 한 번 웃고는 곧 단패궁을 나갔다. 섭정궁 쪽으로 사라지는 쿠니미를 보던 카게야마는, 팔을 뻗어 밤공기를 휘저었다.다행스럽게도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달빛 아래 온화한 밤이었다.



9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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