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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85. 3월 16일



섭정궁의 두 번째 북이 울리기 전 아침, 섭정은 아오바죠사이의 후계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후계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


"드디어 오늘 의문이 풀리나보네."


오이카와는 자신의 앞에 앉은 쿠니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반란이 일어나기 이틀 전, 급하게 키타가와의 재상에게서 온 연락이 있었다. 아오바죠사이를 왕이 공격하려고 하니 다스려줄 후계를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그런 일로 오이카와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려한다는 이의 이름은, 자신이 알던 옛 이름이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막상 와서 그가 확인했던 건 다른 것이었지만.


"이와쨩이랑 오이카와씨 말이야, 계속 생각했거든."


궁녀가 두고 간 찻잔이 쿠니미의 얼굴 앞에서 붕 떠올랐다. 위협적으로 빙글빙글 도는 찻잔. 그것이 보이지 않는 다는 듯, 쿠니미는 가라앉은 눈으로 오이카와를 쳐다보고 있었다.


"회임을 공표하기 전 토비오쨩에게 적대적이던 귀족들까지 쫓아내다니, 짧은 시간에 굉장히 많은 일을 했네."

"....."

"그 오사와-였던가? 딱 좋은 때에 장군도 움직였어."

"...."

"보기에는 서로 밀약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실은 아니었네요."


여왕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고발했던 남자는 오이카와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좋아하고 있는 거냐. 삐뚤어진 욕망으로 카게야마를 단패궁에 집어넣었던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내심 그런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섭정은 그의 왕이었던 여자를 볼 때마다 무표정은 집어치운 채로,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섭정쨩. 반란의 시작은."


잔이 다시 한 번 핑그르르 돌았다. 오이카와는 물었다.


"사실, 섭정쨩이 아니지?"




오이카와 역시 카게야마가 감옥에 있을 동안 카게야마를 고발하며 뿌린 글을 읽어보았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전쟁에 빠져 학정을 일삼았다. 징병을 핑계로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보냈고,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농사는 때를 놓쳐 철새도 찾지 않으며 이 땅에선 어떤 과실도 나지 않는다. 더구나 그 활끝이 향한 곳이 아오바죠사이인 것을 더이상 두고볼 수가 없음이다.


여기에, 카게야마 토비오가 실은 여자라는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오직 그럴듯한 대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사와 그 자인가?"

"...."

"처음에는 여자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았잖아. 그쵸?"


아무도 몰랐다. 오직 오이카와가 도착하고 나서야, 쿠니미는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의 비밀을 알렸다. 


"왜?"


오이카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망치게 하거나,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어디로?"


처음으로 쿠니미가 답했다. 오이카와는 글쎄, 하고는 웃었다.


"어디라도 카게야마에겐 좋았겠지. 단패궁보다는."

"오이카와님의 말씀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허공에 박혀있던 찻잔을 들어 쿠니미는 입을 적셨다.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키타가와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

"키타가와의 폐하께서는 늘 전장에 계셨기에 궁의 세력이 없으셨고."


쿠니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왕이 되고 싶어하는 자는 많아 그것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테니까요."


오이카와님의 말씀이 맞다면. 쿠니미는 다시 한 번 사족을 붙였다. 


*


전장의 킨다이치에게 쿠니미는 연락을 했다. 전장의 왕사는 반토막이 나 지쳐있었고, 귀족의 사병은 곧 다가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카게야마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쿠니미는 그렇게 판단했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빼돌려 도망치게 하자고 말했다. 오이카와의 말을 들으니 쿠니미 또한 킨다이치의 외침이 생각났다. 적어도 카게야마에게 알려 선택할 기회는 줘야 돼!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면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눈앞에서 반란군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산다는 보장이 없다. 킨다이치는 예전의 그날과 똑같이 카게야마를 도망치게 해주고 싶어했고, 자신은 아니었다.

 

"섭정쨩?"


오이카와는 쿠니미를 불렀다. 쿠니미는 웃어보였다. 그래, 그래서 쿠니미 아키라는 오사와와 손을 잡았다. 이미 예정된 반란은 쿠니미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오이카와님."


뒤에서 카게야마를 칠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자신도 같은 마음이란 걸 알려주기 위하여 쿠니미는 다리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편이 되어 카게야마를 포박하고, 평생 셋의 비밀이라고 생각한 것을 오이카와에게 알렸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관을 빼앗고 그것을 머리에 썼다. 쿠니미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 배신감에 치를 떨며 외치던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얼굴이 다시 자신에게 웃어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쿠니미는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명예롭게 죽는 삶과, 오욕을 뒤집어쓴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신다면."

"...."

"카게야마는 분명 전자를 선택하겠지요."


오이카와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젊은 섭정은 카게야마를 보란듯이 부르고 있었다. 쿠니미는 다시 한 번 입 끝을 올렸다. 


"저는 그걸 알기에 후자를 골랐을 뿐입니다."


어떻게해서라도,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이 땅에 잡아두고 싶었다.



오이카와는 말없이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곧 파삭, 하고 알수 없는 힘에 의해 찻잔이 부서졌다. 자기잔이 깨져 쿠니미의 뺨에 튀었다. 뜨끈한 감각이 솟아올랐다. 


"방패였구나."


흩어진 찻잔의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턱을 괸 채 쿠니미에게 말했다.


"오이카와씨나, 다른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방패였어."

"의문이 풀리셨으면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쿠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용당했다는 분노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호기심이 오이카와를 자리에 잡아두었다.


"한 번 해봐."

"저는 다리가 무척 좋지 않습니다. 날이 좋아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


쿠니미는 오이카와과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걸 확인했다.


"더 이상 섭정의 관을 쓰기엔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사와 대신은 현재 단패궁을 해칠 의도가 있었다 판단하여 장군이 뒤를 쫓고 있고."


나머지 귀족들도 어디까지 오사와와 연루되어 있는 지 모르므로. 쿠니미는 오이카와에게 아무렇지 않은 것을 말하듯 입을 열었다. 

 

"단패궁의 복권을 바랍니다."

"기각."


웃으며 듣고 있던 오이카와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단패궁께서 누구의 아이를 회임하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너희 둘 중 한명이라고 오이카와씨는 들었지만."


짜증을 감추지 않으며 오이카와가 대꾸했다. 


"기왕이면 오이카와씨 아이를 임신했으면 했는데 말이야. 토비오쨩도 참. 말도 안 듣지."

"단패궁 제도를 보면 참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쿠니미의 화제는 자꾸만 바뀌었다. 오이카와는 침묵하고서 쿠니미를 노려보았다. 


"굳이 한 명의 여인을 임신시키기 위해 성국의 귀한 분들께서 전부 오시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국끼리는 사이좋게 공존하는 것 같지만 분명, 세력을 늘리고 국토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실 텐데요."

"섭정쨩. 섭정쨩은 말을 참 함부로 하네."


가벼워보이는 말투는 곧 낮아졌다. 쿠니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오이카와는 빙글빙글 웃으며 쿠니미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 위협적인 기세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쓰며 쿠니미는 겨우 입을 열었다.


"굳이, 단패궁으로 성국이 찾아오는 건."


삼백년만에 열린 단패궁의 문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거절하지 않고 찾아왔다. 드러내놓고 욕심을 부리는 나라도 있었다. 쿠니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땅따먹기같은 것이 아닙니까."

"...."

"누구의 아이를 임신하느냐에 따라 키타가와는,"

"키타가와는 아오바죠사이의 은혜를 받은 땅이다."


오이카와는 차갑게 말했다.


"그건 변하지 않아."

"하지만 단패궁께서 다른 성국의 아이를 임신하셨다면 그 권한은, 다른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오이카와씨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섭정쨩."

"카게야마가 키타가와의 아이를 임신한 게 오이카와님께도 다행이란 뜻입니다."


파삭, 다시 한 번 찻잔이 깨졌다. 이번엔 오이카와의 손에 있던 것이기에 쿠니미에게까지 튀어오르진 않았다. 


*


키타가와는 카게야마의 땅이었다. 카게야마가 자신의 짧은 생을 모두 바쳐, 주변의 나라를 정복했다. 아오바죠사이에 속한 어떤 나라도 키타가와보다 영토가 넓지는 않을 것이었다. 쿠니미는 카라스노의 츠키시마가 굳이 그의 밤에 히나타를 끌고 들어간 날을 기억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얻고 싶었던 게 있었을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오이카와를 쳐다보면, 오이카와는 이를 드러내고서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만은 웃지 않았다.


"아오바죠사이의 권한이 사라진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네."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점차 간섭은,"

"그만."


오이카와는 손을 올렸다.


"거기까지 해. 섭정쨩."

"...그러니 키타가와의 아이라면 오이카와님께서도 안심하실 수 있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쿠니미는 말을 끝냈다. 오이카와는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잠시 숨을 들이쉬는 듯 하다가 다시 쿠니미를 바라본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물었다.


"섭정쨩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다른 분의 아이라면 오이카와님께서 아오바죠사이에서 곤란하겠지요."

"...본론."


아직 누구의 아이라고 공표된 내용은 없었다. 쿠니미의 말대로였다.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 또한 이 궁에 많을 터였다. 섭정은 지금 다른 나라와 짜고서 회임 사실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걸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시답잖은 도박이었다. 똑똑해보이는 섭정의 입에서 나오는 말 치고는, 뭐하나 확실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서 달려드니 귀찮기가 그지없었다.


"복권은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오이카와의 말에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바라는 게 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말이었다. 


*


카게야마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상궁도 카게야마를 깨우지 않았다. 눈을 뜨니 네코가 머리맡에 있었다. 어쩐지 머리가 덥더라, 카게야마는 웃으며 네코를 안아들었다. 잠을 자던 강아지는 놀라서 축축한 코를 카게야마에게 비벼댔다. 


"이 녀석."


오랜만에 주둥이를 잡고 흔들자 낑낑 울었다. 왠지 기분이 좋아져 카게야마는 네코를 꼭 끌어안았다.


"날씨가 좋은지 보자."


창으로 걸어가 고개를 내밀면, 태양이 하늘 위에 솟아 있었다. 언제까지 잔 거지? 카게야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홀 : 킨다이치 

짝 : 상궁



"..킨다이치?"


구석에 앉아 검을 끌어안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얼굴은 분명 킨다이치였다. 카게야마가 부르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어제는 저녁 늦은 시간 돌아갔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자신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카게야마는 물끄러미 킨다이치를 쳐다보았다. 이런 생각을 예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렸어?"

"미안. 놀랐어?"


킨다이치는 눈을 손등으로 비볐다. 피곤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좀 앉아. 카게야마는 의자를 권했으나 킨다이치는 그것을 거절했다.


"오사와가 남아있는 사병을 끌고 도망갔어."

"뭐?"

"..너를 해치려는 증거가 나왔거든."


어제 들었던 사야코의 말이 떠올랐다. 카게야마는 놀라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의아한 빛이 얼굴에 돌았다가, 킨다이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찾으러 갈거야. 이미 사람을 붙여뒀으니 위치는 알겠는데 좀 오래 걸릴 지도 몰라."

"...."

"가기 전에 얼굴 보고싶어서. 줄 것도 있고."


그제야 킨다이치의 뒤에 있는 물건이 들어왔다. 카게야마는 어제 했던 말을 기억해내고서 웃었다.


"네가 없으니 돌려주는 거야?"


단패궁에 들어올 때 빼앗겼던, 언제나 손에 들려있던 활이 그 곳에 있었다. 무기고에서 가져왔어. 킨다이치는 덤덤하게 말했다.


"활을 선물로 받았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손에 편한 걸 쓰는 게 좋잖아."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에게서 활을 받았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감촉이 좋았다. 


활을 만져보는 카게야마를 킨다이치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만약, 자신이 좀 더 빨리 알아서 카게야마를 도망치게 했다면. 진작부터 오사와에 대해 경계했다면. 자신이 카게야마를 설득해서 궁으로 데려왔다면. 가정은 언제나 많았다. 그 가정 사이에서 쿠니미는 확실하게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킨다이치는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날처럼 같이 도망칠래? 키타가와를 떠나서, 네가 너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어디라도 찾아서, 같이 가자. 카게야마. 그 말을 했더라면 카게야마는 자신과 같이 갔을까.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

"응."

"몸조리 잘하고, 궁 밖을 되도록 나가지 마."

"알겠어."


카게야마는 청량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너야말로 몸조심해."

"그래."

"다치지 말고."

"카게야마."


킨다이치는 떠나기 전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원망하지 않아?"


주어가 없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알아들은 것처럼 눈을 깜박였다.



홀 : 그래

짝 : ....



감내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원망스럽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순간 머뭇거렸다.


"....."


어떻게 말해야할 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자니 킨다이치는 곧 카게야마에게서 등을 돌렸다.


"가볼게."

"킨다이치."

"응."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지?"


킨다이치는 다시 카게야마를 돌아보았다. 카게야마를 한참 쳐다보던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서 전부 말할게."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면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킨다이치 유타로

○: 59 (+2)

◇: 40

카게야마 토비오 

□: 42 (+2)



카게야마는 킨다이치를 배웅하고 돌아왔다. 그는 왕왕 우는 네코의 등을 이따금 쓰다듬어주며 늦은 식사를 했다. 설마 오사와의 사병에게 당하지는 않겠지. 사선을 수도 없이 함께 넘어왔던 자신의 오른팔이었다. 고작 내란을 킨다이치가 제압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된 카게야마가 식사하던 손을 멈추면, 마치 강아지는 쉬는 김에 자신을 쓰다듬어달라는 듯 그 손을 핥아왔다.


"네코."


카게야마는 웃으며 수저를 놓고 번쩍 강아지를 들어올렸다. 강아지는 커다란 눈을 꿈벅거린다.


"이 놈, 귀여운 척 하는구나."


말은 험해도 쓰다듬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뜨끈한 체온을 품은 것을 안고 있자니 점차 안심이 됐다. 카게야마는 상궁이 들어올 때까지 강아지를 끌어안고서 조용히,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시간은 카게야마에게는 참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식사를 마친 카게야마는 잠시 네코와 함께 정원을 걸었다. 돌아온 후엔 상궁의 권유를 받아, 다시 한 번 주머니에 자수를 놓았다. 어설프게 자수를 놓고 있던 카게야마는 주머니들을 세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예?"


카게야마를 돕던 상궁이 무슨 소리냐는 투로 되물었다.


"하나가 비는 것 같구나."

"에그머니나, 제가 찾아볼까요?"

"되었다. 제대로 만들던 것이 아니라 연습으로 만져본 것이니."


어디 구석에라도 빠트린 모양이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자수에 열중했다. 오늘은 조용하구나. 이 넓은 궁에 마치 자신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만 해도 그렇게 즐거웠는데 쓸쓸해지는 것 또한 금방이었다. 카게야마는 자수를 놓다가 가끔 창 밖을 힐끔거렸다.


이 곳에서 나가고 싶은 것인지, 누군가 찾아와주길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열 명은 앉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쿠니미는 언젠가 섭정궁의 이 자리로 성국 왕족들을 불러모았을 때를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만이 적힌 단패를 카게야마에게 보내기 위한 연극을 하기 위해서였다. 반절만 찼던 그때와 달리 오늘은 킨다이치를 빼고 전부 다 자리를 채웠다. 

쿠니미는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을 확인했다. 오늘은 그런 연극같은 것이 아니었다. 


"북을 울리는 대신 이곳으로 와달라고 청하다니, 이해하기 힘들군."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황제였다. 그는 카게야마가 누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쿠니미에게 말을 걸었다. 이와이즈미는 굳은 얼굴의 오이카와를 한 번 보고는 우시지마와 같이 물었다.


"그래, 여기까지 와야할 이유는..없다고 알고 있는데, 나는 오늘 카게야마를 만나러 가려고 했어."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새로운 소식에 짧게 한숨을 토했다. 하지만 축하를 해줘야만 했다. 그저 카게야마가,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지금의 이와이즈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며 쿠로오는 신기하다는 듯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아니, 마마님한테 언제부터 그렇게 지극정성이었지?"


감정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남자라고 알고 있었다. 쿠로오는 웃는 얼굴로 이와이즈미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눈을 쿠니미에게로 돌렸다. 그저 가벼운 기분 전환으로 왔던 나라의 여자에게 생각보다 많은 정을 주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야. 마마님. 참 대단해. 대단하고 말고. 이제 그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서 쿠로오는 습관처럼 웃는 얼굴을 했다. 네코마로 같이 가자고 해볼까. 잘 꼬시면 넘어올 지도 몰랐다. 


"지극정성이라니, 나는 그냥,"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회임을 한 건 축하할만한 일이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


듣고 있던 우시지마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낳으면 카게야마의 의무를 완수하게 되는 것이니, 나는 시라토리자와로 그녀를 데려갈 것이다."


우시지마의 폭탄같은 말에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멈췄다. 



츠키시마는 우시지마의 말에 유일하게 동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쿠니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이 곳에 모두를 불러놓은 듯한 쿠니미는 우시지마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서,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영혼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


카라스노의 아이를 임신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이게 낫다. 츠키시마는 냉정하게 결론지었다. 누구의 것도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키타가와 자체적으로 후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오바죠사이로부터 독립성도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카라스노는 섭정에게 힘을 실어주어서.. 거기까지 생각한 츠키시마는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아무리 다른 생각으로 돌리려고 해도 자꾸만, 카게야마가 생각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카게야마의 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이군."


이와이즈미가 살짝 화를 냈으나 우시지마는 개의치 않았다. 쿠로오는 그저 그 둘을 보고 웃었다. 오이카와 또한 기가 막히다는 듯 늦게 입을 열었다.


"우시와카쨩 여전히 마음대로 말하네. 토비오쨩은 아직 아오바죠사이의,"

"그게 무슨 소용이지. 의무가 끝나면 그녀는 자유다. 나를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


쿠로오가 양 손을 들었다. 조용히 곁에 있던 코즈메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쿠로. 섭정의 얼굴 좀 봐."


연회에서 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카게야마에 대한 일을 놓치려 하지 않던 섭정. 일부러 차를 버리고 다시 카게야마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길 원하던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저런 선포를 듣고도 조용하다니 이상했다. 쿠로오는 코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정말 왜, 우릴 부른거지."


어울리지 않게 조용하던 히나타 또한 쿠니미를 보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발언에 대해 모두가 한마디 씩 하며 거들 무렵, 마지막으로 북궁의 히나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좌중은 조용해졌다. 히나타는 쿠니미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왜 여기에 모이게 한 거야? 토비오의 일이라면 빨리 말했으면 좋겠어."


카게야마는 회임을 하였고, 곧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그랬기에 카게야마에 대한 일이 남아있다면 히나타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쿠니미는 그런 히나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보다 키가 큰 것 같았다. 잠시 히나타를 쳐다보던 쿠니미는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모두가 쿠니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여기에 모신 까닭은."


쿠니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는 언제나 카게야마였다.


"키타가와의 존폐 때문입니다."

"키타가와의..?"


쿠로오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이카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미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단패궁께서는 키타가와 쪽의 후계를 임신하셨기에, 성별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쿠니미는 희미한 얼굴로 웃었다. 


"만약 성국의 피를 이었다면 당연히 사내일 테니 제가 이런 말을 꺼낼 필요도 없겠지요."


카게야마가 만약 여아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또다시 단패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왕녀로 자라나, 단패궁에서 오직 회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려야할 것이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했다.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니 쿠니미는 여한이 없었다. 그는 오이카와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몸이 불편해 섭정의 관을 오래 쓸 수가 없고, 귀족의 대부분은 지금 내란을 일으킨 장본인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혹, 시.."


코즈메는 무언가 떠오른 듯 했으나 곧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인 아래로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져 코즈메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 남자는... 그런 코즈메를 쿠로오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쿠니미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또 한번 여아를 낳는다고 하면 키타가와는 혼란에 빠질 게 분명합니다. 이끌 사람도, 더 이상의 왕족도 없으니."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거지."


우시지마가 쿠니미의 말을 잘랐다.


"내정에는 간섭하기 어렵군. 네 자리를 채울 인재를 우리에게 요청이라도 하는 것인가."

"그건 안됩니다."


츠키시마가 불쑥 말했다.


"이미 단패궁은 회임을 하였으니 우리의 의무 또한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끼리 다투게 될 겁니다."

"아오바죠사이에서 보내겠다면?"


오이카와는 츠키시마의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말했다. 츠키시마는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저 섭정이 위왕 카게야마가 여인임을 밝힌 대가로 그에 대한 내정 간섭은 없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내가 그랬지."


아오바죠사이의 황자는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기댔다. 쿠니미는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가 말했다.


"내정에는 간섭하지 못해도 다른 건 손을 대실 수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의아하게 물었다. 쿠니미가 입을 열었다.


"법."


그 말에 모두 조용해졌다


"저는 과거의 전례가 있는 것을 오이카와님께 확인하였습니다."

"...."

"긴급한 상황이므로, 키타가와에 여왕이 설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여 주십시오."


*


"말도, 안 되는.."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살짝 더듬었다. 쿠니미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될 수 없어. 그렇게 정해놓았다."

"백년 전에는 성국과 평국의 사람끼리의 혼인도 금지였습니다."


쿠니미는 오이카와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곧바로 오이카와는 연초에 보았던 연극을 떠올렸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당연한 사실이, 그 때에는 금기였지 않습니까."

"지루한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지. 지금을 위해서였어?"

"...그건 지푸라기였습니다."


쿠니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게야마를 위왕으로 몰아간 후 모든 사서에 그의 이름을 지우며, 쿠니미는 이것만은 되돌려 놓겠다고 다짐했다. 목숨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무지 카게야마의 명예 또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명예와도 닿아있었으므로. 오직 카게야마만이 그의 명예였다.


"실낱같은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해야 법을 바꿀 수 있을 지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쿠니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했다.


"성국의 승인이 떨어져야한다고 들었습니다."

"...."

"마침 성국의 대표 자격으로 키타가와에 오신 분들이 많으시니 제가 말은 꺼내볼 수 있겠지요."

"이걸 생각하고서 토비오쨩을 단패궁에 넣었어?"


단패궁이 아니었다면 한낱 평국에 네 개의 성국이 모두 모일 리가 없었다.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오이카와는 물었다. 쿠니미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물었다.


"바라는 게 있습니다." 

"...."

"개정을 요구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을 알려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달려든다. 정말 그랬다. 오이카와는 결국 그 조건을 알려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궁을 나와 섭정궁으로 돌아가며 그는 생각했다.


카게야마. 


나는 네가 한 모든 일을 결코 이대로 사라지게 두지 않을 거야. 역사에 너의 이름을 반드시 남겨서, 다시 한 번 네 이름을 올릴 방도를 찾아내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후세까지 너를 남겨두겠어. 적어도 여자였기에 왕위를 포기한 비운의 여인으로는 남게 하지는 않아. 


*


"그건.."


쿠니미의 말을 예상했던 코즈메는, 만류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함부로 바꿀 수 없어. 법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지금.. 알고 있는 거야?"


코즈메의 물음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걸 압니다. 그러니 제가 제 보잘것없는 목숨을 바쳐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킨다이치는 오사와를 잡고, 마지막으로 자신은 카게야마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다리를 내놓았던 그때처럼 망설임은 없었다. 쿠니미가 바라던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재미가 없다고 말했던 카게야마는 기억하지 못할 지도 몰랐다. 그 연극의 끝은 비극이었다. 사랑에 빠져 도망치던 남녀는 결국 성국의 왕들 앞에 엎드려 호소했다. 하늘이 내려준 법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하니, 남자는 그러면 내생에 다시 태어나 다시 한 번 여인을 찾겠다고 하고 죽었다. 그것을 가엾게 여겨 왕들은 남자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바라던 것을 이루어주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희생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 대가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간절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츠키시마는 드물게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대법이잖아."

"비슷한 선례가 있습니다. 츠키시마님."

"죽어서 법을 바꾸다니 그건.."

"하지만 실제로 가능하다는 거지? 그 때 본 연극처럼."


히나타는 쿠니미를 보며 말했다.


"바꾼 건 너지만, 넌 아무것도 보지 못해. 그래도 상관 없다는 뜻이야?"

"..괜찮습니다."

"잠깐, 히나ㅌ,"


츠키시마가 히나타의 말을 막으려 했으나 히나타는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죽을 생각인거지?"

"예."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


히나타는 물어보는 것처럼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은 없었다. 쿠니미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저는 키타가와에 여왕이 허락되길 바랍니다."

"....."

"그리고 단패궁께서 위왕이 아니라, 적어도 폐왕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마치 폐왕이 아닌, 모든 나라를 정복한 패왕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홀 : 오이카와 

짝 : 이와이즈미



"...라는 말을 섭정쨩은 하고 있거든."


오이카와는 조금 짜증이 난 얼굴로 말했다.


"섭정쨩이 원하는 건 키타가와에 여왕이 허락되는 것, 그러니 자동적으로 토비오쨩에 대해서도 다르게 적혀야겠네."


여인의 몸으로 왕위에 올라갔던 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단지 폭군의 기록만이 남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쿠니미가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전부 다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히나타의 말대로 쿠니미가 결행하겠다고 하면, 막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이카와씨는 섭정쨩에게 가장 먼저 저 제안을 들은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우선 이 자리를 파하고 싶어."

"확실히 지금 당장 말하기 힘든 문제네."


쿠로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우시지마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곧 키타가와를 떠나야하실 테니 그 전에 결정하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쿠니미의 목소리는 공손했으나 눈빛은 무섭도록 형형하였다.


"저는 언제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 섭정쨩. 진정해."


오이카와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그렇게 섭정의 요청은 잠시 중단되었다.


*


단패궁에는 늦은 시간까지 아무도 오지 않아 조용했다. 그러나 곧 북이 울렸다. 카게야마의 회임을 알리는 두번 째 북소리였다. 카게야마는 귀를 쫑긋 세웠다. 네코 또한 카게야마를 따라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카게야마는 까르르 웃었다.


"마마. 북이 울리네요."


감축드립니다. 상궁은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의 배 위에 붉은 보를 덮어주었다. 액운을 막고 회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카게야마는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직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안에 쿠니미의 아이가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불안해한다고 느꼈는지, 상궁은 카게야마에게 자상하게 말했다.


"이제 좋은 일만 있으실 겁니다."

"음.. 그랬으면 좋겠구나."

"어찌 약하신 말씀을 하세요. 분명 그러실 겁니다."


그럴까? 카게야마는 킨다이치가 두고 간 활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순간 무언가가 생각났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배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직접 활을 가르쳐줘야지."

"에그, 마마께서 직접 하시다니.."


상궁은 인상을 찡그렸으나 더 말리지는 않았다. 카게야마에게는 한적한 저녁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16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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