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과 28일로 넘어가는 공백의 이야기
1~3 : 카게야마
4~6 : 킨다이치
7~9 : 쿠니미
0 :
공식적인 밤은 끝났다. 27일은,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되었다. 쿠니미의 압박 때문이었다. 한 번 사서에 기록되면 되돌릴 수 없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오사와 쪽에 빼앗겼다는 걸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문자로도 남겨둘 수 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그것이 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인질을 끌고 갔으니 함부로 뒤를 쫓을 수 없었다. 쿠니미는 자객들의 뒤를 쫓되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했다. 카게야마의 안전이 무조건 일순위였다. 그러나 쿠니미는 이미 제 속에서 자객들을 몇 번이고 찢어 죽이고 있었다.
"전하."
궁녀가 달려와 아뢰었다. 쿠니미는 초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킨다이치 장군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알겠다."
쿠니미는 짧게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직접 말을 타고 가고 싶었다. 아니, 납치된 게 자신이었으면 했다. 그는 아까부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카게야마가 다시 이 궁에 왔다가 납치를 당했다. 혹시 나를 찾아왔던 걸까. 나를 만나러 왔다가...
나를
"전하."
쿠니미는 목이 꽉 졸린 사람처럼 놀라며 궁녀를 쳐다본다. 궁녀는 쿠니미에게 이와이즈미가 찾아왔다고 알려주었다.
*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카게야마를 가장 최근까지 본 사람이었다. 당시의 설명을 해주기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일부러 와주기를 청하였으나 막상 마주보니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 지 쿠니미는 몰랐다. 그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낮에 피를 많이 쏟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쿠니미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쿠니미의 상태를 모르는 이와이즈미는 몇 번 입술을 달싹거렸다가, 결국 말했다.
"우리한테도 도움을 요청했던데."
"잠시 궁이 빌 것 같으니, 죄송하지만 궁의 경계를 위해.."
"카게야마를 쫓는 걸 도와달라는 말은 아니었어?"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쿠니미는 이와이즈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걸 떠나더라도 카게야마는 내 동생같은 아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어."
이와이즈미는 넌지시 다른 궁들에게도 카게야마가 납치되었고 인력이 지금 부족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몇몇은 이와이즈미를 따라 당장 카게야마를 되찾으러 갈 기세였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설명해."
"....."
"너 역시 카게야마를 구할 수 있다면 누구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겠지."
홀 : 혹시
짝 : ....
"혹시,"
가장 묻고 싶었고 묻기 두려웠던 말이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제안이나, 성국의 도움같이 더 중요하게 논의를 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쿠니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혹시, 단패궁.."
"...."
"카게야마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목숨만을 가지고 협상하던 가면은 진작에 벗어던졌다. 쿠니미는 이와이즈미를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카게야마가 왜 이 궁에 온 겁니까."
"....."
"가버렸는데.."
"....."
"당신을 따라서."
카게야마가 떠난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쿠니미는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모든 것이 현실감없게 느껴졌다. 피를 뚝뚝 흘리는 걸 손등으로 훔쳤다가, 궁녀들의 손이 닿자 그제야 귀가 열렸다. 웅성거리는 소리들은 말이라기보다는 어떤 암호처럼 들렸다. 아무것도 해석할 수 없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는 카게야마의 뒷모습만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쿠니미가 심각한 상태인 걸 뒤늦게 알았다. 올려다보는 눈이 빨갰다. 몸상태로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을 한 섭정은 이와이즈미에게 묻고 있었다. 차라리 원망하는 말투로 물었다면, 그러니 왜 이런 일을 벌였냐고 이와이즈미 또한 다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그의 왕을 빼앗긴 남자는 눈물이 꽉 막힌 눈동자로 이와이즈미를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물어볼 게 있다고 했어."
이와이즈미는 잠시 후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섭정. 네가 왕인 자신만을 좋아하는 건지."
"....!"
"그게 궁금하다고 했어."
알려주지 않았어도 이와이즈미에게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제 앞에 앉은 남자에게 말해주었다. 사람에겐 어쩔 수 없는 연약함들이 있다. 카게야마는 그걸 인정하면서도, 똑바로 앞을 나아가려 애썼다. 그런 카게야마를 쿠니미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쿠니미는 고개를 숙인 채 이와이즈미의 말만을 들었다. 얼굴은 볼 수 없어도 왠지 이와이즈미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게야마가 이 궁에 왔다면, 당연히 이곳에 있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겠지."
"....."
"그런 사람이니까."
쿠니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말을 마친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
쿠니미는 이와이즈미의 말 속에서 카게야마를 보았다. 보이지 않아도 보였다. 섭정궁으로 갈래요, 저는 가서 이야기를 할 거예요.
조금만 외면했다면 훨씬 더 편한 삶을 살았을 쿠니미의 왕은 늘 그런 식이었다. 자신이 쏘아버린 다리에 잡혀 나라를 떠나지 못했고, 친우들의 반역에도 미련할 정도로 그들을 믿었으며, 또한 후계자를 낳아야한다는 의무에 잡혀 키타가와에 남았다.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게야마의 앞엔 늘 직선의 길만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쿠니미는 그 길을 막고 싶었다. 막아섰다가도 또 카게야마가 주저 앉으면 손을 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손을 잡기에는, 자신은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으므로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쿠니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저는.."
복잡한 감정들이 아랫배에 고였다가 투명한 것으로 변해 심장으로 퍼진다.
"...부탁드립니다."
사실은, 쿠니미 아키라는.
"카게야마를 도와주십시오."
언젠가 카게야마에게 말했듯 그저 그 손을 잡고 같이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남자의 눈동자엔 자존심이나, 사랑이나, 질투나, 그런 고차원적인 감정은 없었다. 오직 카게야마 토비오만이 그 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다시 쿠니미를 돌아본 이와이즈미는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그럴 거야."
이와이즈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야할 일이 많았다. 그는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다시 등을 돌려, 멍하게 앉아있는 쿠니미에게 말을 걸었다.
"의원을 불러줄까."
"....."
"시체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카게야마가 뭐라고 하겠어."
쿠니미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듣고서 얼굴을 손으로 힘없이 문질렀다. 손등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아프다는 걸 티내지 않으려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만 끄덕이고서 섭정궁을 나갔다.
*
네코는 밥을 먹었을까. 카라스는, 누가 챙겼겠지.
우습게도 카게야마 토비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뒤늦게야 카게야마는 자신의 상태를 알았다.
1~3 : 팔 다리가 묶여있다
4~6 : 손이 묶여있다
7~9 : 양손과 양발이 자유롭다
0 :
>지금까지의 선택지와 연결되어, 유산과 관련된 항목은 사라집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몸에 큰 이상은 없는 듯 했다. 다만 손은 등 뒤로 묶여있었다. 그래도 다리는 자유로우니 다행이었다. 안도감에 서서히 고개를 들면 빈 방이다. 오래되어 눅눅한 냄새가 났지만 비교적 깨끗했다. 어떻게 여기에 오게됐지?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릿속이 흐렸다. 먼지를 털어내듯 카게야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래, 나는 인질로 끌려온 거야. 간단히 상황을 정리한 카게야마는 불편한 손을 등 뒤에서 흔들었다. 제법 단단히 묶여 있었다. 풀 수 있을까? 뾰족한 것만 있다면, 아마도. 조심스럽게 카게야마는 방을 살펴봤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해야했다. 다른 걱정이 들지 않도록, 불안이 머리를 갉아먹어 둔해지지 않도록.
나는 비처럼 내리는 화살 속에서도 살아남았어. 이까짓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살아만 있으면 살아남는 건 자신있었다. 카게야마는 이를 악 물었다가 결국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니 어쩌면 자신이, 조금 겁을 먹었다는 걸 들켰을 지도 몰랐다.
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것 같아? 걱정할 필요 없어. 괜찮을 거야.
카게야마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아이들에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 귀를 기울이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면 좋을 텐데,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웅성거려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기껏 인질로 데려와놓고 이곳에 죽이지도 않고 쳐박아둔 건 무슨 이유일까. 카게야마는 자신이 인질로 써먹을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기엔 주변이 어수선했다. 제대로 경계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신경써야할 일이 생겨서? 아니면 인질로 자신이 온 게 예상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당황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며 자신의 목을 조르던 남자는 원래는 쿠니미를 찾으러 왔을 것이다. 우연히 마주쳤고, 시간은 모자랐고, 그러면 인질로 실은 쿠니미를 납치하려고 했던 걸까.
쿠니미.
그 이름을 떠올리자 카게야마는 불현듯 가슴이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미뤄두었다가 맨 마지막 떠올린 이름 하나는 카게야마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걱정할 텐데.."
홀 : 사야코
짝 : 오사와
순간 아는 목소리가 귀에 잡혔다. 카게야마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만나보겠다."
무척이나 불편한 목소리였다. 늘 자신만만하던 오사와 타카히로의 것이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으나, 그가 맞았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어 문을 쳐다보았다.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린다. 신하였던 오사와는 반역자가 되어 다시 한 번 카게야마의 앞에 섰다.
"폐하."
일부러 비꼬는 호칭. 우위를 선점하려는 사내의 옹졸함. 카게야마는 그런 그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많이 늙었구나. 오사와."
"...이런 상황에서도 참으로 변함이 없으십니다."
오사와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카게야마는 가볍게 미소지었으나 등 뒤의 손은 미친듯이 매듭을 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단단한 매듭은 도통 느슨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킨다이치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일정 거리에 따라 병사를 두었다. 궁으로 연락을 할 땐 말을 태워 보내면 되지만, 반대로 궁에서 급한 소식이 있을 때를 대비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궁에선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오늘까지는 그랬다.
"...!!!"
밤새도록 내달려 킨다이치의 손에 들어온 서신에는 무참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오사와가 숨겨놓은 자객이 카게야마를 납치한 것. 궁에서도 지원을 보낼 테니 서둘러 오사와을 잡으라는 것. 무엇보다 카게야마의 안전이 제일이어야한다는 것.
킨다이치는 억지로 동요를 눌렀다. 병사들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짧게 얄팍한 종이를 더듬었다. 쿠니미의 글씨였으나 정신없이 흐트러져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글을 쓴 것 같았다.
킨다이치는 현재
1~3 : 오사와의 위치를 잃었다
4~6 : 위치는 파악했다
7~9 : 바로 코 앞까지 왔다
0 : 오사와 무리를 소탕하려던 찰나
병사들은 킨다이치가 마치 오사와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킨다이치는 오사와 사야코의 도움을 받아 추척했을 뿐이었다. 분명하던 목표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킨다이치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누군가 물었다. 킨다이치는 고개를 들었다.
"단패궁 마마가 인질로 잡히셨다."
"그게 무슨,"
"궁의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자객이 움직인 모양, 이군."
애써 태연하려고 해도 목이 잠겼다. 쿠니미는 오사와 타카히로가 궁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참에 싸그리 화근을 없애버려야한다고 강조했었다. 쿠니미의 계획이, 그 일이 잘못 된 게 분명했다.
잘못된 이유를 찾아 원망하고 질책하는 건 킨다이치 유타로의 일이 아니었다. 킨다이치는 재빨리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오사와의 위치는 파악했다. 이미 앞서 병사들을 보내 진을 치고 있도록 하였다. 당장 달려가 오사와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어도, 인질이 있으니 더욱 신중해야했다.
"변하는 건 없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키타가와에 반기를 든 소인배의 무리다. 내가 단패궁 마마를 구할 것이니 너희는 그대로 진행하도록."
"오사와가 먼저 단패궁을 해칠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으십니까."
그런 질문에 킨다이치는 인상을 썼으나 부정하진 않았다. 킨다이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오사와를 생각했다. 권력의 단맛을 보고, 그것만을 추구해온 남자. 기회를 엿보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했으면서도 정작 범접할 수 없는 성국 앞에서는 꼬리를 내렸다. 그걸 비굴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사와 타카히로라는 남자는 쭉 그런 식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그러나 호시탐탐 제가 앉을 의자를 희끄무레한 눈으로 노려보며.
반란 후 휘몰아쳐온 쿠니미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실패한 오사와가 카게야마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회임하기 전에 오사와의 손에 들어갔다면 카게야마는 기필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이지 못했다. 성국의 씨를 받지는 못해도 성국의 왕족들은 아직 카게야마를 축하하기 위해 남아있다.
킨다이치는 잔기침을 몇 번 하고서 말했다.
"단패궁 마마를 왜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쿠니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쿠니미 자신을 미끼로 내걸 생각이었던 게 분명했다. 킨다이치의 눈엔 그게 보였다. 좀 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라고 말해도 말을 듣지 않던 친구. 애초부터 쿠니미는 죽을 각오를 한 게 아닐까. 킨다이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마마를 이용해 협상을 하려했지 당장에.."
죽이려 들지는, 이라고 말을 하려던 킨다이치는 다시 한 번 입을 다물었다. 병사들은 그것으로 킨다이치의 뜻을 알아들었다.
오사와에겐 못 다 이룬 원이 있다. 자포자기한 오사와는 그 원을 카게야마를 죽이는 것으로 풀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만약, 아주 작은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오사와는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궁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했으니 합류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겠군."
킨다이치는 다시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이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어서야 눈을 깜박였다. 깊게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세차게 쿵쾅거렸다. 이성은 카게야마가 무사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무사하겠지. 무사할 것이다.
오사와가 카게야마를 죽여봤자 얻는 건 없었다.
얻을 게 없는 일에 손을 대진 않을 남자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아이를 가졌는데,
자신에게 지켜달라고 말했었다.
그 아이.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킨다이치는 말 위에서 몸이 흔들릴 때마다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
카게야마는 방 안에 혼자 남아 열심히 손목을 문질렀다. 줄이 팽팽히 당겨진 손목이 아팠다. 그래도 발은 자유로우니 손만 풀린다면 당장 도망갈 수도 있다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오사와가 당장 자신을 죽이려들진 않을 같았다. 그러나 언제 마음이 바뀔 지는 모른다.
"아파.."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는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홀 : 오사와 사야코
짝 : 3
인기척은 끊임없이 들렸다. 거처를 옮겨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기왕 단패궁을 데려왔으니 뜯어낼 수 있는 만큼 뜯어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오사와는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갈 생각일까. 카게야마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오고 있다.
가벼운,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옷자락이 바닥에 끌렸다. 피곤한 발자국 소리. 망설이는 것 같은, 그러나 멈추지는 않는다.
"사야코?"
카게야마가 무심코 내뱉은 순간 문이 드르륵 작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사야코."
"폐하."
수척한 얼굴의 사야코가 카게야마를 보고서 겨우 웃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둘은 단지 눈을 맞추었다. 카게야마는 뒤늦게야 사야코의 손에 작은 상이 들린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식사를 하지 못했다. 식욕을 느낀 배에서 소리가 났다. 카게야마가 머쓱해진 사이 사야코는 서둘러 상을 내려놓았다. 도피 중이라 밥을 얻어먹을 생각은 못했는데, 제법 구색을 갖춘 상이었다.
"폐하. 제가 직접 차린 겁니다. 누구도 손을 대진 않았어요."
카게야마는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혹시라도 독살을 염려할까봐 하는 말일 것이다. 고개를 젓자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오사와가 먼저 품에서 수저를 꺼내 들었다. 은수저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야코는 데워온 국물을 수저로 떴다. 색은 변함없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벌벌 떠는 사야코에게 웃어주었다.
"죽였다면 벌써 죽였겠지.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서 드셔요."
카게야마의 시장함만이 제 걱정이라는 듯 구는 사야코를 보며 카게야마는 마음을 놓았다. 일단 먹어야했다. 먹고 먹어서 기운을 내면 된다.
*
카게야마는 손목이 뒤로 묶여 있으니 식사를 할 수 없었다. 풀어달라고 할까? 그렇게 말하려 입을 떼자니 문득 걱정이 들었다.
"사야코."
"예."
"네가 내게 와 있는 걸 타카히로도 아느냐."
"제가 식사를 챙겨드려야하지 않겠냐고 먼저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사야코가 위협적인 대상이 될 거라곤 오사와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홀 : 식사를
짝 : 손을
손을 풀어달라고 역시 말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야코는 조심스럽게 수저로 음식을 떠 카게야마의 앞에 내밀었다.
"계속 수고를 끼치는군."
"폐하의 시중을 드는 일인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내 손을 풀어줄 수는 없느냐."
"....."
사야코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 방에 들어오기 위하여 사야코는 식사 핑계를 댔다고 했지만, 실제론 제법 오래 제 아버지를 설득했을 지도 몰랐다.
홀 : 안된다면
짝 : 사야코
사야코, 카게야마는 짧게 사야코를 불렀다. 부르자마자 움찔 떨리는 어깨.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도 들었다.
1~9 : 그렇다면
0 : ...식사를
"그렇다면 조금만 도와다오."
"폐하..?"
"전부 다 풀어달란 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
그릇을 하나만 바닥에 떨어트려줄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하자 사야코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한 여자는 카게야마의 의중을 깨닫고 꺅, 비명소리를 내며 그릇을 떨어트렸다. 도기로 된 반들반들한 접시가 바닥에 깨졌다. 감시하라는 명이 붙었던 건지, 문 밖의 남자가 무슨 일이냐고 문을 열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런 건 필요없으니 어서 상을 가져가라."
"허참."
남자는 혀를 찼다. 카게야마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남자가 지켜보는 와중에 사야코는 서둘러 깨진 그릇을 치웠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날카로운 조각 하나를 옷 속에 숨기는 것을 보았다. 상을 가져가는 척 카게야마 쪽으로 다가와 접시 조각을 근처에 떨어트려준다. 카게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로 드시지 않겠습니까."
"....."
더이상 이야기를 한다면 사야코가 의심을 사게 된다. 카게야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사야코는 남자와 함께 나갔다.
*
손에 닿는 위치는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묶인 팔을 끌어 접시조각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쉽게 집지는 못했다.
"익..."
악 문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몸을 비틀어가며 잡으려니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왔다. 겨우 저 조그만 부스러기를 집기 위해 온 몸을 다 사용하고 있었다. 닿을 듯 말듯 하니 화도 났다.
홀 : 잡았다
짝 : 조금만 더
0 : 누군가
손가락 끝에 걸리는 조각이 제때 잡히지 않았다면 카게야마는 그만 소리를 질러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카게야마의 얼굴이 새빨개지기 전 조각은 손에 들어왔다.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벼보니 굵은 밧줄의 올이 가닥가닥 느리게 풀렸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카게야마는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줄을 갉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들어온다면 엉덩이 밑에 깔고 앉으면 될 것이다. 갑자기 손이 풀리면 안 될 테니까,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만들어서..
1~3 : 당장
4~6 : 여기서..
7~9 : 기다리자
0 : 혹시
당장 줄을 풀고서 도망치는 거야. 내가 여기에 있으면 제대로 오사와들을 잡지 못하겠지. 카게야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질이 되어 꼼짝없이 구조를 기다리는 건 성미에 안 맞았다. 줄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계속 같은 동작을 하는 팔은 아팠고 등은 땀이 흘러 흠뻑 젖었다. 그래도 줄을 푸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그런 말이 떠올랐으나, 카게야마는 자신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
선왕의 죽음 후 독자 카게야마 토비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선왕의 묘에 인사를 올린 후 궁으로 가는 길, 백성들이 카게야마의 앞으로 뿌리는 꽃 덕에 길은 온통 붉었다.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한 쿠니미는 흠칫 놀랐다. 말을 타고 앞을 걷던 카게야마가 쿠니미를 돌아보고 있었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의 곁에서 혹시라도 있을 위험에 대비해 눈을 떼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킨다이치가 경계하는 것을 확인하고 말의 머리를 돌려 쿠니미 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지?"
"폐하."
폐하라고 소리내어 부른 후 쿠니미는 그 울림에 감동하여 입을 다물었다. 키타가와의 왕. 카게야마 토비오.
"꽃이 붉어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너는 참 몸이 약하군."
큰일이다, 카게야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가벼운 숨소리까지도 쿠니미는 잊지 못하고 생생했다.
왕의 푸른 옷. 금사로 용을 수놓은 푸른 비단옷은 카게야마의 눈동자와 같이 선명했다. 궁 앞까지 뿌려진 붉은 꽃잎들은 바람에 날려 머리 위까지 날아갔다. 새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노랫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렸다. 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에서 카게야마 토비오는, 키타가와의 13번째 왕은 상아와 황금으로 만든 흰 옥새를 가지고 왔다. 쿠니미는 머리카락에 붙은 꽃잎을 뗄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기쁜건지 슬픈건지, 긴장한건지 여유로운건지 카게야마의 얼굴만 봐선 알 수 없었다.
키타가와에서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일이 없는 왕은 즉위식이 마무리되자마자 쿠니미와 킨다이치를 찾았다.
"폐하, 잘 하셨습니다."
친구로 불렀다는 것을 알면서도 킨다이치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무척 훌륭하게 즉위식을 치루셨습니다."
"그런가?"
카게야마는 웃음소리를 냈다. 카게야마가 기뻐하고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쿠니미는 안심이 됐다.
"쿠니미 너는?"
"예?"
"넌 어땠는데?
"폐하께 제 의견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쿠니미가 말을 아끼자 카게야마는 곧 섭섭한 얼굴을 했다. 킨다이치가 쿠니미의 옆구리를 툭 쳤다. 너도 축하말씀을 드려야지! 라고 말하는 킨다이치의 표정엔 제법 장군같은 위엄이 묻어나왔다. 킨다이치를 잠시 보았다가, 또 카게야마 쪽으로 눈을 돌린 쿠니미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 의견이 그렇게 중요하십니까."
"당연하지."
카게야마의 곧은 시선이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번뇌 따위는 없는 깨끗한 눈동자. 쿠니미는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감히 자신은 들여다 볼 수 없는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선왕의 말씀대로 왕이 되었으니, 이제 난 너희를 지킬거야."
"폐하?"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는 즐겁게 웃는다.
"가장 강한 왕이 되어서 너희 둘을 지켜줄게."
"....."
"하지만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카게야마의 물음에 킨다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 할 필욘 없어, 아니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지금 키타가와의 왕은 너잖아?"
그러니까 벌써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 ㅁ..말자. 킨다이치는 결국 친구 카게야마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쿠니미는 킨다이치가 무엇을 떠올리고서 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병풍 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날 카게야마는 아마도 맹세한 것이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키타가와를, 친구들을 지켜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너는 똑똑하지, 라며 직접 자신을 찾아와 흥정하던 선왕이 있었다. 저 맹세는 나를 위한 것일까? 카게야마?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조금 웃었다.
쿠니미는 킨다이치의 손을 붙잡은 카게야마를 내려다보았다. 머리에 쓴 관이 이상하게도 커보였다. 카게야마의 동그란 머리가 작아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폐하."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불렀다. 킨다이치의 손을 잡고서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폐하께선 분명 성군으로 기록되실 겁니다."
"쿠니미?"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을 느꼈다고 한다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영혼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고작 어린 아이의 착각이라고 무시를 당할 줄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쿠니미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날까지 기다려왔다. 카게야마의 남은 손을 쿠니미가 한쪽 무릎을 꿇어 붙잡았다.
"제가 그렇게 되도록 돕겠습니다."
"그래."
쿠니미가 도와준다면 안심이지. 쿠니미는 똑똑하니까- 킨다이치와 쿠니미의 손을 잡은 카게야마는 무척이나 기분 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축포가 터졌다. 꽃잎은 휘날리고, 백성들의 노랫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왕은 그의 말대로 했다.
강해지는 일에만 집중한 왕은 목적을 잃고, 킨다이치와 쿠니미의 조언도 듣지 못했다. 아무리 커도 머릿속에는 [그 날]의 일만 있는 카게야마를 보며 쿠니미는 초조해졌다. 붙잡을 수 없는 곳으로 카게야마는 또 어디론가 가버릴 지도 모른다.
오사와 타카히로의 반란을 막기엔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 그래서 킨다이치를 설득하며 카게야마가 여자임을 알리고, 목숨이라도 살려놔야한다고 말했을 때, 자신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내심 카게야마가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게 된 걸 환호하고 있었을 것이다. 카게야마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을 위하여, 쿠니미 아키라는.
"...카게야마.."
쿠니미는 마치 병자처럼 카게야마를 앓았다.
홀 : 최선의
짝 : 카게야마를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야한다. 최선의, 카게야마만을 위한 길만을 열어여한다. 쿠니미는 자신의 감정을 버렸다. 카게야마에게서 버림받을 두려움, 다시는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따위는 머리를 좀먹을 뿐이다. 그리고 버리기로 마음 먹었던 모든 일을 탐욕스럽게 다시 움켜쥐고서 계산을 한다.
오사와같이 권력욕과 물욕이 있는 남자가 기껏 손에 들어온 카게야마를 죽일 리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요구를 있다면 아마 때를 기다릴 것이다. 킨다이치와 때를 맞춰 성국이 함께 공격을 한다면..시간은 짧으면 짧을 수록 좋으니까 최대한 빨리. 그리고 나는? 쿠니미의 호흡이 짧게 멈췄다. 가고 싶었다. 자신 또한 카게야마를 찾아 손을 잡고 싶었다.
1~9 : 중신들
0 : 손을
섭정궁 안에 홀로 앉은 쿠니미에게 중신들이 찾아왔다. 오사와의 무리들을 몰아내기 위해 쿠니미가 직접 중용한 젊은 청년들이었다. 쿠니미는 곧 섭정의 얼굴로 돌아갔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전하."
편찮으시다고 들었다 하며 안부를 묻던 이 중 한명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단패궁 마마의 일로 심려가 많으실 텐데.."
"자네들은 걱정이 되지 않나보군."
침착한 어조로 말하려 했으나 곧바로 날카롭게 받아쳤다. 신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쿠니미는 혀를 찼다.
"어째서 왔는지 알고 있다."
"전하.."
"몸이 불편한 나까지 따라가 궁을 비울 수는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겠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쿠니미의 다리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따라간다고 해도 자신 때문에 지체가 될 지도 몰랐다. 신속을 요하는 일에 자신의 다리는 방해였다. 쿠니미는 처음으로 아픈 다리가 거추장스러웠다.
"알고 있으니 나가봐라."
"....."
"단패궁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임무를 다할 것이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는 얼굴로 쿠니미는 말했다. 맨 처음 말을 꺼낸 이가 조심스럽게 쿠니미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와서 숨기겠습니까. 신들은 전하께서 단패궁 마마를 마음에 두셨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또한 궁에 도는 소문으로 무슨 일을 하려 하셨는지도 알았습니다."
카게야마의 방패가 되도록 골라 뽑은 남자들은 쿠니미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목숨 따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희에겐 중대한 일입니다. 부디 단패궁 마마뿐만 아니라 키타가와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그들은 그런 말을 하고서 궁을 떠났다.
*
따르던 젋은 개혁파들을 주요보직에 넣어둔 건 다른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자신의 뜻을, 말을 잘 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오사와에게 반대하는 이들의 편을 들어 세력을 늘린다. 오랫동안 터를 잡고 힘을 길러온 오사와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쿠니미는 오사와를 견제하고 싶어했고, 개혁파들은 쿠니미의 힘을 빌어 뜻을 펼치고 싶어했다. 쿠니미의 필요가 먼저였고, 그러하여 이 관계는 이루어졌다. 그 뿐이었다. 그러나 장기 위의 말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도 생각은 있다. 각자 모두의 바람이 있었다. 새삼스럽게 그것을 깨달았다.
쿠니미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벌떡 일어서려던 몸을, 허리를 곧게 펴고서 등받이에 기댔다. 쿠니미는 궁녀를 불렀다. 성국에서 출정한다면 이쪽에서도 도울 수 있는 일을 지원하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28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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