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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97. 3월 27일


마른 볏짚 냄새가 났다. 그 속에서 남자는 웅크린 채로 감옥의 나무 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첫날 잔뜩 얻어맞아 멍이 든 몸은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섭정의 명으로 깨끗히 치료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문을 당한 손톱은 다 빠져나가 속살이 보여 반들반들했다. 얇은 새 손톱이 올라올 때 쯤 남자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키타가와에 경사가 있기에 함부로 피를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슨 경사인지 남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왕이 실은 여자였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내심 대단하게 여겼고, 어떤 이들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 남자는 후자였다. 몇 번이나 죽을 뻔한 후 겨우 살아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신의 장례가 끝난 후였다. 시체가 없는 무덤에는 동생이 넣어준 그의 옷가지만이 남아 있었다. 


동생 하나코는 궁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여자 혼자 살기 힘드니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마을을 떠나 궁의 동생을 만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겨우 찾은 동생은 이미 죽어있었다. 우물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울며 동생의 시신을 찾았으나, 돌아온 건 신발 한 켤레였다. 궁에는 시신을 둘 수 없어 태웠다고 했다. 남자는 신발을 가지고 홀로 돌아왔다. 전쟁터에 갔던 자신은 살았고, 궁에 간 동생은 죽어서 집을 찾아왔다. 남자는 그 사실이 무척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빈 무덤엔 동생의 신발이 대신 들어갔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고,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 남자는 동생의 일은 빨리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남자에게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나라의 높으신 분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자신을 찾은 건지 남자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눈치채지 못한 건가?"


손님은 남자에게 은밀히 말했다.


"네 동생 하나코가 죽은 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냐?"


희미한 동생의 이름을 들먹이며 손님은 그에게 여러가지 일을 알려주었다. 하나코가 혼자 살기 위해 궁을 들어왔던 것, 그곳에서 몹시 구박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일을 했던 것, 오라비를 죽인 여자의 시중을 들게 됐어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았던 것. 손님은 그 증거라며 피묻은 옷을 꺼내왔다. 남자는 그 것을 펼쳐보았다. 딱 하나코가 입을 만한 체구의 옷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그 고약한 위왕이 네 동생을 괴롭혀서 죽게하곤 그 시신마저 태우려 했다."

"하나코의.."

"얼른 옷만은 건졌으니 무덤에 넣어주거라."


차디한 옷은 궁인이 입는 것임에도 거칠었다. 하나코는 매일 이런 옷을 입고 있었던 걸까. 남자는 피가 말라붙은 옷을 꽉 쥐었다. 손님이 입을 열었다.


"너를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

"동생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면, 내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남자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남자를 궁의 시위로 넣어주었다. 가까이에서 본 위왕은 평범한 여자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는 마치 왕같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한 순간이라도 그에게 비범함을 느낀 것이 수치스러웠다. 남자는 쉴 새 없이 거짓말쟁이라고 외쳤다. 그래야만 했다. 


동생은 죽었고 자신은 감옥에 갇혔다. 그 모든 것이 카게야마의 탓이 아니라면,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


남자는 뚫어져라 문 밖을 쳐다보았다. 촘촘한 창살에 비치는 인적은 드물었다. 횃불만이 일렁이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


남자는 누군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동생을 묻고 평화롭게 살던 남자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아직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남아있다면 그들은 자신을 꺼내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남자의 머릿속에 놀란 위왕의 얼굴과 조용히 분노하던 섭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은 불행한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은 아마 영영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건 무척 불합리한 일로 느껴졌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들을 자신처럼 절망스럽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홀 : 카게야마 

짝 : 쿠니미



카게야마는 반짝 눈을 떴다. 옆에는 쿠니미가 잠들어 있었다. 쿠니미.. 카게야마는 그를 살살 불러보았다. 모처럼 푹 잠들었는지 쿠니미는 쉽게 깨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아예 몸을 틀어 눈을 감은 쿠니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손으로 눈 위를 흔들어도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쿠니미."


속살거리는 목소리는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보다 작았다. 


"안 일어나?"

"으음.."


카게야마는 어제 저녁 내내 자신에게 말을 걸던 쿠니미를 떠올렸다.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들은 아니었다. 그 말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끌어안고 잤다. 쿠니미의 품에서는 비바람같은, 서늘하고 축축한 냄새가 났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아니면 정말 밤을 새기라도 한걸까? 카게야마는 이마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보았다. 후, 하고 얼굴에 바람을 불어넣어도 흔들리는 건 속눈썹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쿠니미는 깨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1~3 : 심심하니까 나가볼래

4~6 : 쿠니미를 깨우자

7~9 : 좀 더 같이 잘까

0 :



카게야마는 눈을 감고서 쿠니미의 가슴에 귀를 가져갔다. 쿵..쿵..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린다. 다른 소리도 들릴 법 했으나 신기하게도 카게야마의 귀에는 쿠니미만이 들렸다. 세상에 단 둘만 있는 것 같아. 카게야마는 중얼거렸다. 오직 쿠니미만이..


"쿠니미."


카게야마는 가슴에 귀를 댄 채로 쿠니미를 불렀다. 깊이 잠들어있던 쿠니미가 살짝 뒤척이다가, 으응.. 하고 대답했다. 대답인지 잠꼬대인지 몰랐다. 그래도 카게야마는 말을 걸었다.


"쿠니미."

"응.."

"쿠니미."


몇 번을 더 부르던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쿠니미를 볼 때마다 그는 쿠니미의 아픈 다리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있을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쌍생아라는 소리에 기뻐하던 쿠니미를 생각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쿠니미를 닮으면 예쁜 아이가 태어날 것 같았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간질간질하게 재채기같은 것이 가슴에서 올라옴을 느꼈다. 울렁거리기도 했고, 뜨끈뜨끈하기도 했으며 가끔은 꽉 가슴을 조여오기도 했다. 


"쿠니미."

"...."

"..나 기분이 이상해."


너도 이래?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가슴 위에 귀를 대고 문질렀다. 한참을 그러던 카게야마는 순간 고개를 휙 돌렸다. 누군가 오고있다. 카게야마의 눈이 본능적으로 벽에 세워둔 활을 찾았다. 



카게야마는


1~3 : 누구냐고 물었다

4~6 : 활을 잡았다 

7~9 : 귀를 기울임

0 :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힐끔 쳐다본 후 벽에 세워진 활을 잡았다. 발소리는 수상하게 가까워졌다가, 문 앞에서 멈춰섰다. 보통 궁인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활을 꽉 잡은 카게야마는 천천히 다가갔다. 창호지가 발린 문 너머로 그림자가 속삭였다.


"전하."


쿠니미를 찾고 있다. 카게야마는 그제야 누구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쿠니미는 단패궁의 밤을 위해 기민한 무사들을 여럿 숨겨놓았었다. 안전을 위해서인지 기록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 그때, 단패궁을 찾았던 수하 중 한명일 것이다.


카게야마는



홀 : 문을 연다 

짝 : 쿠니미를 깨운다

0 : 쿠니미가 깼다



쿠니미를 비밀리에 찾는거란 생각은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문을 벌컥 열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쿠니미를 부르던 호위는 카게야마를 발견하자마자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내 방 앞에서 쿠니미를 부르지 말았어야지.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개를 숙인 호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단패궁 마마를 뵙습니다."

"이 아침에 기척도 없이 나타나 섭정을 따로 찾은 이유가 있을 텐데."

"......"


호위는 입을 다물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 쪽을 쳐다봤다. 호위가 찾는 섭정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 을 몰랐다. 더이상 쿠니미에게 비밀이 생기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말하지 못하겠다면 문을 닫겠다."

"...단패궁 마마."


호위는 무척이나 곤란한 목소리로 침을 꿀꺽 삼켰다. 카게야마는 벽에 활을 세워두고서 팔짱을 꼈다.


카게야마는 도무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위는 카게야마를 한 번 쳐다보았다. 평정을 가장하고는 있어도, 카게야마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초조해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꾸미나? 카게야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마마. 죄인 한 명이 도망쳤습니다."

"....도망?"

"급히 전하를 뵙고서 말씀을 드려야.."


그 말을 역시 카게야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죄인이 도망쳤다면 잡으러 가면 되는 일이다. 굳이.."

"그는 섭정 전하께서 유별하게 보셨던,"


호위는 입을 잠시 다물었다가 뗐다.


"..마마를 죽이려했던 바로 그 자입니다."

"....!"

"감옥에 불을 지르고서 흔적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당장 추적을 하여야 때에 맞춰서,"


"회임하신 분께 무슨 망발이냐."


뒤에서 서늘한 꾸짖음이 들렸다. 호위의 말을 듣느라 쿠니미가 일어난 것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려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섭정은 차가운 얼굴로 호위에게 빠르게 뒤쫓으라 지시하곤 문을 닫았다.


"잘 잤어? 카게야마?"

"....."


응, 잘 잤어. 오직 그런 대답을 원하는 눈으로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1. 응..잘 잤어

2~0.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야?"


카게야마의 질문을 들은 쿠니미는 가볍게 웃었다.


"아침 아직 안 먹었겠다. 아침 먹고 가도 돼?"

"쿠니미."

"그렇게 부르지 마."

"...."

"네가 그렇게 부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아무것도 못해."

"뭘 하려는 거야?"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고 침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카게야마는 그런 그를 눈으로 따랐으나 자리에선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이 계속된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다시 카게야마였다.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 남자..도망친 거면."

"예상했어. 잡을 수 있을 거야."


쿠니미는 빨리 이 화제를 끝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1~7 : 아까

8~0 : ..... 


카게야마의 쿠니미에 대한 의심이 발동해 선택지 비율을 조정합니다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왠지 마음에 걸렸던 말이 있었다.


1~6 : 아까 말이야

7~0 : ....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보며 침상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카게야마. 같이 앉자."

"...."

"응?"

"쿠니미."


물어봐야하는데, 더이상 쿠니미의 비밀이 생기는 건 알고 싶지 않은데도 망설여졌다. 카게야마는 한 손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간절하게 웃는 쿠니미를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홀 : ...있잖아

짝 : ...그래



"....그래."


카게야마는, 어쩔 수 없었다. 궁금한 게 많았음에도 그는 결국 쿠니미의 곁에 앉았다. 쿠니미는 카게야마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 어깨에 쿠니미가 닿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목덜미 아래로 쏟아졌다. 카게야마에게 기댄 채로 쿠니미는 말했다.


"카게야마."

"...."

"고마워."


쿠니미의 손이 카게야마의 손을 찾았다. 가만히 그 손을 잡으며 카게야마 또한 쿠니미의 머리에 기댔다. 몸을 포갠 채로 앉아있으면 어떤 날보다 평화로와서, 다른 일이라곤 결코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


쿠니미는 카게야마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쿠니미의 얼굴은 그 자체로 무결하다.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바라보며 마음 속에 가라앉은 불안감을 지우려 애썼다.


"쿠니미."

"응."

"오늘 오후에 연회가 있다고 들었어."

"아..그렇지만 카게야마 너는 피곤할 테니까 오지 않아도 괜찮아."


쿠니미는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카게야마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니 그것도 곧 웃으며 넘긴다.


"오고 싶으면 와도 좋고."

"...가지 말라는 뜻 같잖아."

"아니, 곧 떠날 사신들을 적당히 환영하는 연회니까 너는 굳이 올 필요 없단 뜻이었어."


임신 초기엔 많이 움직이지 않는게 좋다고 하더라고. 쿠니미는 덧붙였다.



홀 : 그래

짝 : 으음..



카게야마는 으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쿠니미는 잘 생각했어, 라고 짧게 말했다.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면 감동을 받은 사람처럼 허물어지며 웃는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카게야마는 연회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홀 : 당당히 

짝 : 몰래



하도 수상하게 구니 몰래 갈 수밖엔 없었다. 아까 입밖으로 내지 못한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쿠니미가 호위의 말을 막기 전, 호위는 분명 당장 추적을 하여야 때에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추적을 하는 것과 때에 맞춘다는 건 다른 목적을 품고 있는 말로 들렸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그 때에 맞춰야한다는 건..


카게야마는 쿠니미에게 끝내 연회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쿠니미는 무척 다정한 얼굴로 단패궁을 떠났다. 



카게야마는 


1~3 : 단패궁에 있어야지

4~6 : 산책을

7~9 : 그 남자는 어디로 

0 : 우물



카게야마는 옷을 갈아입으며 호위의 말을 생각했다. 불을 지르고 나갔다고 하면 도와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쿠니미는 도망칠 것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일부러 도망치기를 기다린 걸까. 남자를 도와준 오사와 쪽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내기 위해 숨죽이고 기다리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자 머리가 아팠다. 카게야마는 그 남자가 어디에 있을지를 생각했다. 궁 밖에, 아니면 궁 안에? 궁 안은 넓으니 누군가 숨겨준다면 의외로 숨어있을 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홀 : 궁에 있어야지 

짝 : ...신경쓰이네



잠깐 나가볼까 생각한 카게야마는 곧 고개를 저었다. 보통이라면 나갔겠으나 자신의 배에는 두 생명이 있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곤란했다. 그러고보니 쿠니미가 카게야마의 단패궁에 시위를 배로 붙여준 건 아마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오사와는 아직 잡히지 못했고, 오사와가 심어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 


자신을 걱정했을 텐데 일부러 쓸데없는 일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연회는 갈 거지만.."


연회 정도는 가도 문제 없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연회는 갈거야! 라고 카게야마는 


1~9 :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0 : 상궁한테만..



카게야마는 상궁에겐 말을 하기로 했다. 혼자 돌아다니는 건 편했지만, 자신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쿠니미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데..카게야마는 잠깐 고민했다. 상궁에게 알린다면 [몰래] 섭정궁으로 가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음.."


카라스가 낑낑 울었다. 제법 큰 강아지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쓰다듬으며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일단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 다음 무작정 가보자고 하면 되는 거 아냐? 산책한다는 핑계 대고 그 근처에 갔다가 들리겠다고 하면...아니, 깜짝 놀래켜 줄 거니까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협박할까? 카게야마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상궁은, 들어오자마자 네코가 뛰어다니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에그머니나! 상궁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카게야마는 크게 웃었다.


"맨날 보는데도 놀라느냐. 이상하군."

"마마. 짐승이 두 마리니 제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상궁이 투덜투덜 불평했다. 


연회에 가지 않겠다는 카게야마의 말에 궁녀들은 실망한 얼굴을 했다. 그간 카게야마를 제대로 꾸미지 못해 장신구들은 함에서 놀고만 있었다. 오랜만에 사신들 앞에서 솜씨를 발휘하려던 궁녀들은 시무룩했으나 오히려 상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마마."

"그래?"

"처음 보는 분들께 인사를 하셔야 하고, 또 편히 앉아계시지도 못할 겁니다."


회임하신 마마께서는 굳이 가실 필요 없으시지요. 상궁은 카게야마의 다리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말했다. 으음... 카게야마는 애매하게 긍정했다. 걱정해주는 말을 듣자 신기하게도 가슴이 쿡쿡 찔렸다.



점심을 먹은 후 카게야마는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조금 튀어나온 것 같기도 했다. 상궁에 따르면, 카게야마는 유난히 배가 적은 편이란 것이었다. 쌍둥이니 티가 제법 날 때가 됐는데도 배는 잘 부풀어오르지 않았다.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다가 무심코 만져보니 이제야 튀어나온 태가 났다. 카게야마는 거울 앞에 서보았다.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고서 네코가 겅중겅중 뛰어올랐다.


"좀 보자. 저리 가."


네코 때문에 거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신이 난 네코가 발치에서 계속 튀어오른다. 카게야마는 결국 네코를 끌어안고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배를 불룩 내밀어보았으나 카게야마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네코가 얼굴을 핥아 간지러웠다.


"간지러워. 그만 해. 네코."


왕왕, 신이 난 강아지는 주인을 핥다가 짖고는 또 꼬리를 흔들었다. 



귀를 기울이면 조금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렸다. 연회가 시작됐구나. 바로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점심을 먹은 후 상궁을 불렀다. 조금 걷고 싶다는 말에 상궁은 살짝 의아한 얼굴을 했다. 궁녀를 부르지 않고 직접 자신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나가보시겠어요? 상궁은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그래. 바쁜 일도 없지 않느냐."

"...마마를 모시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마마께선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상궁은 카게야마가 직접 자신을 따르라고 한 일이 싫지 않은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속으로 헛기침을 했다. 섭정궁과 연결이 된 상궁을 두고 나간다면 쿠니미에게 금방 들킬 것 같았다. 카게야마의 변덕에 궁녀들이 움직였다. 연회를 위해 입히려고 한 옷은 지나치게 화려해 카게야마 쪽에서 먼저 거절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궁녀들은 새로 지은 옥빛의 옷을 카게야마에게 가져다주었다.


"날씨가 맑아, 꼭 이 옥색같으니 이 옷을 입으세요. 마마."

"마마의 눈색과도 잘 어울리십니다."


궁녀들의 칭찬보다 카게야마는 연회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가 궁금했다. 그래, 그것이 좋겠다. 건성으로 말하는 카게야마를 앉게 한 궁녀들은 신이 나 머리손질을 했다. 머리가 제법 기셨으니 이런 모양으로 땋아 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야. 마마님은 풀어내리는 편이 더 아름다우신걸. 무슨 소리야? 격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아.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으로 소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카게야마는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하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마. 아기님들이 듣습니다."

"조그만 애들이니까 괜찮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상궁은 카게야마를 달래며 궁녀들에게 눈짓했다. 옥색과 연한 보라색이 섞인 옷을 입고, 머리엔 새파란 보석장식을 꽂고 나서야 카게야마는 겨우 단패궁에서 나올 수 있었다.


 

과연 궁녀들의 말대로 날이 맑았다. 카게야마는 옷자락을 펼쳐보았다. 가볍게 팔 아래로 날리는 비단옷은 하늘의 색을 그대로 빼닮아있었다. 상궁은 그런 카게야마를 보고 웃었다가 에그, 하고 무릎을 굽혔다.


"마마. 신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새 신을 가져올게요."

"괜찮다."

"돌아다니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여기 계셔요."


상궁은 카게야마를 편편한 바위 위에 앉게 했다. 궁이 바로 앞이니 다녀오겠습니다. 꼭 앉아계셔야해요? 상궁의 말에 카게야마는 어린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1~3 : 가만히 있자

4~6 : 저기 나비가 있어 

7~9 :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0 : 누군가와 마주쳤ㄷ



카게야마는 바위에 앉아 발을 달랑거렸다. 상궁의 말은 맞았다. 조금 걸을 땐 몰랐으나 자세히 보니 신 끝에 모가 나있어 발가락이 아팠다. 카게야마는 주위를 둘러본 후 신을 벗었다. 곧 새 신을 가지고 와줄테니까.. 카게야마는 단패궁 쪽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어?"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와 옷 위에 앉았다. 보드러운 날개를 가진 노란 나비였다. 카게야마는 피식 웃었다.


"예쁘다."


잡으려고 하다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가졌다. 카게야마의 손끝이 닿자 나비는 놀란 듯이 날아갔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서 또 바위 옆의 꽃에 앉았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았다.신 없이 바닥을 내려와 걸으니 마른 흙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푹신푹신해.. 카게야마는 몇 번 발을 굴렀다가 다시 나비를 찾았다.


나비가 파란 하늘을 나풀나풀 날았다. 카게야마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앉았던 바위는 바로 코 앞이었다. 조금 나비를 따라 간다고 해서 나쁠 것 같진 않았다.


"....."


조금씩 따라 걷던 걸음이 빨라졌다. 카게야마는 오랜만에 본 나비에 홀려 그 뒤를 따랐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카게야마가 다가가면 휙 날아간다. 따라오지 않으면 또 카게야마의 근처에서 얼쩡거렸다. 그 모습이 웃음이 나왔다.



홀 : 상궁 

짝 : ....



조금 더, 조금만 더, 카게야마의 손이 앞으로 뻗었다. 잠시 휘청거리는 찰나, 재빨리 나타난 손이 카게야마를 붙잡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카게야마는 제 팔을 붙잡은 상궁을 확인하고서 웃었다.


"이제 왔.."

"마마!"


카게야마의 말을 자른 상궁은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제가 가만히 계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ㅁ..."

"제가 정말 놀라서, 깜짝 놀라서..마마께 무슨 일이 생기셨는 줄 알고."

"......잠시 앞이라, 심심하여서."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까운 줄 알았던 바위는 제법 멀어져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카게야마는 마른 침을 삼켰다. 상궁이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흥분이 가라앉은 상궁이 얼른 무릎을 꿇었다. 카게야마의 눈에 나이 든 상궁의 동그란 머리꼭지가 보였다.


"제가 감히 마마께 무례를 저질렀으니 마음대로 벌을 내리십시오."

"...용서해달란 말보다 더 무섭구나."


카게야마는 피식 웃었다.


"일어나라. 네 사과를 받아주느라 고개가 아프다."

"...죄송합니다."

"신은?"


상궁은 카게야마를 바위로 데려왔다. 흙먼지가 묻은 발을 보곤 손으로 털어준 후 품 안에서 새 신을 꺼내 신겨준다. 신발이 따뜻했다. 꼭 끌어안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


한눈팔지 않고 걸으니 섭정궁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러나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들어 카게야마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문앞에는 섭정궁의 시위들이 없었다. 대신 각 궁에서 온 왕족들의 호위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마마?"


카게야마가 섭정궁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자 상궁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 이이에겐 아무 말도 아직 하지 않았군. 


"모처럼 왔으니 들어가볼까?"

"예?"

"그닥 폐가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상궁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1~9 : 굳이 

0 : 안됩니다



"굳이 들어가실 필욘 없으세요." 


상궁은 어색한 얼굴로 카게야마의 팔을 잡아 끌었다.


"회임하신 귀한 몸이신데 뭐하러 들어가십니까."

"평소엔 자주 인사를 드리러 가라고 했잖아?"

"그거야 회임 전의 말씀이지요. 지금은 마마께서 회임을 하셨으니.."

"내가 들어가는 걸 꺼리는구나."


카게야마는 상궁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상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섭정궁에서 무슨 말을 했군."

".....마마. 그것이,"

"너는 내가 제일이 되어야지. 왜 자꾸 섭정궁의 편을 드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섭정 전하께선 피곤하실 것을 염려하셔서, 제게.."

"시끄럽다."


카게야마는 고집을 부렸다. 들어가길 원하니 상궁도 어쩔 수 없이 카게야마에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카게야마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쳤던 길을 되돌아가자 호위가 고개를 돌렸다. 시라토리자와의 남자였다. 상궁이 말을 하기도 전에 마음이 급해진 카게야마가 먼저 호위에게 물었다.


"다들 안에 계시느냐."

"그렇습니다. 단패궁 마마."

"섭정궁의 시위들은? 안에 있는 건가?"


남자는 별 것을 다 물어본다는 얼굴을 하였으나 곧 카게야마에게 고개를 숙여 말했다.


"섭정궁의 시위들은 모두 단패궁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듣기로는 죄인이 궁을 돌아다닌다고 하니 그것을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


아.. 카게야마는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킨다이치가 병사들을 끌고 밖에 나가있으니 궁을 지킬 인력은 최소한으로 맞춰져있었다. 거기서 또 죄인을 쫓느라 사람이 빠졌을 테니, 나머지의 사람들을 쿠니미는 전부 카게야마에게로 돌린 것이다. 빨리 킨다이치가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카게야마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궁이 말했다.


"마마께서 안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안에 알려야.."


호위가 일어났으나,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들어가고 싶다는 요청에 호위는 이상한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함부로 사람을 들이는 건 그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키타가와의 왕족을-그것도 쌍둥이를 임신했다.  이미 이 궁의 주인이나 마찬가지. 들어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줘야만 했다. 회임한 카게야마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쪽이 곤란했다.


"들어가십시오."


호위는 비켜섰다. 연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별 일은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호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상궁에게 눈짓했다. 상궁이 서둘러 카게야마의 뒤를 따랐다. 



1~9 : 섭정궁  

0 :



카게야마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상궁과 함께 섭정궁으로 들어갔다.



사신들을 환영하는 연회는 목적과 달리 적막함을 풍겼다. 떠들썩함은 있어도 흥에 겨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인인 쿠니미가 서늘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기 때문인 것도 같았고, 또 사신들이 어떤 상황이 올 줄 몰라 말을 아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단패궁은 오지 않는 건가? 누군가 그 질문을 했을 때 쿠니미는 조금 더 웃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오지 못하셨습니다. 키타가와의 후계를 품은 분이시니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몸이 불편하다고 하니 억지로 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쿠니미가 히나타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히나타는 큰 소리로 물었다.


"오늘이지?"

"...예?"


카라스노 특유의 먹처럼 검은 옷은 히나타의 주황색 머리카락과 잘 어울렸다. 단지 잘 어울린다는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카라스노의 황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무의식적으로 이용하며 쿠니미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은 네가 전에 한 이야기를 이제 결정하라고 부른 거 아니야?"

"히나타."


곁에 서있던 츠키시마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렸다. 스가와라 역시 곤란한 얼굴로 웃었다. 모두의 집중이 히나타와 쿠니미에게로 쏠렸다. 쿠니미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어차피 이야기할 거 아니야? 이런 핑계는 그만해도 되잖아."

"....."


히나타, 너 진짜..츠키시마는 곁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더 이상 말리는 얼굴은 아니었다. 동요하는 공기가 읽어졌다. 히나타가 먼저 쿠니미를 뒤흔든건 나쁘지 않은 것 선택일지도 몰랐다. 쿠니미는 잠시 히나타를 쳐다보다가 뒤를 돌았다. 그는 궁녀들에게 말했다.


"연회는 끝났다."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궁녀들마저도 자리를 떴다. 



짧은 연회가 끝났다. 쿠니미는 모인 이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쿠니미는 어느새 자신의 곁에 앉은 사관에게 말했다.


"한 줄도 남김없이 적어야한다. 그리고 이 자리가 끝나면 바로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감히 폐하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 것인가. 폐하. 이런 무례한 이의 말을 들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쿠니미의 말에 시라토라자와의 시라부가 발끈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다."

"폐하."

"계속 해보거라."


우시지마의 재촉에 쿠니미는 미리 준비해둔 패를 각 궁마다 넘겨 주었다. 패의 바깥쪽은 검은 색, 안쪽은 붉은 색으로 되어 있었다.


"반대를 하시면 검은 쪽을..그리고 제 말에 찬성해주신다면 붉은 쪽을 내미시면 됩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곁에 서서 패를 살피다가, 쿠니미를 쳐다봤다. 자신의 죽음에 찬성해달라고 말하던 남자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는 시라부에게 우시지마는 패를 내밀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은 쪽이었다. 


"가져다 주거라."

"..알겠습니다."


시라부가 검은 패를 받아 쿠니미에게 보여주었다. 지켜보던 오이카와의 눈썹이 조금 들썩이더니 허탈하게 웃는다.


"우시와카쨩. 김 새게 하네. 

"무슨 말이지."

"처음부터 반대를 해버리면 나머지들이 어떻게 말한다고 해도 이제 소용없잖아?"

"너는 동의하는 거였나. 오이카와."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 오이카와는 조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반박했으나 우시지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일이어야했다. 우시지마는 자신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됐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쿠니미가 불러세웠다.


"어째서 반대를 하시는 겁니까."

"카게야마는 네가 원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확신을 가진 목소리였다. 쿠니미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우시지마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연히 당신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이지?"

"저를 없앨 수 있다면 당연히 허락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


황제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었다. 쿠니미는 '우시지마'를 도발하고 있었다.


"모르시겠습니까?"

"....."

"제가 이 날 이후로 살아있다면 결코 시라토리자와로는 카게야마를 보내지 않을 겁니다."


우시지마는 쿠니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천천히 말하는 목소리는 위엄을 담고 있다. 


"네 목숨이 죽거나, 혹은 죽지 않거나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

"내게는 카게야마의 마음만이 중요한 일. 카게야마가 직접 와서 너를 죽여달라고 하면 바로 그럴 것이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나와 상관 없지. 우시지마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다. 


"다른 분들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미 반대가 나왔으니 소용 없잖아."


츠키시마가 대꾸했다. 쿠니미는 그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우시지마를 쳐다보았다.


"시라토리자와가 제 시체를 보고 마음을 바꿀 수도 있겠죠."

"적당히 해."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말했다.


"목숨 가지고 협박하는 건 그만 둬."

"협박이 아니라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 부탁이라고 해도, 도저히..!"

"이와쨩. 그만해."


화를 내는 이와이즈미를 오이카와가 막았다. 우시지마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았다. 내 결정이 바뀔 일은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같았다. 



호감도 70을 넘지 않은 등장인물의 경우 주사위로 찬성과 반대를 결정합니다

100에 가까울 수록 찬성입니다 


오이카와 : 77



이와이즈미는 무척 화가 나있었다. 그는 오이카와에게 눈짓했다. 오이카와도 우시지마에게 힘을 보태준다면 끈질긴 쿠니미도 포기할 것이다. 이와이즈미의 재촉을 받으며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그래."


무엇을 긍정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붉은 패를 던지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이카와!"

"이와쨩. 이렇게 하면 돼."

"무슨 소리야!"


오이카와는 턱을 괸 채로 쿠니미를 보며 웃었다.


"어차피 계속 반대표는 설득시키려고 할 셈이지?"

"...."

"오이카와씨는 일단 찬성해줄게."


그러나 그 답이 단순히 가벼운 말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웃는 얼굴 그대로 쿠니미에게 물었다. 


"찬성하는 대가로 오이카와씨가 키타가와의 영토를 달라고 하면 줄까?"

"...그 정도는."

"오이카와!"


이와이즈미가 못참고 다시 소리쳤다. 오이카와는 싸늘한 얼굴로 쿠니미를 내려다보았다.


"이와쨩. 미안하지만 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야."


토비오쨩은 귀엽고, 여기에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 오이카와는 가져갈 수 있는 건 전부 다 가져갈 셈이었다. 오이카와님은 저..잘 알 수 없는 분이지만, 키타가와에 오셔서 괜찮으셨다고 했으니 다행입니다. 카게야마는 그렇게 오이카와에게 말했다. 순진한 목소리. 반짝거리는 눈동자.. 오이카와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토비오쨩. 나는 마지막으로 오이카와씨한테 유리한 쪽을 선택할게.


어차피, 


토비오쨩은 나에게 와주진 않을 거잖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굳은 표정에 더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또한 아오바죠사이의 경우 카게야마에 대한 입장이 복잡했다. 오이카와도 많은 생각을 한 후에 입밖으로 꺼낸 말이다. 이와이즈미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 없이 관망하던 마츠카와가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는 조용해진 서궁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긴장한 얼굴의 리에프의 어깨를 슬쩍 쳤다. 


"진정해."

"쿠로씨..!"

"곧 끝나게 해줄테니까."


그리고 쿠로오는 손 안의 패를 뒤집어 검은 쪽으로 바꿨다. 쿠니미는 그것을 보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반대하시는 겁니까?"

"응. 아무래도 뒷맛이 나쁘거든."


누구 죽는 꼴 같은 건 보기 싫어. 더구나 키타가와와 관련된 일이니까. 쿠로오는 쿠니미의 앞으로 검은 패를 내밀었다. 


코즈메 켄마는 쿠로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아오바죠사이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카게야마' 다. 원래 자신들의 땅이었던 키타가와를 놓고 오이카와는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니, 무척이나 거슬리지 않을까. 쿠로오는 코즈메에게 여러번 그렇게 말을 했다.  


쿠니미가 죽는다면 카게야마는 그가 원하는 대로 복권할 것이다. 그러나 대신 이런 날이 또 올 수도 있었다. 후손없는 왕족을 찾아 성국들이 모이고, 누군가 또 쿠니미처럼 겁없는 제안을 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오이카와가 찬성표를 던졌으니, 쿠로오는 견제하듯이 바로 반대표를 던진다. 아오바죠사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 게 쿠로오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득을 보기 위해 던진 표는 아니었다. 쿠로오는 아오바죠사이가 카게야마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죽는 건 누구나 다 하지."


쿠로오는 쿠니미를 보며 말했다.


"중요한 건 죽음 후의 일이거든. 내 생각에는.. 말이야."


코즈메를 제외하고 오이카와만이 쿠로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오이카와는 반박 대신 피식 웃었다. 



2대 1의 표였다. 쿠니미는 마지막으로 히나타를 쳐다보았다. 


히나타 : 81



히나타의 차례가 되자 자연스럽게 츠키시마는 히나타의 패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오바죠사이를 쥐고 흔드는 대상은 흐름을 보았을 때 당연히 카라스노 쪽이었다. 츠키시마는 섭정궁 쪽에서 자신들을 견제하던 걸 몇 번이나 봐왔다.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어느 쪽에 붙는 게 이익인가. 


반대하면 반대하는 대로, 찬성하면 찬성하는 대로 츠키시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패를 잡으려는 순간 히나타는 츠키시마에게서 다시 낚아챘다. 생각에 잠겨있던 츠키시마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히나타."

"정했어."

"뭐?"


그리고 히나타는 붉은 패를 던졌다. 의외네, 쇼요. 가까이 서있던 코즈메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쿠니미는 기쁨도 슬픔도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히나타를 보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잖아?"

"....."

"목숨으로 도박을 걸 정도니까, 카게야마를 위해서 그렇게 할 정도라면..."

"...."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그냥 죽고 싶은 거겠지."


히나타는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찬성을 하면 딱 반반이야. 그러면 이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할 순 없잖아?"


히나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앉아있는 사람들은 히나타의 말을 이해했다. 만장일치의 투표였다. 바꿔말하면 그건 찬성이나 반대나 어느 쪽으로든 의견이 같아야한단 뜻이었다. 한 명을 설득하는 쪽보단 팽팽하게 대립하는 쪽이 시간이 더 걸리기 마련이다. 히나타는 쿠니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카게야마가 이 일을 모르는 게 제일 마음에 안 들어."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 그리고 카게야마에게 알려 선택하도록 하겠다, 라는 의도가 전해졌다. 히나타의 말이 끝난 후 쿠니미는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반반으로 나눠진 패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쿠니미 아키라는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당신들이 카게야마를 생각해주는 마음이란 그렇군."


쿠니미는 패를 하나 쥐었다. 검은 색은 그림자의 색, 붉은 색은 피의 색. 망설이면 망설일 수록 아쉬움만 더해간다. 쿠니미는 열기를 띤 눈으로 눈앞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

"다들 카게야마를 좋아해서, 다행이야."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가 즐거운 눈으로 웃는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지막까지 말하던 히나타가 물었다. 쿠니미가 모르겠냐는 눈으로 히나타를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는 부탁이었습니다만 이젠 협박입니다."

"뭐?"

"제 죽음을 바라지 않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이름을 제 유서에 쓰겠습니다."



홀 : 무슨 뜻이지  

짝 : 섭정쨩? 

0 :


"무슨 뜻이지."


침묵하던 우시지마가 물었다. 쿠니미는 미리 준비해둔 사람처럼 술술 말을 이었다.


"제가 죽는 이유를 다른 분께 돌릴 수도 있단 뜻입니다."

"어째서?"

"그렇다면 카게야마는 무척 슬퍼하고, 화를 내겠지요."

"고작 그런 걸..."


그러나 우시지마는 입을 다물었다. 조잡하고 유치한 협박이었다. 어린아이나 할 법한 말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말하니 무게가 달랐다. 자신이 죽는 건 이 남자 때문이라고 모함을 할 것이다. 사실을 알려고 해도 죽은 자니 말을 할 수 없다. 


일방적인 오해를 받게 해줄 거란 말엔 독한 원념이 섞여있었다. 



홀 : 그만 

짝 : 반대야

0 :



"그만."


쿠로오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말도 안되는 협박이네. 그렇게 안봤는데 상당히 멍청해."

"하지만 동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이카와 또한 짜증스럽게 말했다.


"오이카와씨는 당장 섭정쨩을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저야 환영입니다."


무섭다기보단 끈질겼다. 이 자리에서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건 쿠니미 뿐이었다. 쉽게 말을 듣지 않을 거란 건 예상했지만 상상보다 더욱 심했다. 보다못한 오이카와가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그게 무슨 말이야?"


카게야마가 상궁에게 기대어 비틀거리면서도 똑바로 문 앞에 서있었다. 쿠니미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평정을 가장하던 가면이 천천히 깨지는 걸 남자들은 목격했다. 제멋대로 떠들던 입이 파르르 떨리다가 꽉 다물어졌다.


"내가 들은 게 무슨 말이야."


카게야마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중얼거렸다. 대답을 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섭정궁은 조용했다. 연회가 열리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마. 조심하셔야합니다. 상궁은 카게야마를 꼭 잡아 부축했다. 돌길을 걷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상궁의 팔을 잡고 걸으며 카게야마는 피식 웃었다.


"혼자서도 걸을 수 있다. 넌 마치 여기서 호랑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말하는구나"

"마마께서 지나치신 겁니다. 앞으로 배가 더 나오시면 저를 찾게 되실 거예요."

"그럴까?"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도 조용했다. 카게야마는 잠시 자리에 선 후 주위를 살폈으나 궁녀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두 다 땅으로 꺼진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처음엔 가볍게 웃던 얼굴은 점차 굳어진다.


"마마?"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보고 상궁이 의아하게 물었다.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고서 잠시 서 있다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상궁이 잡을 수도 없었다. 마마, 마마. 뒤따라가며 상궁이 카게야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마마. 왜, 왜 그러십니까."

"가야 돼."

"마마..."

"이거 놔."


상궁은 옷자락을 붙잡고서 고개를 저었다.


"같이 가세요. 같이 가시면 되잖아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알았으나 상궁은 그렇게 말하는 수밖엔 없었다. 카게야마는 그 손을 뿌리치려는가 싶다가, 결국 상궁의 팔을 붙잡고 끌듯이 앞으로 나갔다. 


*

문 앞에는 궁녀들이 있었다. 카게야마를 보자 놀란 얼굴을 한다. 놀란 얼굴. 놀란.. 카게야마는 현기증이 일었다.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리자 상궁이 얼른 카게야마를 부축했다.


궁녀들의 


         놀란


                        얼굴


눈동자


                마 

                  마?


아뢰어..

                      마마,


                                      

                                  쿠니미


           쿠니미.



"조용히 하거라."


카게야마는 이를 악 물었다. 


"모두 물러가."

"마마. 도대체.."


카게야마 혼자만이 들은 이야기였다. 궁녀들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죄없는 궁녀들에게 화풀이를 해버릴 것 같았다.


"물러가라. 섭정에게 할 말이 있다."


흉흉한 기세의 카게야마를 두고 궁녀들은 망설였다. 그러나 그들은 시라토리자와의 호위가 그랬던 것처럼, 회임을 한 카게야마의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조용히 뒷걸음질쳤다.


카게야마는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쿠니미는 이상한 말을 했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 말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가 막 들었을 땐 히나타가 쿠니미에게 [찬성]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잖아? 그 말을 히나타가 누구에게 하는 지 몰랐다. 도대체 누가, 왜, 


"나는 카게야마가 이 일을 모르는 게 제일 마음에 안 들어."

"다행입니다."

"제 죽음을 바라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젠 협박입니다."

"그 분의 이름을 제 유서에 쓰겠습니다."


"오이카와씨는 당장 섭정쨩을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저야,"


쿠니미는 말했다.


"환영입니다."


참을 수 없어 카게야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게야마를 발견한 남자들은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쳐다보았다. 이미 카게야마가 들어왔다는 걸 눈치 챈 쿠니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 서 있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등에 대고 물었다.


"내가 들은 게 무슨 말이야?"



1~3 : 무슨 말이긴

4~6 : 단패궁 마마를 

7~9 : ...카게야마

0 :



쿠니미는 등을 돌리지 않고서 고개만을 살짝 돌렸다.


"단패궁 마마께서 어째서 이곳에 계시는 거냐."

"전하. 마마께서는.."


상황을 모르는 상궁만이 앞에 달려와 사정을 아뢴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흔들림없는 눈동자로, 쿠니미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마께서 나서실 자리가 아니니 다시 모셔가거라."

"알겠습니다."


상궁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닫고서 카게야마에게 팔을 내밀었다. 제 팔을 잡고 다시 돌아가잔 뜻이었으나 카게야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마마, 상궁이 작게 속삭였다. 누군가 불편한 지 헛기침을 했다. 카게야마는 단단히 버티고서 쿠니미를 불렀다.


"어제는 카게야마라고 불렀잖아."

"단패궁 마마를 뫼셔라."

"쿠니미."

"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외롭게 답을 구해본다. 맹목, 희생. 카게야마의 머릿속에서 그 단어들은 다시 살아났다.


"너 나를.."

"...."

"설마, 나 때문에 죽을 작정이야?"


어째서? 카게야마가 나가지 않자 쿠니미는 결국 눈을 돌렸다. 카게야마와 마주친 눈동자는, 비를 잔뜩 맞은 것처럼 추워보였다. 


쿠니미가 초조해한다는 생각은 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보였으나, 카게야마는 이번엔 쿠니미의 말을 믿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오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다른 것을 숨기고 있으리라고는, 카게야마는. 


"내 말이 맞아?"

"..단패궁 마마를 뫼시라고, 몇 번을 말해야하지."


섭정궁에는 시위들이 없었다. 뒤늦게 궁녀들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다가왔다.

보다못한 



1. 우시지마

2. 오이카와

3. 이와이즈미 

4. 히나타

5. 츠키시마

6. 쿠로오

7. 코즈메

8~0. 리레주 지정



보다못한 이와이즈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오이카와의 호위로 온 자신이 나서는 건 안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황망하게 쿠니미만을 쳐다보는 안타까운 눈동자를 달래주고 싶었다. 이와이즈미가 일어난 순간 오이카와는 그를 살짝 쳐다보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아마 카게야마가 모르게 일을 처리하고 싶었겠지만, 이제 숨기는 건 틀렸어."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가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쿠니미는 이와이즈미의 조금 그의 앞을 가렸다. 그러나 그 전에 카게야마가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시선이 닿았다. 


"이와이즈미님. 무슨 이야기를,"

"카ㄱ.."



홀 : 쿠니미

짝 : 이와이즈미 

0 :



이와이즈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게야마, 하고 부르는 목소리. 언제라도 안심이 되는 말투였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에게서 눈을 완전히 뗐다. 쿠니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카게야마."

"됐어. 이와이즈미님께 들을거야."

".....카,"


쿠니미의 입이 벌어졌다. 이와이즈미는 서둘러 카게야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카게,..."


이와이즈미와 떠나는 카게야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쿠니미는 우두커니 그 뒤를 보고 있었다. 계속 말이 없자 쿠로오가 일어섰다.


"이봐."

"...."


섭정쨩? 오이카와도 쿠니미를 불렀다. 쿠니미는 부름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우시지마가 몸소 일어났다.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를 데려갈 때 그도 나서려고 했었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충격받는 모습을, 어쩌면 우시지마는 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쿠니미라는 남자 때문에 카게야마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


우시지마는 쿠니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놀라서 손을 뗐다. 등을 돌린 쿠니미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몸이 뜨겁다. 순간적으로 열이 심하게 오른 것이 분명했다.


"..! 피투성이잖아."


히나타가 중얼거렸다. 쿠니미는 그제야 코에서 흐르는 것을 스윽 닦았다. 손등이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또다시 버림받은 남자는, 다시 한 번 몸에서 피를 흘렸다. 다리에서, 얼굴에서. 온 전신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아..."


쿠니미는 입을 벌린 채 헐떡였다.


"카게야마."


그리고 겨우 그 이름을 불렀다. 


*


카게야마

나 너한테 거짓말하려고 한 거 아니야

네가 제일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랬어

네가 


좋아서, 


너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


너한테 다시 자리를 돌려주고 싶었어

네가 다시 왕으로 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어

나는 네가 날 떠나는 걸 원한 게 아니야

카게야마


나는 

그냥




나 미워하지 말아줘




쿠니미는 심하게 비틀거렸다. 피를 쏟았으니 어지러울 텐데. 우시지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시와카쨩이 치료해주지 그래? 오이카와가 말했으나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동정을 베풀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군."


그의 말대로였다. 쿠니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이만 자리를 파하여야겠다고 말했다. 군말없이, 조금은 끔찍한 얼굴로 왕족들은 나갔다. 궁녀들이 뒤늦게 들어와 의원을 불렀다. 정신없이 흩어지는 그림자들을 보며 쿠니미는 입을 열었다.


"단패궁 마마는 잘 들어가셨느냐."

"이와이즈미님과 함께 단패궁으로 가시는 걸 보았습니다."

"전부 다 단패궁에 보냈겠지."

"그렇습니다."


궁녀는 쿠니미의 얼굴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죄인이 잡히지 않았으니..단단히 경계하라고 전하거라."

"명 받들겠습니다. 전하."


얼추 정리가 되었다. 쿠니미는 피가 닦이지 않아 새빨갛게 말라붙은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예정된 죽음을 받지 못했으나 이미 시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카게야마의 안부를 다시 한 번 묻고는 정신을 잃었다. 



*


이와이즈미에게 전부 다 전해들은 카게야마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겠다고 한 사람은, 그의 말대로 했다. 대신 카게야마를 억누르는 절망까진 가져가주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이해가 안 돼."

"카게야마."

"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

"왜."


그렇게 쉽게, 죽을 생각을. 이와이즈미에게서 들은 말은 엿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널 정말로 좋아해. 나 자신보다 더. 쿠니미는 과연 그 말대로였다. 카게야마를 사랑하고, 사랑해서 자기 자신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솟은 카게야마는



1~9 : ...돌아갈래

0 : 섭정궁으로



"..섭정궁으로 갈래요."

"카게야마?"

"가서, 제대로 이야기 할래요. 이와이즈미님."

"오늘은 늦었어. 그만 단패궁에 돌아가는 게 좋아."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를 달랬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쿠니미와는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어요."

"카게야마.."

"좋은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불편할까봐.."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달콤한 말들을 해주는 게 좋아 제대로 묻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조금 더 쿠니미를 신경썼다면 달라졌을 지도 몰랐다.


"가서 물어볼 거예요."

"....."

"나를 좋아하는 건지, 왕인 나를 좋아하는 건지."

"....."

"왕이었던 내가 아니라면 사랑할 수 없는 건지 물어볼래요."


이와이즈미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말하는 카게야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구나. 카게야마는..이미. 쓰라린 감정이 심장에서부터 훅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곧 어두운 기색을 지우고서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와이즈미님?"

"결코 도망가지 않아. 맞서 싸우는 게 너한테 어울리지."


이와이즈미가 귀여워하던, 아오바죠사이에 온 어린 왕자 또한 그랬다.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저를 섭정궁까지 데려다주실 건가요? 당돌한 목소리는 방금 눈물지었던 여자의 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래. 데려다줄게."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꼭 잡고서 코를 훌쩍였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


섭정궁으로 갈수록 인적이 드물었다. 조금 이상했다. 이와이즈미 역시도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허리춤의 검을 찾았다. 카게야마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숨죽인 발자국 소리. 다섯, 여섯명 정도. 누군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님."

"응."

"이상합니다."

"그래."

"저는 지금 아무것도 없어요. 짐이 될 텐데요."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카게야마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짐작은 가?"

"오사와 쪽의... 심어놓은 잔당일까요. 감옥에서 죄인을 풀어줬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을 거예요."

"내부부터 좀먹었네. 섭정이 몰랐을까."


발자국들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대화를 들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부러.."


카게야마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만약 궁에 오사와 쪽의 사람들이 남아있고, 그게 누군지 모른다면.."

"....."

"일부러, 미끼를 던져서,"


죄인이 도망쳤을 때 예상했다던 쿠니미의 반응. 때를 맞춰야한다던 호위의 말. 과할 정도로 단패궁으로 몰아넣은 병력들. 그리고 섭정궁은 텅 비었다. 카게야마는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와이즈미님."

"응."

"쿠니미가, 쿠니미가 위험해요."



홀 : 제가  

짝 : 먼저



"제가 섭정궁에 가보겠습니다."

"카게야마, 잠깐."

"쿠니미..이렇게 될 줄 알고, 혼자 남아서.."


섭정궁에 얼마나 남아있는 지 몰랐다. 그러나 섭정궁에는 킨다이치의 활이 있다. 카게야마는 그 활을 생각해고서 다시 말했다.


"궁에 숨어들었다면 그 수는 얼마 안 될 거예요."

"너무 위험해. 같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단패궁으로 홀로 보내기엔 지나치게 위험했다. 눈앞에 바로 섭정궁이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허리에서 검을 빼들었다. 소란을 피우면 누구라도 올 것이다. 그는 지지않을 자신은 있었다.


"...카게야마. 뒤는 지킬 테니 어서 가봐."

"이와이즈미님. 부탁드립니다."


카게야마는 서둘러 섭정궁 쪽으로 달려갔다. 저렇게 달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위험한데..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가 달려간 쪽을 쳐다보았다가 곧바로 검을 올렸다. 챙, 검끼리 날카롭게 부딪혔다가 훌쩍 떨어졌다. 복면을 쓴 사내들이 이와이즈미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짧게 내뱉았다.


"그 오사와라는 작자, 정말 추잡하군."


이미 진 싸움인데도 어떻게든 흠을 입히려 달려든다. 아오바죠사이에서 온 자신을 건드린 이상 키타가와 내부의 문제만으론 끝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복면의 사내들은 이와이즈미에게서 칼을 거둘 기미가 없었다.


"몇 달간 검이 무디지는 않았는지 알아보면 되겠어."

"....."

"먼저 들어와라. 감히 아오바죠사이의 검에게 여유를 부리는 것이냐."


그 말에 누군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와이즈미는 검으로 그것을 막아섰다. 몇 명이나 더 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한 명도 카게야마가 있는 섭정궁 안으로는 들이지 않을 것이다.


*


카게야마는 급히 섭정궁 안으로 들어섰다. 어쩐 일인지 궁녀 또한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1~9 : 3 

0 : 쿠니미



"쿠니미."


카게야마는 짧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귀를 기울이면 숨소리들이 얕게 들렸다. 그곳을 따라갔다. 



1~9 : 2 

0 : 쿠니미



궁 안으로 들어가자, 시위의 뒷모습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짧게 한숨을 쉬고서 말을 걸었다.


"섭정 전하께선 안에 계시겠지. 들어가봐야겠다."



1~9 : 1 

0 : 쿠니미



시위는 뒤를 돌아섰다.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여긴 어떻게."


카게야마를 죽이려했던 남자는 시위의 옷을 훔쳐입고서 서있었다. 쿠니미를 해치려고 했던 건가? 어떻게 숨었지? 역시 안에서 도와주던 사람이.. 쿠니미는, 그러면 지금? 재빨리 귀를 기울이면 쿠니미의 숨소리가 들렸다. 잠이 든 것처럼 규칙적인 숨소리였다. 그렇다면 남자와 자신은 우연히 같은 방 안에 들어가기 전 마주친 것이리라.


남자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더 잘됐다."

"....!"

"나는...동생의.."


복수를.....남자의 손이 다가왔다. 가까이 오는 발자국 소리들도 들렸다. 이제 쿠니미가 쳐놓은 덫이 움직이는 듯 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1~9 : .....

0 : 활을 찾았다



벽에 활이 세워져있었다. 카게야마는 순간 있는 힘껏 남자를 밀었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남자가 엎어졌다. 그 틈을 타 카게야마는 벽에 세워진 활을 집어들었다. 아아악!! 남자가 울분에 찬 고함을 질렀다.


주사위를 굴려 50 이상이면 카게야마의 공격 성공, 50 미만이면 실패 


: 39 



활에 화살을 당기려는 찰나 남자가 카게야마의 몸을 밀었다. 겨우 집었던 화살통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자의 손이 카게야마의 목을 졸랐다. 읍, 으읍!! 카게야마는 눈을 부릅뜬 채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바닥을 더듬으며 화살을 찾던 손은, 곧 파들파들 경련하다가 힘이 빠졌다.


"...섭정은?"


미리 섭정궁 안에 잠복하고 있던 자객이 들어와 급히 물었다. 카게야마의 목을 조르다가 퍼뜩 정신이 든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욕설을 짧게 내뱉은 자객은 홀깃 밖을 보고는 상황을 알렸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 이제 나가야 돼."

"...어, 어떻게.."

"....그 여자도 데려가."


잠시 후 섭정궁 안에서 말 두필이 튀어나왔다. 쿠니미의 말을 듣고서 공격할 준비를 하던 병사들은 카게야마가 잡혀있는 것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카게야마를 끌어안은 남자가 외쳤다. 손에는 날카로운 화살이 들려있었다.


"길을 비키지 않으면 이 여자를 죽이겠다."

"....!!"


이와이즈미는 자객들을 제거한 후 단패궁으로 가 시위들을 전부 섭정궁 쪽으로 보냈다. 또한 궁 내부의 습격을 다른 왕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궁으로 간 상태였다. 병사들은 시간을 끌기 위해 그들을 에워쌌으나, 남자는 기절한 카게야마의 팔뚝을 들어 화살촉을 꾹 눌렀다.


"이 여자는 회임을 했다고 했지. 바로 찔러서..!"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쿠니미 조차도 카게야마가 섭정궁에 올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병사들은 카게야마를 인질로 삼은 남자들의 길을 터주었다. 


"쫓아온다면 당장 이 여자를 죽이겠어!"


남자는 이를 악문 채 소리치곤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카게야마의 옷자락에서 힘없이 손목이 삐져나와 덜렁거렸다. 


*


잠시 어지러워 누워있던 쿠니미는 뒤늦게 소란스러움을 깨닫고 궁 밖을 나왔다. 그는 카게야마가 자신을 떠난 걸 제외하곤,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카게야마와 이야기를 해야돼. 내가 원하는 걸 말해야 돼. 겨우 쿠니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를 한바탕 쏟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눈앞에는,

카게야마가.




"카게야마!!!"


쿠니미는 못다 불렀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말 위에 탄 카게야마의 손목이 덜렁거렸다. 카게야마, 카게야마! 쿠니미가 쫓아가려하자 병사들이 말렸다.


"전하! 아직 안됩니다. 단패궁 마마의..!"

"시끄럽다!! 카게야마! 카게야마!!"


불러보아도 대답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카게야마만이.


자신을 다시 찾아왔던 카게야마만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당장 킨다이치 장군에게 연통을 넣어. 모든 궁의 병력을 전부 단패궁 마마를 쫓는데 투입해라."


쿠니미는 덜덜 떨리는 손을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참았다.


"도움..요청할 수 있다면.. 요청해야.."

"전하. 각 궁에 알리겠습니다."

"빨리 알려라. 서둘러서, 당장."


어서. 쿠니미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에 서둘러 병사들이 움직였다. 목이 멘 쿠니미는 고개를 들었다. 아, 기어코 해가 졌다. 




참으로 끔찍한 밤이었다. 



27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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