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선포했다.
"짐이 가겠다."
시라부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감히 입 밖으로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은 하지 못했다.
*
키타가와 내부의 일엔 관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니 앞에 나서는 건 우시지마가 가장 적합하다고 성국 모두가 동의했다. 우시지마에게는 치유의 능력이 있었다. 혹여 카게야마가 위험한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그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맨 처음 키타가와의 재상에게 알린 책임을 있어 자연스럽게 우시지마와 함께 가는 방향이 되었다. 사람은 적을 수록 이동이 쉬우나, 이와이즈미는 한 명이 더 같이 가기를 원했다. 성국 왕족들의 능력은 범인들과 비교했을 때 탁월했다. 세 명은 가야 안정적으로 수 있을 거라는 이와이즈미의 주장을 성국은 따르기로 했다.
1~2. 오이카와 토오루 (방어 ↑)
3~4. 히나타 쇼요 (이동 ↑)
5~6. 츠키시마 케이 (카게야마 발견 확률 ↑)
7~8. 쿠로오 테츠로 (공격 ↑)
9~0. 코즈메 켄마 (카게야마 발견 확률 ↑)
레점에 의하여
오이카와 : 카게야마와 일정한 거리에 있을 때 카게야마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90%의 확률로 막을 수 있습니다
투표에 의하여
우시지마 : 90%의 확률로 카게야마의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방어+치유가 함께 카게야마에게로 가게 되었으므로 카게야마가 발견되었을 경우 죽음에 대한 선택지 확률이 낮아집니다
누가 가더라도 좋았으므로 제비를 뽑기로 했다. 그러나 제비를 뽑으려던 손들을 뿌리치고 공중에서 활짝 펼쳐버리는 힘이 있었다. 모두가 오이카와 토오루를 쳐다보았다.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이카와씨가 갈게."
"뭐?"
설마 오이카와가 먼저 나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오이카와는 가볍게 웃었다.
"우시와카쨩이 나서기 전에 내가 토비오쨩을 지켜주면 안심이잖아?"
우시와카쨩이 활약할 무대는 아예 만들어주지 않을 거야. 오이카와는 밉살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다치기 전에 지키는 일도 중요했다.
키타가와는 아오바죠사이의 것. 토비오쨩도 그러니까 오이카와씨의 것이야. 그렇게 주장하려는 의도는 없어보였다. 무슨 변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눈을 돌렸다. 이런 일로 장난을 칠 남자는 아니었다.
코즈메 켄마는 힐끔 곁눈질을 했다. 방금까지 신중하게 제비를 고르던 쿠로오는, 자신이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오이카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가고 싶었던 걸까. 가고 싶었을 것이다. 쿠로오의 표정에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동자에 스친 아쉬움과 충동을 코즈메는 읽어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먼저 말해버린 덕에 이제와서 나서기엔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코즈메는 슬며시 다시 눈을 돌렸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가는 게 좋겠군."
황제의 말로 단숨에 정리가 됐다. 오이카와가 한탄하듯 말했다.
"왕녀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나 움직이는 일도 없을걸."
"가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가지 않아도 괜찮잖아?"
입을 다물고 있던 쿠로오가 오이카와의 말에 반응했다. 오이카와는 침묵했다가 짧게 웃었다.
"싫거든. 토비오쨩이 울고 있으면 이 오이카와씨가 제일 먼저 놀려줘야하니까."
"오이카와, 가자."
앞선 이와이즈미가 재촉했다.
*
밤새도록 등을 벽에 대고 졸았을 뿐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카게야마는 손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퍼뜩 눈을 떴다. 황급히 더듬자 깨진 조각이 만져졌다. 긴장으로 인한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숨을 흡 들이켰다. 귀를 기울이자 주변은 고요했다. 아직 새벽이라 보초를 서는 남자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들렸다. 감았던 눈은 겨우 어둠에 적응해 이리저리 주변을 살핀다.
"....."
카게야마는 손을 흔들었다. 어제 저녁 내내 아슬아슬해지기 직전까지 줄을 긁어냈다. 등 뒤를 누군가 본다면 풀어진 올들의 잔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줄을 끊어내진 못했다. 그리고 줄을 끊은 순간부터 이곳에서 무조건 빠져나가야했다.
1~9 : 일단...
0 : 지금 당장?
손에 힘을 주려고 하던 카게야마는 순간 망설였다. 이곳이 어딘지 카게야마는 알지 못했다. 집의 구조를 보아 오사와의 별장 같기도 했는데, 위치가 어딘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바람 소리. 나뭇잎들이 스치는 소리. 나뭇가지 위를 앉았다가 휙 날아가버리는 새소리. 산 속일까? 산 중턱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면 올라갈 때는 몰라도 내려갈 때는..아니면 단순히 위치가 높은 곳일 수도 있다.
혼자 몸이라면 상관없어도 뱃속에 아이가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도망다니기는 위험했다. 망설이던 카게야마는 주먹을 쥐었다. 손목에 힘을 주고 당기자 툭 하고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한숨을 쉬면서도 주변의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창이 하나 있었다.
카게야마는 미닫이로 된 창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삐걱, 하는 소리가 제법 커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쉽게 열렸다.
1~3 : 높은 담
4~6 : 어두운 방
7~9 : 산 속
0 : 키타가와 궁
묵은 먼지 냄새가 확 풍겨와 카게야마는 입을 막았다. 기침을 참으며 안을 살피자, 그곳은 오랫동안 쓰지 않던 창고인 것 같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방엔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아마 이 방의 존재조차도 잊고 있었으리라.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밖의 기척은 없었다. 저 방 안에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볼 시간 정도는 있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낮은 창은 카게야마가 넘어갈만한 크기였다.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눈을 굴리던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창을 넘어갔다. 길게 끌리는 옷자락이 신경쓰였다. 도망을 친다면 나중엔 밑단을 잘라야할 것 같았다. 완전히 방 안으로 넘어온 카게야마는 마지막으로 창 너머의 문을 쳐다보았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심한 카게야마는 퀘퀘한 냄새가 나는 방을 살폈다.
1~3 : 낡은 보호대
4~6 : 낡은 검
7~9 : 낡은 활
0 : 품에 넣을 수 있는 단검
카게야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 못쓰게 된 물건들을 쳐박아둔 모양이었다. 구멍이 난 가슴 보호대나, 이가 빠진 검이 보였다. 익숙한 모양에 얼른 들어보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활도 발견했다. 옷 속에 숨기기엔 곤란하지만 이거라도 가지고 가면... 어떻게라도 한 번은 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힘이 빠진 카게야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손에 익은 활을 가지고 나가려는 순간, 카게야마의 발치에 무언가 채였다.
"....?"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발에 묵직하게 걸린 걸 들어보았다. 가죽으로 만든 검집이었다. 손에 들기에 딱 좋았다. 검집에서 단검을 꺼내자 녹은 조금 슬었어도 날카로운 검날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단검을 쥐고 몇 번 휘둘러보았다. 무게도 가볍도 나쁘지 않았다. 옷 속에 넣자 작은 크기라 잘 숨겨지기까지 했다. 의외의 소득을 얻은 카게야마는 서둘러 창고에서 나왔다.
멀리서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들렸으나 카게야마에게까지 관심을 가진 건 아닌 듯 했다. 카게야마는 창고에서 꺼내온 단검을 다시 꺼내보았다. 녹이 슬긴 했지만 쓸만했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거나, 누군가를 공격해야할 일이 있다면 틀림없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카게야마는 혹시나 들킬까봐 옷속에 넣고 티가 나지 않게 옷을 매만졌다. 그러나 배에 가죽 검집의 끝이 닿자 자신도 모르게 그는 말했다.
"이걸로 다치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얘네들, 겁먹으면 어쩌지? 카게야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배를 힐끔 내려다봤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겁먹지도 않을 거란 사실을 카게야마가 깨달을 수는 없었다. 이미 카게야마 자신부터 긴장으로 초조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줄을 끊었으니 들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안전하다. 카게야마가 묶여있고, 임신한 여자라서 그런 것일까. 감시는 느슨했다. 간간히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긴 해도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귀가 좋아. 그러니까 잘 듣고 인적없는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게야마는 자꾸만 손에 땀이 났다. 혼자가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혼자였다고 한다면 이렇게 도망칠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카게야마는 무릎걸음으로 문가 쪽에 갔다.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의 내용이 더 확실하게 들렸다.
오사와..
...도망...
인질...
...화가 나있다. 왜지? 카게야마는 어제 본 오사와의 초조함을 떠올렸다. 일부러 도발하듯 오사와를 찔러봤을 때, 그는 당황했으나 부정하지는 못했다. 평생 권력자이지 않았던 날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랬던 사람이, 평생 상상하지 못한 몰락이 가까워져온다면.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사와의 초조함은
홀 : 혹시 근처에
짝 : 왠지 불안한
...혹시 근처에 누가 와있는 건 아닐까? 카게야마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킨다이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장군이었다. 킨다이치가 오사와의 뒤를 쫓은 지가 여러 날이고, 카게야마가 이 쪽으로 오며 시끄러웠다면 분명 킨다이치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 가정에 이상함은 없어 보였다. 카게야마는 묶였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줄로 묶인 자국이 아직도 남아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킨다이치가 근처에 와있다는 가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엇갈린다면 원통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거야. 카게야마는 이를 악 물었다. 자신은 궁으로 돌아가 만날 사람이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1~9 : 사야코
0 :
작고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로 사야코임을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당황하지 않고서 고개를 들었다. 잡혀온 자신보다 더욱 수척한 얼굴의 사야코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사야코."
"폐하. 손은.."
근처에 사람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풀었다는 말 대신 쉿, 하고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카게야마의 손이 자유로운 것을 확인한 사야코는 얼른 문을 닫았다. 지나치게 당황한 티가 나는 얼굴이라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는 웃음이 나왔다. 입을 다문채로 재채기를 하듯 웃자, 사야코는 어째서 웃냐는 눈으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더 긴장한 사야코가 앞에 있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카게야마는 혼자 있을 때보다는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카게야마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오니 좋아서 그렇다."
오사와 사야코는 어리둥절하였다가 카게야마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
벽에 등을 기대고서 자신을 바라보는 카게야마는, 마치 왕좌에라도 앉아있는 것과 같은 품위가 있었다. 적어도 사야코가 느끼기엔 그랬다.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던 카게야마는 사야코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사야코는 카게야마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곁눈질하며 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참."
사야코는 품에서 엿을 꺼냈다.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으니 입에 물고 계시면 나을 것이어요."
"..고맙다."
카게야마는 엿을 받았다. 궁에서 가끔 먹는 물렁한 것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이었다. 이런 엿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전쟁터에 있을 때 민가에서 만든 걸 받은 적이 있다. ..도망치는 와중에 엿을 고았을 리는 없고, 역시 오사와는 민가를 습격하여 그때그때 필요한 물자를 가져온걸까. 생각에 잠겨있던 카게야마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야코가 근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먹었느냐."
"예?"
"같이 먹자."
카게야마는 엿의 양 끝을 잡아 뚝 부러트렸다. 반을 나누어 주자 제 쪽이 더 크니 바꿔야한다고 사야코가 작게 말했다. 그렇게 하라고 바꾸자 또 제 쪽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하려고 하여, 카게야마는 얼른 자기 몫의 엿을 입안에 넣었다. 무척 달았다.
민가를 습격했다면, 당연히 흔적이 남는다. 제아무리 오사와라고 해도 갑자기 습격당한다면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단 엿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카게야마는 오사와를 쳐다보았다. 경황이 없어 묻지 못했던 말들이 있었다.
홀 : 여기에
짝 : 혹시
"여기에 어떻게 온 것이냐."
"예?"
"분명, 다른 나라로 간다고.."
사야코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짐을 챙겨나오던 사야코는 수상하다는 이유로 병사들에게 붙잡혀 그만 집을 나오지 못했다. 들키지 않았다면 오사와는 사야코를 신경쓰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야코가 도망가서 혹시나 정보를 흘릴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서, 오사와는 억지로 딸을 데리고 다녔다. 제법 겉모습도 괜찮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만 빼면 부족할 것이 없는 여인이었다. 어떻게든 써먹을 곳은 많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말이 없어진 사야코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서신을 기다렸는데.."
"죄송합니다."
"살아있으니 됐다."
그리고 같이 이곳에서 나가면 문제없지. 카게야마의 중얼거림에 사야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킨다이치가 와있을 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니 자신이 생겼다. 발견해 품에 넣은 단검이 든든했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카게야마는 사야코에게 혹시 오사와가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조그만 짐승처럼 벌벌 떨고만 있을 줄 알았던 사야코는 제법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추격이 심해진다는 말을 듣고, 킨다이치 장군께서 보실 수 있도록 조그만 표식을 남겨놓고는 했습니다.
"장하구나."
"제가 마땅히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하지만 아버지께선 급해보이셨습니다. 사야코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 외에 또 들은 것은 없느냐."
사야코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홀 : 아버지께서
짝 : 왠지
"왠지.."
불안한 목소리였다.
"저를 극진히 대해주십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야코는 설명했다. 예전에는 병사들이 희롱하는 것도 그저 못본 척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감싸준다는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사야코도 어떤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가 있는 방에 병사들이 오지 못하게 하여, 그 외에는 들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제가 한 번 나가서 살펴보고 올까요?"
장군님이 오셨다면 저라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야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방에서 나온 사야코가 휘젓고 다닌다면 분명 이상하다고 눈치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사야코에게 때를 기다리라고 한 후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그러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방에 오는 건 허락을 받고 오는 것이냐."
"...어제부터 아버지는 바쁘셨고, 또..병사들도 저희들끼리 뭉쳐다녀 제게는 신경을 덜 씁니다."
인질이 잘 있는지 보러간다고 하니 순순히 보내주었다는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찡그렸다. 내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동속도에 대한 버프가 없으므로 가장 낮은 확률의 레점 세번, 그리고 반반확률의 레점 두 번을 무조건 치게 됩니다. 우선 세 번의 레점 중 0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성국 무리들은 킨다이치와 합류할 수 없습니다
우시지마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1~9 : 킨다이치와 만나지 못했다
0 : 킨다이치와 만났다
29일 아침, 우시지마 무리들은 킨다이치와 합류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킨다이치는 오사와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깥에서부터 진을 치고 있습니다.
사야코는 너무 오래 있으면 의심을 살 것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시다면, 제가 꼭 폐하께 알려드리겠습니다."
"무리하지는 말거라. 이곳에서 나갈 땐 성한 몸으로 나가야할 것이다."
카게야마의 걱정에도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점심에는 먹을 만한 것을 가져오도록 할게요."
"엿이 단단해서 잘 녹지 않으니 괜찮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입 속의 엿은 동그랗게 말려 녹지 않고 계속 단맛을 냈다. 사야코는 카게야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밖을 나갔다.
홀 : 시끄러운 소리
짝 : 발자국 소리
사야코가 밖을 나가자마자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고개를 숙이고 단 엿을 빨고 있던 카게야마가 얼른 소리가 나는 쪽을 노려봤다. 문 너머에서 남자들이 뒤엉키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고함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이지?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를 기울이면, 어떤 남자 한 명이 제압당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나가볼까, 충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카게야마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묶여있었다는 걸 너무 빨리 잊었다.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는 손을 뒤로 숨겼다. 부자연스럽게 손목을 뒤로 숨기고서 카게야마는 귀로 남자들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명을 거역하는 거냐!"
"왜 안된다는..윽..!"
"저 안에 있는 건..!"
버럭하는 소리가 지나치게 커서 귀가 아팠다. 카게야마는 미간을 찡그렸다.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왠지 목소리가 익숙했다. 동시에 카게야마는 누구인지 깨달았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의, 자신을 죽이고 싶어했던 궁녀의 혈육이 저 밖에 있었다.
남자는 무어라고 떠들었다. 자신이 데려왔으니 자신이 만나봐야한다는 주장 같았다. 그러나 오사와 대신의 명을 지키는 병사들은 단호했다. 아마도 카게야마는 그들이 오사와의 직속 호위일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흐느끼듯이 울음 섞인 말을 하다가 조용해졌다. 혼자 몸으로 버텨봤자 소용없다는 걸 안 것이다. 카게야마는 찝찝한 기분으로 그 남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 남자는 자신이 여동생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궁에서 나올 때야 필요에 의해 끌고 왔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또 죽이고 싶어진걸까. 카게야마는 품 속의 단검을 더듬었다. 무기를 찾은 건 참 다행이었다. 오사와가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고 해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며 방문 근처까지 갔다. 창호지가 발린 문에 작게 구멍을 내고서 살펴보자 병사들이 드문드문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해가 뜨기 전에 바로 나갔어야했는데.. 카게야마는 짧게 후회했다. 그러나 바로 나갔다면 단검을 구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사야코의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입 속의 엿은 긴장한 사이 다 녹아 사라졌다. 카게야마는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고서 벽에 머리를 기댔다. 우선 오사와 쪽에서 자신을 해칠 생각은 없어보인다는 걸 확실히 안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오사와는 무슨 생각이지? 카게야마는 방금 들었던 사야코의 말이 걸렸다. 거친 병사들에게서 떼어놓고 아주 극진히 대해준다는 오사와의 태도는 결코 자연스럽다곤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서 카게야마에게 보냈던 남자였다. 혹시.. 카게야마는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듯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병사들이 느슨한 자세로 잡담을 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킨다이치가 근처에 왔다면 저렇게 여유로운 건 이상했다. 자신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일까. 카게야마는 인질을 이용한 기억은 없었다. 인질인 자신을 보여주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다면 빠져나와 무엇을 하려고? 이제 와서 왕위 찬탈이나 혁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내가 오사와라면 역시 제 안위가 먼저일 것이다.
굶주린 배에 단 엿이 들어오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카게야마는 열심히 궁리하며 정보를 모으려 애썼다.
*
카게야마가 입맛을 다실 동안 킨다이치는 말에서 내렸다. 어제 밤 동안 그는 병사들을 끌고 이동했다. 오사와가 자리를 잡은 곳을 보자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킨다이치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오사와 쪽에선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뭘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는 게 좋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킨다이치는 성국을 기다려야한다고 판단했다. 이쪽에서 급한 모습을 보여봤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킨다이치는 오기 직전 받은 서신을 확인했다. 우시지마와 오이카와, 이와이즈미가 온다고 들었다. 그 셋이라면 카게야마의 안전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들은 오사와를 잡는 것에 주력하고 그 셋에게 카게야마를 부탁하는 편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킨다이치는 초조하게 오사와가 있는 방향을 살폈다.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지금이라도 당장 구해내고 싶었다. 킨다이치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단패궁 마마를 되찾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한다."
무작정 공격에 들어가는 것보단, 우선 카게야마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킨다이치는 은밀히 오사와 쪽으로 보낼 자들을 골랐다. 모두 다 암습에 능한 병사들이었다.
"자극해서는 안된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킨다이치는 오사와의 은신처를 둥그렇게 둘러 도망갈 곳 없이 막았다. 그걸 오사와가 알게 된다면 카게야마의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 킨다이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을 당부한 후 병사들을 보냈다.그들은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숨어들어갈 것이다. 킨다이치는 다 내보낸 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침착하려고 해도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판단으로 카게야마가 다칠까, 오직 그는 그게 걱정이 되었다.
우시지마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1~9 : 근처까지 왔다
0 : 킨다이치와 만났다
이와이즈미는 자처해서 뒤를 지키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한 나라의 황제. 오이카와 또한 황제가 될 사람이었다. 굳이 따지면 왕위와 상관없는 자신이, 급습당할지도 모르는 뒤에 서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이마를 찌푸렸으나 우시지마는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는 뒤에 서야했다. 그리고 카게야마를 구해야하는 건 자신이어야한다는 욕심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우시지마의 옆에 있던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우시와카쨩."
"그렇게 부르지 마라. 오이카와."
"어떻게 생각해?"
"무엇을."
오이카와는 고삐를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 오사와라는 자는 국경 끝까지 도망쳤거든."
"국경 끝까지 도망가게 뒀다니 키타가와의 병력이 의심스럽군."
"오이카와씨는 그런 말이 아니라-"
"알고 있다. 국경까지 가 망명할 계획이라면 외부에 협조하는 나라가 있다는 뜻이겠지."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대답에 그제야 조금 풀린 얼굴을 했다.
"토비오쨩이 물불 안 가리고 영토를 차지했으니 적도 많겠지. 그런 나라 중 하나일 수도 있겠네."
"....."
"..원한으로 토비오를 죽여서 안정된 키타가와를 괜히 건드려봤자 벌집을 쑤시는 꼴이야."
죽을 가능성은 적다고 해도,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빨리 가는 편이 좋겠어. 오이카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우시지마의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마치 빨리 가는 이유를 합리화하는 듯한 문답이었다. 우시지마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둘러보던 이와이즈미가 가까워졌다.
"여기까지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섭정이 보내준 병사들도 잘 따라오고 있어."
"이와쨩. 금방 구해낼 수 있다니까. 심각해지지 마."
"카게야마는 회임 중이야. 임산부는 작은 충격에도 큰일을 당할 수 있어."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
발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얼른 손을 뒤로 숨겼다. 품 안의 단검이 보이지 않는지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1~8 : 사야코
9 : 오사와
0 :
익숙한 발자국 소리를 확인한 카게야마는 손을 내렸다. 사야코는
1~3 : 점심
4~6 : 병사
7~9 : 아버지
0 : 방금
사야코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급한 숨을 들이키며 다가온 여인을 카게야마는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사야코? 그렇게 불러도 무언가를 생각하며 문 앞에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카게야마는 말이 없는 사야코는 둔 채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인적은 드물었다. 사야코가 이 방으로 온 걸 봤다고 해도 신경쓰지는 않는 눈치였다.
다시 사야코를 보면 창백한 얼굴이 가여웠다. 그녀를 보며 카게야마는 문득 쿠니미를 떠올렸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 비를 맞은 사람처럼 추워보이는 눈동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폐하."
상념에 잠긴 카게야마를 사야코가 조용히 불렀다.
"폐하. 방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훔쳐듣고 왔습니다."
"무슨...?"
"아버지께서는,"
홀 : 저를
짝 : 아마
0 : 원래
"저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저를? 카게야마가 근심스럽게 쳐다보니 사야코는 풀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카게야마는 사야코의 연약함을 볼 때마다, 비록 자신이 사내의 몸이 아니라고 해도 지켜줘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책임감을 느끼며 카게야마는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았다. 사야코는 눈물이 글썽글썽 매달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손등으로 훔쳤다.
"무슨 일이냐."
"아, 아무것도."
"사야코. 지금 내겐 어떤 소식이라도 귀중하구나. 말을 해보거라."
"폐, 하께서 신경쓰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
사야코는 눈물을 거뒀다. 그리고 곧 밖으로 나가 준비한 점심상을 들고 왔다. 점심을 가져올 여유는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상을 들고 오사와의 방을 지나칠 때, 혹시 어떤 말을 들은 것일까. 짧은 시간 동요했던 사야코는 이젠 카게야마의 눈치를 보며 식사를 권했다. 카게야마는 망설이다가 우선 음식을 입에 넣었다. 인질 치고는 참 호사스러운 생활이었다.
배를 채웠다. 속을 달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카게야마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상을 치운 사야코가 물을 적신 수건을 가져왔다. 먼지가 묻은 카게야마의 손을 닦아주는 사야코를 보며, 카게야마는 또 한번 쿠니미를 생각했다. 죽겠다고 말하던 쿠니미. 왕위를 다시 돌려주고 싶어하던 쿠니미. 그가 죽을 마음을 품은 원인은 분명히 자신에게 있었다. 이와이즈미와 함께 나간다고 했을 때 쿠니미는,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서 숨만 가늘게 들이쉬고있었다.
"왜 그랬을까.."
카게야마는 깨끗해진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수건을 접던 사야코가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폐하?"
"....."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방금까지 사야코에게 묻던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그것이 왠지 우스웠다. 얼굴을 찡그리는 것처럼 웃자 사야코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 멋쩍어진 카게야마는 손을 바닥에 대고 문질렀다.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한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홀 : 쿠니미가
짝 : .....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눈앞엔 카게야마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쿠니미가."
"섭정 전하 말씀이십니까."
"그래. 섭정..."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귀가 빨개져 뜨거웠다. 카게야마는 바닥을 쓸던 손바닥으로 귀를 꾹 눌렀다. 머리가 멍해지는 진공의 소리가 귓속에 머물렀다가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심장이 머리로 올라가기라도 한 것처럼 진정이 되지 않아, 카게야마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섭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전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셨습니까."
"...생길 거라고, 직접 제 입으로 말하였어."
울컥 끓어오르는 목소리였다. 사야코는 카게야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길 거라니, 전하께 적이라도.."
그렇게 말하다가 그 주적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야코는 입을 다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쿠니미를 해치려는 사람은 쿠니미 뿐이었다. 그리고 쿠니미가 그러려는 이유는.
"나 때문이다."
카게야마는 마찰로 붉어진 귀를 계속 문질렀다.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나 때문에 목숨을 버릴 거라고.. 그런 말을 들었어."
"어째서?"
"...죽으면 나를, 왕위에 되돌려놓을 수 있다고. 그런.."
사야코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곧 납득한 사람처럼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분은 그런 생각을... 사야코는 카게야마보다 빠르게 그 마음을 이해했다. 모든 영혼을 바쳐 동경하고 사랑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곁에 있고 싶었다. 사야코는 카게야마가 회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카게야마가 남자였다면, 자신이 그 아이를 가졌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남자였다면 카게야마가 제 아이를 임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있기에 사야코는 쿠니미의 결정에 놀라지 않았다. 사야코는 벽에 등을 기댄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왜 그랬을까."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내가 아이를 가져서 기쁘다고 했는데,"
"....."
"나를 제일로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왜 죽을 생각을 했을까. 카게야마의 순진한 혼잣말을 들으며 사야코는 쿠니미가 무척 부러워졌다. 갈팡질팡하며 정리하지 못하는 카게야마의, 깨끗해진 손을 잡고 사야코가 말했다.
"섭정 전하께서는 폐하를 사랑하시니 그런 겁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왜 나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하는 거지?"
"폐하께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었으니까요."
"...가장 좋은 것?"
가장 좋은 것. 왕위. 아버지가 원했던 그 자리. 언제나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으나 늘 마음 한 구석엔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그 무거운 왕관이, 가장 좋은 것. 카게야마는 사야코를 쳐다보았다. 지치고 피로해보여도 카게야마와 눈을 마주치면 기쁘게 웃어보였다. 애정이 느껴졌다. 가슴 안쪽이 따뜻해진다. 카게야마는 사야코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다."
"..폐하?"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수많은 기억들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기억들. 좋은 것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면 원하는 게 분명하게 잡혔다.
"내가 원하는 건 쿠니미가 내 곁에 있는 거야."
입 밖으로 내니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야코가 멈칫했다. 그럼에도 명료하게 말한 입술은 다시 한 번 확신에 차 말했다.
"죽지 않고, 나도 살아서 얘네들이랑 같이. 그리고 사야코 너도."
"....."
"애초부터 내가 원하는 건 그 것 뿐이었어."
친구들을 지키고 싶다는 작은 소망. 그것을 카게야마는 이루고 싶었다.
*
사야코는 눈물을 훔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눈가를 쓸었다. 카게야마는 연약한 사야코가 우는 줄로 알았으나 우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 것 처럼 새빨개진 얼굴이었다.
"폐하께서 저와 같이, 라고 말씀해주실 줄은."
"사야코..?"
"늘... 저만이 폐하를 흠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지금도 나는 네게 의지하고 있는데."
카게야마의 말에 사야코는 기어코 눈물 몇 방울을 뚝뚝 흘렸다. 아이 참, 폐하께 이런 모습을. 눈물을 찍어 훔치던 사야코는 카게야마의 손을 꽉 붙잡았다.
"폐하. 아까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어요."
"....?"
"아버지께서 후쿠로다니로 망명을, 갈 계획인 것 같습니다."
"후쿠로다니...?"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을 듣고 카게야마는 놀랐다. 후쿠로다니라면 키타가와의 국경에 인접한 나라 중 하나였다. 카게야마와의 전쟁으로 영토를 잃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전에 아버지께서는, 후쿠로다니에서 들여온 독으로 폐하를 해치려고 하신 적이 있어요."
"......"
"아마 후쿠로다니에.. 내통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왜 그걸 아까는 말하지 않았느냐."
카게야마의 물음에 사야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후쿠로다니로 망명하는 조건 중의 하나가 저인 모양입니다. 폐하."
".....?"
"저는.. 폐하와 부부의 연을 맺었을 지도 모르는 여인이니, 아마 그쪽에선 그것이.."
카게야마는 사야코가 하기 힘들어하는 말을 이해했다. 카게야마에게 원한이 있는 나라의 사람이라면, 여인과 약혼했던 사야코의 이야기가 좋은 이야깃거리였을 것이다. 오사와는 그런 나라에 딸을 노리개로 팔 생각이다. 충격을 받은 카게야마에게 사야코가 작게 속삭였다.
"폐하께서 같이 가자고 하신 것은 무척 기쁩니다만... 이렇게 되었으니,"
"사야코?"
"...제가 도망치는 척을 하여 시선을 끌면 폐하께서 나가시기 수월하실 거예요."
그 말에 카게야마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아비의 계획을 들은 순간부터 자신을 희생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사야코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겁을 먹었으면서도 사야코는 카게야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1~3 : ....
4~6 : 도망쳐서
7~9 : 그런 말은
0 : 사야코
"....."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건 고마웠으나 그러겠노라고 할 수 있을 리 없다. 함께 사야코와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자신에게 사야코가 의지가 됐던 것처럼 자신 또한 사야코를 돕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야코가 시선을 돌려준다면 정말로 탈출이 쉬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순간적으로 든 이기적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사야코는 카게야마가 하는 양을 보다가 그를 불렀다.
"폐하..?"
홀 : 안돼
짝 : ....
잠시라도 사야코를 두고 갈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야코를 보며 카게야마는 안 돼, 하고 짧게 말했다. 예?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알았을 텐데도 사야코는 다시 물었다.
"안 된다."
"어째서.."
"오사와가 네게 들리는 것도 모르고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냈다면, 그건 분명 조급해졌단 증거일 것이다."
카게야마는 죄책감을 누르고서 사야코에게 설명했다.
"근처에 킨다이치 장군이 와있는 게 분명해. 네가 나서서 위험한 일을 할 생각은 하지 말거라."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사야코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는
홀 : 사야코
짝 : 혼자
카게야마는 혼자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사야코에게 말했다.
"이곳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혼자서 알아보겠다고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겠구나."
"아.. 예. 알겠습니다."
사야코는 조금 기쁜 얼굴이었다. 왜 그런 얼굴이냐고 묻자 얼른 제 뺨을 손으로 감쌌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다고 말해주니 이번엔 또 사야코는 웃었다. 카게야마는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카게야마에게 사야코가 다시 한 번 말했다.
"폐하께서 제 생각을 해주시는 게 기뻐서..."
"....?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사야코는 카게야마에게 불편한 곳이 없는지를 묻고 다시 방을 나갔다. 혼자가 되고 나서는 까닭없이 깊은 한숨이 나왔다. 긴장 때문인지 배가 살살 뭉친 것 같아 신경쓰였다.
카게야마가 배를 문지르며 아기들을 생각할 동안, 쿠니미는 텅 빈 섭정궁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카게야마의 몸이 무사한지도 알 수 없는데 자신만이 이곳에 앉아 있는 건 무척 이상한 일처럼 느껴졌다. 매일 쑤시던 다리 조차도 아무 감각이 없다. 쿠니미는 혹시나 싶어 일어서 보았다. 방 안을 걸으면 역시나 다리가 질질 끌렸다. 하지만 몸의 고통이 와닿지 않았다.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영혼은 이미 카게야마와 함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카게야마가 죽는다면 자신은 그대로 함께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카게야마가 화를 내며 나를 두고 가겠지. 쿠니미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표정이 없는 창백한 얼굴은 손바닥으로 옆을 두드릴 때마다 힘없이 밀려나갔다.
우시지마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1~9 : 바로 코 앞
0 : 킨다이치와 만났다
해가 졌다. 고민하던 킨다이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정을 내려야할 때였다.
홀 : 오사와
짝 : 먼저
"말한대로 오사와 쪽에 모두 자리잡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장군의 물음에 잘 훈련된 병사들이 힘주어 대답했다. 그들 또한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적진에는 키타가와에 남은 유일한 왕족이 인질로 잡혀있었다. 기껏 오사와를 쫓아 여기까지 왔는데, 카게야마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분하여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부하들의 사기가 높은 걸 확인한 킨다이치는 임시로 지은 막사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지면 기습을 하기에 용이하다. 그러나 인질이 있으니 함부로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킨다이치는 잠시 고민했다. 오사와는 아직 킨다이치가 코앞에 와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 안다면 이곳, 국경의 끝까지 와서 버티고 있을 리 없었다. 킨다이치에게 협상을 하려 들거나 아니면 킨다이치를 피해 국경을 넘어갈 것이다. 가장 가까운 너머엔 후쿠로다니가 있었다. 그닥 사이가 좋지는 않으니 죄인을 넘기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여기서 모두 끝을 내야한다. 킨다이치는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와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해가 전부 지고 나면 움직인다. 너희는 투입조와 함께 단패궁 마마의 신변을 최우선으로 찾고,"
킨다이치는 제 어깨 오른쪽의 병사들에게 그렇게 말한 후 왼쪽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나와 같이 오사와를 잡는다."
"드디어 그 놈 얼굴을 보겠습니다."
분위기를 풀려는 듯 누군가 가볍게 농담을 했다. 킨다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오늘 밤, 오사와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움직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갑자기 공격하면, 안에 계신 단패궁께서는,"
"아마 단패궁께서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짐작하시고 계실 것이다."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한 패왕. 여인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 속이 바뀔리는 없었다. 그러니 그 카게야마가 얌전히 잡혀 눈뜨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킨다이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근처까지 사람이 왔다는 걸 알면 서둘러 빠져나올 생각을 하실 지도 모른다."
"...그렇습니까."
"얌전히 기다리시면 좋겠지만 아마도..."
무작정 올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보단 한발 앞서서, 오사와의 혼을 쏙 빼놓는 게 킨다이치의 목적이었다. 협상 혹은 도망을 선택하려던 오사와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도록 포위하여 잡는다. 밤이 어두워지면 몰래 움직일 생각을 하는 건 킨다이치 뿐만은 아닐 것 같았다. 카게야마와 엇갈리면 큰일이었다.
"아마도, 가만히 앉아있진 못하겠지."
킨다이치는 그리운 걸 떠올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카게야마는 방문 너머의 하늘이 다채로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가, 금방 붉은 점으로 변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가, 마지막엔 전부 사라지고 까맣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카게야마는 심호흡을 했다. 자신이 킨다이치라면, 오사와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기 전 급습할 것이다. 오사와같은 남자와 협상을 킨다이치가 할 리 없었다.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지? 카게야마는
1~3 : 바깥
4~6 : 천장
7~9 : 바닥
0 :
카게야마는 문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도망쳐야한다고 해도, 사병들이 돌아다니는 밖은 위험했다. 사야코와 함께 나가야하니 더욱 그랬다. 자신의 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사히 빠져나갈 거란 보장은 없었다.
"......"
카게야마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단검을 얻은 후 방도 뒤져보았으나 숨을 만한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 방 바깥으로 나가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우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혹시라도 방에 없는 걸 들킨다면, 이쪽 방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창문을 열고 옆방으로 넘어간 카게야마는 낡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흐트러트렸다. 옆방의 문도 문고리를 풀어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만들었다. 이런 걸로 속을 진 모르겠지만 시간을 버는 일이라면 어떤 거라도 해놔야 했다. 창문을 통해 다시 나오자마자 방으로 다가오는 사야코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손에서 땀이 났다.
"...이 방에서 하룻밤 잤으면 이제 나갈 때도 됐지."
방에서 가져온 먼지 투성이의 검은색 담요를 머리 위에 푹 쓰고서,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전쟁터에서 떠돌 때는 단순히 궁이라고 생각한 곳은 어느새 돌아가고 싶은 집이 되어있었다. 돌아갈 거야. 나는 너를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하니까. 감은 카게야마의 눈 속에 쿠니미가 스쳐지나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사야코가 속삭이는 순간 카게야마는 눈을 떴다. 움직여야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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