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Q/카게른/폐왕의 밤

100. 3월 29일 밤과 30일 새벽


사야코는 같이 가자는 카게야마의 말을 꺼리는 기색이었다. 문을 닫고 들어온 사야코가 머뭇거리자 카게야마는 사야코의 어깨 위에도 검은 담요를 덮어주었다.


"폐하.."

"네가 남는다면 또 인질이 남아있게 되지 않느냐. 네가 안가면 나도 나갈 필요가 없어."

"그렇지만 저와 같이 움직이시게 되면,"

"빨리."


카게야마는 망설이는 사야코의 손을 덥석 잡았다. 스스럼없이 잡아 사야코가 얼굴을 붉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카게야마는 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달이 뜨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한 밤이었다. 구름이 지나가 문 앞에 그림자가 졌다가 사라졌다.



홀 : 아무도

짝 : 누군가



카게야마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보초인 줄 알았으나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뱅글 돌았다가 앞으로 오고, 또 망설이는 것 같으면서도 흥분해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사야코의 손을 놓았다.


"사야코. 저 안에 숨어 있거라."

"예?"

"어서."


사야코는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으나 카게야마의 말을 따랐다. 사야코가 옆 방으로 숨는 걸 도와준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문 너머를 살폈다. 확실히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1~3 : 병사

4~6 : 남자

7~9 : 오사와

0 :



그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카게야마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혹시, 누군가 먼저... 카게야마는 문을 쳐다보았다. 흥분한 기색은 사라졌다. 대신 저벅버적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잘 훈련된 병사의 걸음걸이. 오사와 밑에 남은 오합지졸과는 또 달랐다. 카게야마는 묶였던 손목을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가온 발이 멈췄다. 망설이고 있다. 카게야마는 확신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병사 둘이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치자 저희들끼리 놀라 움찔했다. 입은 갑옷에는 키타가와의 문양이 그려져있었다. 카게야마가 물었다.


"킨다이치가 왔느냐."

"단패궁 마마를 최우선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보란듯이 빠져나가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일찍 구하러 온 이들을 보니 우습게도 마음이 놓였다. 병사가 재빨리 말했다. 


"장군께서 걱정이 크십니다. 나오시면 곧바로 움직이실 겁니다."

"여기서 어떻게 나갈 계획이냐."

"뒷길을 봐두었으니 저희 둘이 마마를 모시며 나가기엔 충분합니다."


카게야마는 잠시 생각했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사야코가 있는 방이었다. 까닭을 모르는 병사들이 카게야마를 따라 어두운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명이서 두 명을 호위해서 나간다면....킨다이치가 바로 앞에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 쪽은 나갈 사람이 두 명이었다. 카게야마가 사야코의 이야기를 꺼내자 병사들은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마마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명받았습니다."

"....."


자신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건 사야코였다. 카게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폐하? 대화가 길어지자 아무것도 모르는 사야코가 고개를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고민했다. 무리해서라도 같이 갈까. 아니면...



홀 : 먼저

짝 : 같이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사야코가 곁에 다가왔다. 빨리 움직일 생각을 하고 온 병사들은 초조한 모양이었다. 먼저 사야코를 보내고 혼자 남는 방법도 생각했다. 자신은 몸이 튼튼하니 그 사이 누구와 마주치더라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 카게야마는 멈칫했다. 지금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쿠니미와의 아이가 둘이나 이 속에 있다. 혹시 위험이 생긴다면 자신 혼자 다치는 걸론 끝나지 않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병사들에게 품 안의 단검을 보여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테니, 사야코도 같이 가는 게 좋겠다."

"하지만."

"오사와는 사야코를 후쿠로다니로 보내 제 몸을 보전할 계획이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같이 가는 게 좋아."


촉박한 와중이란 걸 알면서도 카게야마는 고집을 부렸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사야코가 자신은 괜찮다는 듯 카게야마의 옷깃을 잡았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뜻을 굽히지 않을 거란 걸 깨달은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를 발견하는 즉시 이곳을 빠져나가는 계획을 세웠을테니 그들로선 어쩔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검은 담요를 둘러 썼다. 사야코도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은 망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방을 나온 카게야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떴으나 어두웠다.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뚝 울음을 크친다. 보초는 없었다. 함정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병사들은 저 멀리서 자기들끼리 모여있었다.  오사와는 저렇게 병사들을 두는 건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병사들의 걸음이 멈추자 곧 그쪽으로 다시 집중했다.


"무슨 일이냐."


카게야마의 물음에 병사들은 보초가 없는 게 수상해 경계를 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이 근처엔 아무도 없다. 서두르거라."

"어떻게..."


지나치게 확신에 찬 말투에 병사 한 명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곧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카게야마에게 다시 말한다.


"마마. 서두르시는 마음은 알겠으나 지금은 저희의 말을 따라주셔야합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카게야마는 심장이 유독 쿵쿵 울리는 병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이유를 대는 게 아니라, 정말 보초가 없는 걸 알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단 뜻이다."

"......"

"좋은 기회이니 누가 오기 전에 어서."


병사들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단호한 눈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천천히 달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

병사들은 뒤편으로 돌아가면 허물어진 담이 있어 넘어가기 쉽다고 말했다. 보초를 서는 자는 없었냐고 물으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카게야마는 그것이 이상했다. 병사들도 그것을 수상하게 여겼으나, 자신들이 들어올 땐 아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질을 안에 두고, 쫓기는 입장인데도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다. 자신은 여자라 무시를 한 것인가...그러나 카게야마는 오사와의 초조한 얼굴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카게야마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사야코를 확인한 후 조용히 말했다.

"오사와의 뜻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예?"

사야코는 되물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생각에 잠겨 그 말에 대답해주지 못했다. 긴 행군. 소득없는 도망. 카게야마 또한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다녔기에 알 수 있었다. 충성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는 그 고생을 달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의 조언에 따라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아낌없이 상을 내렸다. 하지만 오사와에게 그럴만한 재력이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카게야마는 앞서가는 병사들에게 서두르자고 말했다.

"어떻게 상황이 변할 지 모르니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게 좋겠어."
"꼭 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카게야마에게 말하는 병사들의 목소리는 제법 믿음직스럽게 들렸다. 

*

킨다이치는 오사와의 진영이 흐트러진 것을 깨달았다. 금방이라도 찌르고 들어갈 만한 허점이 많았다. 어째서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지? 킨다이치는 당장 돌격하려던 군사들을 막았다. 함정일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빈틈이 많았으며 어수선해보였다. 오히려 수상하게 여긴 킨다이치는 잠시 두고보기로 했다. 공격에 들어가기 전 카게야마가 빠져나온다면 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시라토리자와의 황제가 와주었으면 좋겠는데. 킨다이치는 카게야마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시지마가 꼭 와주길 바랐다.


홀 : 도착했다 
짝 : 길이 엇갈렸다


그리고 그 순간 말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킨다이치가 막사 밖을 나가자 거짓말처럼 우시지마가 안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안에 사람을 보내놨습니다. 다른 분들은.."

분명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같이 온다고 들었다. 대답 대신 우시지마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난폭한 걸음걸이였다. 따라 들어온 킨다이치가 눈짓을 하자 병사들은 모두 나갔다.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은 우시지마는 상에 놓인 지도를 훑어보며 말했다. 

"모두 끌고 오니 속도가 안나더군. 우선 나부터 왔다."

하긴 지금 필요한 건 지원군보다는 우시지마의 존재였다. 우시지마도 자신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급하게 온 것이리라. 킨다이치는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우시지마가 이토록 카게야마에게 지극정성인 이유를 떠올리곤 마음이 불편해졌다. 카게야마를 그의 나라로 데려가고 싶어하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우시지마는 처음부터 카게야마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우시지마의 능력은 필요했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이 나라를 떠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깨닫고 킨다이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지도를 살펴본 우시지마가 고개를 들었다.

"카게야마가 저 안에 있다면 지금 당장 가야겠다."
"....기다려주십시오. 우시지마님. 안쪽의 움직임이 수상하여서 잠시,"
"수상하다면 당연히 카게야마부터 먼저 데려와야하는 게 아닌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킨다이치는 뭐라고 다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조심해야했던 건 카게야마 때문이었다. 카게야마가 다칠 가능성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우시지마가 왔으니 그의 말대로 하는 게 옳았다. 킨다이치는 막사를 나와 외쳤다.

"출정이다. 사방에서 열을 맞춰 들어갈 것이다. 신호를 보내면, 공격해라."
"예!"

킨다이치는 카게야마가 무사히 먼저 빠져나왔기를 빌었다. 다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소식이 없으니 카게야마와 투입조가 만났을 것이다. 킨다이치는 병사들이 다시 무기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킨다이치의 원대로 카게야마는 병사들을 따라 몰래 오사와의 진영을 둘러 가고 있었다. 이곳의 사병들은 신기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1~3 : 비명
4~6 : 고함
7~9 : 불꽃 
0 :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파앙, 하고 터지는 소리에 카게야마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폭죽이었다. 이곳에서 일부러 폭죽을 터트릴 사람은 없다. 근처에 군이 왔다는 신호인가 싶어서 옆을 쳐다보면, 길을 안내하던 병사들도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적어도 카게야마가 나온 후에 움직일 줄 알았단 이야기였다.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생각하지 않아서 급하게 움직일 것 같진 않았다. 분명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자신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곤 걸음을 재촉했다.

"병사들이 오면 혼잡해질 테니 서둘러서..."

나가야한다고 말하려는 순간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젠가 느꼈던 공기의 울렁거림. 카게야마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꽃은 사라져있었다. 그러나 이 느낌은 분명 인위적인 온기였다. 

"불...?"

방금까지 카게야마가 머물렀던 곳에 불이 붙어 하늘까지 치솟고 있었다. 불이 난 것을 본 사야코가 놀라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불이다! 불! 소란스러운 외침도 잠시 후에 들렸다. 폭죽이 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불길을 보며 카게야마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왠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야코는 덜덜 떨고 있었다. 방을 나오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불 속에서 나오지 못했을 테니 놀랄만 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카게야마가 손을 내밀자 잠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폐하."
"...? 손을 잡아줄테니 일어나보거라."
"그게..."

카게야마가 손을 잡고 일어나게 하려고 해도 사야코는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지켜보던 병사 한 명이 급히 말했다. 

"발목을 접지른 것 같습니다." 
"뭐?"

카게야마가 놀라 사야코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치마 속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으나 사야코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절뚝거렸다. 급히 빠져나가야하는데도, 다리를 다쳐 짐이 된 꼴이라 사야코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카게야마조차도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병사에게 말했다.

"사야코를 업어줬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됩니다. 저는 그냥 여기 두면, 곧 장군께서 오실 테니까.."

사야코가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어서 가자. 그 말에 병사가 사야코에게 등을 내밀었다. 사야코는 하는 수 없이 병사의 등에 업혔다. 카게야마는 손에 쥔 단검의 검집을 빼어 바닥에 던졌다. 쉽게 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못할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이제 급히 뛰기 시작했다. 


1~3 : 반란군
4~6 : 횃불을 든 남자
7~9 : 도망치던 오사와 
0 : 킨다이치


군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들렸다. 정확히는 모르나, 카게야마의 생각대로 내부분열이 일어났다면 킨다이치가 그들을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일 것이다. 어느새 앞장서서 뛰어가던 카게야마는 달려오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발을 멈췄다. 구석까지 몰래 숨어들어온 이가 고개를 들었다. 번져가는 불길이 가리고 싶어하는 얼굴을 밝혔다. 카게야마는 희미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사와."
".....불....죽은 게 아니었나."

마치 죽기를 바랐다는 말투였다. 감추고 있던 욕망은 활활 타오르는 불빛에 추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포기를 못하는 오사와가 카게야마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오사와는 카게야마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곁에 선 병사들에게 말했다.

"죄인을 잡아라."
"죄인이라니, 내가 죄인이라면 내 딸도 같이 잡아가!"

오사와가 소리쳤다. 사야코는 병사의 등에 업힌 채 차마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야코를 대신해 카게야마가 말했다. 

"네 죄와 사야코는 상관없어."
"사야코는 내 딸이야!"
"그러나 사야코는 오사와 너처럼 나를 죽이고 싶어한 게 아니라, 나를 도왔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한 건 죄가 아니다. 더 이상의 죄책감도, 자책감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오사와를 눈앞에 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강해지기 위해선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필요할 뿐이다. 카게야마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오사와에게 말했다.

"나는 사야코를 자유롭게 해줄거야. 너와는 정 반대의 삶을 살도록 해줄 것이다."
"뭐, 뭐...!"

오사와는 기가 막혀 뒷걸음질쳤다. 그 순간


홀 : 남자
짝 : 킨다이치


"카게야마!"
"킨다이치!"

말을 타고 달려온 킨다이치가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를 찾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오사와를 붙잡기 위해 쫓아온 것이다. 오사와가 숨어들어온 방향에서 나온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발견하자마자 무척 안심한 얼굴을 했다. 카게야마 또한 킨다이치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뒤로 병사 몇몇이 따라왔다. 오사와는 반항을 하였으나, 젊은 병사들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포박된 오사와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숨을 헐떡였다. 확실히 긴장을 하긴 했었나보다. 오사와와 대화하는 동안 킨다이치가 달려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니. 병사들의 뒤로 우시지마의 모습이 설핏 보였다. 우시지마님도 와주셨어.. 카게야마는 사야코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카게야마! 킨다이치는 이번엔 다급히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번뜩이는 눈동자. 광기가 서린 얼굴.  카게야마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병사에게 업혔던 사야코가 비명을 질렀다. 


1~3 : 사야코
4~6 : 카게야마 
7~9 : 남자
0 : 


오이카와는 현재

홀 : 우시지마와 함께 있다 
짝 : 다른 곳에 있다


미처 근처까지 와서 노리고 있는 걸 알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였다. 긴 장검을 든 채로 달려오는 남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반짝이는 검날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는데도 아주 느리게 카게야마의 눈엔 그 빛이 보였다. 불을 낸 건 이 남자다. 카게야마는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신이 궁녀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마음이 없다.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남자는 카게야마를 죽여야만 만족할 것이다. 카게야마는 본능적으로 손에 쥔 단검을 휘둘렀다. 사야코가 병사의 등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남자를 막으려는 듯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계속 카게야마만을 노리고서, 방심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찔렀다.


1~9 : 실패
0 : 성공 
(오이카와 능력치 반영)


"....!"

카게야마는 비틀거렸다. 폐하! 땅바닥에 엎어진 사야코가 카게야마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병사들에 의해 남자는 제압당했다. 남자가 얻어맞으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죽였어! 내가!  그러나 남자의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머리를 잘못 맞아 그는 눈을 뒤집고 기절했다. 남자를 포박하는 사이 킨다이치가 구르듯 다가왔다. 자신보다 비틀거리는 킨다이치를 보고서 카게야마는 약간 웃었다. 킨다이치, 하고 부르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용하다. 머리가 멍하다. 가슴은 뜨거웠다. 카게야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길. 오사와의 욕망도, 남자의 살의도 모두 불타 사라졌다. 그러나 화끈거리는 고통은 꺼지지 않고 카게야마의 어깨를 태웠다. 

"카게야마..!!!!"

멀리서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카게야마는 어깨에서 짓누르고 있던 손을 뗐다. 바로 앞 지붕의 기와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조용했던 세상에서, 그 소리를 시작으로 갑자기 카게야마의 고막에 마구 몰아쳤다. 아...! 카게야마는 고통으로 입을 크게 벌렸다. 손으로 막고 있던 어깨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내려 옷을 적셨다.

"아..아..."
"카, 카게야마!"
"흐..ㅇ.."

아픈 어깨를 더듬던 손이 파르르 떨리다가 배를 감싸쥐었다. 조금 부풀어오른 배를 움켜쥐고서 눈물이 고인 얼굴을, 그 뜻을 킨다이치가 모를 리 없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킨다이치는 빠르게 말하고서 황급히 우시지마를 찾았다. 카게야마가 다치는 것을 보지 못했던 우시지마와 오이카와는, 창백한 카게야마를 발견하곤 동시에 신음했다.


1~9 : 치료
0 :
(우시지마 능력치 반영)


구하러 온다고 했어도 설마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들어안았다. 눕힐 곳이 필요하다고 하자 오이카와가 겉옷을 벗었다. 잔당을 모조리 잡아들이며 뒤를 지켰던 이와이즈미는 늦게 카게야마를 발견하고서 헉, 숨을 들이켰다.

오이카와의 겉옷 위에 누운 카게야마는 우시지마를 쳐다보았다. 감사의 인사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너무 아파 고통스러웠다. 우시지마를 보며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고통으로 벌어진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우시지마는 피가 멈추지 않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른 손은 카게야마의 뺨을 닦아주었다.

"..많이 아프겠군."
"ㅇ..우시지마님."
"아파하는 걸 보니 나도 괴롭구나."

눈물이 속눈썹에 달라붙어 시야가 흐렸다. 눈을 열심히 깜박이던 카게야마는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심한 상처라 우시지마의 능력으로도 단숨에 고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손바닥이 지나갈 수록 아픔이 더욱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결국 카게야마가 또다시 끅끅 울자 오이카와가 재빨리 물었다.

"지금 토비오쨩 치료하고 있는 거 맞아?"
"상처가 깊어 시간이 걸린다."
"치료하실 수는 있는 겁니까."

괴로워하는 카게야마를 지켜보던 킨다이치는 저도 모르게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우시지마는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자꾸만 우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손을 올린 우시지마가 말을 걸었다.

"기억나느냐. 카게야마."
"...윽..."
"예전에도 많이 아파해서, 내가 널 치료해줬지."

카게야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지마와의 첫만남은 결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시지마는 젖은 카게야마의 눈가 위에도 손을 올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너를 치료해주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나를 믿거라."

그 말이 무척 안심이 됐다. 우시지마의 손바닥 아래로 카게야마의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


쿠니미가 앉은 섭정궁은 조용했다. 킨다이치 쪽에서 연락이 왔을 때만 자신에게 알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할 만한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쿠니미는 그저 기다리며 조금씩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쿠니미 자신의 죽음은 많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카게야마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카게야마의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쿠니미는 무릎을 손으로 감쌌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말을 타고 나가 카게야마를 구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리를 버리지 않았다면 카게야마를 잡지 못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손에 쥔 걸 버려야만 했다.


쿠니미 아키라는 지금껏 당연히 카게야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놓아야한다고 생각해왔었다. 허나 지금 그의 계산들은 어그러져 되려 카게야마를 위협하고 있다.  카게야마.... 쿠니미는 조용한 궁 안에서 혼자 그 이름을 입에 불러보았다.


"...내가 어리석었어."


모든 걸 손에 쥐고서 마음대로 움직이려던 어린 치기. 자신감 안에는 목숨을 포기한 무모함도 분명 있었다. 죽으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일은 없었다.


"....카게야마. 내가 어리석었어."


쿠니미는 휘청거리다가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잔이 바닥으로 밀려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는 카게야마가 끌려간 뒤로 잠을 자지도 못했고 음식을 넘기지도 못했다. 초점없는 눈은 깨진 찻잔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줍자 날카로운 단면에 상처가 났다. 윽, 손을 떼고 손가락을 보자 종이에 베인 것처럼 가느다란 상처가 나있었다. 핏방울이 고여있는 손가락을 옷에 문질러 닦으며 쿠니미는 초조하게 생각했다.


카게야마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만약 자신과 카게야마가 함께 할 운명이라면 지금 이 상처가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까? 쿠니미 아키라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묶여있다고, 그렇게 말할 자신이 들지 않았다.


"제발.."


어느새 어린아이처럼 부들부들 떨며 쿠니미는 깨진 조각을 주웠다.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욕심내지 않을게."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쿠니미는 손바닥에 상처가 나는 것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


카게야마는 가물가물거리는 의식을 잡으려 애썼다. 상처가 나아가고 있는 건 느껴졌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갈 곳 잃은 상처의 고통들은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카게야마의 몸 안 깊숙한 곳까지 숨어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웬만하면 카게야마는 신음을 참으려 했다. 그러나 우시지마의 손이 다시 한 번 어깨를 누르자 참지 못하고 윽, 짧은 비명을 질렀다. 몸의 솜털까지 긴장하여 모조리 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 카게야마는 헐떡거리며 킨다이치를 불렀다. 어쩔 줄 모르고 서있던 킨다이치가 재빨리 카게야마에게로 다가왔다.


"왜, 무슨 일이야."

"너....빨리 가."


몇날 며칠을 쫓았던 죄인을 잡았다고는 해도 잔당이 남아있다. 게다가 불도 났다. 이곳은 아직 적진이었다.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들이라고 해도 킨다이치가 여기에 계속 남아있는 건 말이 안 됐다. 카게야마의 말을 알아들은 오이카와가 옆에서 혀를 찼다.


"토비오쨩. 많이 괜찮아졌나보네. 그럴 여유도 있고."

"...네가 다쳤는데 나보고 가라고?"


킨다이치의 대꾸를 들은 카게야마가 힘없이 웃었다.


"빨리 다 끝내고.."

"....."

"같이, 집에 가자."



킨다이치의 눈이 커졌다. 카게야마는 빨리, 빨리. 그렇게만 중얼거리다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다.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서있는 킨다이치의 어깨를 쳤다. 돌아보지 않는 킨다이치에게 이와이즈미가 격려하듯 말했다.


"카게야마 말이 맞아. 빨리 정리가 되는 게 우선이지."


어차피 킨다이치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카게야마를 치료하는 건 우시지마였고,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은, 나는.... 킨다이치는 고개를 들었다. 검을 든 이와이즈미가 보였다. 아오바죠사이의 검. 뛰어난 무사. 카게야마가 이와이즈미를 잘 따랐던 것을 킨다이치는 기억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짧은 시간 동안 옛기억을 훑었다. 그러나 킨다이치의 기억 속에서 카게야마가 이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카게야마는, 수많은 전장을 겪었지만 한 번도 궁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이 없었고."


또한, 말을 하는 킨다이치의 목이 잠겼다. 


"한 번도 궁을 집이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

"...카게야마를 부탁드립니다."


지켜달라는 부탁 한마디가 간절했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가, 곧 등을 돌려 달려갔다. 



"우시와카쨩. 토비오쨩은 괜찮아?"


오이카와가 다가와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보았다. 차갑고 맥이 약했다. 우시지마를 쳐다보자 우시지마 또한 집중하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진 않은데."

"아이가 있어서 빨리 치료할 수가 없군."


카게야마의 몸 안에 든 두 아이의 생명은, 모체의 위험을 느끼고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다. 한 몸 안에 여러가지 기운이 섞여 우시지마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겨우 피를 멎게 했어도 평소보단 오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땀에 젖은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보았다. 눈물로 젖은 눈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마에서 땀이 흘러 카게야마의 뺨으로 떨어졌다. 꽤 힘든데 나를 봐주지 않다니 아쉽군. 우시지마는 묵묵히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


조용한 세상 속에 아버지가 서있다.




몸을 웅크린 카게야마는 아주 작은 아이였다. 어린 카게야마의 앞에는 아버지가 서있었다. 간절히 아들을 바랐으나 태어난 건 딸. 하지만 뛰어낸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사내아이로 키웠다. 카게야마는 이상한 기분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오래전 땅에 묻힌 얼굴은, 이상하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윤곽만이 흐릿하게 보였다. 


"카게야마."


왕이 말했다.


"키타가와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말했느냐."

"..강해져야한다고."

"그런데 왕자는 왜 도망치려고 했지?"

"저는,"

"키타가와가 싫었구나."


숨이 턱 막혔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싫지 않습니다.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다른 사람을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왕이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다.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 안위가 가장 중요한거구나. 도망을 치면서까지."

"..도망치, 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셈이지."


무서워. 아바마마가 무서워. 카게야마는 눈물이 났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면 손에 활이 있었다. 악몽의 시작은 늘 이랬다. 카게야마는 아버지를 상대하고, 그 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카게야마 또한 지켜야할 것이 생겼다. 화살을 쏘는 대신 카게야마는 땅바닥에 활을 내려놓았다. 앞에 선 아버지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에 거역했다. 활을 쏘는 대신 카게야마는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공포로 온 몸이 짓눌러 찟겨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피하고 싶지 않다. 더이상 도망갈 생각도 없었다. 


"아바마마."


활을 놓고 다가가 가까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당황한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다시 그를 불렀다. 아바바마.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것. 그리고,


병풍 뒤의.


"아바바마가 잘못하셨어요."

"....."

"많이 잘못하신겁니다."


카게야마는 아버지를 지나쳐 병풍을 걷었다. 그러면 그 뒤엔 쓰러져있는 쿠니미가 있었다.  언젠가처럼 창백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그 무력한 소년을 보며 카게야마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쿠니미."

"..카게야마."

"...나 이번엔 들었어... 이번에는 들렸어."


쿠니미의 손이 카게야마를 향했다. 그런 쿠니미를 끌어안고 카게야마는 통곡했다.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그 날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버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매번 꿈에서 쿠니미를 쏘며 카게야마는 이 악몽을 끝나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빌었다. 하지만 끝낼 수 있는 건 오직 카게야마 뿐이었다. 쿠니미의 손이 카게야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찾아줘서 고마워."

"으흡, 흑, 쿠, 쿠니미, 쿠니미..."

"네가 없는 동안, 너무 무서웠어."


아이들이 울었다. 아무 말 없이 서있던 아버지는 카게야마를 힐끔 보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놓인 활을 보고 멈칫했다가, 그 활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서 왕이 사라졌다.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끌어안은 채 눈을 떴다.





"폐하. 정신이 드세요?"


물수건을 올려주던 사야코가 깜짝 놀라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막사 안이었다. 온 몸은 얻어맞은 것처럼 욱씬욱씬 아팠고 입과 목이 말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카게야마의 불편함을 알아차린 사야코가 얼른 물그릇을 입에 대어주었다.


물이 달았다. 한그릇을 모두 마신 카게야마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사야코는 카게야마가 궁금해하는 걸 알아차렸다. 영민한 여자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제 아버지..는 포박하여 가두고, 나머지 잔당들도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오사와가 후쿠로다니로 망명을 갈 생각으로 연락하던 모든 기록들도 가져왔다고 했다. 후쿠로다니 쪽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있으나, 그쪽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와 곤란한 눈치라고 했다. 카게야마의 생각대로 오사와와 사병들 사이에는 균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킨다이치가 들어오자마자 투항하는 병사들도 있었다고 했다. 사야코는 쓰게 웃었다.


"아버지가 후쿠로다니로 간다면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정해지니 그런 거겠죠."


자신의 보신만을 생각한 오사와의 태도가 밑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리 없었다. 오사와의 명에 따라 국경까지 왔으나, 비로소 오사와를 따를 의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제 밑의 사람들을 편할대로 부렸던 오사와지만 마지막엔 실패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손으로 어깨를 만져보았다. 구멍이 뚫렸던 어깨는 신기하게도 나아있었다. 다른 손으로 배를 만지자 사야코가 얼른 말했다.


"아기님들도 모두 무사하시다고 하십니다."

".....다행이다."

"...폐하?"

"나가봐야겠어."


카게야마는 사야코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으나, 카게야마의 눈엔 오직 눈부신 일출이 보였다. 밤이 지나갔다. 새 하늘에는 해가 뜨고 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푸르스름한 하늘을 가르고 올라오는 찬란한 태양.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멀리서 카게야마를 발견한 킨다이치가 카게야마, 하고 부르며 달려왔다.




29일 끝 

30일 시작

'HQ/카게른 > 폐왕의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2. 3월 31일 完  (24) 2016.10.03
101. 3월 30일  (0) 2016.09.26
99. 3월 29일  (0) 2016.08.29
98. 3월 38일  (8) 2016.08.07
97. 3월 27일  (4) 201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