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쿠니미가 또 찾아와 피곤한 자신을 지켜보는 꿈이었다. 봄날의 밤은 선선했고 꿈 속에서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안아주었다. 토비오... 그렇게 부르는 이름을 들은 것도 같았다. 카게야마는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등 뒤에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빼꼼 뒤로 돌렸다.
홀 : 안녕
짝 : ....
"안녕."
쿠니미는 나른하게 눈을 뜨고서 카게야마에게 인사했다. 꿈이 아니었구나. 카게야마는 얼떨떨하게 쿠니미를 쳐다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여기서 뭐해."
"얼굴만 보려고 가려고 했는데, 잡은 건 너야."
쿠니미의 눈이 가까이 다가왔다. 입을 맞추려나 싶어 카게야마는 그대로 굳었지만, 쿠니미는 손을 뻗어 어깨를 잡아당길 뿐이었다. 아.. 고집스럽게 돌리고 있던 등이 침상으로 뚝 떨어졌다. 쿠니미는 웃으며 카게야마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순식간에 쿠니미의 아래에 눕게 된 카게야마는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한 번도 돌아봐주질 않더라."
"뭐?"
"계속 등만 봤어."
그러니까 얼굴 보게 해줘. 쿠니미의 아래에서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눈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분명 처음엔 잠이 덜 깬 목소리였는데, 가까워질 수록 눈동자는 또렷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쿠니미의 시선이, 어젯밤처럼 느껴졌다. 꿈이 아니었어... 카게야마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쿠니미의 숨소리 또한 들렸다. 호흡이 섞였다. 뜨거운 숨결. 정말 뜨거운,
입술이 천천히 닿았다.
쿠니미가 가르쳐주었던 정사와 입맞춤은 대부분 고통스러운 것들이었다. 좋은 만큼 아파서 눈물이 났다. 쿠니미는 그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들을 핥아주었다. 쿠니미는 원래 자신을 울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부드럽고 간절한 입술을 느끼며 비로소 그것을 떠올렸다.
아프지 않았다. 꽃잎처럼 가볍게 닿았다가, 허락을 구하며 잠시 머물고, 카게야마가 입술을 벌리고 나서는 따뜻하게 입 안을 헤맨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허덕이는 쿠니미의 혀를 잡아 카게야마는 먼저 부딪혔다. 목을 끌어안자 피하는 듯 하다가도, 힘을 주어 당기면 카게야마의 깊은 속까지 벌리고 들어온다.
"읍..."
잔뜩 눌리는 신음소리가 카게야마의 코와 입에서 튀어나왔다. 흐응, 응, 쿠니미를 따라가던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자신의 어깨를 잡는 순간 눈을 떴다. 회색이 도는 흑갈색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쳐다보다가 깜짝 놀란다. 그래도 시선은 떼지 않았다.
홀 : 눈을 감는다
짝 : 왕왕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눈속에서 무언가 녹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평온해보였으나, 가까이에서 본 쿠니미의 눈은 깊고 깊어서 속이 마치 안에 텅 빈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무언가 차오른다, 찰나의 감정. 잔뜩 고여서 녹아내리는 쿠니미의 눈동자... 쿠니미는 입술을 뗐다. 카게야마는 손을 뻗어 쿠니미의 뺨을 만져봤다. 뜨거워..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다시 입술을 내밀기도 전에,
왕왕!
열린 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네코가 왕왕 짖었다. 정적이 깨졌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쿠니미의 얼굴을 확인했으나, 흘러넘칠 것 같던 눈동자는 사라져있었다.
"일어나야겠다."
"...상궁이 보면 놀랄 텐데."
"아까 들어왔을 때 말했어."
"뭐?"
쿠니미는 벌떡 일어났다. 몸을 덮었던 이불도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추워. 카게야마는 왠지 화가 나 투덜거렸다. 그러나 쿠니미는 선선히 웃었다.
"이불이라면 계속 덮어줄게."
"....?"
"좀 더 잘거야?"
1~3 : 그래
4~6 : 글쎄
7~9 : 자지 않으면
0 : 너는
"...그래."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려주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의 손은 가슴 부근을 두어번 토닥여주었다가, 입술로 올라왔다. 젖은 입술을 만지며 쿠니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왜?"
쿠니미는 손을 거둬갔다. 카게야마는 왜, 냐고 물었지만 무엇에 대한 질문인지는 자신조차 몰랐다. 멀어져가는 쿠니미의 손을 카게야마는 쳐다보았다.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으면 편하게 잘 수 있을 거야."
"....?"
"잘 자. 카게야마."
쿠니미는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려는 듯 보였으나 그러지 않았다. 조금씩 끄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문이 닫혔다. 네코가 헥헥거리다가 카게야마의 침상 아래에서 털썩 앉았다.
몸을 몇 번이나 뒤척였지만 이번엔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쿠니미 아키라
○: 84 (+3)
◇: 64 (+1)
카게야마 토비오
□: 69 (+3)
1~9 : 궁 안
0 : 궁 밖
홀 : 단패궁
짝 :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히 그랬는데 눈을 뜨면 늦은 아침이었다. 카게야마는 멍하니 일어나 궁녀들을 따라가 몸을 씻고, 또 입을 벌린 채 식사를 받아먹었다. 중간에 한 번 깼다가 얕은 잠을 자서 그런지 머릿속이 나른했다. 받아먹다 말고서 카게야마는 괜히 민망해 콜록, 기침을 했다. 곁에 서있던 궁녀가 얼른 입가를 닦아주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24일입니다."
"그렇군."
카게야마는 내일이 쿠니미의 생일이라는 걸 알았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자신을 놀라게 한 쿠니미에게, 전에 생각했던 대로 킨다이치가 오면 선물을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1~3 : 산책
4~6 : 섭정궁
7~9 : 손님
0 : 쿠니미
크게 하품을 한 카게야마는 고개를 몇 번 저었다. 궁 안에만 있다면 계속 잠이나 자게 될 것 같았다. 나가려고 하는 카게야마에게 상궁이 기함을 했다.
"마마. 오늘은 궁에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왜?"
"사신들이 도착해 궁을 돌아다닌다고 하니, 괜히 마주치면 마마께서 피곤하시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나중엔 만나게 될 텐데."
"그래도요."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 상궁의 말을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잠시 궁의 정원이나 걷겠다고 말한 후 카게야마는 천천히 나왔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 물에 젖어있는 것처럼 눅눅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궁녀들은 정원을 걷는 카게야마를 눈으로 따라다녔다. 역시 답답했다. 카게야마는 힐끔 궁녀들을 보았다. 사신이 궁에 돌아다닌다면, 잘 피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의 귀는 사람들을 피할 자신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슬그머니 단패궁 안쪽을 바라보았다. 상궁은 네코와 카라스의 뒤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홀 : 궁녀들과
짝 : 몰래
궁녀들은 카게야마가 얌전히 정원을 기웃거리자 서서히 눈을 돌렸다. 그 틈을 타 카게야마는 살금살금 문을 향해 걸어갔다. 입에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리를 비우면 걱정할테니, 시위에게 말하고 섭정궁에나 가보자.
오랜만에 제멋대로 굴기로 마음 먹은 카게야마는 문을 열었다. 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아주 작았다. 궁녀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다. 문앞에 서있던 시위들만이 놀라서 무어라고 말하려했다. 카게야마는 쉿, 하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섭정궁에 긴히 전할 말이 있으니 얼른 다녀오겠다."
"단패궁 마마, 하지만..!"
"소란떨지 말고."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궁 쪽을 쳐다보고는 시위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였다. 그러나 시위들은 껄끄러운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따라오겠다는 걸 화를 내서 말린 카게야마는 모처럼 자유롭게 단패궁을 나왔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피해가며 카게야마는 제법 요령있게 걸어갔다. 발자국소리들을 피하기란 카게야마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킥킥 웃으며 카게야마는 섭정궁을 향했다. 그다지 산뜻하지 못한 습한 바람도, 오랜만에 홀로 나오니 그저 좋았다.
1~3 : (걸음을 멈춘다)
4~6 : 단패궁 마마
7~9 : .....
0 : 카게야마..
1. 우시지마 와카토시
2. 오이카와 토오루
3. 이와이즈미 하지메
4. 히나타 쇼요
5. 츠키시마 케이
6. 쿠로오 테츠로
7. 코즈메 켄마
8,9,0. 리레주 지정
카게야마는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얼른 오이카와에게 인사를 한다.
"오이카와님을 뵙습니다."
"....."
"오이카와님?"
얼굴 들어봐. 오이카와가 짤막하게 말했다. 카게야마는 순순히 고개를 들었다. 왠지 평소보다 더 복잡한 얼굴을 한 오이카와는, 웃음도 거둬져 있었다. 갑자기 나를 만나 싫으신 걸까.. 카게야마는 기가 죽어 오이카와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보기 좋아보이네. 살도 좀 찐 것 같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다가와 볼을 잡아당겼다. 으으...볼을 쭉쭉 늘리는 흰 손가락이 아팠다. 카게야마는 눈물이 살짝 고인 얼굴로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오랜만에 보는 오이카와는 또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토비오쨩. 어딜가?"
카게야마는 아픈 볼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섭정궁에 갑니다."
"흐음.."
오이카와의 표정은 여전히 못마땅했다. 저, 그럼.. 카게야마는 슬며시 발을 뗐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혀를 차며 카게야마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토비오쨩은 오이카와씨랑은 말 섞기도 싫어요?"
"아..아닙니다!"
"그렇게나 오이카와씨 아기를 가지라고 했는데, 말도 안 듣고.."
"....."
"아니. 이젠 이런 말 할 때가 아니지."
오이카와는 팔짱을 낀 채로 카게야마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홀 : 오이카와님?
짝 : ....토비오쨩은
"....토비오쨩은.."
오이카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실제로도 아무것도 모르는 카게야마 토비오를 쳐다보았다. 말해줘야할까. 그 건방진 섭정쨩의 계획을 미리 카게야마에게 알려준다면 바로 달려가 무슨 짓이냐고 따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속이 후련할까? 오이카와는 자신을 바라보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 위로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것을 쓰다듬고 있으면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얌전히 쓰다듬을 받는 카게야마는 쓰다듬어주는 이 손이 카게야마의 목을 조를 생각도 했다는 걸 평생 모를 것이다. 골치아픈 섭정의 제안도, 키타가와의 일도, 손 안의 카게야마만 없어진다면 손쉽게 풀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태평하네."
오이카와는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이카와님. 제가 뭘 모르나요?"
"글쎄."
"....오이카와님?"
"궁금해?"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느려도 이상한 건 느꼈는지 재차 묻는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말해주면 오이카와씨한테 뭘 해줄래?"
"....?"
카게야마는 진지해진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홀 : 오이카와님은
짝 : 저한테
"...?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응?"
"저한테 말하면 곤란한 일이 있는 건가요?"
카게야마는 잠시 생각해보곤 스스로 답을 내렸다. 답지 않게도 꽤나 영민한 대답이었다. 오이카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그렇게 생각해?"
"뭘 드릴거라고 해도 오이카와님께선 전부 다 가지고 계시잖아요. 제가 해드릴만한게 생각나지 않아요."
"....."
"그러니까.. 사실은 원하시는 게 없어서, 그런 말씀을 쉽게 하시는 거죠?"
순진한 목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피식 웃었다.
"전부 다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욕심이 없다고 생각해?"
"예?"
"만약 오이카와씨가.."
"....."
널 원한다고 한다면. 복잡한 계산 따윈 다 버려둘테니 날 따라오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래? 문득 든 생각이었다. 바보같았다. 오이카와는 머리를 젓고서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토비오쨩 치곤 제법 똑똑한 대답이었어."
"....?"
"과정은 전부 다 틀렸지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잡았다. 뜨거운 손길에 카게야마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오이카와님, 저.. 카게야마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토비오쨩."
"..예."
"오이카와씨가, 뭐 하나 알려줄까?"
뭘...하고 묻는 사이 오이카와의 입술이 귀에 닿았다. 움찔 가슴이 튀었다. 카게야마는 간지러워 고개를 저었다. 읏, 오이카와님..! 그러나 오이카와는 아랑곳 않고 카게야마의 귀 옆에서 간지럽게 숨을 내쉬었다.
1~3 : ..장난이야
4~6 : 섭정궁에 가면
7~9 : 사랑은
0 : 만약
섭정궁에 가면, 섭정에게 물어볼래?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그 뻔뻔한 섭정은 토비오쨩에게 어떻게 반응하려나. 당황할 얼굴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네 마음대로 날뛰게 두진 않는다고 했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카게야마가 지나치게 떨고 있었다.
"..왜. 오이카와씨가 또 뭔가 할까봐 그래?"
"....."
"하긴 오이카와씨가 만질 때마다 토비오쨩, 늘 기대하는 얼굴이었지."
"절대 아닙..!"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뿌리치려다가 비틀거렸다. 넘어질뻔한 카게야마를 오이카와의 손이 잽싸게 잡아당겼다. 눈을 동그랗게 뜬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심 좀 해."
"읏..! 갑자기 오이카와님께서..!"
카게야마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곤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태연해보여도 오이카와가 만질때마다, 조금씩 움찔거렸다.
"....장난이야.
"...!"
"..평소같은."
깨끗하던 카게야마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정말 오이카와님은 장난이 심하시네요. 흔들리는 목소리엔 어떤 서러움같은 것도 끼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등을 돌렸다.
오이카와는 잡지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
○: 61
◇: 42 (+1)
카게야마 토비오
□: 48 (-3)
카게야마는 섭정궁까지 서둘러 걸었다. 오이카와가 자신의 어깨를 잡았을 때, 카게야마는 다른 것보다 뱃속의 아기를 떠올렸다. 혼자 다녀선 안된다던 상궁의 말도 떠올랐다. 오이카와의 앞에서 자신은 무력했고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무서웠으나 한 번도 이렇게 몸을 떨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배를 쓰다듬어보며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놀랐잖아."
괜히 아기를 탓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카게야마는 섭정궁에 도착했다. 시위들이 카게야마를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는 쉿, 조용히 하게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킨다이치가 있을 때엔 그나마 온기가 느껴지던 궁은 보는 것만으로도 쓸쓸했다.
1~9 : 몰래
0 : 궁녀가
(단패궁에서의 짝 : 몰래 와 이어진 선택지입니다)
궁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어쩔 줄 몰라하는 시위들을 힐끔 바라보곤 섭정궁으로 들어갔다. 말하지 않고 찾아왔으니 얼굴을 보면 놀랄 것이다. 카게야마는 어제도 반가워하던 쿠니미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에 자신에게 이불을 덮어주던 쿠니미도 생각했다. 최근의 쿠니미는 이상하게도 다정하다.
카게야마는 배를 한 번 더듬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를 만지던 쿠니미는, 오늘도 또 그렇게 만져줄까. 섭정궁으로 들어가는 문을 카게야마는 손수 열었다. 안에는
홀 : 킨다이치의 편지
짝 : ..편지
안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기척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쿠니미는 어디에 있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카게야마는 눈에 띄는 서신을 발견했다. 고운 종이는 몇 번을 풀고서 계속 읽어본 듯 접어둔 부분이 닳아 있었다. 그런 것이 몇 장이 되었다. 밖에 찍힌 킨다이치의 문장이 아니었다면 카게야마가 함부로 열어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카게야마는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집어들었다. 펼쳐보면 킨다이치의 글씨였다. 무뚝뚝하게 보고하는 내용은 킨다이치의 말투같기도 해서, 카게야마는 읽으며 조금 웃었다. 다음장을 넘기면 또 쿠니미와 카게야마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제 걱정이나 하지.."
카게야마는 투덜거리면서도 서신을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홀 : 언제
짝 : 오사와
몇 장 되지 않았기에, 카게야마는 곧 가장 최근에 도착한 서신을 읽을 수 있었다. 오사와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언제쯤 돌아갈 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번달 말까지는 되도록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직도 오사와를 잡지 못했나.... 카게야마는 약간의 불길함을 느꼈다. 뒷장을 넘겨보니
홀 : 카게야마
짝 : 소문
...오사와가 그 딸을 데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쿠니미. 여식에게 죄를 물을 생각은 없지만 살려둘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을 든 손은 무거운 바위를 든 것 마냥 힘이 쭉 빠졌다. 사야코는 내게 도망간다고 말하였는데... 카게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신을 있던 곳으로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면 언제 왔는지 쿠니미가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가, 카게야마의 손 아래에 있는 서신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까지 읽었어?"
"전부 다."
"....."
쿠니미는 한숨을 쉬었다.
"사야코의 이야기를 왜 내게 하지 않았어."
"네가 걱정할 테니까."
"...."
"네가 걱정하는 것도 싫었고."
다가온 쿠니미는 서신들을 그러모아 서랍에 집어넣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보이는 카게야마를 외면한 채 쿠니미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까지 카게야마를 혼자 오게 한 단패궁의 궁녀들도, 카게야마가 왔음에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섭정궁의 궁녀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카게야마가 오사와 사야코의 일을 알았다는 것이었다.
"쿠니미."
섭정이라고 부르던 카게야마가 쿠니미라고 이름을 불러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쿠니미는 당장에라도 궁녀들을 모으고 싶었던 걸 참고서 응, 하고 대답했다.
"말해야할 게 있어."
"...뭔데?"
"사야코가 날 찾아온 적이 있어."
"알아."
단패궁에 걸음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걸 쿠니미는 알고 있었다. 쿠니미의 대답을 들은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 지는 모르잖아."
"....."
"앉아봐."
카게야마는 의자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하는 수 없이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앉는 걸 따라 앉았다.
카게야마는 알 수 있었다. 쿠니미는 짜증이 난 상태였다. 가만히 쳐다보자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눈이 마주치면 습관처럼 웃는다. 아침에 보았던 나른한 얼굴이었다. 안녕, 언제나 그래왔단 것처럼 쿠니미는 부드럽게 인사했었다.
홀 : 이리 와봐
짝 : 사야코는
"사야코는.."
홀린 듯 쿠니미를 쳐다보았다가, 왠지 부끄러워져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쿠니미는 카게야마 쪽으로 얼굴을 숙였다.
"앉아보라며 얼굴도 안 보고 얘기해?"
"...그러니까..사야코는."
"나 봐."
"....."
"그러면 들을게."
날카로웠던 반응이 조금 누그러든 것 같았다. 나 봐.. 쿠니미가 조르듯 다시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눈을 들면 쿠니미의 눈이 보였다. 모든 게 온통 권태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이 마주치면 번뜩였다. 카게야마는 지기 싫어져 쿠니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 쿠니미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데."
홀 : 오사와는
짝 : 다른 나라로
"오사와는 사야코를 좋아하지 않아."
"....."
"사야코 역시 마찬가지고."
"핏줄은 어쩔 수 없어."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보며 말했다.
"너도 선왕을 끝까지 미워하진 못했잖아."
"....나는.."
"사야코에게 오사와를 배신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나는 못할 거라고 봐."
카게야마는 오사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며 팔을 보여주던 사야코를 떠올렸다. 가느다란 팔엔 남자의 손자국을 따라 멍이 나 있었다. 오래 전의 흉터같은 것도 보였다. 그 집에서 사야코는 아버지와 함께 죽은 것처럼 살고 있었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사야코는 오사와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어. 원해서 함께 있는 게 아니야."
"...."
"그리고 나도,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
"그땐.."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을 숙이면 쿠니미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땐, 아버지께서 잘못하셨다고 말할 거야."
"카게야마."
"선왕은 너와, 나와, 킨다이치에게 잘못하셨어."
하지만 나는 그래서 너를 붙잡을 수 있었다. 다시 그 순간이 오더라도 아마 자신은 똑같이 할 것이다. 담담히 말하는 카게야마에게 쿠니미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손을 잡아주었다. 살짝 떨리는 손을 잡고 만지며 쿠니미는 입을 달싹였다.
홀 : 오사와 사야코의
짝 : 선왕의
카게야마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좋을 건 없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보며 말했다.
"오사와 사야코의 일은 생각해볼게."
"정말?"
"다만 너와 그런 말을 하였다는 증표가 필요한데.."
"...모르겠어."
"그런 건 만들면 돼."
뻔뻔한 목소리로 쿠니미는 말했다.
"저 정도의 죄인의 딸을 살려주는 전례는 없었어."
"....그렇지만.."
"너의 부탁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생색내기는."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쿠니미가 키득거렸다.
"생색내야 돼. 아주 많이 낼거야."
"뭐야."
"그래야 네가 날 더 많이 생각해 줄 테니까."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들고서 부드러운 손바닥 안에 입을 맞췄다. 카게야마는 그런 쿠니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요즘..정말 친절해."
"....그런가."
손바닥에 다시 한 번 입술이 닿았다. 손금의 잔주름까지 구석구석 입을 맞추며 한참을 있었다.
쿠니미 아키라
○: 87 (+5)
◇: 65 (+1)
카게야마 토비오
□: 7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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