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지에 내리는 소리가 처음엔 컸다가, 점점 둔탁해져 쌓여가기만 한다. 카게야마는 세수하듯 얼굴을 비비고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이미 귀로 알고 있는 풍경과 눈으로 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은 흰 세상이 그 곳에 있었다.
"어제 따뜻하더니 오늘 눈이 내려 신기하군."
카게야마는 옷을 입으며 말했다. 옷의 끈을 당겨주던 궁녀가 조심스레 말을 받았다.
"아직 겨울임을 잊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어제보다 확실히 춥구나."
"마마. 덧신을 신으시지요. 발이 시리실 겁니다."
궁녀의 말을 따라 카게야마는 한층 더 두껍게 옷을 입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안될 말씀이십니다."
동궁에 가겠다는 카게야마의 말에 상궁은 고개를 저었다.
"벌써 동궁에만 몇 번을 가셨습니까. 마마. 다른 궁도 가심이 옳습니다."
"..인사를."
"마마?"
"몸이 나았으니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
"...."
"그 것 뿐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
다른 궁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상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그 사이 눈을 치워놓은 길을 따라 동궁을 향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이 내릴 만한 하얀 하늘이었다. 숨을 뱉자 입김이 몽글몽글 솟았다. 코를 훌쩍이고는 발을 재촉했다.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무거운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려서일까.
"우시지마님을 뵙습니다."
동궁에 도착해 인사하자 우시지마는 따뜻하게 데워놓은 자리로 오게 했다. 양 손을 내밀기에 카게야마도 손을 내밀었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손을 쥐고서 꾹 잡았다. 뜨겁고 커다란 손 안에서 카게야마의 손이 녹았다.
"밖이 몹시 추운 모양이군. 왜 망토를 입지 않았느냐."
"여기서 더 이상 걸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장 안의 진주처럼 숨겨두었다."
차디 찬 아침을 걸어온 카게야마는 진주같이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홀 : 몸은
짝 : 오늘 밤은
"몸은 괜찮느냐."
"우시지마님 덕분에 좋습니다."
"어제는 아프지 않으면 오지 않겠다고 네가 말하였다."
카게야마는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웃었다. 우시지마는 그가 웃는 모양을 눈으로 따라갔다.
"마음이 변했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변하는 마음이구나."
"그래서 제가 온 것이 귀찮으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앙큼한 여자다. 나를 자주 떠보는군."
그런 적 없습니다, 카게야마는 얼른 대꾸했지만 우시지마는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채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따뜻하게 데워놓은 자리와 뜨거운 손 덕에 카게야마는 온 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홀 : 옷을 벗어야겠다
짝 : 좀 참자
숨이 막힐 듯이 입은 겉옷을 잠시 벗을까 했지만 곧 떠날 곳이니 번거롭게 굴고 싶지 않았다. 옷을 입고 벗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뜨거운 물에 잠긴 듯 몸을 늘어트렸다. 카게야마가 답답해한다는 것을 눈치 챈 우시지마가 궁녀를 부를지 물었다.
"겉에 입은 옷은 벗고 있는 게 편하지 않겠나."
1~3 : 곧 갈 것입니다
4~6 : 귀찮습니다
7~9 : 괜찮습니다
0 : 부끄럽습니다
"..귀찮습니다."
"귀찮다고?"
"어차피 또 벗으면 입을 것인데. 입으면 가서 또 벗을 것이구요."
우시지마는 땀이 송글하게 맺힌 카게야마의 이마를 보았다. 방금의 말이 얼마나 자극적으로 들리는 지 이 여자는 알지 못할 것이다. 혹시라도 카게야마가 올까 싶어 뜨겁게 난방을 해놓은 궁은 얇은 옷을 걸친 우시지마에게도 더운 감이 있었다. 겹겹 옷을 입은 카게야마에게는 무척 더울 것이었다. 모두 벗게 하고 싶었고, 우시지마는 그럴 수 있었다.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었으나 우시지마는 우선 참는 쪽을 골랐다.
"나가겠느냐."
"..? 이만 물러갈까요?"
"데려다주마. 이 궁은 네게 너무 덥구나."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손을 놓지 않고 동궁을 나왔다. 잠시 그친 눈이 또 내리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손을 잡은 채로 카게야마는 옆에서 조심스레 걸었다. 궁녀들이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눈이 오는 날은 운치가 있지."
"아름답습니다."
"추운 날 오기 번거롭지 않느냐. 내가 찾아갈까."
"다른 분들께서 흉을 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 쓸 것 없다. 네가 선택하지 않으면 얼굴을 볼 수도 없는 자들이다."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로소 왜 마음이 무거웠는 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단패를 뽑는 밤입니다."
"그랬나."
"..이름을 보고 뽑진 못합니다."
이상하게 앞선 변명이 나왔다. 카게야마의 서툰 말에도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말없이 눈길을 걸었다. 단패궁에 도착하기 전 우시지마의 입이 열렸다.
"알고 있다."
"...."
"...다음에는 내가 널 데려다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시지마님?"
"품에 들어온 여인을 제 집까지 무사히 돌려보냈다. 오늘 한 번으로 족하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말이 어려워 되물었다.
"저를 데려다주시며 귀찮으셨습니까?"
".....설마."
우시지마는 쓴웃음을 짓고는 카게야마의 손을 놓아주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30 (+2)
◇: 14 (+1)
카게야마 토비오
□: 19 (+2)
*
우시지마의 손을 잡고 온 단패궁은 묘한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카게야마가 안으로 들자 궁녀들이 서둘러 그를 맞이했다.
"마마. 오늘은 단패를 뽑으시는 날이십니다. 안으로 들어가 준비를 하시지요."
"...벌써?"
"다시 목욕을 하시고, 치장을 하셔야 합니다."
"...."
카게야마는 조금 못마땅해졌다.
홀 : 그렇지만
짝 : ....
"저번 날에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날 괴롭히더니, 이젠 너희가 밥도 못 먹게 하는구나."
"아닙니다. 마마. 다만 치장을 일찍 하시는 것이 훨씬 아름다우실테니.."
"필요없다.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으니 너희 할 일부터 해놓거라."
"마마!"
카게야마는 후원으로 나왔다. 도망칠 생각은 없었지만,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1 : 쿠니미
2 : 킨다이치
3 : 우시지마
4 : 오이카와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7 : 츠키시마
8 : 쿠로오
9 : 코즈메
0 :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와 만나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카게야마는 텅 빈 후원을 홀로 걸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멀리서 보이는 궁들의 불이 켜졌다. 순간 심장에 서늘한 것이 닿았다. 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억지로 자신과 잠자리를 한다면 그것도 고역일 것이다.
"....."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며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궁녀들은 손을 길게 뻗어 그를 잡았다.
"옥색 옷을 입으시면 잘 어울리실 겁니다."
"옥색은 나이가 들어보이니 이 노란 옷은 어떠십니까."
"마마의 눈동자색과 같은 청색 옷을 입으시지요."
궁녀들은 카게야마의 몸을 꾸미며 종알거렸다. 향유를 바른 몸은 매끄럽고 좋은 향기가 났지만, 카게야마는 딱딱하게 굳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지난 밤은 이와이즈미에게 부탁하여 남녀 간의 일을 겨우 알았다. 부끄러웠으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오늘 잘 모르는 이와 밤을 보내게 된다면. 아니, 너무나 잘 아는 이들과 밤을 보내게 될지도.
"마마."
상궁이 단패를 들고 왔다.
"고르셔야합니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고 손을 내밀었다.
1 : [오이카와 ]
2 : [우시지마 ]
3 : [츠키시마 ]
4 : [쿠니미 ]
5 : [이와이즈미]
6 : [히나타 ]
7 : [쿠로오 ]
8 : [킨다이치]
9 : [코즈메 ]
0 : 리레주의 지정으로
카게야마는 패를 뒤집었다.
"...이와이즈미님..?"
겹쳐진 우연에 놀라기보단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상궁은 심각한 얼굴로 이름을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분명 모두 똑같은 패인데, 이와이즈미님만 두 번을 잡으셨으니.."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다른 분들께서 혹 오해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손이 우연을 따랐는데 어쩌겠느냐."
상궁은 복잡한 얼굴로 패를 쥐고 서궁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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