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시마 유우지는 느슨한 남자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그 예로 엄격했던 조젠지 구미는 그가 두목이 되고 나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야쿠자들의 소모적인 영역 다툼엔 절대로 끼는 법이 없었다. 대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것이 타 구미의 분쟁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흥미만으로 살아가는 남자. 시라토리자 구미의 강직한 우시지마는 그를 두고 저속하단 평을 내렸다. 하지만 테루시마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꽤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테루시마가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은 원래 그런 남자이니까. 라고 한 수 접고 들어가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테루시마가 제 구역에 스스로 가게를 차리고 문신을 하러 나섰단 이야기를 듣고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멋있어 보인다며 귀를 뚫었다가, 귀만 뚫으니 계집애처럼 보인다고 다음날 혀 안에 피어싱을 박아버리는 남자다. 뜬금없지만 그럴 만 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늦네. 테루시마는 중얼거리며 따뜻하게 데운 코코아를 마셨다. 그는 이 가게에 하루 종일 매달려있을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쓸모 있고, 쓸모없는 구미의 일들을 가려내어서 처리한 후에 취미로 예약 손님을 받는다. 손님을 정하는 기준은 테루시마의 변덕이었다. 어쨌거나 돈을 받으며 취미생활을 할 수 있으니 테루시마에겐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잡일로 눈을 돌리면.
"늦었습니다."
재밌어 보이는 일을 알게 되기도 했다. 테루시마는 좁은 가게 안에 들어오자마자 사과부터 하는, 푹 젖은 검은 머리의 남자를 핥듯이 쳐다보았다. 일부러 늦은 시간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의 감이 맞았다. 테루시마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름만 보고 진짜일까 했는데."
"..테루시마씨. 오랜만입니다."
"정말로 카게야마 토비오네. 그 카게야마 토비오야."
키타가와의 몰락한 왕, 카게야마 토비오가 테루시마의 눈앞에 있었다.
*
테루시마는 몇 년 전 갑자기 사라져버린 키타가와의 왕을 떠올렸다. 주변과 교류가 없어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키타가와 구미는 결국 내부 분열로 인해 해체되었다. 젊은 두목이었던 카게야마가 아오바죠사이 구미에 들어가겠다고 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는 사람들 간의 지리한 싸움이 계속 되었고, 결국 카게야마는 아오바죠사이로 들어갔다. 아오바죠사이는 카게야마가 들어오는 조건으로 키타가와를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카게야마가 얼마나 더러운 소리를 들었는지는 직접 듣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법한 것들이었다. 안위를 위해 조직을 팔아먹은 배신자, 아오바죠사이의 개, 오이카와를 뒷구멍으로 받아내는 창녀. 왕에서 남창으로 몰락하는 시간은 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테루시마는 아오바죠사이의 카게야마를 본 적이 있었다. 아오바죠사이의 2인자 이와이즈미를 따라가는 카게야마는 소문과 달리 고결한 걸음이었다. 테루시마는 그 때 그를 두고 재미없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키타가와의 왕이 아오바죠사이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지 딱 일년 후, 카게야마는 모습을 감췄다. 언제나 여유롭던 오이카와가 그렇게 분노하는 것을 테루시마는 처음 보았다.
"갑자기 사라져서 아오바죠사이가 뒤집어진 건 알고 있어?"
테루시마는 젖은 겉옷을 벗으며 앉은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카게야마는 그런가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어떤 반응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고지식하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테루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괜히 혀 안의 피어싱으로 입천장을 문지르며 긁는다.
"뭐, 재밌을 것 같은 사정이 있긴 하지만."
"...."
"일단은 손님으로 온 거니까. 그래서 무슨 문신을 하러 온 건데?"
야쿠자들은 작거나 크거나 조직에 들어가면 문신을 해야 했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카게야마가 새로운 조직의 문신을 하러 왔다면, 테루시마 외엔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 야쿠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신사들은 전부 연결되어있다. 카게야마가 테루시마가 아닌 다른 이에게 문신을 하러 갔다면 다음날 바로 오이카와의 귀까지 들릴 것이다.
"이것을."
카게야마는 품에서 도안을 내밀었다. 단순한 까마귀 문양을 본 테루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라스노?"
"예."
"아오바죠사이에서 카라스노라니 갭이 큰데."
"...."
아오바죠사이는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구미. 카라스노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신생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정이 있는 지 구질구질하게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테루시마는 입을 다문 카게야마에게 눈짓을 했다.
"일단 해줄 테니까 저기 앉아."
"..감사합니다."
카게야마는 가게 안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굳어있던 얼굴을 풀었다. 절대로 여자처럼 예쁘진 않은데도, 묘하게 아름다운 생김새였다. 테루시마는 이를 드러낸 채 웃었다. 카라스노, 카게야마, 아오바죠사이. 재밌을 것 같다.
*
이유가 어쨌든 구미를 옮기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전의 문신은 지우고 그 위에 현재 소속의 상징을 새겨넣는다. 그 과정을 거친 이들은 주인을 바꿔 상대하는 창녀라고 조롱받았다. 이 남자는 두 번이나 구미를 옮겼으니..테루시마는 혀를 쭉 내고 조금 야한 생각을 했다. 옷을 벗고 준비하던 카게야마는 테루시마의 혀에 박힌 피어싱을 발견했지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우시지마처럼 곧바로 경멸할 줄 알았다. 사실 테루시마는 그 찡그린 얼굴이 보고 싶기도 했다.
"제법이네."
테루시마의 말에 카게야마가 대답없이 돌아본다. 물끄러미 보는 눈은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밤을 떠올리게 했다. 카게야마는 테루시마가 이끄는 대로 문신실 안에 들어와 웃옷마저도 벗었다. 잘 단련된 몸이었다. 낡은 흉터가 군데군데 박혀있으나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테루시마는 아무것도 없는 상체를 훑어보고 물었다.
"순서대로 이야기하자."
"예."
"키타가와의 것은?"
"막 자리에 올라 바빠서 하지 못했습니다."
"흠. 그럼 아오바죠사이는?"
카게야마는 침묵이 아닌, 주저하는 기색으로 테루시마를 바라 보았다. 테루시마의 눈에 다시 한 번 호기심이 떠오른다.
"아오바죠사이는? 순서 알지? 그 위를 덮어야돼."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냥 등 뒤에 해주시면."
"에이, 절차가 있는데."
테루시마는 팔을 활짝 펼쳤다. 어차피 카게야마는 자신의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
"혹시 말 못할 부위에 새기기라도 했어?"
"...."
"새긴 게 아니라 새겨진 건가?"
테루시마는 혀를 길게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붉은 혀의 젖은 피어싱을 보며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위에 없다면 아래에 있다는 거지."
추울 테니 위는 입고, 아래는 벗어. 테루시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 망설이던 카게야마는 결국 주섬주섬 웃옷을 다시 입었다. 단추까지 다 잠그고 나서야 바지를 벗는 것이 왠지 카게야마다웠다. 테루시마는 즐거운 눈으로 제 앞의 스트립쇼를 구경했다. 여자는 아니지만 봐줄만 했다. 금욕적으로 생긴 남자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좌지우지한다. 카게야마는 애써 침착하려는 얼굴이었다.
"...없는데?"
근육이 잘 잡힌 다리 또한 깨끗하다. 테루시마는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카게야마의 다리를 살폈다. 수치심일까, 아니면 분노일까. 카게야마의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테루시마는 뒤의 의자에 카게야마를 앉게 했다. 아래에서 카게야마를 올려다보며 무언의 명령을 내리면,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고집이 센 미인이었다.
"그 얼굴 좋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주십시오."
"내 마음에 들면."
"...."
테루시마의 손이 카게야마의 무릎을 힘주어 눌렀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고서 자의로 다리를 벌려준다. 무늬가 없는 검은 드로즈의 안쪽이 천천히 벌어졌다. 테루시마는 고개를 카게야마의 다리 사이로 들이밀었다. 갑자기 뜨거운 숨이 닿자 카게야마가 긴장해 무릎을 움찔했다. 테루시마의 눈이 커졌다가 한 순간 유쾌한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가 본 것은 아오바죠사이의 상징이 아니었다. 키타가와의 것도 아니었다.
"及川徹"
단지 누군가의 이름이 짧고 강렬하게 적혀 있었다. 문신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솔직했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몸에 남기고 싶어한 흔적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의도한 상처의 흔적. 상흔. 테루시마는 감탄했다.
"오이카와. 반지르르한 얼굴로 대단한 짓을 하네."
"..여기에 새기는 겁니까."
"절차대로 해야지. 여기에 할 수 밖에."
테루시마의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허벅지에 적힌 오이카와의 이름을 쓸었다. 곧 이 허벅지의 이름은 사라지고 다른 주인이 들어서게 된다. 테루시마는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어떤 사이인였는지 모른다. 굳이 지난 일을 알 필요도 없었다. 분명 테루시마 유우지는 느슨하다는 평을 듣는, 저속한 남자. 그러나 누구도 그를 우습게보지 않는 이유는 그의 본질이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원하는 일을 방해받아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적이 없다. 폭력적으로 상실을 모르는 남자의 손이 다시 한 번 카게야마의 허벅지에 닿았다가 힘을 주어 꽉 잡았다. 카게야마는 눈을 내리 깔고 테루시마의 손을 따라간다. 테루시마의 손가락이 허벅지를 휘젓게 놔두며 카게야마가 물었다.
"보수는 어떻게."
테루시마가 혀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나도 오이카와가 받은 것과 같은 걸로 할까."
이 고지식한 남자가 얼굴을 찌푸려 엉망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의 흔적을 남겨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오바죠사이의 백년의 분노를 받더라도 즐거울 것 같았다.
그래서 테루시마가 제 구역에 스스로 가게를 차리고 문신을 하러 나섰단 이야기를 듣고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멋있어 보인다며 귀를 뚫었다가, 귀만 뚫으니 계집애처럼 보인다고 다음날 혀 안에 피어싱을 박아버리는 남자다. 뜬금없지만 그럴 만 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늦네. 테루시마는 중얼거리며 따뜻하게 데운 코코아를 마셨다. 그는 이 가게에 하루 종일 매달려있을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쓸모 있고, 쓸모없는 구미의 일들을 가려내어서 처리한 후에 취미로 예약 손님을 받는다. 손님을 정하는 기준은 테루시마의 변덕이었다. 어쨌거나 돈을 받으며 취미생활을 할 수 있으니 테루시마에겐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잡일로 눈을 돌리면.
"늦었습니다."
재밌어 보이는 일을 알게 되기도 했다. 테루시마는 좁은 가게 안에 들어오자마자 사과부터 하는, 푹 젖은 검은 머리의 남자를 핥듯이 쳐다보았다. 일부러 늦은 시간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의 감이 맞았다. 테루시마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름만 보고 진짜일까 했는데."
"..테루시마씨. 오랜만입니다."
"정말로 카게야마 토비오네. 그 카게야마 토비오야."
키타가와의 몰락한 왕, 카게야마 토비오가 테루시마의 눈앞에 있었다.
*
테루시마는 몇 년 전 갑자기 사라져버린 키타가와의 왕을 떠올렸다. 주변과 교류가 없어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키타가와 구미는 결국 내부 분열로 인해 해체되었다. 젊은 두목이었던 카게야마가 아오바죠사이 구미에 들어가겠다고 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는 사람들 간의 지리한 싸움이 계속 되었고, 결국 카게야마는 아오바죠사이로 들어갔다. 아오바죠사이는 카게야마가 들어오는 조건으로 키타가와를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카게야마가 얼마나 더러운 소리를 들었는지는 직접 듣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법한 것들이었다. 안위를 위해 조직을 팔아먹은 배신자, 아오바죠사이의 개, 오이카와를 뒷구멍으로 받아내는 창녀. 왕에서 남창으로 몰락하는 시간은 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테루시마는 아오바죠사이의 카게야마를 본 적이 있었다. 아오바죠사이의 2인자 이와이즈미를 따라가는 카게야마는 소문과 달리 고결한 걸음이었다. 테루시마는 그 때 그를 두고 재미없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키타가와의 왕이 아오바죠사이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지 딱 일년 후, 카게야마는 모습을 감췄다. 언제나 여유롭던 오이카와가 그렇게 분노하는 것을 테루시마는 처음 보았다.
"갑자기 사라져서 아오바죠사이가 뒤집어진 건 알고 있어?"
테루시마는 젖은 겉옷을 벗으며 앉은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카게야마는 그런가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어떤 반응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고지식하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테루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괜히 혀 안의 피어싱으로 입천장을 문지르며 긁는다.
"뭐, 재밌을 것 같은 사정이 있긴 하지만."
"...."
"일단은 손님으로 온 거니까. 그래서 무슨 문신을 하러 온 건데?"
야쿠자들은 작거나 크거나 조직에 들어가면 문신을 해야 했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카게야마가 새로운 조직의 문신을 하러 왔다면, 테루시마 외엔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 야쿠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신사들은 전부 연결되어있다. 카게야마가 테루시마가 아닌 다른 이에게 문신을 하러 갔다면 다음날 바로 오이카와의 귀까지 들릴 것이다.
"이것을."
카게야마는 품에서 도안을 내밀었다. 단순한 까마귀 문양을 본 테루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라스노?"
"예."
"아오바죠사이에서 카라스노라니 갭이 큰데."
"...."
아오바죠사이는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구미. 카라스노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신생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정이 있는 지 구질구질하게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테루시마는 입을 다문 카게야마에게 눈짓을 했다.
"일단 해줄 테니까 저기 앉아."
"..감사합니다."
카게야마는 가게 안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굳어있던 얼굴을 풀었다. 절대로 여자처럼 예쁘진 않은데도, 묘하게 아름다운 생김새였다. 테루시마는 이를 드러낸 채 웃었다. 카라스노, 카게야마, 아오바죠사이. 재밌을 것 같다.
*
이유가 어쨌든 구미를 옮기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전의 문신은 지우고 그 위에 현재 소속의 상징을 새겨넣는다. 그 과정을 거친 이들은 주인을 바꿔 상대하는 창녀라고 조롱받았다. 이 남자는 두 번이나 구미를 옮겼으니..테루시마는 혀를 쭉 내고 조금 야한 생각을 했다. 옷을 벗고 준비하던 카게야마는 테루시마의 혀에 박힌 피어싱을 발견했지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우시지마처럼 곧바로 경멸할 줄 알았다. 사실 테루시마는 그 찡그린 얼굴이 보고 싶기도 했다.
"제법이네."
테루시마의 말에 카게야마가 대답없이 돌아본다. 물끄러미 보는 눈은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밤을 떠올리게 했다. 카게야마는 테루시마가 이끄는 대로 문신실 안에 들어와 웃옷마저도 벗었다. 잘 단련된 몸이었다. 낡은 흉터가 군데군데 박혀있으나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테루시마는 아무것도 없는 상체를 훑어보고 물었다.
"순서대로 이야기하자."
"예."
"키타가와의 것은?"
"막 자리에 올라 바빠서 하지 못했습니다."
"흠. 그럼 아오바죠사이는?"
카게야마는 침묵이 아닌, 주저하는 기색으로 테루시마를 바라 보았다. 테루시마의 눈에 다시 한 번 호기심이 떠오른다.
"아오바죠사이는? 순서 알지? 그 위를 덮어야돼."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냥 등 뒤에 해주시면."
"에이, 절차가 있는데."
테루시마는 팔을 활짝 펼쳤다. 어차피 카게야마는 자신의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
"혹시 말 못할 부위에 새기기라도 했어?"
"...."
"새긴 게 아니라 새겨진 건가?"
테루시마는 혀를 길게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붉은 혀의 젖은 피어싱을 보며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위에 없다면 아래에 있다는 거지."
추울 테니 위는 입고, 아래는 벗어. 테루시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 망설이던 카게야마는 결국 주섬주섬 웃옷을 다시 입었다. 단추까지 다 잠그고 나서야 바지를 벗는 것이 왠지 카게야마다웠다. 테루시마는 즐거운 눈으로 제 앞의 스트립쇼를 구경했다. 여자는 아니지만 봐줄만 했다. 금욕적으로 생긴 남자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좌지우지한다. 카게야마는 애써 침착하려는 얼굴이었다.
"...없는데?"
근육이 잘 잡힌 다리 또한 깨끗하다. 테루시마는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카게야마의 다리를 살폈다. 수치심일까, 아니면 분노일까. 카게야마의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테루시마는 뒤의 의자에 카게야마를 앉게 했다. 아래에서 카게야마를 올려다보며 무언의 명령을 내리면,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고집이 센 미인이었다.
"그 얼굴 좋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주십시오."
"내 마음에 들면."
"...."
테루시마의 손이 카게야마의 무릎을 힘주어 눌렀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고서 자의로 다리를 벌려준다. 무늬가 없는 검은 드로즈의 안쪽이 천천히 벌어졌다. 테루시마는 고개를 카게야마의 다리 사이로 들이밀었다. 갑자기 뜨거운 숨이 닿자 카게야마가 긴장해 무릎을 움찔했다. 테루시마의 눈이 커졌다가 한 순간 유쾌한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가 본 것은 아오바죠사이의 상징이 아니었다. 키타가와의 것도 아니었다.
"及川徹"
단지 누군가의 이름이 짧고 강렬하게 적혀 있었다. 문신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솔직했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몸에 남기고 싶어한 흔적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의도한 상처의 흔적. 상흔. 테루시마는 감탄했다.
"오이카와. 반지르르한 얼굴로 대단한 짓을 하네."
"..여기에 새기는 겁니까."
"절차대로 해야지. 여기에 할 수 밖에."
테루시마의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허벅지에 적힌 오이카와의 이름을 쓸었다. 곧 이 허벅지의 이름은 사라지고 다른 주인이 들어서게 된다. 테루시마는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어떤 사이인였는지 모른다. 굳이 지난 일을 알 필요도 없었다. 분명 테루시마 유우지는 느슨하다는 평을 듣는, 저속한 남자. 그러나 누구도 그를 우습게보지 않는 이유는 그의 본질이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원하는 일을 방해받아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적이 없다. 폭력적으로 상실을 모르는 남자의 손이 다시 한 번 카게야마의 허벅지에 닿았다가 힘을 주어 꽉 잡았다. 카게야마는 눈을 내리 깔고 테루시마의 손을 따라간다. 테루시마의 손가락이 허벅지를 휘젓게 놔두며 카게야마가 물었다.
"보수는 어떻게."
테루시마가 혀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나도 오이카와가 받은 것과 같은 걸로 할까."
이 고지식한 남자가 얼굴을 찌푸려 엉망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의 흔적을 남겨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오바죠사이의 백년의 분노를 받더라도 즐거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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