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습이 끝났다. 카게야마는 손으로 부채질을 몇 번 하다가 연습에 쓰던 페트병을 집어올렸다. 히나타는 코트에서 벗어난 카게야마를 잠시 보았다가, 뛰어가 카게야마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힘껏 등에 머리를 비비적거린다. 물을 마시던 카게야마는 귀찮은 얼굴을 했다.
"뭐냐. 더우니까 떨어져!"
"잠깐만! 카게야마!"
"뭐, 뭐야?"
카게야마는 제 등에 꼭 붙어있는 히나타를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진 둘의 모습에 야마구치는 걱정 반 웃음 반인 얼굴로 웃었고, 츠키시마는 경멸하며 지나가버렸다. 결국 자리를 비운 사와무라 대신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와 히나타를 떼어놓았다. 카게야마는 목이 졸려 괴로워하고 있었다. 히나타 역시 카게야마의 발에 채여 배를 쥐고 있다.
"자, 자. 거기 둘. 떨어져."
"떨어져! 멍청아!"
"카게야마 멍청이!"
히나타는 씩씩거리면서도 스가와라의 말대로 했다. 카게야마는 얼얼한 목을 문지르며 이상하단 눈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히나타가 원했던 게 무엇인지 알아차린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설명해줄 수 없는 영역임을 알고 곤란해졌다. 카게야마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도대체 뭐야?"
히나타는 마치 시합 중 카게야마가 토스를 올려주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섭섭한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답 없이 그저 카게야마를 두고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스가와라는 어느 쪽을 먼저 달래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히나타의 뒷목을 잡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히나타."
*
사람은 태어나며 남자, 여자로 신체는 구성되고, 자라나면서 제 2 형질로 변화한다. 그 형질은 남녀와 상관없이 알파, 베타, 오메가로 나뉘었다. 성에 상관없이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알파, 이성에게만 임신을 시킬 수 있는 베타, 성에 상관없이 임신할 수 있는 오메가. 구분하기 쉽게 생식능력으로 나누었으나 이 집단은 보편적인 기질이 비슷했다. 특히나 알파는 제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보통 그 주장은 오메가에 한했으나 가끔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스가와라는 아직도 서운한 빛이 역력한 히나타에게 조용히 말했다. 알파가 알파에게 할 수 있는 충고이기도 했다.
"히나타. 카게야마는 오메가가 아니야."
"..예."
"그렇게 냄새를 덕지덕지 묻혀서 어쩌겠단 거야."
스가와라는 엉겨 붙은 둘을 떼어내고서야 히나타가 원했던 것을 알아차렸다. 카게야마의 몸에는 히나타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보통의 체향도 아니고 오메가를 안을 때 알파가 풍기는 냄새였다. 아마 히나타도 몰랐을 거라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카게야마에게 알파를 주장한다. 네 알파가 여기 있으니 봐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스가와라는 히나타를 타일렀다.
"카게야마는 베타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만 그 녀석, 제 세터인데."
"너만의 세터가 아니라 카라스노의 세터니까."
"...."
히나타는 다시 불만인 것 같았다. 작은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올라오자 스가와라가 부드럽게 그 것을 억눌렀다. 살짝 정신을 차린 히나타가 풀이 죽어 끙끙거렸다.
"마음은 알겠지만 말이야, 오메가가 아닌 카게야마에게 그렇게 주장해 봐도 카게야마는 몰라."
"...."
"더구나 베타가 알파 냄새를 묻히고 있으면."
지나가던 카게야마를 두고 알파나 오메가가 어떤 생각을 할 지 뻔했다. 근처에 알파가 있구나, 라고 여길 정도의 냄새가 아니었다. 저 베타는 알파에게 오메가처럼 안기는 구나, 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터였다. 스가와라는 전부 말해둘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히나타는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오메가거나 베타거나 상관없어요."
그 녀석 제 세터고.. 제가 있으면 최강이라서. 히나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내뱉느라 힘들어 보였다. 스스로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다가, 결국 스가와라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했다.
"그냥 카게야마를 보면 목이 말라요."
"..응?"
"내 꺼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목이 타니까.."
스가와라는 히나타가 초조해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누구에게 그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된 스가와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 아오바죠사이와의 연습경기 때문에 그렇구나."
"...."
"확실히 카게야마는 예전 동료들도 소중하겠지만."
히나타는 지난 경기에서 유난히 카게야마를 의식하던 두 명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두 명도, 아마 같았을 것이다.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는 내 세터. 내 동료. 내 것. 둘 다 히나타와 같은 알파였다. 오메가도 아닌 카게야마를 두고 독점욕이 끓어오른 것은, 자신이 모르는 동안 그 둘에게 토스를 올렸을 카게야마의 3년 때문이었다. 시간의 공백을 두고 히나타는 날카롭게 경계했다. 스가와라는 오메가를 지키는 히나타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파가 누군가에게 반해버렸다면 어쩔 수 없다.
"히나타."
"예."
"카게야마는 모른다는 것만 알아둬."
"...예."
아직 온전한 제 감정을 깨닫지 못한 알파는 억지로 수긍했다.
*
"카게야마."
"예."
"저기, 히나타가 그러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 같은 거니 참아줄래?"
"..본능이요? 알파 형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카게야마가 떠올랐단 투로 물었다. 스가와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응. 힘들까?"
"아뇨. 저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녀석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상관없지만."
"다행이다."
"굳이 왜 그러는 겁니까?"
"그건 좀 말하기 힘드네."
확실하지 않은 히나타의 감정을 언급하는 것을 스가와라는 슬며시 피했다. 카게야마는 제멋대로 이해한 후 짧게 말했다.
"예..고생이 많네요. 알파는."
스가와라는 선배의 말을 따르는 카게야마를 물끄러미 보았다. 자신이 지금 어떤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지도 모르는 베타는 절대로 알파의 속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스가와라는 문득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는 운동신경이 좋아서 알파인 줄 알았지."
"알파요?"
카게야마는 배구공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알파 형질인 스포츠선수가 많지만, 베타나 오메가거나 별로 상관없습니다."
"..응. 그렇네."
히나타의 냄새를 묻히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마 히나타가 옆에 있었다면 카게야마의 말에 동의해주었을 것이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내가 실수했어."
"아닙니다."
"아니야. 사과할게. 알파나 베타나.. 정말은 상관없지."
스가와라는 결국 그게 어떤 경우라도 상관없다고 느껴졌다. 동그란 머리의 후배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스가와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
히나타는 아오바죠사이로 가는 버스 내내 카게야마의 옆에 달라붙었다. 스파이커의 안정을 위해 세터는 묵묵하게 그 투정을 받아주었다. 가끔 귀찮다는 얼굴은 해도 밀어내지 않아 히나타는 기뻤다.
"카게야마."
"어."
"오늘 경기 꼭 이기자."
"당연히 이겨야지. 오늘 경기만 꼭 이기자니 그게 무슨 소리야."
카게야마가 핀잔을 던졌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턱을 고양이처럼 올려놓았다. 확인하듯 문지르면 베타는 알 수 없는, 알파의 주장이 가득 담긴 냄새가 묻어 배었다. 역시나 알파인 츠키시마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카게야마와 히나타를 향해 한 소리 늘어놓았다.
"왕님. 앞으로 베타라곤 못 하겠어."
"뭐?"
"누구라도 왕님, 알파로 알 테니까."
그 말대로 카게야마의 구석구석 알파의 냄새가 고여 흘러내렸다. 히나타는 츠키시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몸에서 비누 냄새나."
"샤워했으니까."
"...좋다."
"너랑 같은 비누 썼잖아!"
몸에선 약간의 비누 냄새와 새로 빨은 배구복 냄새 외엔 나지 않았다. 그래도 히나타는 그 것이 좋았다. 자신의 체향으로 온전히 처음부터 가득 채울 수 있다. 오메가처럼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었다. 매번 꾸준하게 공을 들여 냄새를 묻히고 지워지지 않게 한다. 상상만으로도 몹시 즐거운 기분이었다. 카게야마는 어깨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리는 히나타를 둔 채 지나가는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아오바죠사이가 곧이었다.
"그 녀석들도 있을까."
카게야마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히나타는 멈칫했다가 더욱 세게 자신의 얼굴을 비벼댔다. 알파 냄새가 진동을 해 둘 중 누가 알파이고 베타인 지 알 수 없었다. 히나타가 조용히 말했다.
"만나면 인사해."
"..? 당연히 그래야지."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서 카게야마가 내 것인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이 갈증도 해소될 것이라고, 히나타는 부드럽게 뺨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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