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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단편

[오이카게] 가축안경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의 연습시합이 잡혔다. 오이카와는 얼른 카게야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방진 후배는 분명 먼저 전화할 생각도 못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오이카와씨는 좋은 선배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누구도 묻지 않았으나 오이카와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신호음이 몇 번 걸린 후 낮은 목소리가 오이카와의 이름을 불렀다. '오이카와 선배.' 오이카와는 생글생글 웃으며 휴대폰을 든 손을 바꿔 들었다. 조금 긴장했을 지도 몰랐다.

"토비오쨩."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너무 차갑네. 오이카와씨 상처받아."
-..아..아침부터 무슨 일이신가요.
"말끝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오이카와는 키득거렸다. 일부러 전화를 건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그냥 걸고 싶었다. 이번에도 아오바죠사이가 이길 테니 긴장해☆ 같은 말을 늘어놓는 편이 재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카게야마는 울컥한 목소리로 이기는 건 카라스노입니다! 라고 받아쳐 올 테고, 또.. 오이카와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카게야마 옆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같은 배구부원들일 게 뻔했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라도 지르려나. 오이카와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놀랍게도.

-통화 중이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줘.

라고 몹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깜짝 놀라 귀에 휴대폰을 가까이 댔다. 방금 들은 게 카게야마의 말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옆에서 떠들던 건 여자였나? 아니, 여자라도 카게야마는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토, 토비오쨩?"
-예.
"방금 옆에 누구였어?
-히나타랑 츠키시마였는데요.
"치비쨩이랑, 안경군?"
-맞습니다. 잘 기억하시네요.
"당연히 오이카와씨는 기억력이..아니, 그게 아니라. 왜 그렇게 간지럽게 말하는 건데? 이상해! 토비오쨩 이상해!

오이카와는 팔에 소름이 돋아 벅벅 긁었다. 저 카게야마 토비오가 아이에게 말하듯 동급생들을 대하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카게야마는 조금 부끄럽단 말투로 대답했다.

-그게.. 안경을 써서.
"안경? 토비오쨩. 안경 써?"
-요즘 쓰게 됐습니다. 신기한 안경이거든요.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는 지금 후배의 이상한 말투에 충격 받았거든요. 그러니 빨리 왜 그랬던 건지 말해줘.

오이카와가 닦달했다. 카게야마는 선배의 요구에 얼른 응했다.

-동물로 보이는 안경입니다.
"....네?"
-안경을 쓰면 개나, 고양이로 주변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오이카와씨는 피곤해졌어요. 이만 끊자."
-그럼 다음 경기 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오이카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귀를 후볐다. 토비오쨩.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애네. 토비오쨩이 바보라 이번 경기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

카라스노가 도착했다. 오이카와는 팔짱을 낀 채 버스에서 내리는 카라스노들을 보았다. 짐을 가지고 내린 카게야마는 얼마 전 통화했던 대로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검은 테의 안경은 평범해보였다. 안경은 오이카와씨처럼 멋있는 사람만 쓰는 거네요! 오이카와는 코웃음을 쳤다. 옆에 서있던 이와이즈미가 말을 걸었다.

"인사하러 가자."
"내가 먼저?"
"무슨 소리야."
"토비오쨩이 먼저 인사를 와야지! 후배인데!"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먼저 인사 올 때까지 버티겠다고 했다가 이와이즈미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투덜거리며 카라스노들을 맞이하는데 다가오는 카게야마의 상태가 이상했다. 근질근질한 입을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안경 밑의 두 뺨엔 홍조가 떠올라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보고 슬쩍 물었다. '카게야마 어디 아픈가?' 과연 열이라도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오이카와를 보면 깜짝 놀란다. 눈을 깜박거리며 한참 오이카와를 쳐다보는 바람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토비오쨩. 잘생긴 오이카와씨에게 반하기라도 했어? 왜 그렇게 쳐다봐?"
"그게 아니라.."
"왕님. 빨리 들어가. 서민이 기다리는 건 신경도 안 쓰지."

가장 느리게 걸어오던 츠키시마가 멈춘 카게야마를 재촉했다. 오이카와는 츠키시마를 알아보았다. 카게야마와 성격적으로 잘 안 맞아보였던 카라스노의 부원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 한바탕 싸워준다면 좋을 텐데, 라고 오이카와가 생각하자마자 카게야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요즘 이상하네.."

츠키시마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오이카와의 눈이 커졌다. 따라 들어가려는 카게야마를 얼른 잡고 오이카와가 외쳤다.

"토비오쨩? 어디 아파?"
"예?"
"도대체 그 말투는 요 얄미운 얼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얄미운 얼굴이라뇨.."

카게야마는 도움을 청하듯 오이카와의 옆에 선 이와이즈미를 보았다. 그걸 알아차린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우리도 들어가자. 어이, 오이카와."
"잠깐! 이와쨩! 난 토비오쨩이 왜 이러는지 알아야겠다고!"
"망할 오이카와. 후배한테 부끄럽게 굴지 말고 빨리 와!"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에게서 오이카와를 간신히 떼어 체육관으로 데려갔다. 질질 끌려가던 오이카와는 뒤따라오는 카게야마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변한 건 없었다. 평소의 카게야마였다. 달라진 건.

"안경..?"

안경을 쓰면 개나, 고양이로 주변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 말을 했었다. 체육관을 들어온 카게야마는 안경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오이카와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억 속의 후배는 분명 작은 동물들을 좋아했다.

*

팽팽히 전개된 시합은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오이카와는 물을 마시며 아까부터 신경쓰였던 카게야마를 유심히 보았다. 시합 중의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아는 그 카게야마였다. 감히 선배들에겐 그러지 못해도 1학년인 히나타나 츠키시마가 실수하면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 알기 쉬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서 온 몸을 던져 공을 받아내고, 얄밉게도 정밀한 토스를 올리고.. 오이카와가 알고 있는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랬다. 가장 먼저 카게야마의 재능을 발견한 건 오이카와였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후배다. 갑자기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면 당황할 수밖엔 없었다. 카게야마는 분한 얼굴로 물을 마시곤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오이카와는 눈을 떼지 않고 카게야마를 지켜보았다. 안경을 쓴 카게야마는 기분 탓인지 들떠 보였다. 애를 먹이던 주황색 꼬마가 카게야마에게로 뛰어왔다.

"카게야마! 돌아가면 토스 올려줘."
"그래."
"백 번 올려줘야 돼!"
"알겠다니까."

그러면서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이카와의 옆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킨다이치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게야마가 머리를....'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오이카와는 시험 삼아 킨다이치를 카게야마에게로 밀었다.

"킨다이치. 카게야마랑 인사하고 오지? 같은 학교였고."
"예? 제가요?"
"그래. 다녀와."

킨다이치는 갑작스런 주장의 명령에 우물쭈물하다가 카라스노 쪽으로 갔다. 떨어져있어도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의 얼굴은 확실히 느슨해져, 웃는 얼굴처럼 보였다. 카게야마와 몇 마디 주고받고 온 킨다이치는 귀신에게 홀린 사람 같았다. 오이카와가 얼른 물었다.

"카게야마가 뭐래?"
"반갑다고..."

킨다이치는 넋이 나가보였다.

"다음에 또 보자고도 하던데요."
"....쿠니미쨩!"

오이카와는 다음 실험체를 불렀다. 수건으로 땀을 닦던 쿠니미를 억지로 카게야마에 보냈다. 쿠니미는 싫다는 표정이었지만 거절은 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찾아오자 또 반가운 얼굴을 했다. 쿠니미의 경악이 돌아선 등만으로도 잘 느껴졌다. 카게야마가 무어라 말하곤 쿠니미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킨다이치가 헉, 하고 짧게 숨을 들이켰다. 오이카와는 벌떡 일어섰다.

"...카게야마 오늘 이상하네요."

쿠니미가 돌아왔다. 카게야마가 만진 머리를 쓸어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부드러워 보이는데 만져 봐도 되냐, 란 말이나 하고."
"그치! 그치, 이상해!"

킨다이치가 쿠니미의 말을 거들었다. 오이카와는 결국 인정해야했다. 오늘의 카게야마 토비오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상할 정도로 오이카와의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

"토비오쨩."

카게야마는 머리를 들었다. 킨다이치, 쿠니미 다음으로 찾아온 건 오이카와였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속으로 의아해하며 오이카와에게 인사했다. 오이카와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오늘 좀 달라 보이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날 대하는 건 똑같은데.."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카게야마의 검푸른 눈이 안경알 사이를 두고 깜박이고 있었다. 안경을 쓴 카게야마는 원래 안경을 썼던 사람처럼 잘 어울렸다. 그것도 오이카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이 안경, 끼면 주변 사람들이 동물로 보인다고?"
"예, 예! 킨다이치는 개로, 쿠니미는 고양이로..보이는데요."
"나도 껴볼래."

오이카와는 억지로 카게야마의 안경을 빼앗아 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카게야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 무슨 장난을..이라고 생각하며 옆을 돌리면 털이 삐죽삐죽한 고양이가 오이카와 옆에 다가왔다. 몸은 그대로인데 얼굴만 고양이라, 귀엽다기 보단 기괴했다. 으아악! 오이카와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고양이는 익숙하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뭐하냐. 오이카와."
"..이, 이와쨩?"
"얘 왜 이래? 카게야마."
"안경을 써서 그렇습니다!"

카게야마는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이와이즈미를 보며 신나게 입을 열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내민 안경을 받아들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평범한 안경이었다.

"동물들을 좋아하는데 키우지를 못하니까, 사와무라 선배가 써보라고 빌려주셨습니다."
"그런 안경도 있어?"
"예! 그런데 다른 놈들한테 말하기엔 좀 민망하고.. 이와이즈미 선배에게만.."

카게야마는 목소리를 낮춰 속닥속닥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얼른 안경을 코에 걸쳤다. 중학교 후배의 얼굴은 목 쪽에 흰 털이 보이는 까만 고양이로 바뀌었다. 이와이즈미는 웃음을 터트리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게 뭐야, 귀엽잖아. 카게야마."
"저, 저는 뭘로 보입니까?"
"검은 고양이로 보이네."
"그런가요.."

카게야마는 기쁜 얼굴이었다. 체육관 바닥에 꼴사납게 주저앉아있던 오이카와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그럼 난 무슨 동물로 보여?"
"이와이즈미 선배도 까만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머리가 좀 삐죽삐죽해요."
"아,  머리색이랑 모양으로 바뀌는 건가..신기하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에게 안경을 돌려주고 자리를 떴다. 카게야마는 얼른 안경을 받아쓰고 살짝 웃었다. 이와이즈미를 보며 얼굴을 붉히듯 웃는 모양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오이카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왠지 짜증이 났다.

"그럼 오이카와씨는?"
"예?"
"오이카와씨는 뭔데."
"그게.."

카라스노의 코치가 돌아가자며 카게야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의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가려는 걸 잡고, 오이카와는 다시 물었다.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는 뭘로 보이냐니까?"
"저.."
"응?"

카게야마는 곤란한 눈으로 오이카와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변한 게 없습니다."
"...뭐?"
"사와무라 선배가..좋아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긴 하셨는데.."
"...."
"고장이 났을 수도 있고..아무래도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얼굴에서 안경을 빼앗아 다시 한 번 써보았다. 역시나 카게야마는 카게야마 그대로였다. 오이카와는 붉어진 얼굴을 휙 돌렸다. 하기야 고양이나 개와 키스를 하고 싶진 않겠지. 오이카와의 시선이 카게야마의 입술을 살짝 닿았다가 다시 카게야마와 눈을 마주쳤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가져간 안경과, 체육관을 나가려는 카라스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안 가봐?"
"오이카와 선배. 안경 돌려주세요."
"신기하니까 오이카와씨가 잠깐 빌릴게."
"..! 저도 주장한테 빌린 건데!"
"금방 돌려준다니까?"
"...."

카게야마는 옛 선배에게 끝까지 반항하지 못했다. 입술을 삐죽 내민 카게야마가 카라스노를 쫓아간다. 개와 고양이들 사이에 혼자 까맣고 동그란 머리가 눈에 띄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니, 좋아한다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노골적인 말이었다. 오이카와는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아있던 원인을 드디어 알아차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아도, 아마 이 말도 안 되는 안경은 믿을만한 물건인 것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고백해버린 후배의 등을 쳐다보며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있잖아.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는 스스로 깨달을 때까진 절대로 말 안 할 거니까. 주머니 안의 폰을 꺼내 오이카와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이카와 : 토비오쨩~ 안경 받고 싶다면 주말에 만날까?

그러면 후배에게서 금방 예!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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