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는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머릿속은 죽은 궁녀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상궁은 카게야마의 침묵을 단월일에 대한 불편한 심기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시중이 극진했다. 카게야마는 한달만에 입은 남복을 둘러 보았다. 쪽색으로 물든 옷은 역시나 여복보다 편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어색함도 함께 느껴지는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그 낯선 감각이 무서웠다.
"토비오님."
상궁은 카게야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굳이 나가시지 않아도 괜찮지 않으십니까."
"무슨 말이지."
"토비오님의 몸이 상할까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
카게야마는 잠시 고민했다.
홀 : 그래도
짝 : ..그럴까
자신의 궁에 있던 궁녀가 죽었다. 전쟁터에서 살아온 카게야마의 본능은 이상을 감지했다. 밖으로 나갔다가 변을 당하면 호위를 달고 있어도 누구의 짓인지 밝히기 힘들었다. 우선 궁 안에 있으며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그럴까."
"토비오님?"
"네 말대로 하겠다."
카게야마는 얼떨떨해하는 상궁에게 다시 한 번 그러겠노라고 말해주었다. 주인이 순순히 말을 따라서인지, 상궁은 의아하게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오늘은 궁 안에 계신다고 섭정 전하께 알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몰래 나가시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몰래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라도 했느냐."
카게야마는 투덜거리며 상궁을 내보냈다. 창가를 보니 섭정이 보냈다는 호위 몇이 이미 와 있었다. 아마 오늘 저들을 볼 일은 없을 터였다. 카게야마는 네코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모처럼이니 바람이나 쐴까 했는데.. 아쉬웠다.
*
매일 가던 문안인사를 가지 않으니 시간이 남았다. 카게야마는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상궁을 피해 단패궁의 정원을 걸었다. 작은 호수 위로 단풍잎이 떨어졌다. 영원히 붉은 단풍나무의 아래에 선 카게야마는 단패궁의 전경을 훑었다. 이 궁 안에서 나중에 시체가 발견됐을 법한 곳은 어디일까. 천천히 쳐다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홀 : 궁녀들이
짝 : 아무도 없었다
"불쌍해.."
카게야마는 걸음을 멈췄다. 조심성없는 궁녀들이 다시 저희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면 역시나 그 죽은 궁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궁은 죽은 이를 빠르게 잊는다. 그러나 제 나이대의 궁녀를 쉽게 잊지 못하는, 어린 궁녀들은 상궁의 꾸지람에도 제각기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그 애 말이야, 얼마전에 궁을 나가려고 했대."
"왜?"
"몰라."
"가족도 없다며? 오라버니는 전쟁으로 죽었다고."
전쟁. 카게야마는 순간 들려온 단어에 멈칫했다.
"궁을 나가려다가 죽었으니 얼마나 불쌍해."
"왜 나가려고 했던 건지는 몰라?"
"글쎄..."
"하기야 나같아도 나가고 싶을 거야."
다른 궁녀가 대화에 끼어 들었다.
"상궁 마마께서 그 애에게 얼마나 유달리 굴었어?"
"야.."
"오라버니는 전쟁터에서 죽었대지, 그나마 제 몸 건사하려는데 매번 혼났잖아."
"...."
"혼자 쉬게 두질 않더라니까. 상궁 마마도 참 사람이 독해."
우물에 빠져 죽었으니 물귀신으로 평생 궁에서 살겠네. 궁녀들은 저희들끼리 떠들다가 뒤늦게 카게야마를 발견하고 놀라 허리를 숙였다.
"마ㅁ..토비오님."
"지나가던 길이다. 볼일들 봐라."
궁녀들은 저희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았다. 작게 떠들던 목소리가 과연 멀리 있는 카게야마에게 들렸을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들의 옆을 지나갔다. 뒤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궁녀들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 것을 확인하고, 다시 후원으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함부로 궁의 일을 떠드는 궁녀들을 혼냈을 것이나 오늘은 달랐다. 단패궁의 우물은 두 개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물맛이 나쁘다고 쓰지 않았다. 살그머니 폐우물로 가보면 닫힌 뚜껑이 열려 있었다. 카게야마는 돌을 주웠다. 작지 않은 돌을 우물의 아래로 던진다.
.
.
.
.
.
첨벙
오래전 말라붙은 줄 알았던 우물은 아직도 물이 차 있었다. 만약 이 안에 시신이 잠겨 있었다면 꺼냈을 때엔.. 그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우물의 벽에 손을 딛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귀로는 물이 어디까지 차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눈으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토비오님."
상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뒤를 돌았다. 창백한 얼굴의 상궁이 자리에 서있었다.
"무엇을 하십니까."
홀 : 섭정이
짝 : 장례는
"섭정이 시켰느냐?"
모른 척 지켜본다고 해도, 여기까지 알았다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물어보았다. 상궁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지는 압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
"어리석은 것이 밤에 물을 긷다가 헛디뎌 떨어진 모양입니다."
"...."
"마마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말하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상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카게야마 스스로가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서였을 지도 몰랐다. 어쩔 줄 몰라하는 상궁에게 한참 뜸을 들인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알겠다."
"토비오님."
"섭정이 시키진 않았단 것이지."
"그렇습니다."
궁녀들은 죽은 궁녀와, 그녀가 잃은 오라비에 대해 떠들었다. 정말 긴 전쟁이었다. 모든 건 카게야마의 키타가와를 위해서였지만 분명 희생된 사람들은 존재했다. 새삼스럽게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 채, 외면한 채, 무작정 달려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안그래도 죽은 사람은 많았다. 제 궁으로 들인 궁녀마저도 자신때문에 죽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상궁을 돌려 보냈다. 다시 한 번 우물을 들여다본다. 얼마전까지 궁녀를 품고 있던 우물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짐작할 수 있었다. 눈앞에 오사와 사야코를 생각나게 하던 작은 키의, 얌전한 얼굴이 그려진다. 흐릿하게 궁녀를 떠올려본 카게야마는 또 돌을 던져보았다. ...첨벙! 물소리가 튀었다. 우물의 벽은 카게야마의 가슴까지 올라와 단단했다. 어디 허물어진 곳도 없었다.
"나보다 키가 작았으니.."
카게야마는 우물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제법 돌로 쌓은 벽이 높았다. 어떻게 하더라도 발을 헛딛을 수는 없는 오래된 우물. 상궁은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걸까.
카게야마는 우물의 뚜껑을 닫았다.
*
궁으로 돌아오자 상궁은 초조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꼭 섭정궁의 기록을 물었던 날과 같은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코웃음을 쳤다.
"매번 건방지게 굴다가 이럴 때만 내 눈치를 보는구나."
"섭정께서는.."
"아니란 걸 알겠으니 괜히 얌전한 척 하지 말고 네코나 데려오거라."
상궁은 밖에서 놀고 있던 네코를 데려왔다. 잘 놀다가 끌려온 강아지는 심술이 났는지 카게야마의 손가락을 물었다. 카게야마는 가볍게 제압해 주둥이를 꼭 쥐고 흔들었다.
"어딜 가볼까.."
점심을 먹기엔 일렀다. 심심하니 다른 궁에라도 가보고 싶었다.
1 : 동궁
2~3 : 서궁
4~5 : 남궁
6~7 : 북궁
8~9 : 섭정궁
0 : 모두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어안고 무작정 걸었다. 길을 따라 걸으면 왠지 동궁에 도착해 있었다. 궁 앞에 선 호위가 카게야마를 보고 놀라 꾸벅 인사했다.
"우시지마님은 안에 계신가?"
홀 : 계신다
짝 : 다른 곳에
"토비오님."
호위는 어색한 말투로 카게야마를 불렀다. 남장을 한 카게야마를 처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시지마님께서는 지금 궁도실에 계십니다. 오시는 줄을 모르셨기에.."
"나도 딱히 말하고 온 것은 아니다."
카게야마는 잠시 고민했다.
1~3 : 궁도실로 가보자
4~6 : 잠시 기다려볼까
7~9 : ..돌아가자
0 : 우시지마가 오고 있었다
"..돌아가겠다."
카게야마는 아쉽게 발을 돌렸다. 동궁을 기웃거리던 네코가 카게야마의 뒤를 따랐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가 동궁에 찾아왔다가 자신을 보지 않고 돌아간 것을 호위를 통해 알게 됩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56
◇: 27 (+2)
카게야마 토비오
□: 41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더 좋을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하루 종일 혼자라면 쓸쓸할 것이다. 한 번만 더 다른 궁에 가보고 싶었다.
1~2 : 서궁
3~4 : 남궁
5~6 : 북궁
7~8 : 섭정궁
9, 0 : 리레주 지정
ㄴ남궁
"카게야마는 남궁으로 갔습니다"
그러고보면 남궁에 제법 오래 가보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걸음이 느려진 네코를 안고 남궁에 도착했다. 남궁의 호위 역시 카게야마를 보고 놀란 눈으로 인사를 했다.
"안에 계시는가?"
카게야마가 물었다.
홀 : 계신다
짝 : 다른 곳에
홀 : 쿠로오
짝 : 코즈메
"쿠로오님이 계십니다."
"..코즈메님은?"
"구할 책이 있다고 나가셨습니다."
왠지 그 남자가 추운 겨울날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일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호위를 통해 쿠로오에게 인사를 해도 되겠냐고 말을 전했다. 호위는 얼른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 문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토비오님."
참으로 오랜만의 남궁이었다.
"마..."
쿠로오는 손을 벌려 환영하려다가 그대로 굳었다. 남복을 입은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얼굴에 작게 웃었다.
"..마님?"
"..오늘은 토비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토비오라니. 여인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카게야마는 매일 자신을 볼 때마다 쨩을 붙여 이름을 부르는 다른 남자를 떠올렸다. 쿠로오의 눈이 신기하다는 듯 카게야마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 네코를 끌어안은 카게야마는 고양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워졌다.
"그럼 쿠로오님이 편하신 대로."
"마마님을 뭐라고 부르지."
쿠로오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한 쪽만 비죽하게 내린 머리카락이 장난스러운 눈을 가려 보이지 않자, 정말로 진지해 보였다.
홀 : 어떻게
짝 : 카게야마
"어떻게 불러줄까."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질문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마마님은 어떻게 불러주길 원해?"
"...."
"난 잘 모르겠으니까.."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31일마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자신의 성을 되뇌었다.
"그냥, 오늘은 카게야마라고 불러 주십시오."
"좋아. 카게야마."
그 옷 참 잘 어울리네. 쿠로오는 흔쾌히 카게야마를 불러 주었다.
"마..카게야마군. 오늘 밖에 나가는 줄 알았거든. 안 나갔네."
다른 사람도 아닌 쿠로오에게 불리니 어색하면서도, 오늘 처음 듣는 호칭이 카게야마는 좋았다. 쿠로오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대충 얼버무렸다.
"추우니까요.."
"그래도 켄마는 나가더라고. 이 추운 날에."
으, 난 추운 건 싫어. 쿠로오는 몸에 걸친 털옷을 여몄다. 부드러워보이는 털옷은 언젠가 카게야마가 궁금해하던 옷이었다.
"그 옷, 많이 따뜻한가요?"
"응. 왜? 마ㅁ..카게야마군. 궁금해?"
"네코마의 옷은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서."
홀 : 입어 볼래?
짝 : 만져 볼래?
카게야마는 물끄러미 쿠로오의 옷을 쳐다보았다. 어떤 짐승의 털일까. 긴 털이 아래로 폭포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런 옷이라면 알몸에 저 옷만 걸쳐도 따뜻할 것 같았다. 카게야마의 눈이 좀처럼 옷에서 떨어지지 않자 쿠로오는 웃으며 옷을 벗었다.
"쿠로오님?"
"카게야마님?"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말투를 따라하고는 다가와 어깨에 옷을 걸쳐주었다.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운 촉감이라 카게야마는 넋을 잃고 만져보았다.
"따뜻하지?"
"예..굉장히."
"내가 덥혀놨으니 오죽 따뜻할까."
쿠로오는 기분 좋은 얼굴로 카게야마를 보고 있었다. 정말 따뜻하네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 테츠로
○: 28 (+2)
◇: 17
카게야마 토비오
□: 31 (+2)
카게야마는 즐겁게 남궁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받았다.
"혼자 먹으면 정말 심심하거든. 카게야마님이랑 같이 먹어서 다행입니다."
"쿠로오님! 카게야마님은 좀.."
쿠로오는 재미가 있는지 카게야마에게 높임말을 썼다. 그 장난에 휘둘리면서도 과히 나쁜 기분은 아니라 카게야마는 연신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쿠로오는 자신의 옷을 입고 돌아가라고 했다. 왠지 부끄러워져 거절했다. 카게야마님은 부끄럼을 타시는구나~ 하고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시지마는 단패궁에
홀 : 찾아온다
짝 : 찾아오지 않는다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자 손님이 와 있었다.
"토비오님. 우시지마님께서 와계십니다."
"..? 우시지마님께서?"
카게야마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단패궁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주인처럼 자리한 우시지마의 얼굴은 근심이 어려 어두웠으나 곧 카게야마를 보자 밝아졌다.
홀 : 보고 싶어서
짝 : 어째서
"어째서 그냥 간 것이냐."
우시지마는 카게야마가 들어오자마자 손을 잡고 자리에 앉게 했다. 찬 손이 우시지마의 손 안에서 녹았다. 카게야마가 말할 틈도 없었다.
"야속하군. 네가 온다고 말해주었다면 나는 기다렸을 것이다."
"우시지마님의 방해가 될까하여 간 것입니다."
"내가 언제 너를 두고 방해라고 한 적이 있던가."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우시지마에게 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게야마는 잘못했다고 결국 사죄를 해야했다. 천천히 카게야마의 어깨를 감싸던 우시지마는 그제야 카게야마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는지 짧게 신음했다.
"오늘은 남복을 입었구나."
"예."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는군."
우시지마는 그리운 눈으로 카게야마의 배 윗부분을 어루만졌다. 흉터가 남아있을 곳은 우시지마의 손이 닿자 찌릿하게 반응했다. 우시지마가 속삭였다.
"언젠가 같이 함께 사냥을 나가보자. 우리 둘이서만."
"정말이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몸이 가까이 붙어 카게야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깝습니다, 하고 카게야마가 물러서면 우시지마는 순순히 밀려나주면서도 눈은 카게야마에게서 떼지 않았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56 (+1)
◇: 29 (+1)
카게야마 토비오
□: 41 (+1)
우시지마가 간 후 카게야마는 괜히 배에 남은 흉터가 신경쓰였다. 흉터를 보려고 남복을 훌훌 열어 젖히는데 상궁이 들어왔다가 깜짝 놀란다.
"토비오님!"
"오늘은 남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몸을 좀 보이는 것이 어때서."
카게야마는 일부러 상궁을 향해 옷을 젖혔다. 시중을 들면서도 많이 봤을 맨 가슴인데도 상궁은 보기 민망해했다. 살짝 봉긋한 가슴은 찬 공기에 닿아 젖꼭지가 두드러지게 서있었다. 다시 가슴을 여민 카게야마는 어쩔 줄 몰라하는 상궁에게 식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궁 안에만 있었는데,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홀 : 밤산책을 했다
짝 : 침상에 누웠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카게야마는 남복을 벗었다. 익숙한 옷을 벗고, 하느적거리는 날개같은 옷을 걸친다. 그 옷 또한 익숙하여 몸이 금방 적응을 했다. 카게야마는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마. 침수에 드시겠습니까."
"그래야겠다."
상궁은 카게야마가 남복을 벗자 도로 마마라고 불러주었다. 그런 시늉이 우스워도 필요한 것이라고 하니 막을 명분이 없었다. 카게야마는 네코를 불렀다. 하루종일 주인을 따라 쫑쫑거리며 걸었을 강아지는 용케 다시 안겼다.
"오늘은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군."
카게야마의 말에 상궁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아침의 일이 생각났을 것이다.
"..피곤하실만 합니다. 어서 주무시지요."
"...."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서늘한 밤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어둠이 일렁여 마치 물 속 같았다. 우물 안. 그 차가운 물 속. 궁에서 죽은 궁인은 나가지 못하고 혼백으로 남아 궁 안을 떠돈다고 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우물 속에 갇힌 것보다는 궁을 떠도는 것이 더 나아보였다. 뚜껑. 다 닫지 말걸. 카게야마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네코를 끌어안았다. 뜨끈한 강아지의 체온은 카게야마의 상념을 우물 속에서 꺼내주었다.
31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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