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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44. 2월 5일



거칠 것 없는 벌판. 새로 얻은 키타가와의 땅이었다. 카게야마는 옆에 선 킨다이치에게 눈짓을 했다. 킨다이치가 한 손으로 휘장을 들었다. 병사들의 함성소리에 귀가 찢어질 듯 하다. 하늘 아래에 깃발이 펄럭였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그는 근처의 조무래기 평국들을 하나하나 집어 삼켰다. 탐욕스럽게 영토를 넓히면서도 카게야마는 굶주려 있었다. 


"폐하."


킨다이치는 흥분한 병사들을 쉬게 하고 카게야마에게로 돌아왔다.


"키타가와는 서쪽에선 가장 넓은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젠."

"아직 아니야."


카게야마는 서쪽의 끝을 보았다. 더욱 풍요로운 땅이 저 태양이 잠드는 곳에 있었다. 


"서쪽에서 가장 넓은 나라는 아오바죠사이지."

"...."

"그리고 아오바죠사이와 같은 나라가 세 곳이나 더 있어."

"카게야마. 이건 어린아이의 장난이 아니야. 이번에도 이기긴 했지만 많은 병사가 죽었어."


킨다이치의 말은 매정했으나 얼굴은 안타까웠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

"안 돼."

"...어째서."

"내가 가장 강해져야 하니까."


그러면 킨다이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


오래된 꿈을 꾸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을 바라보던 킨다이치를 생각했다. 허황된 야심은 빼앗긴 왕관과 함께 단패궁 아래에 묻혔다. 그래도 자신이 키타가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좀 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욕망. 카게야마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집착과 욕심이 얽혀 머리가 무거웠다.


"마마." 


일어났음에도 조용한 카게야마를 상궁이 불렀다. 


"몸이 불편하십니까."

"..그런 것 같군."

"의원을 부를까요?"


오사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소용없는 이 목숨이라도 죽이려드니 문득 아쉬워지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상궁이 근심하며 쳐다보는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단패궁에 들어올 때는 순순히 내버리려고도 했던 목숨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어떻게든 살고 싶어졌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요 며칠 북궁에 가서 좋았다. 식사를 간단히 마친 카게야마는 무심코 북궁, 하고 말을 꺼냈다. 상궁이 고개를 젓는다.


"마마. 오늘은 다른 궁에 좀 가십시오."

"...그러면.."


곰곰히 생각해보면 동궁과 서궁을 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우시지마님. 카게야마는 살짝 고민하다가 서궁을 가겠노라고 말했다.


"서궁에 가시겠습니까."

"...북궁에 가겠다고 하면 어제처럼 또 말릴 것이 아니냐."


상궁은 얼른 서궁에 연락을 하겠다고 한 후 나갔다.


*


2월에 들어서 서궁으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새 낯설어진 길을 걸으며 카게야마는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분이 좋아보이는 카게야마의 뒤를 따르며 궁녀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서궁에 도착하자



홀 : 오이카와 

짝 : 이와이즈미



날이 풀린다고 해도 아직 쌀쌀해 카게야마는 서궁 밖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정원을 걷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화사한 옷차림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오이카와님을 뵙습니다."



홀 : 도대체가 

짝 : 누구세요

0 : 우시와카쨩이랑



"도대체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 카게야마에게 돌아온 건 또 영문모를 비난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반가움이 들기도 전이다. 카게야마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눈치를 보았다.


"오이카와님..?"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오이카와씨가 정말로 몰랐어."

"...말귀..?"

"...오이카와씨는 토비오쨩이 바보라 머리 아파."


바보 아닙니다, 라고 말하려던 카게야마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제가 오랜만에 인사를 드려서..?"

"좀 더 구체적으로."

"...?"

"...."



홀 : 아.. 

짝 : 알려 주세요



구체적. 자세하게. 카게야마는 인상을 썼다. 미간에 주름이 진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기가 막힌 듯 웃는다. 그 웃음을 보자 오이카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단패궁에 갑자기 찾아왔던 오이카와는 반지를 들먹이며 카게야마를 괴롭히다가 돌아갔다. 겨우 연결이 된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단월일날 인사를 드리지 않아서요?"

"알고 있었네. 알고 있었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를 보러 오라고 했지 우시와카쨩을 보러가란 얘기는 아니었거든."

"그때엔 못 알아들었습니다!"

"너무 당당하지 않아?"

"그럼 정확하게 말씀해주세요! 매번 말씀을 돌려 하시니까.."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왔잖아요.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토비오쨩 주제에 말은 잘 하지."


오이카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시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손 내밀어 봐."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양 손을 펼쳤다. 푸른 보석이 올라간 반지가 반짝 빛났다. 서궁에 가겠다고 하니 상궁은 서궁에서 받은 보석들을 챙겨주었다. 목에는 이와이즈미의 목걸이, 손에는 오이카와의 반지로 무거웠다. 그래도 하나만 선택하면 안 된다고 상궁은 말했다.


"...잘 끼고왔네."


보나마나 네 상궁이 챙겨준 덕이겠지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 이리저리 살피며 정곡을 찔렀다. 모른 척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손을 잡힌 채 고개를 돌렸다. 오이카와의 눈에 흰 목덜미가 보였다. 아마 목걸이 또한 옷 속에 묻혀있을 것이다. 산뜻한 어조로 오이카와가 말했다. 


"들어가자."

"이와이즈미님도 안에 계십니까?"


카게야마의 물음에 오이카와는 생긋 웃었다. 오지 않는 동안 이와이즈미가 은근히 속을 끓였다는 걸 말해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글쎄..지금쯤 설레면서 소녀처럼 발을 구르고 있겠지."

"..? 또 무슨 말씀이세요."


카게야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이카와의 뒤를 따랐다. 이와이즈미는 앉아있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들어서자 인사를 받기도 전에 카게야마, 하고 이름을 부른다. 오이카와는 그 모습을 보고 소리내서 웃었고 카게야마는 서둘러 이와이즈미에게 인사했다.


"이와이즈미님!"

"오랜만이네. 카게야마."


반가움이 담뿍 담긴 눈으로 이름을 부르니 그동안 왜 오지 않았냐고 서운해할 틈도 없었다.



홀 : 몸은

짝 : 혹시



그러고 보면 그저께 카라스노의 황자에게 카게야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간 북궁에 자주 간다는 소식도 듣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웃는 모습을 보고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 후 다시 카게야마를 보았다.


"저번에 카라스노 황자에게서 네 이야기를 들었어."

"아, 히나타님."


카게야마는 히나타와 이와이즈미가 마주쳤던 것을 떠올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황자가, 카게야마 너를 참 좋게 여기더라."

"카라스노의 꼬맹이가?"


오이카와가 코웃음을 쳤다. 


"카라스노들은 그다지 신용이 안 가. 후계자들끼리 대놓고.."

"오이카와. 카게야마가 있잖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말을 막았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래도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이 좋았다. 못 들은 척 히나타님은 좋은 분이세요. 라고 말하면 오이카와는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이와이즈미는 잠시 갈등했다. 히나타가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굴었다는 걸 말해준다면 카게야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좀 더 자신에게 의지하게 하고 싶다. 좀 더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고 싶다. 적어도 다른 나라의 사람에게는.. 욕망이 이와이즈미를 무겁게 괴롭혔다. 


"이와이즈미님?"


카게야마가 이와이즈미를 쳐다본다.



홀 : 아무것도 

짝 : 그런데



"아무것도."


이와이즈미는 겨우 결정했다. 히나타와 했던 이야기는 자신과 히나타만의 이야기였다. 카게야마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와이즈미님. 어디 아프신가요?"

"이와쨩이 아플 리가."


오이카와는 손끝으로 찻잔을 빙그르르 돌렸다. 


"이와쨩 참 복잡하게 살지."

"시끄러워. 오이카와."


카게야마는 다투는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보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오이카와가 하지 못한 말은, 카라스노의 후계싸움에 대한 것일 것이다. 얼마나 잔혹하기에 이와이즈미가 말을 막았을까. 


"어..?"


카게야마는 자신의 손 안에서 빠져나간 찻잔을 보고 놀랐다. 고개를 들면 오이카와가 손가락으로 찻잔을 허공에 띄운 채였다.


"오이카와님!"

"토비오쨩. 딴 생각하네."

"뭐? 카게야마. 몸이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이와이즈미가 물었다



1~3 : 아니에요 

4~6 : 늘 제 걱정만을

7~9 : 다른 생각을 조금.. (위험도 +1)

0 : 히나타님의 생각을 잠시 (위험도 +3)



"아니에요."


눈을 몇 번 깜박인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다른 말을 해서 이와이즈미를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님을 오랜만에 뵈어서 그런가봐요."

"..낯설어?"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반가워서."


오이카와씨는? 오이카와가 불쑥 끼어들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제 찻잔 돌려 주세요!"

"이건 서궁 물건이니까 토비오쨩 것도 아니야."

"윽..!"


이와이즈미는 결국 일어나 오이카와의 손에서 찻잔을 빼앗아 주었다. 따뜻하게 끓인 새 차를 부어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카게야마가 생긋 웃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 42 (+2)

◇: 33

카게야마 토비오 

□: 33 (+2)


이와이즈미 하지메

○: 50 (+2) 

◇: 27

카게야마 토비오 

□: 47 (+2)



모처럼 서궁에 왔는데 다른 궁의 생각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배웅을 해주겠다는 이와이즈미와 함께 카게야마는 정원을 나왔다. 2월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매화가 움틀 준비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진한 매화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 아래로 붉은 동백과 희고 노란 수선화가 가득 넘실거렸다.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은 봄이 될 수록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꽃이 필 준비를 하는 매화 나무 아래에 선 카게야마를, 이와이즈미가 불렀다.


"카게야마."


예? 하고 부르면 이와이즈미가 조심스레 카게야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가만히 품에 안기자 속삭이는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았어."

"..저도 이와이즈미님을 보고 싶었어요"

"정말 몸은 괜찮아?"

"예."


그래. 그럼 됐어.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를 놓아주었다.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를 보다 말고 문득 들린 울림에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피어나는 소리. 이와이즈미도 카게야마를 따라 올려다보았다. 


"이와이즈미님. 저기 매화가 폈네요."


카게야마의 손끝이 나무 위에 홀로 먼저 피어난 꽃송이를 가리켰다. 이와이즈미는 그 손가락 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꽃에 둘러싸여 온 몸에 꽃내음이 나는 것 같다. 카게야마는 부드럽게 떨어지던 이와이즈미의 포옹을 생각했다. 다정한 눈동자는 카게야마를 반갑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패궁에 돌아와 멍하니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하고 있으면, 네코가 놀아달라고 손가락을 깨물었다. 카게야마는 단숨에 네코를 끌어안고 앞발을 잡아 흔들었다.


"이 놈!"


낑낑거리면서도 꼬리를 친다. 카게야마는 통통한 배를 긁어준 뒤 내려놓았다. 식기를 나르는 궁녀들을 감시하던 상궁은 오늘 서궁에서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카게야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은근히 몸이 쑤셨다. 카게야마는 궁에 있으라는 상궁의 말에도 슬쩍 일어났다. 주인만을 쫓는 눈이 금방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마마. 나가십니까."

"아.. 책이나 빌려 볼까."

"...."


상궁은 못미더워하면서도 카게야마를 보내주었다. 전에 네코를 서고에 데려가보았지만 책이 망가질까봐 오히려 걱정이었다. 따라가려는 네코를 궁 안에 밀어넣은 카게야마는 궁녀 두엇을 데리고 서고로 향했다. 혹시 모르던 일을 알게 될 지도 몰랐다. 



1~3 : 코즈메 

4~6 : 츠키시마

7~9 : 킨다이치

0 : 세 인물 중 리레주 지정



서고에 가면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었다. 누구인지 고개를 빼고 쳐다보던 카게야마는, 어둠 속에서 고양이처럼 빛나는 눈을 발견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였다.


"코즈메님을 뵙습니다."

"안녕. 카게야마."

"오늘도 책을 읽으십니까?"

"응.. 딱히 할 일도 없고."


할 일이 없어 서고로 온 건 카게야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홀 : 그러면 

짝 : 그건



"그러면 저와 놀아요. 코즈메님."

"..어?"

"매번 책만 읽으십니다. 심심하지 않으세요?"


카게야마의 말에 코즈메는 눈을 깜박였다. 그는 쿠로오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책을 읽을 때 방해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심심하지는 않은데."


코즈메는 넘기던 책장을 멈췄다.


"재밌던 적도 별로 없어."

"그렇다면 무엇을 재밌어하십니까?"

"..글쎄."


곰곰히 생각하던 코즈메는 눈을 올렸다. 호기심에 찬 카게야마의 얼굴이 가득 들어왔다. 예측할 수 없고, 늘 예상을 벗어나는 것. 서고에서 만난 카게야마가 같이 놀자고 조르는 건 확실히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여기서 무얼 하고?"


코즈메는 창에서 어렴풋이 빛이 들어오는 서고를 둘러보았다. 곧 눈을 내리깐 코즈메의 얼굴은 작고 아름다워서,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열중했다. 늘 품에 안고다니는 고양이같다. 


"코즈메님."



홀 : 머리카락을 

짝 : 손을



빛이 뿌옇게 코즈메를 감쌌다. 꽃가루처럼 날리는 서고 안의 공기는 포근했다. 카게야마는 코즈메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코즈메님.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머리카락을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


신기한 색의 머리카락은 처음 봤을 때부터 만져보길 원했다. 코즈메는 놀란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은 왜?"

"묶어보고 싶었습니다."

"..묶어?"


카게야마는 코즈메의 뒤로 가 천천히 단발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어릴 때 아버지 몰래 머리를 기르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킨다이치와 쿠니미는 머리가 길면 곱게 묶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번번히 기르기도 전에 제 손으로 잘라야 했다. 카게야마는 아직도 머리가 짧았다. 이제는 짧은 머리가 편하더라도, 코즈메의 단발을 보자 왠지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음대로 해."


코즈메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려다가 눈을 감았다. 머리를 쓰다듬는 근질근질한 손놀림은 가끔 등골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궁녀들의 익숙한 손과는 다른.. 어색하고 상냥한 손가락들. 카게야마는 살짝 손으로 쥐었다가 훅 떨어트렸다. 옅은 금색의 머리카락들이 아래로 쏟아졌다.


"저기,"



1~3 : 이게 노는 거..?

4~6 : 기분 좋아? 

7~9 : 더 만져줘 (위험도 +1)

0 : 나도



"기분 좋아?"


코즈메는 살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예. 다른 사람 머리 만지는 건 기분 좋네요."


카게야마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속의 두피를 건드렸다. 손끝이 머릿속을 두드리다가 목덜미를 스친다. 조금 오싹해져 코즈메가 어깨를 움찔하면, 카게야마가 놀라서 손을 뗐다.


"제가 코즈메님을 아프게 했습니까?"

"그런건 아니고.."

"조심했는데."


카게야마는 여자답지는 않은 제 손을 활짝 펼쳤다. 코즈메의 눈이 고개숙인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쿠로오의 것만큼 검지만 매번 뻗쳐있는 것과 달리, 카게야마는 반질반질 윤이 흘렀다. 코즈메는 손을 조금 들었다가 그만 두었다.


"코즈메님..?"


뒤늦게 카게야마가 코즈메를 불렀다. 코즈메는 자신의 머리를 한 번 만져보았다.


"나도 다른 사람이 머리 만져주니까 기분.. 괜찮네."


머릿속을 카게야마의 손가락이 온통 헤집은 느낌이었다. 



코즈메 켄마

○: 24 (+2)

◇: 17

카게야마 토비오 

□: 27 (+2)



코즈메와 놀겠다고 했지만 결국 서고에서 내내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렸다.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져본 적은 없지만, 코즈메의 머리카락과 비슷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면 코즈메는 이상한 얼굴이었다.


"..난 여인이 아닌데."

"..! 아, 저, 불쾌하셨나요?"

"딱히, 불쾌하진 않지만.."


코즈메는 책 위에 얹은 손을 도도독 두드렸다.


"....아니. 불쾌한가?"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몇 번이나 사과를 했다. 그렇다면 다음에 남궁에 올 땐 머리에 장식을 하지 말고 와. 라고 코즈메가 말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카게야마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


카게야마는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머리 장식들을 떼어내고 잠자리 옷으로 갈아입는다. 기다리던 상궁이 얼른 카게야마를 자리에 앉게 하고 머리를 빗어주었다. 


"조심히 다니시면 제가 매번 빗을 일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으니 장식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탓이겠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카게야마는 우겼다. 상궁은 말없이 머리만 빗는다. 아까보다 조금 아플 정도로 머리를 빗는 상궁에게 카게야마가 말했다.


"다음에 남궁에 갈 때엔 장식을 뗄 것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코즈메님께서 하지 말고 오라고 하셨어."

"그래도 그렇지.."


상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헌데 코즈메님의 요청에 바로 따라주시는군요."


카게야마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침상에 푹 누우면 네코가 같이 올려달라고 조르듯 짖었다. 웃으면서 콧등을 손가락으로 튕겨낸다.


"싫어."


낑낑거리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적당히 놀린 다음에 강아지를 올려주면 서럽게 품을 찾았다. 귀여우니까 놀린 것이다. 하고 달래고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코 끝에는 꽃향기가 아직 남아있고 손 끝에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남아있다. 온통 아름다운 것들 뿐. 카게야마는 기분 좋게 잠들었다.  




5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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