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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42. 2월 3일



도망치자   여기서     

          우리

  같이 도망치자 

                   혹시

   도망치자 

해줘

               같이 도망치자 

   모두

              도망치자             

                        가자 



같이 


가자



카게야마는 쉽게 눈을 떴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부셨다.


"꿈..못 꾼 것 같아."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둥지 밖으로 날아가는 새의 꿈을 꾸고 싶었다.


*


간밤 먹었던 팥죽으로 아침을 대신하겠다고 하자 상궁은 고개를 저었다.


"마마. 골고루 드셔야 합니다."

"가볍게 먹고 싶은데 말이 많구나."

"이때에는 더 잘 드셔야 합니다."


상궁은 카게야마를 달래며 억지로 식사를 마치게 했다. 속이 더부룩하여 체기가 있는 것 같았다. 괜히 상궁이 시끄럽게 굴까 싶어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북궁..가볼까. 카게야마는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다. 오늘 입맛이 없는 것도 그때문은 아닐까. 카게야마는 시무룩해하던 히나타가 떠올랐다.


"북궁에 가보겠다."

"오늘도 북궁에 가십니까."


상궁은 의외라는 목소리였다.


"요즘은 북궁을 자주 찾으시는군요."


따로 할 말이 없어 카게야마는 묵묵히 옷을 입고 단패궁을 나왔다.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후두둑 나무 위에서 새가 날았다. 그 새를 눈으로 따라 가보면 어느새 북궁에 도착했다. 



홀 : 히나타 

짝 : 츠키시마



"히나타님."


카게야마가 조용히 히나타를 불렀다. 정원에 선 히나타는 평소와 달리 공을 들고 있지 않았다. 히니타를 부르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주황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깜짝 놀란 것처럼 카게야마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토비오?"

"히나타님을 뵙습니다."

"....오늘도 와줬네."



홀 : 내가 

짝 : ....

0 : 있잖아



평소와 달리 먼저 다가오지 않는 히나타를 카게야마는 어떻게 대해야할 지 몰랐다. 둘의 관계는 늘 히나타가 손을 내미는 것부터 시작했다. 히나타에게는 그런 부담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어라고 이야기를 꺼내야할 지 모르는 카게야마에게, 히나타가 먼저 말했다.


"내가.."

"히나타님?"

"내가 어젠 미안했어."

"...예?"


히나타는 얼굴을 붉혔다.


"생각해보니까, 토비오랑 있는 게 좋아서 내가 너무 제멋대로 군 것 같아."

"아..."

"그리고 나도..츠키시마에게 네 몸상태에 대해서도 들었고."


카게야마의 얼굴도 같이 빨개졌다. 


"괜찮습니다. 히나타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아니야! 여자들은 힘든 점이 많다고 하더라고."


히나타는 이제 귀끝까지 달아올라 있었다. 푸릇한 북궁의 정원이라고는 하나 아직 겨울. 그럼에도 카게야마는 부끄러워 몸이 덥게 느껴졌다. 히나타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내가 여자에 대해선 잘 몰라. 그게,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건.."

"네.."

"나는 토비오가 첫 여자가 될 테니까, 그래서..잘 몰랐지만 앞으론 많이 배워둘게."


함부로 같이 날자고도 하지 않을 거야. 히나타는 의젓하게 말했다.

카게야마는



홀 : 그렇지만

짝 : 네



"네."


어떤 대답을 해야할 지 몰라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엔 첫 여자나 배우겠다는 말이 뒤죽박죽 섞여 어지러웠다.


"응..그러니까 나 싫어하지 마. 자꾸 왜 뒤로 가?"


자신도 모르게 히나타에게서 조금씩 물러서고 있던 모양이었다. 히나타가 그것을 지적하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부끄러워서.."

"나도 부끄럽지만 난 토비오 안 피해."


히나타가 성큼성큼 다가와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정말 이 손이 형제를 죽였을까. 카게야마의 생각이 깊어지기 전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잡아당겼다.


"카게야마. 저 나무 보러가자."

"히나타님?"

"조금 있으면 부화할 거야. 계속 어미가 품고 있어."


나무 아래로 가보니 정말로 작은 새가 둥지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언제 태어날까요?"

"글쎄.."

"...."

"...."


히나타와 카게야마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둘은 곧장 북궁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는 츠키시마를 괴롭혔다.


"츠키시마님을 뵙습니다. 혹시 새는 언제 태어나나요?"

"...뭐?"

"츠키시마! 알 언제 깰 수 있어?"

"알을 깨?"


츠키시마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저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쳐다보기만 했다. 


*


츠키시마는 부족한 설명을 들은 후(나무에 새가 있는데! 계속 앉아 있어! 언제 나와?) 보통은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해주었다.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보며 웃었다.


"히나타님. 그러면 2주 뒤에는 새끼 새를 볼 수 있겠습니다."

"막 태어난 새끼는 털이 안 나서 징그럽잖아."

"그래도 작아서 귀여워요."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꼭 다시 와야 돼."


히나타의 말에 카게야마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츠키시마는



홀 : 왕님이 안 오면

짝 : 2주 뒤에



"2주 뒤에나 오겠단 말을 하는데 히나타 너는.."


츠키시마가 히나타를 타박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꼭 그때만 오겠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아. 그래? 왕님은 어차피 동궁이나 서궁에 가는 줄 알았지."


묘하게 시비를 거는 말투였다. 카게야마가 발끈했다.


"어제도 북궁에 왔고 오늘도 왔는데 츠키시마님께선 늘 저를 못마땅해 하시는군요!"

"섭정궁을 제외하고는 북궁에 제일 오지 않는 왕님이라 그래."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문안인사를 갈 때마다 어디를 가는지를 기록해두고 있었다. 그 사정을 모르는 카게야마에겐 불합리한 핀잔이었다. 



홀 : 그러니까

짝 : ..섭정궁에?



그래도 흘려들을 수는 없는 말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눈을 들어 츠키시마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검푸른 눈이 찌를 듯 응시하자 츠키시마는 슬그머니 등을 뒤로 기댔다.


"섭정궁에 제가 가장 적게 갔습니까?"

"....별로 의식하고 있진 않나보지? 난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걸 츠키시마님께선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대답은 하지 않고, 질문만이 계속된다. 츠키시마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전까진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여자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섭정궁에서 찾아왔던 장군을 상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섭정궁은 히나타에 대해 알게 된 걸 카게야마에게도 말해주었을까. 아마 말했을 것이다. 그래도 피하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눈앞에 있는 여자는 전쟁터에서 자란 왕이 맞았다.



1~3 : 히나타 

4~6 : 습관이야

7~9 : 왜 대답해야 하지? (위험도 +2)

0 : 북궁에 와주길 바라고 있으니까 (호감도 +3 위험도 +3)



"히나타."


츠키시마는 등을 기댄 채 히나타를 불렀다.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던 히나타는 츠키시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왕님에게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을 생각이야?"

"아..! 토비오. 먹고 싶은 거 있어?"


히나타의 말에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츠키시마가 말을 돌리는 걸 눈치챘어도, 더이상 캐물을 수 없는 위치였다.


"...없습니다."

"왜?"

"배..별로 고프지 않아요."


히나타는 그래? 하고 카게야마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체기는 가신 것 같아 카게야마도 조심스레 따라 웃었다. 츠키시마는 그런 둘을 살펴보고는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히나타 쇼요

○: 25 (+2)

◇: 19

카게야마 토비오 

□: 23 (+2)


츠키시마 케이(카라스노, 보좌) 

○: 39 (+1) 

◇: 28

카게야마 토비오 

□: 31 (+0)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막 끓인 차를 가져다 주었다.


"여자는 따뜻하게 해줘야 한댔어."

"그러고보니 전보다 훨씬 궁이 따뜻하네요."


익숙해진 따뜻함에는 쉽게 그 고마움을 잊는다.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 카게야마에게 히나타가 활짝 미소지었다.


"토비오가 춥다고 해서, 따뜻하게 해두라고 했어."

"..감사합니다."

"내가 따뜻하게 해준다고 했잖아."


카게야마는 뭐든 솔직하게 말하는 히나타가 부럽고도 좋아졌다. 


*


단패궁에 돌아왔다. 내친김에 상궁에게도 궁이 따뜻해서 좋다고 카게야마가 말했다. 상궁은 놀라서 밖이 그렇게 춥냐고 되물었다.


"마마. 추우시다면 옷을 새로 짓게 하겠습니다."

"...그런게 아니다."


카게야마는 조금 부끄러워 상궁에게 손을 내저었다.



1~2 : 후원

3~4 : 궁도실 

5~6 : 서고

7~9 : 단패궁 

0 :



점심을 먹고, 밖에 나가보겠다는 카게야마를 상궁이 잡았다.


"추우시다면서 왜 또 나가시려고 합니까."

"...."


따로 변명할 말이 없어 카게야마는 상궁의 말을 따랐다. 하긴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네코를 찾았다. 그러나 밥을 먹고 막 잠이 든 네코는 카게야마가 불러도 꼬리만 흔들 뿐 일어나지 않았다. 



홀 : 손님이 찾아왔다  

짝 :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봄이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아직 날은 추웠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방문에 얼굴부터 찡그렸다. 상궁이 조심스레 여쭸다.


"섭정 전하를 뵙고 싶지 않으시다면 주무시겠다고 전하겠습니다."

"...온 사람을 또 어떻게 가라고 하겠느냐."


문이 열렸다. 단정하게 섭정관을 쓴 쿠니미가 들어왔다. 카게야마는 그 깨끗한 얼굴을 보며 단패궁 뒤의 우물을 생각했다. 물처럼 맑은 쿠니미의 얼굴엔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카게야마는 쿠니미에게 의자를 권하며 물었다.



홀 : 뵙고 싶어서 

짝 : 지나다가다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말에 대답대신 찻잔을 내밀었다. 쿠니미는 양 손으로 잔을 받은 후 상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약을 먹어 의원이 차를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치료는 하고 있구나."

"곧 날이 풀리니 더 좋아질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말에 기분이 풀렸다. 듣기 좋은 목소리로 쿠니미는 천천히 말을 했다. 킨다이치가 키가 더 커서 관복을 새로 지어야한다는 것. 단패궁으로 보낸 예산이 남으니 카게야마가 좀 더 사치를 부려도 된다는 것. 쿠니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무탈하고 평화로웠다.


"폐하."


쿠니미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 카게야마를 불렀다.


"고개를 좀 들어주십시오. 뵙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참 이래라 저래라 주문도 많군."

"좀처럼 섭정궁에 와주시지 않으니 그리워서 그럽니다."

"지겹게 본 얼굴 또 보아서 무엇하려고."


그래도 카게야마는 쿠니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잔잔히 웃는 쿠니미의 눈과 마주쳤다. 



홀 : ..웃지마

짝 : ....



어릴 적부터 줄곧 보아왔던 쿠니미였다. 알 수 없게 된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쿠니미의 눈은 여전히 쿠니미라, 카게야마는 늘 쿠니미를 마주하면 혼란스러웠다.


"...."


카게야마는 잠시 쿠니미를 보았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카게야마의 옆모습을 쿠니미는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오늘 쿠니미와의 시간이


1~3 : ...어서 돌아가 (호감도 +0)

4~6 : 섭정이 치료에만 전념했으면 (+1) 

7~9 : 내 친구 (호감도 +2)

0 : 사실은 나도 늘 보고 싶어 (호감도 +3)



쿠니미는 오늘 카게야마와의 시간이


1~3 : 반가웠다 (호감도 +1) 

4~6 : 소중한 시간 (호감도 +2 위험도 +1)

7~9 : 손에 닿을 듯 가까워 (호감도 +3 위험도 +2)

0 : 나 좀 봐 (호감도 +3 위험도 +3)



쿠니미는 잠시 후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려고 말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문다.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어서 돌아가 쉬었으면 했다.


"섭정."

"예."

"당분간은 치료에만 전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폐하가 걱정해주시는 걸로도 충분히 다 나은 듯 합니다."


쿠니미는 마시지 못한 차를 다시 카게야마에게 돌려주었다. 이미 식은 찻잔 속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비췄다.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만나주셔서 그저 기쁩니다."

"...잘 가."


카게야마는 손을 흔들었다. 쿠니미는 놀란 얼굴로 멈칫했다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창가에 선 카게야마는, 섭정궁으로 절뚝이며 걷는 발소리를 오랫동안 들었다.



쿠니미 아키라

○: 29 (+1)

◇: 35

카게야마 토비오 

□: 28 (+1)



"마마. 잔을 치우겠습니다."


카게야마는 침상 옆의 그림을 꺼내어 보고 있었다. 휘장을 친 너머로 상궁이 묻자 카게야마는 얼굴을 내밀어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냥 둬라."

"이미 식은 차인데."

"오늘은 그냥 둬."


주인의 변덕에 상궁은 군소리 없이 물러났다. 카게야마는 네코를 끌어안고 그림을 보았다. 어린 쿠니미와 킨다이치가 카게야마의 옆에 서 있다. 네코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핥으려고 하자 카게야마는 살짝 콧등을 때렸다.


"이 놈. 안 돼."


네코는 불쌍한 소리를 내다가 이불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림을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는다. 귀를 기울이면 궁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궁녀들의 발자국 소리. 정원 호수의 살얼음이 깨져 녹아가는 소리. 멀리서 밤새가 꾹꾹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밤에도 실상은 이렇게나 시끄럽다. 카게야마는 다시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바로 옆자리, 작은 강아지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그것이 사랑스러워 카게야마는 강아지를 꼭 끌어안았다. 



3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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