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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72. 3월 3일



츠키시마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경은 없었다. 츠키시마의 눈을 들여다보며 카게야마는 그의 눈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섬세한 이목구비. 흰 피부. 애써 입술을 깨물며 흥분을 참으려하는 얼굴은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츠키시마님.."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벗은 몸이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


"제가 싫었던 게 아니세요?"


찡그린 얼굴은 곧 풀려 카게야마의 입술 위로 내려왔다.


"싫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 했잖아."


정말 귀찮은 왕님. 몇 번을 말하게 해. 부드러운 입술이 가볍게 카게야마를 더듬다가 이마로 올라왔다.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카게야마는 몸을 꼬았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마.."

"....?"

"카게, 야마.."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 츠키시마와 밤을 다음날 아침. 그는 분명히 카게야마를 그렇게 불렀었다. 왠지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츠키시마님, 하고 부르기도 전에 다시 입술이 부딪혔다. 



츠키시마 케이에 대한 호감도가 50 이상이므로 카게야마가 츠키시마의 꿈을 꾸었습니다



츠키시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그렇게 원한 걸까. 카게야마는 괜히 부끄러워 달아오른 뺨을 한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상궁은 조심스레 카게야마를 살핀 후 물었다. 


"마마. 지금쯤이면 의원들이 왔을 것입니다. 들게 할까요?"

"음...."


당장 의원을 부르고 싶어하는 상궁의 모습을 보며 카게야마는 생각에 잠겼다.



1~5 : 그래

6~0 : 아니



아침부터 사람을 불러 회임이 기다 아니다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오사와 대신의 집에 한 명도 남김없이 다녀왔으니 오자마자 챙길 일도 많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면 상궁은, 카게야마의 몸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했다.


"마마. 제가 오늘만을 기다려왔는데.."

"시끄럽다. 그이들도 좀 쉬어야 더 정확히 내 몸을 봐줄 것이 아니냐."


카게야마는 안타까워하는 상궁을 무시하고는 아침식사를 했다. 몇 술 뜨다가 도로 물린다. 조금 더 먹어보라고 상궁이 권했으나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1~2 : 동궁

3~4 : 서궁

5~6 : 남궁 

7~8 : 북궁

9~0 : 섭정궁



카게야마의 츠키시마에 대한 호감도가 50 이상이므로, 문안인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츠키시마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후의 수치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만난 상대의 위험도가 선택지에 따라 +3 혹은 _5로 오르게 됩니다. 카게야마의 호감도는 전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북궁의 츠키시마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잠시 망설였다. 아침에 그런 꿈을 꾸었으니 만나게 된다면 무척 부끄러워질 것이다. 북궁, 이라고 말하려던 카게야마는 지난 번 자신에게 약을 발라주었던 남궁을 떠올렸다. 다음 날 우시지마가 낫게 해주었지만, 가장 먼저 알아차려준 건 남궁의 사람들이었다. 감사 인사를 드려야할 것 같았다. 


"남궁에 가봐야겠다."

"남궁에 가십니까."


상궁은 카게야마의 옷을 정돈해주며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서궁에는 도통 가시질 않는 군요."

"서궁..."


카게야마는 가볍게 읊조려보았다. 확실히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상궁이 살짝 카게야마의 안색을 살폈다. 마마, 남궁에 가시겠습니까? 물어오는 말에 카게야마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


카게야마는 단패궁을 나왔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눈앞을 지나갔다. 그것을 잡아보려고 손을 뻗으면 궁녀들이 뒤에서 후후 웃는 소리가 들렸다.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던데."


카게야마의 혼잣말을 따르던 궁녀가 받아 말했다.


"마마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벚꽃잎따위는 잡지 않으셔도, 이루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카게야마는 머리 위로 높게 날아가는 벚꽃잎을 보았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서는 아마도 저 멀리, 궁의 바깥에 있는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남궁에 도착했다. 새하얀 벚나무들이 흔들려 시야가 어지러웠다.



홀 : 쿠로오 

짝 : 코즈메



그 벚나무 아래엔 쿠로오가 서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한 눈을 가릴 정도로만 내리고 있다. 쿠로오를 발견한 카게야마는 서둘러 쿠로오에게 인사했다.


"쿠로오님을 뵙습니다."

"마마님."


쿠로오는 성큼 다가와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마님. 손."

"..오늘은 졸리지 않아요. 쿠로오님."

"에이..마마님 손 잡기 힘드네."


카게야마가 양 손을 뒤로 감추자 쿠로오는 아쉽다는 얼굴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샅샅이 훑는 눈. 카게야마는 쿠로오가 무엇을 찾는 줄 알고서 쑥스럽게 목을 만졌다.


"발라주신 약 덕에 다 나았습니다."

"켄마가 정말 걱정했거든. 가서 보여주면 좋아하겠다."

"그런가요?"


걱정해주는 호의가 감사했다. 카게야마는 다정한 말에 웃었다가, 불쑥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쿠로오님."

"응?"

"쿠로오님께서도 제 이름은 불러주시지 않네요."



홀 : 이름이 

짝 : 누가



츠키시마는 꿈에서나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주었다. 생각해보면 쿠로오 또한 카게야마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적이 없었다. 왕님이라는 비꼬는 호칭보다야 이제 듣기엔 익숙해졌지만, 처음에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카게야마가 그렇게 물어보면 쿠로오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마마님. 나한테도 이름을 불리고 싶어? 누가 또 그러나봐?"


쿠로오님께서도, 라는 건 카게야마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다른 이가 있단 뜻이었다. 앞에서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줄도 모르고 카게야마는 놀란 눈을 했다.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이었다. 


"츠키시마님께선..저를 항상.."

"응. 항상?"

"...왕님이라고 부르십니다."


어지간히 그 호칭이 싫은 지 카게야마는 말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가짜 왕노릇을 하고 있던 여자에게 왕님이라고 부르다니 호감을 살 생각은 아예 없어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일부러 모진 호칭을 계속 쓰는 이유가 따로 있을 지도 몰랐다. 쿠로오는 츠키시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나 카게야마에 대해선 알았다. 좋아하게 되면 곤란해질 것 같은 여자였다.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목덜미를 눈으로 확인하고 물었다.


"그게 싫은가봐. 왕님이란 거."

"볼 때마다 그렇게 부르셨거든요."

"하하. 성격 나쁘네."

"어제는 안 그러셨지만..그래도."



홀 : 카게야마 (위험도 +3, 호감도 +1)

짝 : 들어갈까? (위험도 +3)



어제는, 이란 말은 어제 만났단 뜻이다. 자각없이 늘어놓는 다른 남자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불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카게야마를, 쿠로오는 손가락으로 콕 건드렸다. 말랑한 볼은 쿠로오의 손가락에 찔려 쑥 눌렸다. 카게야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들어갈까?"

"아, 예."

"켄마가 기다리니까 말이야."

"켄..코즈메님."


무심코 쿠로오를 따라 켄마라고 할 뻔한 카게야마는 얼른 고쳐말했다. 평소라면 그것을 귀엽다 해주었겠으나, 그러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쿠로오는 카게야마를 위해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쿠로오님은 안 들어가시나요?"

"벚꽃이 좋네. 구경 좀 하다 갈게."

"...."


의아한 눈으로 쿠로오를 올려다본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쿠로오는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의 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문이 닫은 후 그는 등을 돌렸다. 


*


코즈메는 산쇼쿠를 쓰다듬으며 느슨하게 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카게야마가 들어오자 서둘러 다시 앉는 모습을 보고, 카게야마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코즈메님. 쿠로오님께선 밖에서 벚꽃을 보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쿠로가?"


네코마에서 지겹도록 보았을 벚꽃이었다. 따로 구경할 이유가 없다. 카게야마는 몰랐겠지만..코즈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타가와의 벚꽃, 예쁘니까."

"그렇지요?"


카게야마는 즐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홀 : 고양이 

짝 : 목



코즈메와 대화를 하는 사이 산쇼쿠가 풀썩 내려왔다. 코즈메의 무릎을 떠난 고양이는 꼬리를 구불구불 움직이며 카게야마에게로 다가왔다.


"산쇼쿠..?"


갑자기 다가온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면, 산쇼쿠는 길게 야옹 울며 카게야마의 몸에 머리를 비볐다. 동그랗고 조그만 머리가 카게야마의 손과 배에 닿았다. 카게야마는 웃었다.


"쓰다듬어달라는 거야?"

"카게야마가 좋은 가봐."


코즈메도 조금 신기한 얼굴로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순한 모양으로 머리를 비비던 산쇼쿠는 카게야마의 손 안쪽을 파고들어 풀썩 무릎 위로 올라왔다. 배에 머리를 기댄 고양이는 이상하게도 얌전했다. 카게야마는 그런 산쇼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따라 착하네."


저번엔 날 긁어놓고. 그렇게 말하며 쓰다듬으면 산쇼쿠는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홀 : 고양이는

짝 : 아참



배에 따끈한 것이 닿아 기분 좋았다. 카게야마는 조심조심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를 보고 있던 코즈메는 생각났다는 듯 아참, 하고 옆에 두었던 것을 꺼냈다.


"카게야마. 저기,"

"예. 코즈메님."

"저번에 다친 목은 다 나았어?"


코즈메가 많이 걱정해주었다고 들었다. 그제야 카게야마는 자신이 왜 남궁에 왔는 지를 떠올렸다.


"코즈메님께서 발라주신 약때문에 다 나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러면서도 코즈메는 카게야마에게 준비했던 걸 내밀었다. 아기자기한 청자기였다.


"계절이 바뀌는 때는 목이 상하기 쉬우니까.. 이거 먹어."

"약인가요?"

"차야. 마시면 좋아. 감기에도."


카게야마는 자기에 딸린 뚜껑을 열어보았다. 향긋한 냄새의 차가 훅 풍겼다.



1~3 : 감사합니다 

4~6 : 좋은 냄새네요

7~9 : 읍.. (위험도 +2)

0 : 우와.. (위험도 +2)



기분 좋은, 새콤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네코마에서 저번에 마셨던 차보다 더욱 새콤했다. 강아지처럼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카게야마를 보며 코즈메는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코즈메님."


카게야마는 따라온 궁녀에게 차를 내밀었다. 소매 밖을 빠져나온 손이 보물처럼 차를 건네준다. 크게 잘해준 것도 아닌데, 자신이 대단한 일이라도 해준 것 같았다. 몸에 좋으니까 자주 마셔.. 코즈메는 눈을 살짝 옆으로 돌리고서 말했다.



쿠로오 테츠로

○: 63 

◇: 35 (+3)

카게야마 토비오 

□: 62 (+0)


코즈메 켄마 

○: 41 (+2)

◇: 30

카게야마 토비오 

□: 48 (+2)



카게야마는 기분 좋은 얼굴로 차를 안고서 남궁을 떠났다. 쿠로오는 한참 뒤에나 궁에 돌아왔다. 산쇼쿠의 털을 손으로 빗어주던 코즈메는 불쑥 물었다.


"쿠로. 왜 피했어?"

"켄마는 정말 눈치가 빠르네."


쿠로오는 털썩 앉았다. 야옹, 하고 털을 세운 산쇼쿠가 후다닥 도망쳤다. 마치 타이르듯이 코즈메는 말했다.


"카게야마가 계속 쿠로가 들어오지 않는 지 찾았어."

"그래? 기쁘네."

"...무슨 일 있었어?"


코즈메의 시선이 뚫어져라 닿고 있었다.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봤다간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 없었다. 쿠로오가 말해줄 생각이 없는 걸 알아차린 코즈메는 손에 잡힌 방석을 던졌다. 아, 아파. 켄마. 피할 수 있는 걸 맞아주며 쿠로오는 웃었지만 그래도 코즈메에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단패궁으로 돌아가는 동안, 카게야마는 



홀 : 누군가와 마주쳤다

짝 : 아무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남궁에서 차를 받았다고 말을 하려 고개를 돌리면, 의원이 카게야마의 아래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게 하자 의원은 황송해하며 주춤주춤 일어섰다.


"마마. 소신이 감히 마마의 몸을 좀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카게야마는 소매를 걷어올렸다. 옆을 보자 상궁이 훨씬 더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굳은 얼굴을 보고 카게야마는 킥킥 웃었다.


"나보다 네가 더 유난이구나."

"마마. 말씀을 하시면 맥이 잡히지 않습니다."


카게야마의 손목을 받쳐 들던 의원이 주의를 주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의원의 하는 양을 보았다. 눈을 감고서 미간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저었다가, 또 다시 다른 곳을 짚어보며 몇 번을 반복한다. 아마도 회임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카게야마는 손목을 내어준 채로 눈을 돌렸다. 낯선 이가 카게야마의 몸에 손을 대자 짖던 네코는, 궁녀가 안아주자 금방 꼬리를 흔들었다. 저, 저 지조없는 것. 카게야마는 혀를 찼다. 그 순간 의원이 눈을 떴다.



1~9 : 감축드리옵니다

0 : 몸살이십니다...



의원은 카게야마에게서 손을 뗐다. 


"몸살이 나신 듯 합니다."

"몸살..? 열은 없었는데."

"피로가 많으시니 제가 약을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카게야마는 상궁의 얼굴을 보았다. 애써 실망을 숨기려는 얼굴의 상궁을 보며 카게야마는 손을 저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마마."


상궁은 무엇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의원은 일어섰다. 


"처방전을 써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수고하였다."


궁녀가 네코를 내려놓았다. 네코는 의원의 뒤에 사납게 왕왕 짖어댔다. 허둥지둥 의원은 단패궁을 떠났다. 상궁은 미심쩍은 얼굴로 그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홀 : 다른 의원을 부른다

짝 : ....



카게야마는 침묵한 상궁을 달래듯 말했다.


"의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

"내가 달거리가 일정치 않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곧 피가 비치겠지. 카게야마는 대수롭지 않게, 배를 슬슬 문질렀다.



홀 : 다른 의원을 알아본다

짝 : 그런가



그런가..상궁은 천연덕스러운 카게야마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열심히 모셔온 주인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면, 자신 또한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불안감이. 가슴에 흐릿하게도 불안이 퍼졌다.


"마마. 차를 드릴까요?"

"아까 내가 남궁에서 받아온 것으로. 향이 좋더구나."


상궁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후 나갔다. 궁녀들을 시키지 않고서, 그녀는 직접 찻물을 받았다. 새벽에 떠온 약수를 데우며 차를 넣자 과할 정도로 시큼한 향이 코끝에 닿았다. 이토록 신내가 나는 차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마지막>

홀 : 섭정궁으로

짝 : 차를 가져간다



"...."


상궁은 끓이던 차를 두었다. 몸살이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말이 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보살폈던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의원이...의원이. 의원의 말만. 상궁은 곁에 서 있던 궁녀에게 말했다.


"차를 끓여 가져다드리거라."

"예."

"그리고 의원이 처방전을 가져오거든.. 그 약은 나중에 따로 내가 드릴 것이니 잘 챙겨두고."


나는 잠시 섭정 전하께 말씀드릴 것이 있다. 상궁은 그렇게 말한 후 서둘러 단패궁을 나갔다.


*


쿠니미는 급히 찾아온 단패궁의 상궁을 맞이했다. 상궁이 다른 이들을 물리기를 청해, 쿠니미는 그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 그렇군.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상궁은 바닥에 머리를 숙였다.


"전하. 마마께서는 제가 보기에 회임이 분명하십니다."

"...회임."


벌써 회임이라니. 쿠니미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오사와를 잡기에는 아직 손을 봐야할 일들이 많았다. 이럴 때에 회임. 정말로 폐하께서는 저를 곤란하게만 하십니다. 쿠니미는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하는 것이었다.


"의원은 내가 따로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 의원은,"

"그것도 내가 처리하겠다."


쿠니미는 상궁을 내보냈다. 숨기면 편했지만 성국 황족들 사이에서 제대로 숨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애써 냉정하게 계산하던 쿠니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누구의 아이지? 오직 그것만이 궁금했다.



쿠니미 아키라

○: 64 

◇: 52 (+10)

카게야마 토비오 

□: 57



임신사실을 확인하러 온 의원은, 실은 0의 확률로 오사와 대신의 사주를 받았던 의원이었습다. 0후의 선택지는 유산이 될 뻔한 카게야마에게 총 세 번의 기회를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1 : 사주를 받은 의원의 눈앞에서 바로 다른 의원을 불러, 거짓진단이 들통남

2 : 의원이 나간 후 다른 의원을 불러 진단함

3 : 상궁이 직접 쿠니미에게만 임신사실을 말하며 쿠니미의 위험도가 +10 올라감


이었습니다.



상궁은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식사 대신 차만 마시고 있던 카게야마는 상궁에게 물었다.


"어딜 다녀오느냐?"

"잠시.. 마마께서 속이 불편하시다하여 따로 의원을 청하고 오는 길입니다."

"참, 너도 몸을 쉬지를 않는구나."


카게야마는 훗 웃고는 새콤한 차를 마셨다. 상궁이 다가와 카게야마의 어깨를 주물렀다.


"마마."

"음."

"...몸을 아끼셔야합니다. 제가 챙겨드리는 것만 드시구요."

"...? 알겠다."


정말, 그러셔야합니다. 상궁은 작은 어깨를 주무르면서 몇 번이고 청했다. 귀찮아진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마. 이제 됐느냐."

"예. 마마. 꼭 그러셔야합니다."

"어휴.."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었지만 상궁은 그것만으로 조금 마음이 놓였다.


*


네코가 카게야마의 품을 파고들었다. 무릎 위에 앉아 얌전한 네코를 보며 카게야마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상궁에게 말했다.


"오늘 남궁에 갔는데, 제법 사나운 고양이가 네코처럼 내게 다가오더군."

"..! 또 다치시진 않으셨습니까."

"아니, 내 팔이며 배에 제 몸을 비비고..귀여웠다."


카게야마는 곧 네코를 쓰다듬는 일에 열중하였다. 카게야마의 몸상태를 혼자 짐작할 뿐인 상궁은 카게야마에게 어서 잠자리에 들길 권했다.


"저녁 먹은 지가 금방인데..?"

"오늘 일찍 일어나셔서 피곤하셨을 테고, 또 의원 덕에 긴장도 하셨을 테니."

"긴장한 건 너겠지. 나는 태연했다. 임신했을 리가 없지."


그러면서도 카게야마는 상궁이 시키는 대로 침상에 누웠다. 네코가 따라 오르려 하자 상궁은 오늘은 그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떼어냈다.


"마마. 오늘은.. 편히 주무십시오."

"같이 자고 싶은데.."

"마마."


유달리도 귀찮게 하는 상궁의 말에 카게야마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으면 처음에 거절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쉽게 잠에 빠진다. 카게야마의 숨소리가 점차 조용해졌다. 


불이 꺼진 단패궁의 안으로 조심스럽게 의원이 들어왔다. 상궁이 이불을 조금 걷어주자 의원은 깊게 잠이 든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았다. 으응...신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단패궁을 깨우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섭정은 으름장을 놓았다. 벌벌 떨며 의원은 눈을 감고 맥을 짚었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줄줄 흘렀다.


"....."


의원은 카게야마의 손목을 놓고 방을 나왔다. 단패궁의 밖에선 쿠니미가 기다리고 있다. 눈짓하면, 의원은 고개를 숙이고 급히 아뢰었다.


"회임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군."


쿠니미는 의원의 뒤에 서있는 상궁을 우연히 보았다. 기쁜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 그러나 쿠니미는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누구의 아이인지를 생각하게 되면.. 쿠니미의 입이 열렸다.


"성국 왕족들에 의해 임신하면 표식이 생긴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섭정 전하. 시라토리자와, 아오바죠사이, 네코마, 카라스노의 문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언제쯤?"

"지난 달 회임을 하신 것 같으니 이번 보름 쯤일 것입니다."


쿠니미는 궁금한 것을 다 들은 후 의원을 보냈다. 따라오려는 상궁도 물리고서, 쿠니미는 홀로 카게야마의 방에 들어왔다. 새근새근 잠을 자는 얼굴. 어둠 속에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곁에 앉았다. 카게야마.. 속삭이듯 부르자, 아래로 뻗은 팔이 조금 움찔했다.


"....."


욕망과, 집착, 온갖 어두운 감정들이 몸 안에서 들끓었다. 쿠니미는 뻗은 팔을 잡았다. 따뜻했다. 한참 동안 머무르던 쿠니미는 결국 그 손을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 




3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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