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이었다. 카게야마는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침상 옆에 드리운 그림자. 깜짝 놀라 눈을 뜨면 마치 어제 깼을 때처럼, 똑같은 자세로 우시지마가 앉아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만은 여명에 부셔 밝았다. 아직 꿈 같기도 하여 카게야마는 얌전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내려다보고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드디어 눈을 떴구나. 카게야마."
"...우시지마님..?"
"너를 기다리며 지루하였다."
우시지마는 가뿐히 카게야마를 안아들었다. 공중에 떠오른 카게야마의 발이 달랑거렸다.
잠시, 잠시만, 우시지마님..!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품에 안겨 단패궁을 빠져나왔다.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며 상궁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우시지마가 머리 위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와 둘이 있고 싶다고 하였으니, 찾을 필요 없다."
"우시지마님! 지금 어디로..!"
"걱정할 것도 없다. 네가 설마 너를 해치겠느냐."
그런 뜻은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어느새 카게야마의 몸 위에는 우시지마의 망토가 걸쳐져 있었다. 약간 찬바람이 불었으나 망토 속은 따뜻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망토로도 가릴 수 없었다.
"우시지마ㄴ..!"
"마차를 준비해 뒀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품에 안고서 그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너를 내 나라로 데려가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가보군."
"...."
"그랬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호사스러운 마차였다. 아마도 시라토리자와의 황제가 타고 왔을 마차같았다. 붉고 흰 칠이 된 안락한 마차 안에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안게 했다. 곧 우시지마 또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마차가 기다렸다는 듯 흔들거리며 움직였다.
*
카게야마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우시지마의 망토를 걸쳐 잠자리옷은 가릴 수 있었지만 발은 맨 발 그대로였다. 불안하게 카게야마가 발을 흔들자, 마주 앉아있던 우시지마는 허리를 숙여 작은 발을 잡았다. 졸지에 다리를 우시지마에게 뻗게 된 카게야마는 놀라서 발을 빼려 했다. 그러나 우시지마의 손은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발이 차구나."
"우시지마님. 더럽습니다."
"..? 지금이라면 입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우시지마님!"
당황한 카게야마의 발이 우시지마의 손 안에서 나비처럼 파닥거렸다. 우시지마는 작고 찬 기운이 남은 발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애무하는 것처럼 바닥을 쓰다듬고 만져주면 카게야마는 간지러움을 참기 위해 어깨를 움찔거렸다.
"간지러워요.."
"간지럽히고 싶은 발이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게야마는 조금 긴장이 풀린 얼굴로 웃었다. 마차가 멈췄다.
*
마차의 문이 열렸다. 카게야마는 다시 우시지마에게 안겨 마차에서 내렸다. 발 하나 땅에 닿지 않아 그것이 부끄러웠다. 맨 발로 걷겠다고 하면 우시지마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웃었다.
"내가 그렇게 두겠느냐..저길 봐라. 카게야마."
우시지마의 말에 카게야마는 그의 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아.. 탄성이 새벽녘 공기와 섞여 튀어나왔다. 카게야마의 눈앞엔 끝없는 자작나무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어둡고 푸른 숲은 이제야 천천히 아침이 오고 있었다. 길쭉길쭉 자라난 흰 자작나무 뒤로 태양빛이 스며들듯 비쳐온다. 미리 풀을 뜯기 위해 일어난 사슴들도 보였다. 어미를 따라 뒤를 쫓는 어린 사슴들. 새벽 이슬을 받아낸 풀잎들은 태양빛에 반짝거리고,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조용하고 완벽한 아침. 그 모습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 카게야마는 넋을 잃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하얀 자작나무 숲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아름다운 만큼 일찍 끝났다. 어느새 태양이 머리 위에 떴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를 올려다 보았다. 우시지마는 이미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의 일출이 아름답더군."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게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전에 같이 사냥을 가자고 하였지만, 이제 너는 당분간 나오지 못하겠지."
카게야마는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걸 그제야 생각해냈다. 자신도 모르게 배를 만져보자 우시지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괜찮다. 걱정할 것 없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 몸은.. 훌륭하다고 우시지마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카게야마는 부끄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랬다. 이 배에는 아마의 다른 남자의 아이와, 우시지마가 고쳐준 흉터가 함께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자 우시지마는 배 가운데로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여자가 누구의 아이를 낳더라도 그 흉터는 평생 같이 할 것이다.
"그랬지. 훌륭한 몸이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이마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조용한 숲길, 사슴이 머무는 곳을 향해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안고 천천히 걸었다.
*
함께 있는 시간이 달아 우시지마는 돌아가야한다는 것도 잊었다. 마차에 다시 올라탄 것은 한참 뒤였다. 카게야마는 앉자마자 우시지마의 팔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계속 저를 안고 계셨으니 힘드셨을 텐데.."
"일부러 신을 신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너를 안기 위해서였는데, 팔이 아프다고 설마 놓을까."
카게야마는
홀 : 똑같이
짝 : 감사인사
카게야마는 우시지마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황제의 손이 자신의 더러운 발을 주물러주었다. 그러니까.. 카게야마는 용기를 내어 일어섰다. 움직이는 마차 속에서 맨발로 일어난 카게야마를 보고 놀라서 우시지마는 팔을 뻗었다. 채 잡기도 전에 카게야마는 덥썩 우시지마의 곁에 앉았다.
"우시지마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것을..보여주셔서."
그렇게 말하며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팔을 조물조물 주무르기 시작했다. 살짝 놀란 우시지마의 눈이 옆에 앉은 카게야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무엇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해서 생각해낸 게 이 방법이었을 것이다. 여자치고는 제법 단단하고 큰 손이 우시지마의 팔을 어색하게 주물러댔다. 얼굴을 살펴보면 귀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우시지마는 그 귀를 만져보려다가 멈칫했다.
"....."
이토록 다정하게만 대해주고 싶은 여자는 처음이라, 차마 손을 대기도 아까웠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70
◇: 38
카게야마 토비오
□: 57 (+3)
우시지마의 호감도가 70을 넘어, 카게야마와의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우시지마의 애정표현에 카게야마의 호감도가 +3 올라갔습니다
카게야마는 왔던 것처럼 우시지마의 품에 안겨 단패궁으로 돌아왔다. 상궁은 서둘러 신을 가져와 우시지마의 앞에 놓았다. 카게야마가 신을 신는 것을 우시지마는 무척 아쉬운 눈으로 보았다.
"우시지마님. 식사를 하고 가시지요."
"이제 북이 울리지 않느냐. 가야겠다."
"예..?"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의 여자에게 우시지마는 눈짓하였다. 알아들은 상궁은 다가와 카게야마를 모셔갔다. 카게야마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우시지마가 서 있었다. 그가 말한 북소리도 어느 순간 계속 들리고 있었다.
*
"저 소리는..?"
"다른 궁에도 마마의 회임을 알리는 겁니다. 북이 울렸으니.."
상궁은 빙긋 웃으며 카게야마의 시중을 들었다. 잠자리옷을 갈아입은 카게야마는 의아하게 다시 상궁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만 남으셨습니다. 며칠 뒤 연회까지는 그저 편히 쉬시면 됩니다."
"문안인사는..?"
"마마께 안부를 묻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아침에 와주시겠지요."
"...."
"그 동안은 몸을 정결히 하시고 아기님을 위해서 공양을 드리시는 겁니다."
카게야마는 그제야 우시지마의 말뜻을 이해했다. 이제 너는 당분간 나오지 못하겠지. 그 말은 단패궁을 떠나지 못하리란 뜻이었다. 북이 울리기 전의 새벽에 우시지마는 자작나무 숲의 아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연회가 열리는 날을 정합니다.
1~3 : 3월 7일*
4~6 : 3월 8일
7~9 : 3월 9일
0 : 3월 10일*
<동궁>
우시지마는 걸어가며 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들었다. 끝을 알리는 소리였다. 단패궁이 회임하면 실질적으로 그 문은 닫혔다. 새로운 단패궁이 들어오기까지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문이 닫히기 전 카게야마를 안았던 것은 자신이 마지막이이었다. 일부러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에 찾아왔던 건, 오직 그것을 위해서였다.
"...."
무사히 아이를 낳기를 바라며 우시지마는 동궁으로 들어갔다. 누구의 아이인지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거짓. 그러나, 자신의 곁에 앉아 얼굴을 붉히던 카게야마를 생각하면 그 고민은 몹시도 하찮게 느껴졌다.
<서궁> : 오이카와
홀 : 설마.. (호감도 +3)
짝 : 누구의 (위험도 +3)
<서궁> : 이와이즈미
홀 : 그러면 (호감도 +3)
짝 : ... (위험도 +3)
<서궁>
북소리였다. 오이카와는 벌떡 일어나 창을 열었다. 틀림없이 북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지금의 궁에서 북이 울릴 일이라곤 단 하나뿐이었다.
"토비오쨩, 한 동안 얼굴도 안 보여주더니.."
하, 오이카와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갑자기 들린 소식은 당황스럽기도 했고 또.. 오이카와는 자신이 몇 번이나 카게야마와 밤을 보냈는 지 자연스럽게 세어보았다. 세 번이었다. 설마.. 토비오쨩, 오이카와씨 아이 임신했을까? 그러면 오이카와씨가 칭찬해줄 텐데. 마지막 같이 보냈던 밤 자신의 목에 매달리던 카게야마가 잊혀지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윗입술을 혀로 쓸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기대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렇지만 이와쨩도 제법 많이 들어갔지.."
단패궁에 가장 많이 들어간 건 바로 아오바죠사이.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 수 없어도 확률이 높은 건 이쪽이었다. 후계자를 낳으면...그 땐 토비오쨩, 오이카와씨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려나. 여자의 몸이나 관직을 내려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하면 얼른 따라올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느긋하게 앉아 다시 창을 힐끔 쳐다보았다. 정원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던 이와이즈미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
이와이즈미님, 이라고 부르던 소리를 듣지 못한지도 오래 되었다. 이와이즈미는 검을 꽉 잡고 휘둘렀다. 훅, 하고 검날이 공기를 갈랐으나 북이 울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허공을 노려보았다. 가상의 적들이 자신을 공격한다.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물리치는 것이 이와이즈미의 일이었다.
"...."
칼을 휘둘렀다. 엇나갔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검을 쥐었다.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졌다. 북소리가 둥둥, 귓가를 때리는 순간 이와이즈미는 황급히 고개를 올렸다. 적의 칼날이 이와이즈미의 턱밑에서 멈춰 있었다.
"...!"
이와이즈미는 허리에 찬 검집에 검을 도로 넣었다. 축하를 해야했다. 응당 그래야할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구의. 차마 문장으로 만들지 못한 앞부분이 입 안을 맴돌았다.
오이카와 토오루
○: 54 (+3)
◇: 37
카게야마 토비오
□: 45
이와이즈미 하지메
○: 63
◇: 30 (+3)
카게야마 토비오
□: 58
<남궁> : 쿠로오
홀 : 오야? (호감도 +3)
짝 : 하하.. (위험도 +3)
<남궁> : 코즈메
홀 : 정말..? (호감도 +3)
짝 : ....축하를.. (위험도 +3)
<남궁>
책을 읽던 코즈메는 고개를 들었다. 키타가와의 북이 울리고 있었다. 동시에 쿠로오를 쳐다보면, 쿠로오는 하하.. 하고 웃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마마님. 회임이야."
"정말..?"
코즈메는 어제 유난히 생글거리던 카게야마를 떠올렸다. 허울만 좋은 단패궁의 자리는 후계자를 낳으면 끝이 난다. 아이를 무사히 낳으면 카게야마는 이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터였다. 잘됐다.. 중얼거리던 코즈메는 문득 쿠로오를 보았다. 쿠로오는 코즈메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쿠로."
"으응?"
"화났어?"
혹시나 하여 물어보면 대답 대신 빙긋 웃는 웃음만이 돌아왔다. 코즈메는 가만히 쿠로오 쪽을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키타가와의 경사잖아, 왜.."
"글쎄. 아마 내가 마마님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나봐."
쿠로오에게 주어진 건 단 한 번의 밤. 임신이 되었다고 해도 자신은 아닐 것이다. 냉정한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 것. 그래서 그는 조금, 불공평함에 화가 났다.
쿠로오 테츠로
○: 65
◇: 38 (+3)
카게야마 토비오
□: 64
코즈메 켄마
○: 48 (+3)
◇: 30
카게야마 토비오
□: 53
<북궁> : 히나타
홀 : 뭐? (호감도 +3)
짝 : ....왠지 (위험도 +3)
<북궁> 츠키시마
홀 : .... (호감도+3)
짝 : 축하해야겠네 (위험도+3)
<북궁>
북소리가 들렸다. 히나타는 그 뜻을 알았다. 토비오, 임신했어..? 자신의 첫번째 여자였다. 언젠가는 회임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삼스럽게도, 카게야마는 자신에게만 안길 수 없다는 걸 먼저 떠올리고 말았다. 히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북소리는 계속 울렸으며 그는 좀처럼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비오. 나 다음에 너를 안게 되면, 이번엔 울지 않게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다음은 없었다. 히나타는 말이 없는 츠키시마에게 물었다.
"츠키시마."
"...응."
"토비오 말이야."
"왕님이 왜."
히나타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만, 토비오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
"...."
"그런데 너한테는.."
츠키시마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같은 소리하지마. 어차피.."
기왕이면 카라스노 후계자가 될 사람의 아이를, 낳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려던 츠키시마는 입을 다물었다. 여인의 회임은 보통 시간이 지난 후에 알려지기 마련이었다. 자신은 시기적으로 아닐 터였다. 히나타도 일렀다.
"어차피.."
츠키시마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 번 들었던 그는 카게야마에게 따뜻하신 분이라고 생각할게요, 라는 말을 들었다.
"...."
기왕이면.. 정말로, 히나타의 아이를 낳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아닐 수 있단 가능성이 떠오르자 츠키시마는, 왠지 모르게, 누구의 아이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단패궁에서 나갈 수 있는 열쇠를 얻었다.
히나타 쇼요
○: 42
◇: 24 (+3)
카게야마 토비오
□: 41
츠키시마 케이
○: 60 (+3)
◇: 37
카게야마 토비오
□: 50
<섭정궁> : 킨다이치
홀 : 폐하.. (호감도 +3)
짝 : 아... (위험도 +3)
<섭정궁>
쿠니미는 북을 울리게 했다. 킨다이치는 혼란스러워 머리를 감싸쥐었다. 폐하... 그는 섭정궁에 왔을 때의 카게야마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때 카게야마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섭정궁으로 왔다. 자신은 건강하니 네 건강을 챙기라는 말, 무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마도 자신은.. 몇 번이라도 카게야마의 걱정을 들으면 그저 바보처럼 기뻐할 것이다.
"오사와가 폐하의 몸을 해치려 했다고?"
킨다이치의 물음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몰래 먹이려고 한 건 유산이 되는 약이었지만..."
"...회임을 하셨다니. 결국..."
입술을 깨물면서도 킨다이치는 단패궁 쪽을 몇 번이나 보았다. 오늘 카게야마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깊은 산 속에서 떠온 약수를 데워 몸을 씻고 새 옷을 입으며 몸을 정결히 한다고 들었다. 처음 월경을 경험했을 때도 무엇인지 몰라 킨다이치에게 찾아왔던, 카게야마였다. 아이가 있는 줄은 알고 있을까. 몸은 잘 돌보고 있을까.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쿠니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폐하는 잘 돌보게 하였으니 걱정하지 마."
"넌 어떻게 내게 한 마디도..!"
"나도 안지 얼마 안 됐어."
"그래도!"
킨다이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폐하를 우선 살리자는 말을 듣고 단패궁에 모셨어!!"
"....."
"그런 치욕을 겪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알면서도, 그래도 내 이기심 때문에 살리겠다고..!"
"킨다이치."
화를 내는 킨다이치에게 쿠니미는 느리게 말했다.
"목적은 분명 그것이었거든."
"...쿠니미."
"...그런데 지금은, 카게야마 뱃속에 누구의 아이가 있을까. 나는 그 생각 밖에 들지 않아."
자신의 아이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자신의 아이이길 원하고 있었다. 비겁한 욕망이었다. 킨다이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쿠니미의 멱살을 잡았다. 몸에 힘을 푼 쿠니미는 저항없이 킨다이치에게 목이 졸리듯 잡혀, 그를 쳐다보았다. 온기라고는 없는 눈동자. 킨다이치는 문득 눈 앞의 친구가 무서워졌다.
"쿠니미."
"...."
"...아키라."
"킨다이치. 내가 혹시라도 카게야마의 몸을 해치려고 들면."
그땐 네가 나를 말려야 돼. 나는 그러기 위해 너를 끌어들였으니까. 쿠니미는 킨다이치의 허리 옆에 걸린 검을 건드리며 말했다.
쿠니미 아키라
○: 64
◇: 62
카게야마 토비오
□: 57
킨다이치 유타로
○: 46 (+3)
◇: 39
카게야마 토비오
□: 36
카게야마는 향을 넣어 끓인 물로 몸을 씻어냈다. 몇 번을 반복하고서 마지막으로 몸을 닦은 건 가장 높은 산 위에서 하루 동안 받아온 약수였다. 눈이 녹아 흐른 물이라고 했다. 뜨겁게 끓여 불순물을 없애고, 미지근하게 식힌 약수가 카게야마의 몸에 끼얹어졌다. 이러다가 몸이 불어버리겠다. 카게야마는 투덜거렸지만 궁녀들은 하나같이 손가락으로 쉿, 하고 카게야마를 조용히 하게 했다.
"마마. 이리 오십시오."
얼굴의 잔털마저 명주실로 반질반질하게 정리한 후 카게야마는 못보던 옷을 입었다. 푸른 용, 흰 봉황, 왕의 표식들이 그려져 있다. 예전에 입었던 옷과 비슷했으나 카게야마는 이 문양이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아기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옷을 입고 상궁의 뒤를 따라갔다. 침전 근처에 마련해놓은 제단 위에는 과일이 놓여져 있었다.
"아기님이 무사히 태어나실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겁니다."
상궁이 속삭였다. 카게야마는 무엇인지 몰라도, 우선 눈을 감고 속으로 열심히 생각했다. 어떻게 기도를 하는 건지도 몰라 내용은 마구잡이었다.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언제쯤 태어나는 거지? 빨리 태어나면 좋겠는데.. 잠시 눈을 감고 있으니 상궁이 뒤에서 다시 부축해주었다. 이제 끝인가? 하고 눈으로 물으면 상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참 잘 하셨습니다."
"...별일도 다 있구나."
"이렇게 다 하시는 법입니다."
상궁은 카게야마에게 죽을 떠먹여주며 웃었다. 카게야마가 먹겠다고 해도 피곤할 테니 움직이지 말라고 하여, 결국 새처럼 입만 열고 모이를 받아먹었다.
"회임하셨으니 부지런히 드시고 주무시면 됩니다. 그저 마마는 편히 계시면 되셔요."
"...하..벌써 답답하군."
"입가에 묻으셨습니다."
얼른 상궁은 카게야마의 입을 닦아주었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었다. 먹기 싫다고 고개를 저으면 상궁은 다섯 번째야 포기했다.
*
평소에 까불던 궁녀들조차 카게야마를 두고 이야기할 때 아기님이 놀라십니다, 하며 말을 아꼈다. 그것이 불만이어서 인상을 쓰자 이번엔 상궁이 좋은 생각만 하라며 웃기를 권했다. 어떻게 내가 웃겠느냐. 너희들 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조금 큰소리를 내자 궁녀들이 모두 엎드렸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자야겠다."
"자리를 보아드리겠습니다."
상궁이 앞서가 평소보다 꼼꼼히 침상을 살폈다. 카게야마가 올라가자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주고서 토닥거린다.
"마마.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곁에 있을 것입니다."
"네가 있으면 더 불편하다. 어서 나가거라."
"아휴, 마마도 참, 어지간히 고집이 세십니다."
상궁은 이불을 덮은 카게야마의 배를 토닥였다.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자장가. 어릴 때 유모들에게 듣던 노래였다. 유모라고 해도 카게야마가 여자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매번 바뀌었다. 아마도 궁을 나간 그녀들은.. 카게야마는 눈이 스르르 감겼다. 상궁의 노랫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곧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고, 노래는 멈췄다.
5일 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