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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카게른/폐왕의 밤

1. 12월 24일 <킨다이치>



22일 밤이 끝났다. 카게야마는 단패궁으로 모셔져서


홀 : 잤다

짝 : 아팠다

0 : 생탄연


카게야마는 계속 잤다.

23일의 밤이 지나 24일에서야 눈을 떴다.




카게야마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어떤 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운 것 같기도 했고, 꼴도 보기 싫은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생각하려하자 천천히 시야가 트였다.


궁 밖이다. 어디지. 깊고 어두운 산. 뒤를 돌아보면 카게야마의 눈에 흰 사슴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손에 든 활을 치켜들었다. 흰 사슴은 영물, 가죽을 가져가면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쿠니미가 덮을 것이 생겼다고 좋아할 지도..카게야마는 사슴의 가죽이 다치지 않도록 다리에 과녁을 맞추었다. 그리고 탕, 쏜다. 화살이 나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자 사슴이 카게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에 화살을 물고 있다. 킨다이치가 길을 들여준 독화살이었다. 카게야마는 화가 났다.


"내놔!"


산 속 깊게 들어가는 사슴을 따라 카게야마는 달렸다.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아 카게야마는 사슴의 뒤만 노려본 채 헐떡거리며 쫓았다. 점차 사슴이 느려졌다. 카게야마는 얼른 사슴의 입에서 화살을 빼어내고서 그대로 배를 찔렀다.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카게야마는 활 대신 칼을 꺼내 사슴의 목을 잘라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손에 목을 들자, 눈이 마주친 것은 사슴이 아니라 제 얼굴인 것이다. 자신의 목을 손에 쥔 카게야마가 어리둥절한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목이 없는 사슴이 화살을 배에 단 채로 도망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놀라서 눈을 떴다.


"...!!"


꿈 속에선 꿈인 걸 알았는데도, 잠에서 깨면 그제야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카게야마는 이마를 찡그린 채 방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깨기 전 이미 와 있던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홀 : 킨다이치

짝 : 쿠니미

0 : 오이카와



"킨다이치."


카게야마는 손님의 이름을 불렀다. 킨다이치는 움찔,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가 슬며시 눈을 아래로 내렸다. 킨다이치는 평소처럼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마치 죄라도 비는 듯한 검은 옷이라, 카게야마는 눈 앞에 있는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오랜만에 궁금해졌다. 단패궁의 방은 신방이었다. 온통 벽에 붉은 칠을 하고, 금사를 수놓은 비단 이불마저 붉은 색이었다. 그 안에 서있는 검은 킨다이치는 매우 이질적이었고, 또 잘 어울리기도 했다.


"킨다이치. 벽에 붙어있지 마라."

"...."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아. 붉은 벽에 칙칙한 옷을 입고 있으니 꼭 전쟁터에 서있는 것 같다고."


킨다이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다시 눈을 들어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그는 까슬한 입술을 한번 핥은 후 입을 열었다. 


"날 찾았다고, 쿠니미에게 듣기론, 네가 날 찾았다고.."


조금 마른 것 같기도 하네. 카게야마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저를 찾았다고 해서, 왔습니다. 폐하."



홀 : 다시는

짝 : 어째서



아무리 보아도 벽에 딱 붙어 몸둘바를 모르는 저 모양새의 남자는 킨다이치가 맞았다. 그런데 어째서? 카게야마는 분노라기보단 순수한 궁금증으로 킨다이치에게 물었다.


"어째서?"

"예?"

"어째서.. 너나 쿠니미는 나에게 폐하라고 하는 걸까."

"폐하."

"나를 비웃는 건가?"


킨다이치는 벽에 기대어 있던 몸을 뗐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사나워보이는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멀뚱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킨다이치를 들여다보았다. 단순할 것 같은 주제에 섬세한 신경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카게야마는 늘, 킨다이치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몰랐다. 


"내가 너를 비웃을 거라고 생각해?"

"왜 네가 화를 내지."

"정말로, 내가 너를 비웃을 수 있다고 생각해?!"

"생탄연을 해준다고 불러놓고 내 뒤통수를 쳐 쿠니미와 함께 아오바죠사이를 끌여들였으니까."


사납게 카게야마를 쳐다보던 킨다이치의 눈이 한순간 흐려졌다. 카게야마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를 폐하라고 부른다면, 그건 비웃는 게 아닐까 했다."

"카게야마."

"내 오해였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부르는 것을 허락하마. 어차피 더이상 왕도 아닌데 둘만 있을 때 어떻게 부ㄹ.."



홀 : 끌어안는다

짝 : 검을 내던진다



카게야마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침상 주위의 휘장이 흔들렸다. 킨다이치가 자신을 안고 있었다. 왕의 자리에 오른 지 3년. 여러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는 자신의 친구는 그 후로 한번도 카게야마에게 닿은 적이 없었다.


-쿠니미나 내가 너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면 네 위엄이 손상되는 법이야.


그런 건 상관없었는데, 이제 와서 왜 자신을 끌어안는 것이 카게야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꽉 끌어안긴 기분은 몹시 좋았다. 검고 까슬한 옷 아래로 킨다이치의 체온이 느껴졌다.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킨다이치가 속삭였다. 


"..해주고 싶었어."

"뭐?"

"축하. 생일 축하."

"아, 오늘이 며칠이지?"

"24일."

"...그런가. 이미 지났네. 오래 잤구나."

"왜 아무것도 안 물어?"


킨다이치는 쿠니미와 같은 질문을 카게야마에게 했다. 그들의 왕은 이상할 정도로 반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거야.."


카게야마는 킨다이치의 품에서 머리를 살짝 올려, 눈을 마주쳤다. 


"너희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 나는 참을 수 없으니까."


나라를 가지고 싶었느니, 아오바죠사이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느니.. 그런 핑계를 듣는 것이야말로 카게야마에겐 수치였다.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을 끌어내린 이유가 무엇인지, 왜 해야만 했는지, 카게야마의 머리로 대충 상상은 할 수 있었다. 그냥 폭군이어서 끌어내려진 걸로 충분했다. 짐작하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으나 정말 그것으로 좋았다. 사실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카게야마의 심정이었다. 마음이 어디론가 도망쳐버린다. 꿈 속의 흰 사슴처럼. 잡아도 끝이 없을 것이다.


킨다이치는 카게야마의 단호한 얼굴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상에 킨다이치가 앉았던 자국이 남아있었다. 카게야마는 그 자국을 물끄러미 보았다가 손바닥으로 쓸어냈다. 


"정말, 화가 많이 났구나."


킨다이치는 중얼거렸다.


"거짓말을 할거라고 하다니."

"...."

"내가 설마 너에게 거짓을 말할까. 난 그런 적 없어."

"...."

"물어만 봐주면 당장이라도,"


카게야마는 침상에 도로 누워 이불을 덮었다. 무언의 축객령에 킨다이치는 말없이 서 있었다. 기척이 등 뒤로 느껴졌다. 한참 뒤에야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린다. 카게야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상의 자국은 지웠는데도 아직 킨다이치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킨다이치 유타로

○ 15 (+1)

◇ 15 (+2)

카게야마 토비오

□ 15 (+2)



그러고보면. 카게야마는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자신은 22일 이 궁으로 들어와 24일 잠에서 깼다. 눈을 떴을 때는 또 다시 밤. 킨다이치는 언제부터 자신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24일 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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