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 도착한 아오바죠사이는 제외. 키타가와에 도착하는 방문객의 순서를 정합니다
1~3 시라토리자와
4~6 카라스노
7~9 네코마
0 방문이 하루 미뤄짐
가장 먼저 시라토리자와가 도착했습니다. 다음의 순서를 정합니다.
1~5 카라스노
6~0 네코마
키타가와의 방문 순서는 시라토리자와-카라스노-네코마입니다.
2.
키타가와와 아오바죠사이를 제외한 세 나라 중 카게야마가 과거 만났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일은 해당 나라의 1명과 카게야마만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카게야마가 만난 사람의 나라는 어디인가요.
1~3 : 시라토리자와
4~6 : 카라스노
7~9 : 네코마
0 : 그 곳이 어디든 카게야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카게야마는 시라토리자와의 사람과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나요.
홀 : 즉위식 전 도망치던 카게야마를 우시지마가 잡았다
짝 : 시라토리자와의 국경에서 카게야마가 다쳐있었다
0 : 카게야마ts가 여복을 입고 있는 걸 본 적 있다(우시지마는 남자 카게야마가 여장했다고 생각했다)
과거 시라토리자와의 국경을 살펴보던 우시지마는 카게야마가 다쳐있는 것을 보고 보살펴 준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시지마와 카게야마의 호감도를 정합니다.
1~3 : 서로가 왕임을 알고 있었다. (우시지마 호감도 -1, 카게야마 호감도 +2)
4~6 : 우시지마는 카게야마가 왕임을 알아봤다. (우시지마 호감도 -2, 카게야마 호감도 +3)
7~9 카게야마는 우시지마가 왕임을 알아봤다. (우시지마 호감도 +3, 카게야마 호감도 -2)
0 : 서로 몰랐다. (이벤트 발생, 각자 호감도 +5)
우시지마는 카게야마를 알지 못했지만, 성국 시라토리자와의 황제를 카게야마가 알지 못할 리 없었습니다. 카게야마는 국경에서 다친 채로, 우시지마의 간호를 받다가 키타가와로 돌아갔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우시지마는 좋았던 기억이나 카게야마는 그닥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라토리자와를 직접 정탐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는 신이 시라토리자와, 아오바죠사이, 네코마, 카라스노의 왕에게 나라를 세울 권리를 부여함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나라들은 성국이라 불리며 질서를 유지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질서는 성국을 중심으로 자라나, 성국의 보살핌을 받는 평국들이 지키는 것. 그 질서 중 하나가 바로 평국들의 왕가혈통보존이었다. 평국의 왕들은 성국의 황제들이 허락한 자리, 그러므로 함부로 왕의 성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그 것을 상징하는 것이 붉을 단, 조개 패자를 쓰는 단패궁이었다.
평국들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문화가 있었으나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들의 궁엔 같은 장소가 있었다. 왕의 거처 앞에 있는 호수와 그 옆 사시사철 붉은 단풍나무. 늘 붉은 이유는 성국에서 나라를 세움을 기념하며 특별히 주었던 성물이기 때문이다. 호수는 어디에나 있는 신의 은혜, 단풍은 신의 권능을 상징한다, 라고 카게야마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신의 이름을 빈 호수와 단풍나무가 마치 예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순간에 뒤바뀐 궁의 정경을 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라면 청호궁이라 불리던 왕궁의 이름은 내려지고, 옻을 먹인 검은 편액이 대신 달렸다.
단패궁
반나절만에 황금기와로 장식한 지붕은 모두 들어냈다. 대신 자개로 장식한 기와가 그 자리를 메웠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자개의 눈부심은 지나치게 화려해 보는 사람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안을 채웠던 가구도 바꾼다. 측백나무로 만든 큰 침상 위로 역시 붉은 천의 휘장을 둘러 장식한다. 해를 등져 음기를 가득 머금은 측백 가구들은 밤이면 취할 것 같은 향을 내뿜었다. 회임을 바라며 벽에 바르는 붉은 흙. 주인이 들어서기전 대추와 밤을 뿌리며 이 수 만큼 많은 아이를 낳기를 기원한다. 신방인 것이다. 언제든지 왕의 궁이 신방으로 바뀔 수 있다니, 평국의 왕은 시작부터 성국의 여자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왕궁이 단패궁으로 바뀌는 일은 지난 시간 동안 없었던 일은 아니었으나, 모두 삼백여년 전의 역사였다.
삼백년 만에 단패궁의 문이 열렸다. 주인은 12번 째 카게야마 왕의 딸인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마마께서는 달손님이 오셨을 때를 제외하곤 사흘에 한 번씩 합방을 하십니다."
"...."
"성국의 분들이 도착하시면 그대로 날이 잡힐 겁니다."
얼마전까지 어깨의 보호대를 걸어주던 상궁의 말이었다. 아침부터 목소리만은 담담하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상궁을 보며, 카게야마는 무심코 주위를 살폈다.
"내 활은?"
"마마. 이젠 활을 잡으시면 안됩니다."
"어째서? 합방은 제대로 하겠어."
"여인의 몸으로 활을 들다니 아니될 말씀이시지요."
대신 다른 것을 배우게 될 겁니다, 바느질, 악기 연주... 배워야할 것을 읊는 상궁의 목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듯 했다.
"배우면 뭐가 좋지?"
"여자의 기쁨이란 원래 그런 것이랍니다. 마마."
"내가 기쁨을 찾지 못하면 네 목을 베겠다."
"...!"
"...라고 내가 말했다고 재상에게 전해."
카게야마가 상궁을 협박하고 있을 때 쯤 밖에 소란이 일었다. 문이 열리고,
홀 : 쿠니미
짝 : 킨다이치
쿠니미가 들어왔다. 카게야마의 눈에 안에 있던 상궁이 섭정왕 전하, 라고 땅에 얼굴을 대고 절을 하는 것이 보였다. 원래는 일국의 왕에게 하는 인사였다. 그러고보니 카게야마에겐 단순히 무릎을 꿇는 것이 다였다. 적응해야할 일이 많았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불렀다.
"폐하."
오이카와의 앞에서 헤어진 이후로 처음이었다. 며칠 사이에 왕은 여자가 되고, 재상은 섭정이 되었다.
"폐하라고 부르면 안되지 않나. 성국의 왕족들 앞에선 그 호칭을 쓸 수도 없고, 네가 쓸 자격도 없지."
"하하.."
쌀쌀맞은 카게야마의 말에 쿠니미는 곤란한 얼굴로 웃었다. 그는 상궁을 물리고 조금 서있다가, 장난스럽게 주먹을 쥐고 탁탁 허벅지를 두드렸다.
"앉으라는 말씀도 안 해주시는 겁니까."
"...."
"시라토리자와에서 오셨습니다. 인사를 드리러 가야하니 옷을 새로 입으시지요."
"시라토리자와라면.."
동쪽의 시라토리자와는 비옥한 토지가 끝없이 펼쳐져있는 곳이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 그 곳의 황제는 젊고 유능하나 이 곳으로 보낼만한 황자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역사를 보면 단패궁으로 성국이 사람을 보낼 경우, 다음 대를 이을 황자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끊길 수도 있는 왕조를 살릴 명예를 주는 것이다.
"젊은 황제가 있는 곳인가. 황자는 없으니 다른 친척이라도 왔나보지?"
"..황제 본인이 직접 왔습니다."
"뭐?"
단패궁으로 끌려와 제대로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던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한마디에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황제가 서쪽의 평국까지 올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 황제'라면, 카게야마가 만나기는 껄끄러웠다. 카게야마가 인상을 잔뜩 쓰자 쿠니미가 다가와 이마에 손가락을 꾹 눌렀다. 차가운 손가락에 찔려 눈을 올리자 쿠니미는 웃고 있었다.
"황제라 부담스러워?"
"무슨?"
"괜찮아. 카게야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무엇을 알아서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의아한 얼굴로 쿠니미를 올려다보았다가
고개를 젓는다(부정)
고개를 끄덕인다(긍정)
올려다보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는 의외로 긴장했었는지 긴 숨을 토해냈다. 카게야마가 뭔가를 더 말하려 했으나 다시 상궁이 들어왔다. 단패궁으로 들어오자마자 새로 만들어야했던 옷을 들고 있었다. 쿠니미는 손가락을 떼고 얼른 제 자리로 돌아갔다.
"폐하. 그럼 밖에서 준비를 기다리겠습니다."
"잠깐, 방금 말한 건,"
"아무것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쿠니미는 기쁜 얼굴로 문을 열고 나갔다. 카게야마는 기분이 나빠졌다. 걱정할 필요가 없긴. 네 행동이 제일 걱정인데. 상궁은 초조하게 어서 옷을 입어야한다고 재촉했다. 처음 입어보는 여인의 옷이었다.
쿠니미의 행동을 카게야마가 허락(?)했으므로 짧은 시간 동안 선택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언제까지인가요.
1~3 : 하루
4~7 : 이틀
8~9 : 사흘
0 : 누군가 알아차려 방해를 받았다.
이틀 동안 선택지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시 자신의 일을 하러 다녀왔습니다.
카게야마가 처음으로 입어본 여인의 옷은 가벼운 옷을 겹겹 쌓아 마지막엔 안쪽에 털이 대어진 부드러운 것이었다. 몸을 보호해주던 갑주와는 달랐다. 안쪽에서부터 조여지는 기분이었다. 남자의 평복과는 확연히 다른 옷은 또한 색색으로 물들어있어 이 색이 제게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화장을 하라고?"
"마마. 여인들이 다 하는 겁니다."
"하고 싶지 않다. 옷으로 충분해."
머리카락이 짧아 여러가지 장식을 얹을 수는 없었지만, 화장을 하면 보기 좋을 것이라며 상궁은 카게야마를 달랬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카게야마는 고개를 계속 저었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궁의 왕이었던 카게야마를 끝까지 설득하는 일은 상궁에겐 무리였다. 상궁은 대신 창백한 입술 위를 꽃잎처럼 칠하고 검은 머리칼엔 진주 장식을 꽂았다.
"..피부가 고우시니 이 정도라면 결례가 되진 않을 겁니다."
외모가 결례가 되는 세상은 카게야마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곳이었다. 상궁이 부축하려는 듯 다가오는 것이 간지러워 카게야마는 얼른 옷을 휘적거리고 문을 열었다. 앞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쿠니미는 손을 내밀다 말고 멈칫했다. 카게야마가 눈썹을 올렸다.
"왜?"
"...."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말해."
"그럴리가."
쿠니미는 물 밖을 나온 물고기를 건져올리는 것 같이 조심스럽게 카게야마의 소매를 잡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쿠니미가 오래 서있던 것이 신경쓰였다.
"가자. 시라토리자와를 만나러."
"모시겠습니다."
뒤에서 상궁이 살살 걸으라 말하는 걸 무시한 채 카게야마는 황제를 만나러 갔다.
원래의 청호궁은 왕의 거처를 가운데에 두고 동서남북의 방위로 하나씩 처소가 있었다. 전 대의 왕들은 처소마다 후궁들을 두었고, 카게야마 역시 혼약자를 그 곳에 두려고 마음 먹었었다. 단패궁으로 명칭이 바뀐 이후엔 자연스럽게 단패궁을 중심으로 동쪽은 시라토리자와, 서쪽은 아오바죠사이, 남쪽은 네코마, 북쪽은 카라스노가 차지하게 되었다.
동궁에 도착하자 시라토리자와의 호위가 문을 열어주었다. 카게야마는 여인의 예절은 모르나 성국의 황제 앞에서 평국의 왕이 지켜야할 예절은 알았다. 홀로 카게야마는 융단이 깔린 위를 따라 다섯발자국 걸었다가 몸을 숙였다.
"시라토리자와의 황제 우시지마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들어도 좋다."
진주 장식이 무겁게 느껴졌다. 억지로 고개를 들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시지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 역시 그 '우시지마'가 맞았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10 (+3)
◇ 10
카게야마 토비오
□ 10 (-2)
키타가와의 왕이 되기 전부터 카게야마는 성국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강해져야 했다. 그는 더 강해져야 했다. 그 것은 강박과도 같은 집착이라 나중에 카게야마는 자신이 왜 성국을 벗어나려했는지도 거의 잊었다. 아무튼 카게야마는 강해지길 원했다. 그러나 아오바죠사이를 적으로 돌리면 세계의 질서를 차지한 다른 세 나라가 동시에 공격할 것이다. 카게야마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아주 단순한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잠입해서 황제와 황족을 죽인다. 몇이 되든 모조리 자신이 죽여서 성국을 혼란에 빠트린 후 차례차례 가까운 나라들을 공격한다.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고 무서움을 모르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정말로 그 일을 실행할 생각이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성국들의 지형을 조사했다. 멀리 쏜 활을 찾으러 가겠단 핑계로 호위도 없이 국경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시지마는 그 때 만난 남자였다.
"카게야마 토비오. 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가 기억하지 못하길 바랐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카게야마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뒤로 기대었다.
"그런가."
기댔다가 또 다시 몸을 뺀다. 우시지마는 자리에서 내려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카게야마에게로 걸어왔다. 카게야마 역시 일어나 다가오는 우시지마를 보았다. 소매 속으로 주먹을 쥔 카게야마는 손 안에 축축하게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불현듯.. 어떤 아릿함이 느껴졌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에게 다가와 말했다.
"카게야마 토비오."
"예. 우시지마님."
"배의 상처는 다 나았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잘 묶여있던 옷의 끈이 풀린다. 겹겹 잘 쌓아올린 얇은 비단옷들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우시지마는 커다란 손으로 옷 사이를 헤치며 맨 살을 짚었다. 아릿한 통증이 기억과 함께 떠오른다. 차가운 손이 갑자기 닿아 카게야마는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우시지마는
홀 : 허리를 감싼다
짝 : 내버려둔다
우시지마는 한 발자국 도망친 카게야마를 그대로 두었다. 감흥의 조각도 없는 무심한 얼굴에 오히려 카게야마가 부끄러워졌다. 다시 다가가자 어깨 아래로 여러겹의 옷들이 흩어져 내렸다. 카게야마의 상의에는 가슴을 가리는 흰 비단속옷 뿐이었다. 어차피 의식하지 않았던 부위라 카게야마는 신경쓰지 않았다. 우시지마 역시 카게야마의 발 아래 떨어진 옷들을 보았다가, 이제는 완전히 다 드러난 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도 상처를 보려고 하니 네가 피했다."
"...기억하시는 겁니까."
"그 활을 잊을 리가."
카게야마는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살결이었으나 여자의 배답지 않게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칼로 베이거나 활에 맞은 자국이 아니었다. 짐승의 이에 찢긴 자국이었다.
*
카게야마는 시라토리자와의 국경 근처에서 정탐을 하다 커다란 호랑이를 발견했다. 아름답고 위엄이 넘치는 모습에 원래의 목적을 잊은 채로 그 대호를 쫓았다. 정확히 쏘았는데도 화살을 꽂은 채 호랑이는 계속 달려나가다가, 몇 번은 카게야마의 냄새를 맡고 달려와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호랑이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호랑이가 나무 위에 올라올 수 있는 줄도 모르고 올라갔다가 그만 배를 물어뜯기고 만 것이다.
그대로 카게야마는 기절했다. 호랑이에게 반쯤은 몸이 먹혔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뜨니 카게야마는 웬 막사 안이었다. 일어나려다가 상처가 아파왔다. 옷을 열어보니 피가 흠뻑 젖은 천이 상처를 덮고 있었다. 천을 열어보자 예상했던 상처는 없고 흉이 져있다. 단지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정신을 차렸군. 놀라운 회복력이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아팠던 것이다. 카게야마는 놀라서 후다닥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말을 끝내자마자 굳게 다물려있는 입, 짙은 눈썹이 맹목적으로 정결해보이는 남자였다. 카게야마는 다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입고 있던 옷 대신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저 남자의 것인듯 카게야마의 몸엔 조금 컸다. 남자는 카게야마에게 손을 뻗었다. 카게야마는 반사적으로 피했으나 한 손으로 어깨를 잡곤 다시 다른 손으로 배를 눌렀다. 윽, 하는 신음이 카게야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상처는 이제 괜찮을 것이다. 다만 나는 고통까진 없애지 못하니 당분간은 아프겠지."
남자의 손이 카게야마의 배를 슬슬 훑고 지나갔다. 카게야마는 멍하니 그 두꺼운 손을 보다가, 남자의 부름에 얼굴을 돌렸다.
"넌 호랑이를 쫓고 있던 건가?"
"..그래."
카게야마의 짧은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천천히 끄덕였다.
"입은 옷은 평복같았지만 질이 좋은 옷이었고, 가지고 있는 활도 길이 잘 든 물건이었지. 타국의 귀족인가. 남장을 하면서까지 활을 쏘다니 이상한 여자군."
카게야마는
홀 : 부정한다
짝 : 화낸다
카게야마는 감사의 인사를 해야한다는 것도 잊고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난 여자가 아니다!"
"?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네 몸 속을 보았다. 여자가 아니라면 이 안에 자궁이 있을리가 없지."
남자는 다시 카게야마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카게야마는 마치 남자가 제 뱃속의 내장을 훑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뜨끈한 기운이 배에서부터 흘러와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다.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만졌다.
"넌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더군. 분명 임신을 하면 좋은 아이가 태어날 거다."
"무슨,"
"내가 바라던 몸이다. 연약하지 않고, 생기가 넘치는군. 가슴은 작긴 하지만 제대로 젖이 나올 것 같으니.."
카게야마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 남자의 얼굴로 베개를 던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카게야마는 아픈 부위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자신을 추행하기 위해서가 아님은 알았다. 그러나 여자의 삶을 상상해본 적 없던 카게야마에게 남자의 말은 폭력이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카게야마는 부러 냉정한 얼굴을 했다.
"무례함이 지나쳐 듣고 싶지 않다. 어떤 방법을 썼는진 모르나 상처를 치료한 것은 고맙게 생각하니 거처를 말하라. 보답을 하겠다."
"내 칭찬이 무례했다니, 정말이지 이상한 여자군."
남자는 카게야마의 질문은 무시한 채,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놔라."
"난 우시지마다."
"나는 놓으라고 말했다."
"건방진 여자다."
손목을 놓지 않은 남자는 기가 막히다는 듯 처음으로 웃었다. 의외로 웃으면 소년같은 얼굴이 되는 남자였다.
"내 이름은 우시지마 와카토시다. 이름을, 말해봐라."
"....!"
우시지마 와카토시.
카게야마가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시라토리자와-네 개의 성국과 타국의 누구라도 모를 리 없는 이름이었다. 시라토리자와의 젊은 황제. 치유력이란 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자마자 의심했어야 했다.
왜 황제가 여기에?
카게야마가 입을 다물자 우시지마 역시 카게야마가 자신의 신분을 눈치챘다는 걸 알았다. 우시지마는 손목을 놓았다. 카게야마는 그런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듣고 싶구나."
"...."
"네 이름은 뭐지?"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킨다이치와 쿠니미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들켰다.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의 눈에서 벗어나고 싶어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그 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익숙한 발자국소리에 반응해 곧바로 활을 찾아 메고 막사를 뛰쳐나왔다. 우시지마가 한걸음 늦게 나왔다.
"왜 그러지?"
"호랑이."
"뭐?"
"조용히.."
카게야마는 활시위를 당긴 채로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나뭇잎이 스스스 하고 비벼지는 소리가 났다. 눈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눈이 아닌 귀가 좋았다. 집중하니 우시지마의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섞여 들렸다. 고동소리조차 흔들림없는 남자였다.
짐승이 저 멀리 걷고 있다.
화살을 잔뜩 맞아 지친 상태다.
터벅터벅 걷는다.
그러다가 주위를 살폈다.
거친 콧김.
무슨 생각을 할까.
사냥꾼을 경계하는지 쉽게 서지 않는다.
끄으응..하는 신음소리.
겨우 눕는다.
부스럭
먼 곳에서 나는
짐승의
카게야마는 활을 당겼다. 눈을 감았던 짐승의 미간에 화살이 꽂인다. 우시지마 역시 보이진 않았으나 바로 명중했음을 알았다. 카게야마는 활을 어깨에 멨다.
우시지마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카게야마는 재빨리 등을 돌리고 말했다.
"답례는 호랑이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것이 2년 전의 일이었다.
*
우시지마는 2년 전과 달라진 것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 또한 우시지마 앞에선 한 번도 왕이었던 적이 없었다. 카게야마는 생각한다. 어째서 이 남자는 여자를 보듯 자신을 보는걸까. 카게야마는 알지 못하는 세계였다. 아마 그렇기에 우시지마의 앞에선 그답지 않게 피하고 싶어지는지도 몰랐다.
"계속 널 찾았다."
우시지마는 묵묵히 카게야마의 배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옷과 활을 보니 평국의 귀족임은 확실한데, 내 눈에 들어오는 활실력을 가진 이는 없었지. 남장을 했기에 눈에 띄지 않는건가 싶어 기회가 날 때마다 살펴보게 했다.
그러다 서쪽 평국의 왕이 실은 여자이며 단패궁으로 들어갔단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
"..우시지마님은 이상한 분이시군요. 고작 한 번 만난 사람를."
"평생을 만나도 희미한 사람이 있고, 한 번을 만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카게야마는 대답 대신 발치의 옷들을 주워 끌어안았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가 서투르게 옷을 입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제대로 옷을 입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질리지도 않는지 쳐다보았다가, 결국 손을 내밀어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여복을 많이 만져본 솜씨였다. 카게야마는 얼굴을 붉혔다.
"감사합니다. 우시지마님."
"내 아이를 낳을 여자인데 함부로 몸을 밖에 보일 순 없지."
젊은 황제는 그렇게 말했다.
홀 : 침묵
짝 : 부정
2년 전,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때 카게야마는 우시지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때의 자신은 여자가 아닌 왕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과연 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을 가린 흰 속옷을 드러낸 주제에 이 남자의 앞에서 여자임을 부정할 순 없었다. 카게야마는 짐승의 이빨에 물렸던 감각을 떠올렸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가슴의 답답함과 고통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죽지 않을 터였다.
카게야마가 말없이 서있는 동안 옷을 고쳐입게 한 우시지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카게야마의 머리에 꽂힌 진주 장식을 건드려보았다.
"이제 물러가도 좋다."
"..감사합니다."
카게야마는 비틀거리며 동궁을 나왔다. 쿠니미는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상궁이 서둘러 카게야마를 부축했다. 현기증이 가시질 않아 카게야마는 정말로 연약한 여인처럼 상궁에게 기대어 걸었다. 단패궁으로 돌아오자 궁녀가 선물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누가 보낸 것이더냐."
"동궁에서 보내셨습니다."
수수하지만 공을 들여 만든 듯한 나무 함이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두어번 흔들었다.
"열어봐라."
그리고 내용물을 확인한 카게야마는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 것이다. 함 속에는 2년 전 자신이 잡았던 대호의 가죽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훌륭하게 손질된 가죽을 쓸어보았다.
"..이상한 사람."
우시지마 와카토시
○ 13 (+3)
◇ 10 (+0)
카게야마 토비오
□ 8 (+1)
*
우시지마에게 인사를 갔던 것 뿐인데 낮이 빠르게 지나가 있었다. 카게야마는 식사를 하며 앞으로 카라스노와 네코마가 도착해도 인사를 가야하는 지를 물었다. 시중을 들던 궁녀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카게야마는 밥을 남겼다. 두 번이나 더 이 짓을 해야한다니 그는 믿고 싶지 않았다.
"마마..."
단패궁의 문이 열렸다. 멍하니 창가에서 정원의 단풍을 보면 카게야마는, 궁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방금 누구라고 했지?"
"오사와 대신의 따님께서 오셨습니다. 뵙기를 청하는데.."
궁녀는 카게야마의 눈치를 보았다.
"들일까요. 마마."
카게야마는 자신이 왜 그녀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놀랐다. 혼약을 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1. 들인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렸다. 카게야마의 혼약자였던 여인이 사뿐 사뿐 걸어들어왔다. 지금껏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같은 복식을 입고 있자니 오사와가 얼마나 우아하게 걷는 지를 카게야마는 알 수 있었다. 기억 속의 오사와는 조용하고 자수를 좋아하던 여자였다. 사냥을 다녀올때면, 꼭 작은 토끼를 잡아달라고도 했었다. 카게야마는 큰 짐승을 사냥하는 걸 좋아해 토끼를 잡은 적은 없었다. 늘 사냥이 끝나고서야 토끼의 기억이 났다. 그래도 오사와는 매번 사냥을 가는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액운을 피하는 부적이 담긴 자수주머니를 주면서.
"단패궁 마마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오사와."
화장으로 가렸지만 수척한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이 왕으로 했던 모든 일에 한 치의 후회도 없었다. 그렇다해도 이 여인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상궁과 모든 궁녀를 물렸다. 방 안엔 카게야마와 오사와만이 남았다.
"....알겠지만, 네 아비와 귀족들이 합심해 난을 일으켰다. 나는 위왕이란 것이 드러나 이 곳에 있게 되었으나."
카게야마는 오사와에게 다가가 엎드린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오사와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너의 청렴이 의심받는다면 직접 내 앞으로 데려오거라. 내가 친히 그 놈의 사지를 찢어 네 결백을 증명해주마."
"폐하. 폐하."
"무엇이 두려우냐, 오사와. 너는 잘못이 없어. 너에 대한 일만큼은 모두 내 잘못이다."
"폐하..!"
오사와는 카게야마의 품에 뛰어들었다. 이토록 눈물이 많은 줄은 몰랐다. 카게야마의 가슴을 적시며 오사와는 흐느꼈다.
"폐하..저와 함께 도망치셔요."
"뭐?"
"폐하께서 남자를 상대하는 법을 아십니까. 저는 상관없어요. 폐하. 저와 함께 도망치셔요."
"오사와.."
오사와는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폐하가 여자라 하여도 저는 좋습니다. 성국의 모두가 도착하기 전에 저와 같이.."
절박해 보이는 여자의 눈 안에 카게야마가 들어있다. 카게야마는 한 번도 오사와를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었다. 기억 속의 그녀는 늘 카게야마의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오사와의 바람에
홀 : 응했다.
짝 : 응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오사와."
"폐하!"
"이미 시라토리자와와 아오바죠사이가 와있어. 왕이었던 자가 꼬리를 말고 도망치다니, 우스운 꼴일 것이다."
"아아.."
카게야마는 무너져내리는 오사와를 끌어안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눈가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괜찮다. 오사와. 나는 괜찮으니 네 일에 힘쓰도록 하거라."
"내일도 올 것입니다."
오사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모레도 올 것이어요."
"오사와.."
"아직 성국의 모든 왕족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 혼잡한 틈을 타 도망치면 됩니다. 폐하. 절 보세요."
오사와는 제 소매 속에 다른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 손을 빼냈을 땐 손 안에 패물이 가득 잡혔다.
"집안의 패물을 가져왔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폐하와 갈 수 있어요.."
"...토끼를."
카게야마는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토끼를 한 마리는 잡아줄걸 그랬지."
오사와는 울며 돌아갔다. 밤이 되었다.
*
밤이 되었다. 키타가와의 재상이었고 이제는 섭정인 쿠니미가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열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의 반이 찼다. 본래 왕의 거처인 청호궁이 단패궁으로 바뀌었다. 쿠니미는 섭정왕의 자격으로 단패궁에서 가까운 처소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가 져 어둑어둑하게 되었을 때 쿠니미는 우선 도착한 성국의 왕족들에게 제 거처로 올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섭정. 모두를 불러놓고는 제일 늦게 도착하다니,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걸까?"
오이카와가 푹신한 등받이에 기대 흐트러진 채로 말을 걸었다. 쿠니미는 빙긋 웃었다.
"감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오이카와. 타국의 섭정에게 괜한 시비 걸지 마."
"이와이즈미의 말이 옳다. 오이카와."
오이카와의 옆에서 검을 닦던 이와이즈미가 타박하고, 우시지마가 이와이즈미를 거들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푹 등받이에 기댔다. 그의 얼굴엔 불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이와쨩은 어째서 쿠니미의 편을 드는 거? 그리고 우시와카쨩은 친한 듯이 이와쨩을 부르지 말아줄..악!"
"넌 진짜 좀 조용히 해라."
결국 이와이즈미에게 한 대 맞은 오이카와가 입을 다물었다. 우시지마는 손 안의 반지를 빙글 돌렸다. 킨다이치는 벽에 선 채로 우시지마의 손에 있는 반지를 힐끔거리다 눈을 돌렸다. 그 역시 쿠니미가 왜 이 시간에 자신들을 모이게 했는 지 알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확인한 쿠니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모여주셨으니 이제 단패궁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폐,..카게야마?"
"그렇습니다. 장군. 지금은 단패궁의 논의를 하는 중이니 감히 성국의 왕족분들에게도, 장군에게도 같이 존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모두 평등하니까요. 쿠니미는 킨다이치에게 말했다. 킨다이치는 보란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야. 역사를 봐도 단패궁을 논할 때 성국의 왕족과 자국의 귀족은 동등한 권리를 받았지."
오이카와가 뭐라고 반론하려는 걸 잡으며 이와이즈미는 쿠니미의 말에 긍정했다. 우시지마 역시 수긍했으며, 결국 오이카와도 못마땅한 얼굴을 휙 돌렸다. 가장 민감한 사항에 동의를 받은 쿠니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또한 제가 찾아보니 단패궁의 패는 최소 다섯명이었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허락된 자리는 열명이나 단패궁에 들어가는 이는 다섯명부터란 기록을 찾았습니다. 본래대로라면 성국의 왕족은 두 명이 와야하나, 지금의 시라토리자와가 그렇듯 한 분만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너무 멀어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니 나라에 상관없이 다섯명이 모이면 단패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이카와는 더 들을 것도 없단 목소리로 쿠니미의 말을 잘랐다.
"오늘밤부터 단패궁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이네."
"그렇습니다."
벽에 기대어 있던 킨다이치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쿠니미의 대답을 들은 이와이즈미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섭정은 아오바죠사이에 위왕 카게야마가 여자임을 알려 질서를 바로잡은 대가로, 당분간 내정엔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했었지."
"간섭이라고 해야할지. 저희도 위왕이 어지른 일들을 빠르게 정리해야하지 않습니까. 하나하나 아오바죠사이의 허락을 구하기엔 워낙에 폭정이 심하여 부탁드린 겁니다."
"그말이 맞는지? 장군."
갑작스런 이와이즈미의 질문에, 킨다이치는 반 박자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가 매끄럽게 입을 움직였다.
"킨다이치 장군이야말로 그 폭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 오죽하면 충성을 맹세한 검을 왕에게 빼들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위왕은 안됐군."
오이카와는 킨다이치와 쿠니미를 번갈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희 둘은 토비오쨩의 친우지? 토비오쨩이 아오바죠사이에서 너희의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너희를 위해서 강해져야한다고 했었지."
웃고 있던 쿠니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성국의 왕족이 아님에도 신의 사랑을 받아 재능이 넘치는데 하필 여자의 몸이며, 친우들을 위해 쏜 화살들은 제 목을 뚫었구나. 단패궁이니 뭐니 거창하게 말해봐도 결국은 임신을 위해 창녀처럼 다리를 벌려야 돼. 그 곳으로 친우를 들이밀다니 상상할 수 없어."
"그녀는 불행하지 않다."
오이카와의 말을 우시지마가 퉁명스럽게 받았다.
"내 눈에 든 여자인데 불행일리가."
"아아, 정말! 우시와카쨩이랑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이와쨩이 나와 자리를 바꿔줘."
부산스럽게 오이카와가 자리를 옮겼다. 쿠니미는 굳었던 얼굴이 언제였냐는 듯 다시 웃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모신 까닭은, 단패궁에 오늘 밤부터 들어가는 것을 동의하시는지에 대해 묻기 위함입니다."
동의-오늘 밤부터 카라스노와 네코마보다 각각 하루, 이틀의 호감도에 더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반대-카라스노와 네코마가 도착하는 날부터 밤이 시작됩니다.
모두 동의했다. 킨다이치가 가장 마지막으로 손을 들었다. 쿠니미는 모인 이들을 훑어본 후 담담히 말했다.
"그럼 지금 단패궁에 말을 전하겠습니다. 이 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그 시각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옷을 갈아입던 카게야마는 헐떡이며 뛰어온 궁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난 아직 준비가..!"
"마마님, 서두르셔야합니다!"
단패궁의 불이 다시 밝았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단패궁이란 이름에 어떤 뜻이 있는 지 궁금했다. 신의 은혜니 권능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였지만 분명 속뜻은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지금 그는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상궁이 엄숙하게 가져온 다섯 개의 나무패를 보며 카게야마는 중얼거렸다. 합궁을 위해 카게야마가 골라야 하는 나무패의 색은 전부 붉은 색이었다.
단패丹牌
이 붉은 패를 가진 남자만이 궁에 들어올 수 있다.
"이래서 단패궁이라고 불리는 거였군."
하기야 누구와 할 지 모르는 정사를 위해 만든 나무패의 이름을 궁에 그대로 붙이기엔 민망했을 것이다. 다섯 개의 붉은 패가 눈 앞에 있다. 카게야마는 어느 것을 골라야할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상궁이 그를 재촉한다. 눈을 질끈 감고서 더듬었다. 손 끝에 걸린 것을 잡아서, 확인하지 않고 상궁에게 내민다.
카게야마가 고른 이름은
1~2 : 쿠니미 아키라
3~4 : 쿠니미 아키라
5~6 : 쿠니미 아키라
7~8 : 쿠니미 아키라
9~0 : 쿠니미 아키라
카게야마가 눈을 떴을 때, 상궁은 이미 품에 단패를 넣고 있었다. 망설이던 카게야마는 결국 나가는 상궁을 잡았다.
"누구?"
되도록이면 표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오랜 교육을 받은 상궁은, 카게야마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다시 단패를 꺼내 카게야마에게 뒤집어 보여준다.
쿠니미 아키라
카게야마는 멍하니 그 이름을 들여다 보았다. 글자는 이미 눈에 들어왔는데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가, 알겠다고 끄덕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상궁은 서둘러 단패를 전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카게야마는 혼자 남았다. 그리고 그는 상궁이 실수로 놓고 간 듯한 나머지 단패들을 발견했다.
그는
홀 : 다른 단패를 확인해본다.
짝 : 내버려둔다.
평소라면 손도 안 댈 물건이었겠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로 이 뒤에 이름이 다 적혀있는 걸까. 네 개의 나무패는 모두 피를 먹인 것처럼 붉었다. 어쩌면 이렇게 선명한 붉은 색이 될까. 카게야마는 손가락으로 건드려 단패 하나를 툭 뒤집었다.
쿠니미 아키라
방금 상궁이 가지고 나간 것이 쿠니미의 것이 아니었던가?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였다. 다른 것을 뒤집어본다.
쿠니미 아키라
카게야마는 세 번째로 단패를 뒤집었다.
쿠니미 아키라
마지막은 뒤집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아랫 입술을 꽉 깨물고서 마지막까지 확인했다.
쿠니미 아키라
*오늘 아침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허락했습니다. 그러므로 쿠니미는 단패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바꿔두었습니다. 이틀동안 이 선택지는 유지됩니다.
쿠니미 아키라는 단패궁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신방이니 불이 밝아야하는데, 어느새 촛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발에 무언가가 채이자 그 것을 주워들었다. 어둠 속인데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상궁의 실수구나. 단패는 뽑았으면 함께 가져가야하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눈이 밤에 익어 신기하게도 방 안의 그림자들이 보인다. 쿠니미는 한줄기 흐르는 달빛에 의지해 더듬거리며 침상 가까이 갔다. 은은한 측백나무의 냄새가 풍긴다. 밤과 어울리는 좋은 향기였다. 쿠니미는 앉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다가 결국 카게야마를 불렀다.
"폐하."
"숨바꼭질을 하실 겁니까."
"폐하. 다리가 아픕니다."
순간 구석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쿠니미는 잡으려다가 중심을 잃고 침상 위로 쓰러졌다. 카게야마는 그런 쿠니미의 위에 올라탔다. 카게야마의 손엔 단패를 쥐어져 있었다. 쿠니미는 분노로 헐떡거리는 카게야마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너. 이거."
"보셨네요."
"무슨 생각이지?"
"보시는 대로입니다."
"너는..너는!! 도대체!!!!"
카게야마가 살기를 내뿜었다. 쿠니미가 반란을 말해도, 옥에 가두어도, 오이카와의 앞에서 여자임을 밝혀도 내뿜지 않던 살기였다. 살이 조여오는 듯한 감각에 쿠니미가 신음했다. 카게야마는 숨을 쉬지 못하는 쿠니미의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렸다.
"무슨 생각이냐. 섭정."
"폐하께서.."
쿠니미가 가는 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허락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오늘 아침.. 폐하가. 네가."
카게야마는 영문을 몰랐던 쿠니미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런 말을 했었다. 카게야마는..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는 목이 졸리는 중에도 웃었다.
"네가..나를 믿어준 거니까.."
"너.."
"이 지경이 되어도.. 아직도..나를..멍청하게.."
쿠니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질려가고 있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쿠니미를 놓아버렸다. 허억, 헉. 쿠니미가 엎드려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목을 조른 것은 자신인데, 카게야마는 마치 자신도 호흡이 곤란한 마냥 머리가 어지러웠다.
*
새벽, 불이 켜졌다. 궁녀가 정리해야할 단패궁 안은 몹시 어지러웠다. 또한 그녀는 나간 줄 알았던 섭정과 잠깐 마주쳤었다. 섭정은 침상에 앉아 잠이 든 마마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목에는 손으로 졸린 듯한 자국을 달고서. 단패궁 안엔 섭정과 주인밖엔 없었으니 누구의 짓인진 분명했다. 궁녀가 놀란 마음을 감추고 다시 나가려하자 섭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 잠이 드셨으니 곧 깨실 것이다. 나가기 전 차를 준비하거라."
궁녀가 차를 준비하러 간 것을 확인한 쿠니미는 저린 다리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카게야마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한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목이 졸린 후 헐떡이며 일어난 쿠니미에게 카게야마는 말했다.
"나는 널 이해할 수가 없다. 쿠니미."
"폐하."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치만 폐하는 저를 믿고 싶으시겠죠."
"...그래. 그게 너무나 싫다."
싫다라는 말에 쿠니미는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 원래는 단단히 숨겨두려던 말이었다.
"조금만.."
"뭐?"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뭘. 무엇을?"
"폐하. 저는."
저는..쿠니미는 말하려다 허탈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햇빛인지 달빛인지. 아니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건지 모를 빛이 카게야마의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온 세상에서 쿠니미의 눈엔 카게야마만이 빛나보였다.
"나는 어지간히 네게 미움받는 게 걱정되나보다. 카게야마."
"뭐? 갑자기 또 왜 이래? 사람이 자꾸 바뀌잖아."
"미워해. 나를 미워해라. 카게야마. 너를 이 곳에 두고, 단패를 바꿔채 희롱하려한 나를 잔뜩 미워해."
"..? 나를 또 놀리려는 건가?"
"미워하면서 버티는 거야. 증오는 사람을 강하게 하지."
아. 정말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복잡해서 알 수가 없다. 카게야마는 짜증을 내며 침상 위에 철퍼덕 누웠다. 쿠니미는 그 옆에 앉아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는 머리를 거칠게 흔들며 쿠니미의 손길을 피하려다가, 곧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잘 자. 카게야마."
쿠니미의 목소리가 그날 밤 카게야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쿠니미 아키라
○: 15 (+2)
◇: 15
카게야마 토비오
□: 15 (-2+2 : 0)
카게야마는 눈을 떴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새벽이다. 서늘한 공기. 상쾌했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니 마침 침상 옆에 자신이 좋아하는 차가 있었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셔보니 온도가 딱 좋았다.
25일 밤 끝
'HQ/카게른 > 폐왕의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 28일 아침 + 오사와 루트 배드엔딩 (0) | 2016.01.03 |
---|---|
4. 27일 <남궁-이와이즈미> (0) | 2016.01.03 |
3. 26일 <북궁> (0) | 2016.01.03 |
1. 12월 24일 <킨다이치> (0) | 2016.01.03 |
0. 시작 (0) | 2015.12.03 |